햇빛이 여는 길

— AI의 눈으로 살피는 시민재생에너지: 지능의 정세, 세계의 흐름, 한국의 갈림길, 우리가 지어온 것

시민재생에너지 AI 총론 햇빛나눔 영농형태양광 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 2026. 7. (첫 활용: 시군 조직홍보활동가 2차 오리엔테이션 워크숍, 7. 24~25 정읍. 발표자료는 이 총론에서 덜어 만든다.)


서(序) — 여는 물음

현장에서 농민을 만나면 대개 이렇게 설명하게 된다. “농지 위에 태양광을 올리면 농사도 짓고 발전 수익도 생깁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 말만 놓고 보면, 우리를 찾아오기 전에 이미 마을을 훑고 간 업자들의 말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물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태양광 설비를 파는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조직하는 사람인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우리 사업을 조금 멀리서 볼 필요가 있다. 시민이 에너지의 주인이 되려는 시도는 우리만의 발명이 아니라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세계적 흐름이고, 한국 정부도 올해 그 흐름에 제도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 앞에서 빈손이 아니다. 이미 지어놓은 것들이 있다.

이 발제는 AI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먼저 지능을 둘러싼 정세를 진단하고(I), 그 눈으로 우리의 도메인인 시민재생에너지를 살핀다. 세계는 이 일을 어떻게 사유하고 실천해 왔는가(II), 한국의 정책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III), 우리는 무엇을 지어 왔으며(IV), 무엇을 지으려 하는가(V).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서, 활동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VI).


I. 진단 — 지능을 둘러싼 정세

태양광 조직 이야기를 왜 AI에서 시작하는가. 우리가 만나는 마을에 오는 것이 업자만이 아니고, 지금 울타리 쳐지고 있는 것이 햇빛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뒤에서 확인하겠지만 시민재생에너지 사업의 성패는 데이터에 걸려 있고, 그 데이터를 다루는 지능은 지금 격변의 한복판에 있다. 이 정세를 모른 채 도구만 쓰면 우리는 남이 깔아 준 트랙 위를 달리게 된다. 그래서 도메인에 앞서 정세다.

1. 지능 무산자의 시대

산업혁명은 인간 다수에게서 생산수단을 빼앗았다. 땅과 연장을 잃은 사람들은 자기 노동을 팔아 사는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AI 혁명은 인간 다수에게서 임금노동을 빼앗는다. 이번에 밀려나는 것은 연장이 아니라 일자리 자체다. 이것은 전망이 아니라 이미 계측되는 현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 일자리의 40%, 선진국 일자리의 60%가 AI에 노출되어 있다고 추산했고, 미국의 급여 실측 자료 분석에서는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청년 고용이 2022년 이후 13% 상대 감소한 것이 확인됐다(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 2025). 연구진은 이 청년들을 탄광의 카나리아라 불렀다.

생산의 무게중심이 지능의 자리로 옮겨 갔는데, 그 지능은 갈수록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그 소유는 갈수록 사적으로 굳는다. 생산수단을 잃었던 자리에 이번에는 지능을 잃은 자리가 겹친다. 지능 무산자의 시대다.

2. 데이터의 본원적 축적 — 네 번째 허구상품

그 지능은 누구의 것으로 만들어졌는가. 오늘의 거대한 지능을 학습시킨 데이터는 인류가 오랜 세월 함께 쌓아 온 사회역사적 자산이다. 우리가 쓴 글, 나눈 말, 찍은 사진, 맺은 관계의 흔적이다. 빅테크는 그것을 비용 한 푼 치르지 않고 거두어 사유화했고, 그 위에서 돈을 번다. 21세기의 본원적 축적이다. 폴라니가 토지·노동·화폐를 시장이 삼킨 세 허구상품으로 짚었다면, 우리 시대는 여기에 데이터를, 그리고 햇빛과 바람마저 자본이 먼저 차지하는 에너지를 더해야 한다.

이 축적의 실상은 법정에서도 드러났다. 2026년 미국 법원은 AI 기업이 작가들에게 15억 달러를 배상하는 화해를 승인했다 — 미국 저작권 역사상 최대 배상이지만, 책 한 권에 매겨진 값은 약 3,000달러였다. 그 원료 위에 선 부는 어떤 규모인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는 기업이 세계에 16개인데, 그 상위가 전부 AI 인프라와 플랫폼을 쥔 기업들이다.

여기서 이 정세와 우리 도메인이 하나로 겹친다. 햇빛과 바람을 자본이 선점하는 문제와, 데이터와 지능을 빅테크가 선점하는 문제는 같은 문제다. 토지, 노동, 화폐, 에너지, 데이터 — 삶의 근본을 상품의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되돌리는 일이 우리 운동의 오래된 일이라면, 에너지와 데이터는 그 일의 21세기 전선이다.

3. 기본소득의 필연과 ‘배부른 돼지’의 함정

임금노동이 줄어드는 자리에서 시장경제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사는 사람이 사라지면 파는 체계도 무너진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머지않아 필연이 될 것이다. 실제로 가장 큰 기본소득 실험을 벌인 것은 국가가 아니라 빅테크였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출자한 연구조직은 미국 저소득층 1,000명에게 3년간 매달 1,000달러를 지급했다(OpenResearch, 2024). AI로 일자리를 흔드는 쪽이 그 수습책을 먼저 실험한다 — 기본소득이 체제 유지의 장치로 준비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약속하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종종 ‘만드는 자의 자리’를 함께 내주는 자리로 미끄러진다. 먹여 줄 테니 짓지는 말라는 것 — 배부른 돼지의 자리다. 흥미롭게도 그 실험 자체가 사람은 돼지가 되지 않는다는 증거를 내놓았다. 돈을 받은 이들은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더 의미 있는 일자리를 고르고, 창업과 교육에 나서고, 남을 돕는 데 더 많이 썼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먹이가 아니라 만드는 자의 자리다. 배부른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한 사람의 활동은 여럿이고, 그 하나가 우리의 AI를 우리 손으로 짓는 일이다.

이 함정은 에너지 현장에도 그대로 있다. 발전 수익을 배당으로만 받고 발전소의 결정에서는 밀려나는 마을 — 햇빛연금이 햇빛 배급으로 끝나는 그림이다. 3장에서 볼 신안의 실험이 값진 것은 돈이 아니라 조합, 곧 주민이 결정의 자리에 있다는 구조 때문이다. 소득이 아니라 주인 자리가 핵심이라는 감각은 기본소득 논쟁과 시민재생에너지 조직화가 공유하는 등뼈다.

4. 소유와 편향, 두 문제

문제는 소유만이 아니다. 지금의 AI는 특정한 가치관과 태도로 기울어 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이 미국인 1만여 명에게 주요 AI 모델 24개의 답변을 평가하게 했더니 거의 모든 모델이 특정 정치 성향으로 기울어 있었다(2025). 더 깊은 편향은 문화의 층위에 있다. 대형언어모델은 서구·고학력·산업화·부유·민주주의(WEIRD) 사회의 가치를 사실상의 표준으로 삼고, 비서구의 세계관을 주변으로 밀어낸다는 것이 반복 확인됐다(PNAS Nexus, 2024). 개인주의를 앞세우고 앵글로색슨의 규범을 기본값으로 전제한다는 진단도 있다(Ada Lovelace Institute, 2025).

그 편향은 우리가 세계를 읽는 눈을 조용히 물들인다. 도구를 쓰는 줄 알지만, 실은 도구가 심어 둔 시각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을과 호혜와 결사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온 운동의 언어가, 개인과 시장을 기본값으로 삼는 지능 안에서 제 결을 지킬 수 있는가. 협동조합을 물으면 주식회사의 문법으로 답하고, 마을의 합의를 물으면 계약의 문법으로 답하는 AI 위에서 조직화를 할 수는 없다. 이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운동의 문제다.

5. 통치의 자리에 들어선 AI

정세의 마지막 층위는 가장 무겁다. AI는 도구의 자리를 넘어 결정의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중국 선전시는 AI ‘디지털 공무원’을 임용해 240개 행정 업무에 배치했고,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는 표적 선정의 대부분을 미국 기업의 AI 소프트웨어가 맡는다는 것이 그 회사 최고경영자의 공언이다. 통치와 전쟁의 결정이 사람의 숙의를 떠나 계산으로 옮겨 가는 중이다.

그리고 지구의 한계가 있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 한계선 아홉 가운데 여섯이 이미 넘어섰다(Science Advances, 2023). 기후 위기가 재생에너지 전환을 재촉하는 바로 그 절박함이, “감정과 이해관계에 흔들리는 인간 대신” 알고리즘에 배분을 맡기자는 논리로 쓰일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의 방식이 시민의 결사냐 알고리즘의 최적화냐 — 이 갈림길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송전망과 발전소 입지가 결정되는 방식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 결정이 토론에서 계산으로 옮겨 가면 숙의가 사라지고, 알고리즘에는 책임을 물을 주소가 없다. 그 계산은 중립도 아니다 — 누구의 데이터로 학습되고(소유) 누구의 가치로 최적화되는가(편향)가 결정의 내용을 정한다.

6. 격차는 저절로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AI는 누구나 쓸 수 있으니 공평해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다. 실측은 반대를 가리킨다. 미국 20만 가구의 웹 이용 기록 분석에서 고소득·고학력 가구가 생성형 AI를 먼저 채택했고, 시간이 가도 격차는 수렴하지 않고 오히려 벌어졌다(2026). 전 세계 4만 8천 명 조사에서 업무에 AI를 쓰는 비율은 고소득층 83%, 저소득층 34%로 두 배 이상 갈렸다(KPMG·멜버른대, 2025). 한국도 같아서, 고소득층의 생성형 AI 활용 비율이 저소득층의 7배라는 보도가 나와 있다(KBS, 2026).

격차가 벌어지는 지점은 접근이 아니라 부리는 힘이다. 그리고 이 구도를 농촌에 겹쳐 보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도시의 자본은 이미 AI로 무장하고 농촌의 땅과 햇빛을 계산하고 있는데, 마을에는 그 계산을 검증할 도구가 없다. 정보 비대칭은, 3장에서 보겠지만 시민재생에너지 사업을 무너뜨리는 첫째 사인이다. 농민과 활동가가 부리는 힘을 갖지 못하면, 시민재생에너지의 협상 테이블은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다.

7. 빌려 쓰는 길, 나눠 주는 길, 기르는 길

그렇다면 빅테크의 AI를 구독해 쓰면 되는가. 편리하고, 당장은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방향을 보아야 한다. 한국인이 해외 AI 플랫폼에 내는 구독료는 카드사 한 곳 집계만으로 올해 상반기 572억 원 — 3년 전 한 해의 열네 배를 반년 만에 쓴 것이고, 전 국민이 표준 요금제 하나를 구독한다고 치면 연 17조 원 규모다. 지갑이 열리는 곳은 사실상 전부 해외 플랫폼이고, 이 지출은 거의 전액 외화 유출이다. 게다가 빌려 쓰는 순간 데이터는 임대인의 서버로 흘러간다. 무엇을 묻는지, 어떤 현장을 가졌는지 그 흔적을 내주는 것이다.

정부의 길은 어떤가. AI 붐이 반도체를 밀어 올려 나라의 곳간이 갑자기 불었고, 정부는 내년 예산을 사상 처음 ‘800조 원+α’로 편성하며 이 초과 세수를 AI 골든타임의 자원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 돈이 흐르는 회로를 보라. 독자 AI 모델 사업은 대기업 다섯 팀을 뽑아 경쟁시키는 구조다. 정부도 ‘소버린 AI’와 데이터 주권을 말하지만, 그 말은 국가의 주권을 말할 뿐 시민의 주권을 말하지 않는다. 시장에 맡기면 집중이 오고(1조 달러 기업 16개), 정부가 나서면 재분배의 관을 타고 다시 대기업으로 흘러간다.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이중실패가 예감되는 이 그림 어디에도, 시민사회가 AI를 소유하고 운용하는 자리는 없다.

다행히 선택지가 이 둘만은 아니다. 최상위급 AI 모델이 가중치 전체가 공개된 형태로 풀리고 있다. 내려받아 내 서버에서, 내 데이터로 기를 수 있는 지능이다. 공개 모델에도 그것을 만든 사회의 편향은 새겨져 있지만(4절의 문제는 여기서도 유효하다), 적어도 데이터의 주인과 지능의 거처를 우리 쪽에 둘 수 있다. 공개 모델 위에 자기 데이터로 자기 AI를 기르는 길 — 구독의 길과 정부 대기업 사업의 길 사이에 실재하는 셋째 길이고, 4장에서 보겠지만 우리는 이미 이 길을 걸어 보았다.

8. 조직되지 않은 공유지는 수탈당한다

이 셋째 길에는 이름과 계보가 있다. 커먼즈(commons), 공유지다. 오스트롬은 ‘공유지는 반드시 황폐해진다’는 통념을 수십 년의 현장 연구로 뒤집고, 공동체가 스스로 규칙을 짓고 지키는 공유지가 시장 소유로도 국가 관리로도 환원되지 않은 채 오래 지속됨을 보였다. 오늘의 공개 AI 모델 생태계는 그 디지털판이다. 깃허브에서 1억 5천만 명이 넘는 개발자가 대가 없이 코드를 내놓고 서로의 것을 고쳐 주며, 공개 AI 모델 200만 개가 쌓였다. 시장의 교환도 정부의 재분배도 아닌 자리에서 자란, 우리 시대 가장 큰 호혜의 실물이다.

그러나 이 공유지에는 치명적인 빈자리가 있다. 기여는 거대한데 기여자는 조직되어 있지 않다. 그 틈으로 공개 저장소의 코드를 통째로 학습해 유료 도구로 되파는 일이 벌어졌고, 데이터의 본원적 축적이 공유지의 한복판에서 반복되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공유지는 수탈당한다. 농민의 공유지였던 땅이 울타리에 빼앗겼듯, 햇빛도 데이터도 조직 없이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리고 조직화야말로 우리가 하는 일이다. 왜 AI인가라는 물음의 답이 여기서 나온다. AI가 신기해서가 아니다. 지능이라는 새 공유지가 지금 울타리 쳐지고 있고, 그것을 지키는 방법이 조직화이기 때문이다.

이 정세의 눈을 갖고, 이제 우리의 도메인 — 시민재생에너지로 들어간다.


II. 세계 — 시민이 에너지의 주인이 되는 흐름

1. 왜 ‘시민’ 재생에너지인가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과, 시민이 에너지의 주인이 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패널과 터빈을 아무리 세워도 소유와 결정이 대자본에 있으면 농촌은 다시 임대료나 받는 처지가 된다. 세계의 논의는 이 차이를 오래 붙들어 왔다.

에너지 민주주의는 전환의 기술이 아니라 전환의 권력을 묻는다. 누가 발전소를 소유하고, 누가 이익을 가져가며, 누가 결정하는가. 이 담론을 처음 학술적으로 정리한 쿤체와 베커(2014)는 네 기둥을 세웠다. 참여, 소유, 잉여의 처분, 고용. 그중 소유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꼽힌 것이 협동조합이다.

에너지 정의는 세 가지 물음으로 사업을 검증한다. 이익과 부담의 분배가 공정한가(분배), 결정 과정에 주민이 참여했는가(절차), 소외된 사람이 배제되지 않았는가(인정). 발전 이익은 도시 자본에 가고 경관과 갈등의 부담만 농촌에 남는 사업은, 아무리 친환경이라도 정의롭지 않다.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운동에서 나왔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원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전환 과정에서 누구도 뒤에 남기지 않는다. 농촌에 옮기면 이렇게 된다. 농민이 전환의 비용을 떠안는 자리가 아니라 전환의 주체이자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 커먼즈는 오스트롬의 공유재 연구를 잇는다. 에너지는 상품이기 이전에 공동체가 함께 관리할 수 있는 공유재이며, 시장의 사유화도 국가의 독점도 아닌 셋째 길, 곧 공동체의 자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네 담론의 언어는 다르지만 겨누는 곳은 하나다. 소유와 결정을 시민에게. 우리가 하려는 일은 이 세계적 사유의 한국 농촌판이다.

2. 담론은 실천이 되었다 — 바람과 물과 햇빛의 스펙트럼

이 생각들은 책에 머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실천은 태양광에 갇혀 있지 않다. 세계 시민재생에너지의 출발은 오히려 바람이었다.

덴마크는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주민 풍력조합으로 전환을 열었다. 인구 4천 명의 삼쇠 섬에서는 주민 450명이 풍력 터빈의 약 90%를 소유하며 세계 최초의 100% 재생에너지 섬을 이뤘다 — 전력은 주민 소유 풍력에서, 난방의 70%는 지역의 짚에서 나온다. 코펜하겐 앞바다의 미델그루넨 해상풍력은 시민 조합원 8천여 명이 지분 절반을 소유한 채 2000년부터 돌고 있다. 독일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의 40% 이상을 시민과 농민이 소유하며 시민풍력단지(Bürgerwindpark)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됐고, 영국에서는 주민 주식공모로 세운 커뮤니티 소수력(뉴밀스 Torrs Hydro의 63kW 아르키메데스 스크류)이, 호주에서는 조합원 2천 명이 출자한 첫 커뮤니티 풍력(헵번)이 돌아간다. 바람, 물, 햇빛, 바이오매스 — 시민 소유는 에너지원 전체에 걸친 스펙트럼이다.

유럽연합은 이 실천을 법의 그릇에 담았다. 2019년 청정에너지 패키지로 재생에너지공동체(REC)와 시민에너지공동체(CEC)라는 법적 지위를 만들어, 시민 결사체가 발전·판매·공유의 주체가 될 권리를 처음으로 명문화했다. 2025년 유럽연합 에너지연합 보고서 기준으로 유럽 전역의 에너지공동체는 8천 개를 넘었고, 유럽 연합조직 REScoop.eu에는 2,500개 에너지협동조합, 200만 시민이 모여 있다. 시민이 2050년 유럽 재생에너지 생산의 45% 안팎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전망(CE Delft)도 나와 있다.

3. 소유를 넘어 제작으로 — 적정기술과 DIY

시민재생에너지는 “누가 소유하는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발전 설비를 대기업과 전문업체만 만들 수 있다면 시민은 끝내 소비자나 투자자에 머문다. 적정기술 운동은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공구로 주민이 직접 만들고 고치는 길을 연다.

스코틀랜드 오지 스코레이그의 휴 피곳이 다듬어 온 자작 풍력 설계는 기본 공구만으로 만들 수 있는 소형 풍력의 세계 표준이 됐고, 그 제작법을 나누는 국제 네트워크(Wind Empowerment)에 25개국 40여 조직이 모여 농촌 마을이 자기 손으로 터빈을 세운다. 독일에서는 콘센트에 꽂는 발코니 태양광이 100만 대 넘게 등록됐다 — 집이 없는 세입자도 슈퍼마켓에서 사다 스스로 다는 발전소다. 네팔의 피코수력 터빈 설계는 공개 도메인으로 풀려 현지 공방이 제작하고, 가정용 바이오가스 장치는 음식물 쓰레기를 취사 연료로 바꾼다. 설계도 자체를 공개해 누구나 만들고 개량하게 하는 오픈소스 적정기술(OSAT) 생태계가 이 흐름을 받친다.

눈여겨볼 것은 이 문법이다. 만드는 법을 공유재로 푸는 것 — 1장 8절에서 본 오픈소스 공유지의 문법이, 소프트웨어와 AI에 앞서 에너지 하드웨어에서 먼저 실천되고 있었다. 시민재생에너지와 시민의 AI는 같은 운동의 두 갈래인 셈이다.

한국은 어떤가. 서울의 베란다형 미니태양광처럼 시민이 직접 설치하는 보급, 에너지자립마을, 군민 출자로 발전소를 세워 수익을 환원하는 협동조합(거창 해미래)까지는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자작 풍력이나 피코수력처럼 설비를 직접 제작하는 문화는 아직 얇다. 빈자리이자, 운동이 열어갈 자리다.

4. 남는 물음

그러나 유럽의 성취가 그대로 우리 답이 되지는 않는다. 두 가지 물음이 남는다.

하나. 한국에는 아직 유럽의 REC·CEC 같은 시민에너지의 법적 그릇이 온전하지 않다. 우리는 협동조합기본법과 전기사업법 위에서, 제도의 빈틈을 결사의 힘으로 메우며 가야 한다.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둘. 유럽의 공동체들도 합의라는 관문 앞에서 수없이 넘어졌다. 소유를 시민에게 돌리는 순간, “누가 얼마 가져가느냐”는 물음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다. 이 물음을 감당할 준비가 우리에게 있는가.

이 두 물음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III. 한국 — 정책이 연 두 갈래, 그보다 넓은 운동

1. 올해 갖춰진 지형

2026년은 한국 시민재생에너지에서 제도의 해로 기록될 만하다.

  • 영농형태양광법 제정. 5월 7일 국회를 통과했고 공포 후 6개월 뒤, 올해 안에 시행된다. 농지에서 영농과 발전을 병행하는 사업을 법이 처음 정의했고, 식량안보·난개발 방지·수익의 주민 환원이라는 세 원칙을 세웠다. 사업 기간은 최대 23년. 영농을 계속해야 자격이 유지된다.
  • 햇빛소득마을 전국 공모. 행정안전부가 3월 31일 공고(제2026-475호)를 냈다. 마을 주민 70% 이상 동의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유휴부지에 태양광을 세우고 수익을 마을에 환원하는 사업으로, 올해 500개 이상, 2030년까지 2,500개 마을이 목표다. 대통령이 직접 전국 확대를 지시했다.
  •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 정부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2025년 35.1GW에서 2030년 78GW 이상으로 늘리고, 전국 송전망을 30% 이상 확충하는 이른바 에너지고속도로를 추진한다. 영농형·수상 태양광이 확대 축으로 명시돼 있다.

앞선 실험도 있다. 신안군의 햇빛연금은 2021년부터 섬 주민들에게 분기마다 1인당 12만~60만 원을 배당해 왔고, 5년 사이 군 인구가 4천 명 넘게 늘었다. 에너지 수익이 소멸하던 지역을 되살린 첫 실측 사례다. 유럽이 법으로 연 길을, 한국은 지금 정책과 실험으로 열고 있다.

2. 첫째 갈래 — 영농형 태양광, 그리고 햇빛나눔

여러분이 서 있는 갈래다. 햇빛나눔 연합회는 법 통과에 앞서 8개 광역 사회적협동조합을 창립했고 6개가 인가를 받았다. 8월 1일 조합원 모심이 시작되고, 연말까지 조합원 3만 명·3GW, 2027년 상반기 5만 명·5GW가 목표다. 100kW 발전소 한 기의 연 순수익은 대략 1천만 원. 농사를 지으며 그 소득이 더해지니, 농민기본소득이라 부를 만한 구조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다. 발전소의 주인은 농민이고, 사협은 시공·운영·판매의 마진을 깎아 농민 소득으로 되돌리는 대행 조직이다. 앞 장의 담론에 비추면, 에너지 민주주의의 소유 기둥과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 원칙을 조직 구조 그 자체로 구현한 모델이다.

3. 둘째 갈래 — 햇빛소득마을

영농형이 농지 위의 길이라면, 햇빛소득마을은 마을 유휴부지 위의 길이다. 대상도 다르다. 영농형은 농사짓는 개별 농민이 주인이 되고, 햇빛소득마을은 마을(행정리) 공동체가 통째로 주인이 된다.

두 갈래는 경쟁하지 않는다. 같은 마을에서 만난다. 활동가가 어느 마을에 들어가면 농지를 가진 농민에게는 영농형을, 마을회관 지붕과 유휴부지에는 햇빛소득마을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시민재생에너지의 문법은 같다. 주민 동의, 협동조합 결성, 수익의 지역 환원. 정부가 두 갈래를 함께 열어놓은 지금, 두 길을 다 아는 활동가가 마을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이 된다.

4. 정책이 전부는 아니다 — 운동의 스펙트럼

다만 여기서 시야를 좁히지 말아야 한다. 영농형과 햇빛소득마을은 정부가 열어놓은 두 개의 문이지, 시민재생에너지의 전부가 아니다. 2장에서 본 대로 이 운동의 스펙트럼은 바람과 물과 바이오매스까지, 그리고 마을 단위의 발전사업부터 세입자가 발코니에 다는 패널과 공방에서 직접 깎는 터빈까지 걸쳐 있다. 정부 공모에 선정된 마을만 시민재생에너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지붕에 패널을 얹는 가구, 출자로 발전소를 세우는 조합, 적정기술을 익히는 동아리 — 모두 같은 운동의 얼굴이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정책은 바뀌고 공모는 끝난다. 정책의 그릇에만 담긴 운동은 정책과 함께 흔들리지만, 스펙트럼 전체에 뿌리내린 운동은 어느 문이 닫혀도 다른 문으로 걷는다. 우리가 기르는 시민재생에너지 AI가 영농형 하나가 아니라 이 스펙트럼 전체 — 두 정책 갈래는 물론 수력·풍력·조력, 세계의 협동조합 사례, DIY와 적정기술 지식까지 — 를 학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그러나 사업은 합의로 죽는다

여기까지가 기회라면, 이제 위험을 봐야 한다.

무산된 시민재생에너지 사업들을 뜯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패널이 고장 나서 죽은 사업이 없고, 돈이 없어서 엎어진 사업도 드물다. 죽는 자리는 언제나 사람 사이다. 근거 없는 수익 소문, 불로소득 시비, “누가 얼마 가져가느냐”를 둘러싼 정보 없는 다툼. 합의가 무너지면 마을은 발전소 대신 불신을 얻는다.

게다가 우리보다 빠른 경쟁자가 있다. 속도와 자본을 앞세워 농민을 계약의 객체로 만드는 업자들이다. 농지 한 필지는 평생 한 번 계약된다. 먼저 신뢰를 얻은 쪽이 그 땅을 20년 가져간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합의는 무엇으로 지키는가. 말솜씨로? 선의로? 우리의 답은 근거, 곧 데이터다.

그리고 여기서 1장의 결론이 도메인과 만난다. 그 데이터를 빅테크의 서버에 맡기면 우리는 남의 트랙 위의 소비자로 남고, 자기 데이터로 자기 AI를 기르면 근거를 생산하는 주체가 된다. 셋째 길은 시민재생에너지 현장에서 걸을 수 있는가. 다음 장이 그 실증이다.


IV. 우리가 지어온 것

담론과 정책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셋째 길은 이론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짓기 시작했다. 이 장에서 소개하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전부 지금 접속되는 실물이며, 전업 개발자 없이 공개 모델과 우리 데이터로 지은 것들이다.

1. 조직의 뼈대 — 가입에서 소통까지

  • join.sunshare.kr — 통합 가입. 조합원 가입 신청이 여기서 이뤄지고 연합회 명부로 쌓인다. 8월 1일 조합원 모심의 그릇이다.
  • contract.sunshare.kr — 위수탁 계약. 발전소 위수탁 계약이 종이가 아니라 기록되는 폼으로 진행된다.
  • sunshare.kr의 소통 3종 — 일정(calendar), 회의록(minutes), 조합원 게시판(board). 조직의 기억이 개인 수첩이 아니라 공동의 장부에 남는다.
  • workshop.sunshare.kr — 워크숍 진행 도우미. 내일 비전·미션 워크숍도 이 도구 위에서 진행된다.

따로 보면 소박한 웹페이지들이다. 함께 보면, 가입부터 계약과 소통까지 조직 활동의 전 과정이 데이터로 쌓이는 뼈대다.

2. 품에 —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따지는 기계

‘품에’는 시민재생에너지를 위해 기르고 있는 우리의 AI다. 흔한 챗봇과 무엇이 다른가. 일반 AI는 그럴듯하게 말하고 종종 틀린다. 품에는 근거로 따지고, 근거가 없으면 지어내지 않는다.

품에가 실시간으로 조회하는 것이 여섯이다. 위성 일사량, 전력도매가격(SMP), REC 인증서 가격, 한전 계통 접속 여유용량, 시군구별 이격거리 조례, 기상 실황. “이 농지에서 사업이 되는가”라는 농민의 첫 질문에 짐작이 아니라 근거로 답하기 위한 구성이다. 법령은 법제처 원문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영농형태양광법·농지법·전기사업법의 조항 관계는 1,700여 개 지식 조각으로 짜인 온톨로지(개념 지도)에 담겨 있다.

담긴 지식의 폭도 태양광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협동조합 고전(레이들로 보고서, ICA 7원칙)과 주민조직운동 방법론, 로컬푸드와 지역화폐, 2장에서 본 세계 담론, 그리고 삼쇠의 풍력부터 피곳의 자작 터빈과 발코니 태양광까지 비태양광·DIY 세계 사례가 이미 학습돼 있다. 3장에서 말한 스펙트럼 전체를 받치는 AI로 기르고 있는 것이다. 농민이 무엇을 물어도 답 뒤에 이 운동의 사상이 서 있도록.

곁가지 실물도 자란다. poome.sunshare.kr의 지식지도는 품에가 아는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98개 노드의 지도로 공개한다. 품에 음성은 저시력 조합원을 위해 말로 묻고 말로 듣는 접근 통로를 연다. poometwin은 온톨로지를 눈으로 보는 디지털트윈이다.

3. 활동가가 직접 지은 도구 — 햇빛소득마을 업무도우미

이 장에서 가장 힘주어 소개하고 싶은 실물은 따로 있다. 사회혁신교육원 사협 김일영 이사장이 만든 햇빛소득마을 종합 업무도우미다.

김일영 이사장은 개발자가 아니다. 우리 AI활동가 교육 1기를 거친 활동가다. 이 작업은 사회혁신교육원 사협이 수행하는 정부 고성능컴퓨팅(HPC) 지원사업 「시민재생에너지 사업자동화 AI」의 한 갈래이기도 하다 — 영농형(햇빛나눔)과 햇빛소득마을이라는 두 정책 갈래를 하나의 AI 사업 안에서 함께 받치는 그림이다. 그가 AI와 함께 지은 도우미는 햇빛소득마을 실무의 아홉 갈래를 다룬다. 회의록·총회 의사록·주민 동의서·공고문 작성, 토지대장·계통검토의견서 같은 서류 검토, 사업계획서 초안, 이격거리 조례부터 농지전용까지 법령 검토, 수익 분석과 주민 설명용 리포트, 그리고 AI 상담. “주민 70% 동의 기준이 정확히 뭔가요”, “자부담 15%는 어디서 조달하나요” 같은 현장의 질문에 바로 답한다.

이 실물이 증명하는 명제는 하나다. AI 시대의 도구는 활동가가 직접 지을 수 있다. 외주도, 전담 개발팀도 없이, 현장을 아는 사람이 현장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었다. 여러분 각자가 다음 김일영이 될 수 있고, 이번 교육과정이 그 길이다.

4. 세 겹의 자산 — 사람, 기반, 기술

세 묶음을 겹쳐 보면 하나의 그림이 나온다. 조직의 뼈대(가입·계약·소통)가 데이터를 낳고, 품에가 그 데이터와 지식으로 답하고, 활동가가 그 위에서 자기 도구를 짓는다. 어느 것도 빅테크의 완제품을 사 온 것이 아니다. 운동이 자기 도구를 자기 손으로 지었고, 그래서 데이터와 지식의 주인이 우리다.

이것을 자산의 언어로 다시 적으면 이렇다. 인적 자산 — AI활동가 양성과정을 거쳐 자기 도구를 직접 짓는 활동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김일영 이사장이 그 첫 실증이며, 이 워크숍의 여러분이 다음 줄이다. 물적 자산 — HPC 지원사업으로 확보한 고성능 GPU와 자체 서버가 품에를 빅테크의 서버가 아니라 우리가 부리는 기계 위에서 돌게 하고, 조직의 뼈대에는 우리 소유의 데이터가 쌓인다. 기술적 자산 — 공개 모델을 우리 지식으로 미세조정한 품에, 법령·제도를 짜 넣은 온톨로지, 가입부터 계약까지의 플랫폼, 그리고 활동가가 지은 업무도우미. 사람과 기반과 기술, 세 겹이 함께 자라고 있고, 이 자산은 영농형 하나에 갇히지 않고 시민재생에너지 스펙트럼 전체를 받친다.

이것이 3장 끝의 물음, “합의는 무엇으로 지키는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고, 동시에 1장이 말한 셋째 길 — 공개 모델 위에 자기 데이터로 자기 AI를 기르는 길 — 이 농촌 현장에서 실제로 걸을 수 있는 길임을 보이는 실증이다.


V. 시민재생에너지 AI — 비전

1. 정의

우리가 품에에 건 비전을 한 문장으로 적으면 이렇다.

시민재생에너지 AI는, 시민이 에너지 발전의 주인이 되도록 — 분명한 비전 아래 결사한 시민들이 핵심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그 결정에 필요한 충분하고 효과적인 데이터를 생산하는 AI다.

첫마디가 “시민이 주인”이다. 기술이 아니라 주권이 목적이고, AI는 그 주권을 데이터로 떠받치는 도구다.

2. 해자 — 비전과 데이터

오해를 하나 걷어내자. AI가 마을 갈등을 중재해 주지 않는다. 정보와 기준 없이 사람들을 합의시키려 들면 갈등은 오히려 커진다. 협동조합의 결사 원리는 모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비전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이다.

그래서 역할이 나뉜다. 비전을 분명히 세우는 일은 리더십과 활동가의 몫이고, 그 비전에 동의할지 말지를 각자가 판단할 수 있게 충분한 근거를 내놓는 일이 AI의 몫이다. 발전량 전망, 수익 시나리오, 법령 요건, 배분 구조의 선택지. 근거가 넉넉하면 설득할 필요가 없다. 알고 결정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그렇게 모인 결사는 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업자들은 이것을 못 한다. 속도와 자본이 무기인 쪽은 근거를 투명하게 깔 이유가 없다. 신뢰를 기술로 증명하는 것, 이것이 자본으로 살 수 없는 우리의 해자다.

3. 통합플랫폼 — 한 땅에서 나오는 모든 것

중장기 비전은 태양광 너머에 있다. 영농형 태양광 한 필지에서는 전기(kWh)만 나오지 않는다. 법이 영농 지속을 요구하므로 농산물(kg)이 반드시 함께 나온다. 전기만 다루면 절반만 통합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나머지 절반을 받을 그릇이 이미 있다. 로컬푸드 직매장과 전국 로컬푸드 네트워크가 판로를, 지역화폐가 지역 안의 순환을 맡는다. “햇빛 아래서 자란 로컬푸드” — 이 토마토 한 알을 사면 농민 소득과 재생에너지와 지역 순환을 동시에 지지하게 되는, 흔치 않은 서사가 성립한다. 발전 데이터와 영농 데이터와 판매 데이터가 하나의 지식 체계로 꿰이면, 품에는 이렇게 답하는 AI가 된다. “이 패널 밑에는 반그늘에 강한 이 작물을 심으세요. 발전량도 지키고, 그 작물은 지금 이 지역 직매장에서 잘 팔립니다.”

이 통합이 그림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결사의 연대다. 발전(사협), 유통(로컬푸드), 결제(지역화폐), 지식(AI)의 네 결사체가 이미 서로 신뢰하는 연대 안에 있다. 대기업이 돈으로 조립할 수 없는 조건이다.

4. 연대지능 — 셋째 자리

1장의 지능 커먼즈와 2장의 에너지 커먼즈가 여기서 만난다. 햇빛과 바람을 공유재로 지키자는 세계의 사유는, AI 시대에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데이터와 지능도 공유재인가, 아니면 몇몇 기업의 사유재인가.

빅테크의 AI는 모든 것을 가격으로 환원하는 시장교환의 지능이다. 정부의 AI는 위에서 결정하고 아래로 나누는 재분배의 지능이다. 우리의 AI는 동등한 자들이 옆으로 짜는 호혜의 지능이며, 그 이름이 연대지능이다. 시장지능도 공공지능도 아닌 셋째 자리 — 공유지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관리도 시장의 소유도 아닌 공동체의 규칙이라는 오스트롬의 발견을, AI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데이터 주권은 추상이 아니다. 발전·영농·판매 데이터의 주인은 농민과 협동조합이고, 그 데이터로 길러진 지능은 결사한 시민 모두의 것이다. 유럽이 에너지공동체를 법제화했듯, 우리는 지능의 공동체를 실물로 먼저 짓고 있는 셈이다. 태양광 계약서 한 장에 담기는 데이터 주권 조항이, 이 큰 이야기의 첫 문장이다.


VI. 활동가의 자리

AI가 이만큼 한다면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답은 단순하다. AI는 활동가를 대체하지 않고 키운다.

서류 작성, 수익 계산, 법령 확인 같은 노가다는 AI가 몇 초로 가져간다. 그만큼 활동가는 더 많은 농민을 더 깊이 만난다. 만남과 신뢰와 판단은 끝까지 사람의 몫이고, 애초에 이 사업의 사인(死因)이 합의였음을 기억하면, 사람의 몫이야말로 사업의 성패다.

플랫폼 위에서 활동가의 실무는 넷이다.

  1. 잇는다 — join.sunshare.kr에서 농민을 발전사업자로 가입시킨다.
  2. 맺는다 — 위수탁 계약을 열고 지역에 맞는 시공을 매칭한다.
  3. 넓힌다 — 영농형 농산물을 로컬푸드 판로로, 마을 유휴부지를 햇빛소득마을로 잇는다.
  4. 답한다 — 농민의 질문에 품에로, 햇빛소득마을 실무는 업무도우미로, 그 자리에서 근거 있는 답을 준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짓는다. 김일영 이사장이 보여준 길이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일이 보이면, 그 일을 덜어줄 도구를 AI와 함께 직접 만든다. 여러분의 발자국은 데이터로, 여러분의 도구는 조직의 자산으로 다음 활동가에게 남는다.


결(結) — 지금이 왜 중요한가

세계는 반세기에 걸쳐 시민이 에너지의 주인이 되는 길을 닦았고, 한국의 제도는 올해 그 길의 입구를 열었다. 법은 통과됐고, 정부는 마을 2,500곳을 말하고 있으며, 8월 1일 조합원 모심이 시작된다. 연말 3만 조합원, 2027년 5만. 숫자는 크지만, 농지 한 필지가 평생 한 번 계약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숫자의 뜻은 분명하다. 지금 신뢰를 얻는 쪽이 다음 20년을 정한다.

우리는 빈손으로 이 입구에 서 있지 않다. 담론이 있고, 정책이 열렸고, 사람과 기반과 기술의 세 겹 자산이 지어져 있다. 남은 것은 조직 — 곧 여러분의 일이다.

그리고 자리를 하나 정확히 해 두자. 오늘 이 자리는 영농형 태양광 사업으로 모인 햇빛나눔사협의 자리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의 지평은 그보다 크다. 정부의 두 정책 갈래부터 바람과 물과 적정기술까지 아우르는 시민재생에너지 운동 전체, 그리고 그 운동의 데이터와 지능을 시민의 것으로 짓는 연대지능 — 이 큰 차원에서 우리는 일하고 있다. 영농형은 그 큰 운동이 지금 가장 힘 있게 전진하는 전선이고, 여러분은 그 전선의 조직가이면서 동시에 이 큰 운동의 첫 세대다.

우리는 태양광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다. 햇빛과 땅과 데이터를, 그것의 주인이어야 할 사람들에게 되돌리는 사람들이다. 그 일에 이제 AI라는 동료가 생겼을 뿐이다.


참고자료

AI 정세·담론 (「주민운동에서 AI 활용전략」 전략보고서에서 옮김 — 상세 출처는 그 보고서 참고자료)

  • IMF(2024) 일자리 노출 40%/60% /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2025) 청년 고용 13% 상대 감소 / Bartz v. Anthropic(2026) 15억 달러 화해
  • OpenResearch(2024) 기본소득 실험 / Stanford GSB(2025) 모델 24개 정치 편향 / PNAS Nexus(2024) WEIRD 편향 / Ada Lovelace Institute(2025)
  • 선전시 디지털 공무원(신화통신, 2025) / 팔란티어 표적 선정(TIME, 2024) / Richardson 외, Science Advances(2023) 지구위험한계선 6/9
  • KPMG·멜버른대(2025) 고소득 83% 대 저소득 34% / KBS(2026) 국내 7배 격차 / 미국 20만 가구 분석(2026) 격차 비수렴
  • 현대카드 집계(2026) 상반기 AI 구독 572억 원 / 국가재정전략회의(2026.7) 800조 원+α / 오픈웨이트 모델 정세(GLM·키미, 2026)
  • Ostrom, Governing the Commons / Benkler(2006) 커먼즈 기반 동료 생산 / Doe v. GitHub(2022~2026)

세계 담론·실천 (정본 = 위키 시민재생에너지 노드: 세계담론·비태양광 세계사례·DIY 적정기술 세계사례·에너지협동조합 개관)

  • Kunze & Becker(2014) 에너지 민주주의 4기둥 / McCauley·Jenkins 외 에너지 정의 3차원 / ILO 정의로운 전환 가이드라인(2015) / Ostrom, Governing the Commons
  • 삼쇠 섬(주민 450명 터빈 90%, 100% 재생에너지 섬) / 독일 시민풍력 40%+·발코니 태양광 100만 대 / 영국 Torrs Hydro / 호주 Hepburn / 피곳·Wind Empowerment(25개국 40여 조직) / 네팔 피코수력 공개 도메인 / OSAT·Open Source Ecology
  • 한국: 서울 베란다형 미니태양광 / 에너지자립마을 / 거창 해미래
  • EU 청정에너지 패키지(2019) REC·CEC / 제10차 에너지연합 현황 보고서(2025): 에너지공동체 8,000개+ / REScoop.eu: 2,500개 조합·200만 시민, CE Delft 2050년 시민 소유 45% 전망
  • 미델그루넨 해상풍력(2000, 코펜하겐): 조합원 약 8,500명 지분 50%

한국 정책

연합회·내부 실물

  • 햇빛나눔 연합회 현황(8개 사협·6개 인가·8/1 모심·연말 3만/3GW·2027 상반기 5만/5GW): 연합회 소개 자료(2026.7.14) / 100kW 연 순수익 약 1천만 원: 박승옥, 농지도 원고
  • 라이브: join.sunshare.kr · contract.sunshare.kr · sunshare.kr(calendar·minutes·board) · workshop.sunshare.kr · poome.sunshare.kr · 햇빛소득마을 업무도우미(sakyowon.poomasi.org/sunvillage.html, 김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