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마을에서 협동조합을 만들려면 서류가 한 장이 아니라 한 벌로 필요하다. 발기인대회 공고문, 발기인대회 회의록, 정관, 창립총회 공고문, 창립총회 회의록, 사업계획서, 수입·지출 예산서 — 일곱 가지가 서로 물려 있다. 정관에서 비워 둔 칸을 발기인대회에서 채우고, 그 결과를 창립총회 회의록이 받아 적고, 사업계획서의 금액이 예산서의 합계와 맞아야 한다.

AI와 함께 이 일곱 가지를 하루에 만들었다. 이 글은 그 과정과, 만든 것보다 중요했던 검증에 관한 기록이다.

왜 이 기술인가

협동조합 설립 서류를 한 장씩 따로 만들면 반드시 어긋난다. 정관을 고치면 회의록의 조문 인용이 틀리고, 사업계획서의 예산을 손대면 예산서 합계가 깨진다. 한글 파일을 직접 고치면 그때마다 서식이 조금씩 달라져 일곱 문서의 꼴이 제각각이 된다.

그래서 마크다운을 원본으로 두고 한글 문서는 거기서 뽑아내는 방식을 썼다. 문구를 고칠 때는 마크다운만 고치고 전부 다시 뽑는다. 서식은 늘 같고, 숫자와 상호 참조는 스크립트로 검사할 수 있다.

단계별 따라하기

1. 문서 목록과 순서를 먼저 정한다

무엇을 만들지보다 어느 문서가 어느 문서에 물리는지를 먼저 그린다.

순서문서다음 문서에 넘기는 것
1발기인대회 공고문발기인 모집
2발기인대회 회의록정관의 빈칸을 채운 값, 창립총회 일시·장소
3정관조문 번호(회의록이 인용한다)
4창립총회 공고문안건 목록
5창립총회 회의록임원 명부, 확정 출자금
6사업계획서사업별 소요예산
7수입·지출 예산서—

이 표를 만들어 두면 AI에게 “발기인대회 회의록 제4호 안건에 정관의 빈칸 열 곳을 표로 뽑아 달라”처럼 연결을 지정해서 시킬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발기인대회에서 표만 채우면 정관이 확정되는 구조가 나왔다.

2. 마크다운으로 쓰고 한글로 뽑는다

문서 내용은 전부 마크다운으로 쓴다. 제목은 #, 장은 ## 제1장 총칙, 조문은 굵은 글씨, 표는 | |로. 그리고 스크립트 한 번으로 한글 파일을 만든다.

고칠 일이 생기면 한글 파일을 열지 않는다. 마크다운을 고치고 다시 뽑는다. 정관에 우선출자 조항을 추가할 때도 마크다운 일곱 군데를 고치고 다시 뽑는 것으로 끝났다.

3. 한글 서식은 기존 문서에서 빌려 온다

서식을 처음부터 만들 필요가 없다. 이미 잘 만들어 둔 한글 문서 하나를 템플릿으로 삼아 본문만 갈아 끼운다. 마침 같은 폴더에 사업기획안이 있어 그걸 썼다. 글자 크기, 제목 색, 표 선 모양이 그대로 따라왔다.

주의할 것은 표 너비다. 한글 문서는 편집용지 여백에 따라 본문 폭이 정해져 있고, 표가 그보다 넓으면 오른쪽으로 삐져나간다. 템플릿에서 본문 폭을 먼저 재고 그 안에서 열 너비를 나눈다.

4. 법령은 반드시 찾아보고, 확인 못 한 것은 못 했다고 쓴다

정관에 “우선출자 제도”를 넣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AI가 기억으로 조문을 쓰면 그럴듯하지만 틀릴 수 있다. 찾아보니 실제 요건이 까다로웠다.

  • 아무 협동조합이나 발행할 수 없다. 직전 연도에 경영공시를 했고 부채비율이 200% 이하여야 한다
  • 우선출자에는 의결권과 선거권이 없다
  • 총액은 자기자본과 납입출자금 총액 중 큰 금액의 30%까지
  • 배당은 일반 출자보다 먼저, 배당률은 정관이 정한 최저~최고 사이에서 총회가 결정

기억에 의존했다면 “자기자본의 30%“라고만 쓰고 발행 요건은 빠뜨렸을 것이다. 그러면 갓 만든 조합이 당장 우선출자를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다가 나중에 막힌다. 확인한 덕에 사업계획서에 “경영공시를 첫해부터 한다”를 넣을 수 있었다.

반대로 끝까지 확인 못 한 것은 비워 뒀다. 사업의 종류를 적을 때 쓰는 한국표준산업분류는 고시가 개정되면 번호가 바뀐다. 그래서 세세분류 번호를 지어내지 않고 대분류까지만 적은 뒤 “신고 직전에 통계분류포털에서 확인하라”고 문서에 적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적는 것도 산출물의 일부다.

5. 조문을 추가할 때는 가지번호를 쓴다

정관 제18조 뒤에 우선출자 조항을 넣어야 했다. 제19조로 끼워 넣으면 그 뒤 조문 번호가 전부 하나씩 밀리고, 문서 곳곳의 “제24조에 따른”, “제59조 각 호의” 같은 인용이 모조리 틀어진다.

법령 개정에서 쓰는 방식 그대로 제18조의2, 제18조의3으로 넣었다. 기존 번호가 하나도 안 바뀌니 인용도 그대로다. 대신 새 조문을 참조해야 하는 곳(총회 의결사항, 배당 순서, 규약 목록)은 손으로 찾아 고쳤다.

6. 숫자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맞춘다

예산서에는 합계가 수십 개 들어간다. 세목 합이 소계와 맞아야 하고, 소계 합이 총계와 맞아야 하고, 분기별 수지의 누적이 0으로 끝나야 하고, 사업계획서에 적은 사업별 소요예산이 예산서의 부문별 금액과 같아야 한다.

이걸 눈으로 맞추면 반드시 틀린다. 검증 스크립트를 따로 짜서 39개 항목을 전부 계산해 대조했다.

그 과정에서 계획 자체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상근 직원 둘을 뒀더니 경상수지가 2천만 원 적자로 나왔고, 첫해 출자금을 헐어 운영비로 써야 하는 구조였다. 그건 협동조합이 망가지는 전형적인 길이다. 그래서 상근을 사무국장 한 명으로 줄이고 식당은 시간제로 돌리는 것으로 바꾸니 수입과 지출이 정확히 맞았다.

숫자를 맞추다 보면 계획이 현실적으로 바뀐다. 검증은 오타 찾기가 아니라 계획을 다듬는 일이다.

7. 한글로 실제 열어 보고, 눈으로 본다

파일이 만들어졌다고 끝이 아니다. 두 가지를 더 한다.

첫째, 한글로 실제로 연다. XML이 문법에 맞아도 한글이 못 여는 경우가 있다. 한글로 열어 쪽수를 얻고 PDF로 내보낸다.

둘째, PDF를 눈으로 본다. 전 쪽을 작게 늘어놓은 접촉시트를 만들어 빈 쪽이나 이상한 곳을 찾고, 의심스러운 쪽만 확대해 읽는다. 이 단계에서만 다섯 가지가 잡혔다.

  • 표 머리글이 “인수 출자좌 / 수”처럼 끊김 → 열 너비 조정
  • 마지막 쪽에 두 줄만 남아 한 쪽이 더 늘어남 → 표 뒤 빈 줄 규칙 수정
  • 표의 계층 들여쓰기가 안 보임 → 셀이 가운데 정렬이라 공백으로는 안 되고 · 기호로 표시
  • 쪽이 바뀌는 자리에서 표 칸이 갈려 “월” 한 글자만 다음 쪽으로 넘어감 → 문구 단축
  • 긴 항목 이름이 두 줄로 접힘 → 첫 열 확대

전부 기계 검증은 통과한 것들이다. 열리는 것과 읽을 만한 것은 다르다.

교훈

“만들었습니다”를 믿지 않는다. AI가 파일을 만들었다고 해도, 열리는지·읽을 만한지·숫자가 맞는지는 각각 따로 확인해야 한다. 이번에는 네 겹으로 봤다. 구조 검사 → 숫자 검사 → 한글로 실제 열기 → PDF 눈으로 보기. 각 단계에서 서로 다른 문제가 나왔다.

법령은 찾아보게 시킨다. “우선출자 넣어 줘”라고만 하면 그럴듯한 조문이 나온다. 근거 조문과 시행령까지 확인하게 하면 발행 요건 같은 실무의 핵심이 드러난다.

확인 못 한 것은 빈칸으로 남긴다. 산업분류 번호를 지어내는 것보다 “확인하고 넣으세요”가 낫다. 지어낸 번호는 신고 창구에서 발견되고, 그때는 이미 창립총회가 끝나 있다.

이미 건넨 파일에 손대지 않는다. 스크립트를 손본 뒤 “출력이 같은지” 확인하려고 이미 전달한 정관 파일을 다시 만들었다. 그 사이 사람이 한글에서 고쳤다면 그대로 덮어쓰는 일이었다. 다행히 고친 것이 없어 넘어갔지만, 확인용은 다른 이름으로 뽑아야 한다.

빈칸의 자리를 설계한다. 정관에 비워 둔 열 곳을 그냥 두지 않고, 발기인대회 회의록에 그 열 곳을 그대로 표로 옮겨 놓았다. 회의에서 표를 채우면 정관이 완성된다. 서류를 따로 만들지 않고 한 벌로 만들면 이런 연결을 넣을 수 있다.

참고

  • 「협동조합 기본법」 제15조(설립신고), 제19조(설립등기), 제22조의2(우선출자), 제36조(임원의 결격사유)
  •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령」 제8조의2(우선출자 발행 요건)
  • 「농어촌정비법」 — 농어촌민박은 마을에 사는 개인만 신고할 수 있어 조합 명의로는 어렵다. 조합이 예약·홍보·품질관리를 맡는 운영지원 방식과, 법인이 가능한 숙박업으로 직접 운영하는 방식 중에서 골라야 한다
  • 통계청 통계분류포털 — 사업의 종류를 적을 때 현행 한국표준산업분류 확인
  • 같은 결의 글: 「AI와 함께 한글문서 빨간펜 교정하기」, 「배포했는데 라이브가 아니다 — 사슬을 끝까지 확인하는 법」
  • 실전 기록: 2026-09-25 망남마을협동조합 설립 서류 7종(정관 21쪽 포함). 예산 39항목 기계 검증, 조판 5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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