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지능(SSE-AI)으로 로컬푸드 2.0으로 나아가자
혼자 사면 종속, 함께 만들면 주권.
프롤로그 — 연대지능과 로컬푸드 2.0
로컬푸드 운동이 다시 갈림길에 섰다. AI라 불리는 전환이 모든 산업을 훑고 지나간다. 그러나 대다수 로컬푸드 조합에게 그것은 여전히 먼 나라의 일이거나, 자본을 쥔 기업들의 도구로만 보인다.
이 글은 그 거리감에서 출발한다. AI를 아는 이를 위한 안내가 아니라, “굳이 우리가?”라고 묻는 자리에서 그 물음을 끝까지 따라가려는 글이다.
두 말부터 분명히 한다. 로컬푸드 2.0은 새 사업이 아니다. 지금의 직매장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일은 그대로 두되, 거기에 데이터와 판단의 힘을 더해 매장과 조합 운영을 하나의 체계로 굴린다. 벌이는 일이 아니라 잘하는 일이다. 연대지능 AI(SSE-AI)는 빅테크가 자본으로 짓는 AI와 다른 길이다. 사회연대경제의 원리, 곧 자립과 자치·순환과 공생 위에서 우리 손으로 만들고 우리 데이터로 키운다. 빌리는 AI가 아니라 함께 짓는 AI다. 그 끝에 남는 것은 종속이 아니라 주권이다.
1. “굳이?”라는 물음 — 신포도
이솝우화의 여우는 높이 달린 포도를 따지 못하자 돌아서며 말한다. “저 포도는 시었을 것이다.” 닿지 못하니 마음이 먼저 그것을 깎아내린다.
AI 앞에서 나오는 말도 다르지 않다. “AI? 우리한텐 안 맞아.” 배운 적도 다뤄 본 적도 없으니 마음이 먼저 결론을 내린다. 게으름이 아니라 방어다. 모르는 대상 앞에서 사람은 그 가치를 낮춰 자신을 지킨다. 그러나 방어는 시간을 벌어 주지 않는다. 외면하는 사이에도 흐름은 흐르고, 외면한 만큼 격차는 벌어진다. 늦지 않은 시간은 지금뿐이다.
2. 왜 지금인가 — 늦으면 또 진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작은 가게들은 지난 두 번의 큰 흐름을 모두 놓쳤다. 1990년대 대형마트가 들어설 때 동네 슈퍼는 “우리 단골은 그대로다”라고 믿었다. 십 년 뒤 골목상권은 무너졌다. 2010년대 쿠팡과 이커머스가 밀려올 때도 “오프라인이 설마 망하겠나”라고 했다. 오프라인 유통은 무너졌다. 그리고 지금, AI 전환 앞에서 또 같은 말이 나온다. “우리는 바쁘고, 그럭저럭 돌아간다.”
변화는 눈에 보일 때 이미 손쓸 수 없다. 흐름이 체감되는 순간은 늘 너무 늦은 뒤였다. “굳이?”라고 묻는 지금이 역설적으로 가장 이른 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번 전환에는 앞선 두 번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마트도 쿠팡도 자본의 싸움이었다. 돈을 더 가진 쪽이 이겼고, 돈이 없던 쪽이 졌다. 골목상권도 재래시장도 그렇게 밀려났다. AI는 다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기술이 평평해졌다. 한때 거대 자본만 다루던 AI가 이제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누구나 가져다 쓴다. 품앗이생협은 빅테크의 API를 빌리지 않고 자체 거대언어모델을 83% 수준까지 끌어올려 돌리고 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손기술의 문제가 되었다.
둘째, AI 시대의 힘은 데이터에서 나오고, 데이터는 관계와 신뢰 위에서만 쌓인다. 품앗이생협에는 생산자와 직원과 소비자 사이에 오랫동안 쌓아 온 신뢰가 있다. 이것은 빅테크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자본이다.
처음으로, 자본 없이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왔다. 무기는 자본이 아니라 신뢰이고, AI는 그 신뢰를 증폭하는 도구다.
3. 우리는 지금 어디인가 — AI 활용 5단계
AI를 쓴다는 말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 다섯 단계로 나뉜다.
첫째는 쓰지 않는 단계다. 감과 경험으로 운영한다. 둘째는 묻는 단계다. ChatGPT나 번역기에 질문하고 답을 얻는다. 셋째는 만드는 단계다. 사업계획서와 엑셀과 발표자료의 초안을 AI로 짠다. 넷째는 시키는 단계다. 발주와 폐기와 정산 같은 일을 코딩으로 자동화한다. 다섯째는 전환의 단계다. 조직 전체의 데이터를 다루고, AI가 판단을 거들며, 모델을 우리가 소유한다.
대다수 조합은 12단계에 머문다. 묻는 데까지는 와도 그 너머는 막막하다. 품앗이생협은 이미 45단계에 있다. 그 길을 먼저 걸었기에 길의 생김새를 안다.
선 하나를 그으면 분명해진다. 13단계는 도구를 바꾸는 일이고, 45단계는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4단계와 5단계 사이에서 종속과 주권이 갈린다. 이 글이 가닿으려는 지점이 거기다.
4. AI는 자동화가 아니다 — AX
많은 이가 AI를 자동화와 같은 말로 여긴다. 둘은 다르다. 자동화는 손발이다. 정해진 일을 빠르게 반복하고, 시킨 것만 한다. 반응이다. AI는 두뇌다. 현실을 읽고 따져 판단하며, 결정의 근거를 만든다. 예측이다. 어느 농가의 물량을 늘릴지, 폐기를 어떻게 줄일지 — 판단이 필요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 AI다. 자동화에서 AI로 넘어가는 이 전환을 AX라 부른다. 일하는 방식이 반응에서 판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전환에는 두 개의 엔진이 있다.
하나는 온톨로지다. 흔한 챗봇은 말하는 기계다. 그럴듯하게 지어내고, 속을 알 수 없으며, 만든 회사에 종속된다. 우리가 가려는 것은 따지는 기계다. 농가와 품목과 매장과 조합원과 폐기와 단골을 관계로 엮어 두면, AI는 지어내는 대신 그 관계를 따져 답한다. 농가가 품목을 납품하고, 품목이 매장에 진열되고, 조합원이 구매하고, 유통기한이 걸리고, 단골 구매가 누적되는 관계망을 그려 두면 데이터는 기록을 넘어 판단이 된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트윈이다. 지금의 ERP와 전산시스템은 현장의 진짜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이 진열을 바꾸면 매출이 어떻게 되나”, “이 시간대에 인력은 몇이 맞나” 같은 물음 앞에서 침묵한다. 개선을 요청하면 비용이 붙고, 결국 엑셀로 손작업을 한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매장을 디지털로 복제해 두고 그 위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 판단의 근거를 만든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정확해진다. 품앗이생협은 두 개의 트윈을 만들고 있다. 매장 트윈은 POS와 재고와 회원 데이터로 진열과 인력의 물음에 답하고, 에너지 트윈은 마을 농지에 위성 일사량과 작물 데이터를 얹어 “여기 태양광을 깔면 5년 뒤 농가 소득은 얼마인가”에 답한다. 전산시스템이 못 푸는 물음을, 트윈이 푼다.
5. 품앗이는 이렇게 쓴다 — 자동화 열일곱 가지와 숫자
말에 그치지 않는다. 품앗이생협은 매장 곳곳에서 열일곱 가지의 자동화를 실제로 돌린다. 발주와 입고와 폐기에서는 텍스트·음성 발주와 바코드 폐기와 AI 영수증 판독이 돌아간다. 정산과 매출에서는 정산마감 시스템과 POS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있다. 근태와 배달에는 QR·GPS 출퇴근과 배달 관리 앱이, 회원과 소통에는 단골매칭 문자와 조합원 의견 수렴과 가격표 자동출력이 있다. 환경과 탄소에는 탄소 계산과 탄소중립포인트 환류와 매장 전광판이, 인프라에는 AI 팀 체제와 모바일 도구와 지원사업 자동수집이 있다.
이 열일곱 가지는 손발이다. 그 위에 두뇌가 서면서 자동화는 AI로 넘어간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연 매출 500억 원, 누적 이용자 10만 명, 연 탄소 절감 43.9만 킬로그램, 연 환류 효과 85억에서 95억 원, 도입 대비 효과 50배. 핵심은 월 30만 원으로 다섯 사람 몫의 일을 해낸다는 데 있다. 그러나 자동화의 목적은 사람을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을 더 가치 있는 일로 옮기는 데 있다. 다음 이야기가 거기서 시작된다.
6. 그래서 무엇을 하게 되나 — 로컬 큐레이터
AI가 들어오면 일자리가 준다는 걱정이 따른다. 그러나 방향은 반대다. 자동화가 발주와 폐기와 정산 같은 반복 노동에서 사람을 풀어 주면, 그 사람은 비로소 기계가 못 하는 일을 한다. 생산자를 직접 만나 관계를 다지고, 소비자를 조합원으로 엮고, 지역의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 로컬 큐레이터의 일이다. AI가 손발을 대신하는 만큼 사람은 머리와 가슴의 일로 옮겨 간다. AI를 들이는 진짜 이유가 이것이다.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와 조직화야말로 협동조합의 본업이다. AI를 들일수록 협동조합은 더 협동조합다워진다.
7. 어떻게 도입하나 — AI 품앗이
“좋은 줄은 알겠으나 그걸 할 사람이 없다.” 가장 현실적인 벽이다. 그래서 사람이 직접 간다. 세계적 기업도 AI를 ‘AI 담당자 한 명 뽑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현장에 사람을 보낸다. 데이터 기업 팔란티어의 상주 엔지니어 방식이 그렇다. 이것을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가져온 것이 AI 품앗이다.
차이는 분명하다. 팔란티어의 엔지니어는 현장에 수개월 상주하고 연 수억 원의 비용이 들며, 끝나도 그 업체 없이는 시스템이 돌지 않는다. 돈으로 사는 방식이다. AI 품앗이는 현장에 일주일 동행하고, 비용은 일주일에 200만 원이며(숙식 별도), 끝나면 그 조합에 AI를 굴릴 줄 아는 사람 한 명이 남는다. 주고 갚는 방식이다. 외주는 종속을 남기고, 품앗이는 역량을 남긴다.
일주일은 이렇게 흐른다. 첫날은 듣는다. 현장을 따라다니며 진짜 불편한 지점을 찾는다. 둘째 날은 보여준다. 당장 되는 자동화 한둘을 그 자리에서 시연한다. 셋째 날은 함께 만든다. 담당자와 나란히 앉아 직접 짠다. 넷째 날은 과제를 그린다. 단기와 중기와 장기로 나눈다. 다섯째 날은 길을 남긴다. 로드맵을 정리하고 연합회 AI팀과 잇는다.
일주일이 한 번의 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네 가지가 남는다. 데이터 주권의 토대가 될 현장 개발 인프라, 그 조합에 맞춘 자동화 도구, 직접 굴리고 고치는 실무자 한 사람, 그리고 단·중·장기 과제와 연합회 연결을 담은 로드맵. 토대와 실물과 사람과 미래가 남기에 일주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8. 종속이냐 주권이냐 — 소버린 AI
AI를 들이는 길은 둘로 갈린다. 하나는 혼자 사는 길, 외주와 구독이다. 이미 매달 비용을 낸다. 개선을 요청하면 추가 비용이 붙고, 결국 포기하고 엑셀로 돌아간다. 데이터는 업체로 흘러가고, 우리는 그 업체에 묶인다. 다른 하나는 함께 만드는 길, 공동개발이다. 한 번 만들어 여러 곳이 나눠 쓰고, 데이터는 우리 손에 남으며, 주권을 쥔다.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새 비용을 쓰자는 말이 아니다. 이미 종속된 채 나가던 비용을 주권으로 돌리자는 말이다.
소버린 AI는 구호가 아니다.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토대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성능컴퓨팅 사업으로 확보한 H200 GPU가 있고, 엔진에는 EXAONE 기반 자체 언어모델과 1,746개의 관계로 짜인 온톨로지가 있으며, 서비스로는 chat.solarshare.kr이 이미 살아 움직인다. 빅테크의 API를 빌리지 않는다. 우리 GPU, 우리 모델, 우리 데이터. 손에 쥔 실물이다.
이 모두는 한 뿌리에서 자란다. 먹거리의 품아이와 에너지의 품에. 둘이 합쳐 로컬라이프 AI가 되고, 그 바탕에 데이터 주권이 깔린다. 로컬푸드 2.0은 그 첫 현장이다.
9. 전국연합은 모순이 아니다 — 연방형 주권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지역화가 미션인데 전국연합이라니, 또 중앙에 종속되는 것 아닌가. 마땅한 물음이다. 연합회라는 이름은 중앙집권과 종속의 기억을 부른다. 답은 이렇다. 모순이 아니다. 다만 어떻게 모이느냐가 전부다.
먼저 왜 모여야 하는가. 흩어져서는 못 하고 모여야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 AI와 시스템은 한 번 만들어 여러 곳이 나누면 비용이 나뉜다. 지역의 특산물은 다른 지역의 것과 교류해야 풍부해진다. 한 조합이 못 하는 가공은 연합이 해낸다. 흩어진 목소리는 무시당하지만 모인 목소리는 정책의 상대가 된다. 교육과 기획도 각자 하면 중복이고 모이면 효율이다. 필요는 분명하다.
문제는 모이는 방식이다. 농협처럼 모이면 종속이고, 연방으로 모이면 주권이다. 중앙집권형 연합에서는 중앙이 기획하고 지역이 집행하며, 지역은 중앙 브랜드에 흡수되고, 고객과 데이터는 중앙으로 빨려 간다. 연방형 연합은 다르다. 지역이 주체가 되고 연합은 거들며, 각 지역은 제 이름과 색깔을 지키고, 고객과 데이터는 지역에 남는다. 본사와 지점의 관계가 아니라, 각자 제 집을 가진 채 이루는 마을이다. 떠나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특히 고객과 데이터가 지역에 남는다는 점은 앞서 말한 소버린 AI와 정확히 같은 원리다. 중앙에 종속되는 연합이 아니라, 지역이 주권을 쥔 채 손잡는 연합. AI도 연합도 같은 원리로 간다.
10. 먹거리계획에는 AI가 필요하다 — 푸드플랜과 거버넌스 데이터
AI의 쓸모는 매장 안에 머물지 않는다. 먹거리 정책으로 이어진다. 푸드플랜은 먹거리를 이윤의 논리로만 다루지 않으려는 시도다. 시장의 과잉생산과 과소생산, 그리고 불평등을 정부와 시민사회가 거버넌스로 함께 풀어 가는 틀이다. 그런데 여기에 빈틈이 있다. 이 일은 거버넌스 데이터를 다뤄야 가능한데, 지금은 정부도 민간도 그 데이터를 대부분 손으로, 엑셀로 처리한다. 바로 여기에 자리가 있다. AI를 쥔 쪽이 이 분야의 선도가 된다. 빈말이 아니다. 품앗이생협은 2026년 푸드플랜 효과 실증사업을 따냈다. AI 역량은 매장을 넘어 먹거리 정책의 상대가 되는 길로 이어진다.
11. 미션 — 신뢰를 삶 전체로
가장 큰 그림으로 간다. 무기는 자본이 아니라 신뢰다. 그런데 그 신뢰는 지금 먹거리에 갇혀 있다. 생산자와 직원과 소비자 사이에 오랫동안 쌓인 신뢰는 로컬푸드라는 한 영역에서만 쓰인다. 나머지 삶 — 금융과 에너지와 여가와 돌봄 — 은 여전히 대자본의 생태계에 매여 있다.
미션은 그 신뢰를 삶 전체로 넓히는 것이다. AI로 신뢰를 확장해, 먹거리에서 금융으로, 에너지로, 여가와 돌봄으로 나아간다. 자본의 생태계에 내준 삶을 신뢰의 생태계로 되찾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주권이 한 층씩 쌓인다. 식량에서 생활로, 금융으로, 에너지로, 데이터로. 다섯 주권이 차례로 선다. 이것이 로컬푸드 2.0이 가닿으려는 자리이고, 그 끝에서 지역은 사회연대경제 생태계의 중심에 선다. 자립과 자치, 순환과 공생의 현장으로서.
에필로그
이 글의 처음과 끝은 한 문장이다. 혼자 사면 종속, 함께 만들면 주권. 이 문장은 두 곳에 동시에 걸린다. AI를 빌려 쓰면 종속이고 함께 만들면 주권이라는 뜻이며, 동시에 흩어지면 종속이고 연방으로 손잡으면 주권이라는 뜻이다.
“굳이?”에서 시작했지만 이 길은 거창한 결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번 해 볼까”라는 마음 한 자락이면 된다. 원하는 조합부터 찾아간다. 오늘 하고 싶은 자동화 하나를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전국이 함께 쓸 AI 목록의 첫 줄이 된다. 거기서부터 함께 시작하면 된다.
혼자 사면 종속, 함께 만들면 주권. 연대지능으로, 로컬푸드 2.0으로.
이 글은 2026년 6월 24일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 워크숍 발제 「로컬푸드 2.0을 위한 AI·AX」를 다른 조합 실무자를 위해 풀어쓴 초안이다. 검토를 거쳐 인쇄용으로 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