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히 배운다 — 21세기 운동담론의 언어와 사유체계」

1. 운동은 새 어휘를 정초한다

마르크스가 1840년대에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짓던 자리에 생산수단·생산관계·사적소유·사회적소유·계급 같은 말들이 처음 자라났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어휘들은 낯설었다. 정치경제학자들이 자기 자리에서 쓰던 자본·노동·임금 어휘에 마르크스는 새 어휘 한 층을 얹었다. 자본의 작동을 짚는 자리, 그 작동에 맞서는 자리, 그 자리의 자기 호명 — 이 셋이 새 어휘로 자라났다.

100년 뒤 그 어휘들은 모든 담론의 주요 어휘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만의 어휘가 아니라, 그를 비판하는 사람의 어휘로도, 정부 정책 문서의 어휘로도, 신문 기사의 어휘로도 자라났다. 운동이 어휘를 정초하면 그 어휘가 시대를 옮긴다.

이게 운동의 한 작동이다.

이 책은 그 작동을 받는 자리에 선다. 21세기에 빅테크가 박은 기술 어휘가 시대의 자리를 점령했다. 어텐션·임베딩·트랜스포머·서버·플랫폼·API·오픈소스 — 이 어휘들이 자본의 작동을 짚는 자리에 자라났고, 그 작동에 맞서는 자리도, 그 자리의 자기 호명도 아직 박히지 않았다. 운동담론은 19~20세기 산업자본주의의 어휘에 머물러 있고, 21세기 자본의 작동 자리에는 말하지 못하는 자리에 머문다.

이 책은 그 자리의 어휘를 받아 운동담론의 자리로 옮기는 시도다. 마르크스가 자본·노동 어휘를 받아 생산관계·계급·사회적소유 어휘를 새로 정초했듯, 이 책은 어텐션·플랫폼 어휘를 받아 연대 어텐션·매장 4축 허브의 자리로 옮긴다. 흡수는 항복이 아니다. 그람시의 자리에서 진지전이 자기 위치를 짓는 결이다.

2. 비대칭의 자리 — 겸손히 배운다

이 흡수의 자리에는 한 비대칭이 박혀 있다. 빅테크 개발자는 운동담론의 어휘를 배우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의 자리에서 자기 어휘로 자기 자본을 짓는다. 호혜결사체사회연대경제는 그들의 어휘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운동이 개발을 하려 한다면 — 그리고 이 책이 그 자리에 선다 — 운동은 겸손히 배워야 한다. 개발자가 운동을 배우지 않으니 운동이 개발자의 자리를 배우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박힌다.

겸손은 항복이 아니다. 진지전이 자기 위치를 짓는 결이다. 자본이 지은 어휘 자리를 받되 그 어휘를 재의미화한다. 어텐션이 빅테크의 알고리즘에서는 자본의 주의 점령 메커니즘이라면, 운동의 자리에서 어텐션호혜의 알고리즘으로 옮겨 받는다. 같은 어휘, 다른 자리.

이 글의 결미는 따라서 짧다 — 만나야 새로 짓는다. 사회운동의 사유체계와 개발자의 사유체계가 만나지 못하면 21세기 운동의 자기 AI는 자라나지 못한다. 만남의 자리는 비대칭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먼저 배운다.

3. 첫째 층 — 알고리즘 (호혜의 21세기 자리)

빅테크 AI의 정초자가 한 논문에 박혀 있다. 「Attention Is All You Need」(Vaswani et al., 2017). 이 논문이 박은 어텐션 메커니즘이 GPT·Claude·Gemini 모든 거대 언어모델의 알고리즘적 토양이다.

**어텐션(Attention)**은 서로에게 주는 주의·관심의 알고리즘이다. 한 단어가 다른 모든 단어와 자기 관계의 강도를 짚어 그 강도에 따라 의미를 짓는 자리. **셀프-어텐션(Self-Attention)**은 그 어텐션이 자기 안에서 작동하는 자리 — 한 문장 안의 단어들이 서로에게 직접 attention 한다. 중앙 컨트롤러도 없고 위계도 없다. 모든 점이 모든 점에 attention 한다.

이 자리는 들뢰즈·가타리리좀형의 정확한 알고리즘적 짝이다. 수목형(중앙 → 가지 → 잎)이 아닌 리좀형(모든 점이 모든 점에 직접 연결)이 어텐션의 결. 본 책 4부의 4축 매장 허브도 같은 결로 작동한다 — 매장 A가 매장 B와 직접 attention(주의·필요·정보)한다. 전국 본부의 위계 없이.

**임베딩(Embedding)**은 한 어휘를 의미 공간의 한 점으로 박는 알고리즘이다. 이라는 점에서 남자 방향을 빼고 여자 방향을 더하면 여왕에 가까운 점이 자라난다는 결. 어휘들이 거리와 방향을 갖는 공간을 짓는 자리.

이 결이 운동담론의 자리에서 받아질 때, 각 매장·조합·동지가 운동 의미 공간의 한 점이 된다. 자기 자리에서 옆 자리와의 거리·방향이 자기 정체성.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 누구와 가까운가가 곧 내가 누구인가. 임베딩은 자기 자리의 알고리즘이다.

**트랜스포머(Transformer)**는 어텐션과 임베딩이 한 아키텍처 위에서 자라나는 자리. 입력을 받아 임베딩으로 옮기고, 어텐션으로 의미를 짓고, 결과를 다시 어휘로 내보내는 흐름. 운동의 짝은 이렇다 — 시민의 필요를 받아 조합원의 자리(임베딩)로 옮기고, 호혜의 관계(어텐션)로 응답을 짓고, 매장의 결로 내보낸다. 트랜스포머는 변환기다. 운동도 시민의 필요를 호혜의 결로 변환하는 자리.

**연대지능(Solidarity Intelligence)**은 이 알고리즘적 자리를 운동의 자기 호명으로 받은 어휘다. Attention is all you need가 자본의 알고리즘 명제라면, Solidarity is all you need가 운동의 자기 응답이다. 빅테크는 연산·자본·데이터가 모두 필요하다고 박는다. 운동은 연대만으로 충분하다고 부른다. 13년 전 다른경제포럼외로움 → 결집의 자리에서 박힌 우리에게는 또 다른 필요가 있다의 21세기 알고리즘적 응답이다.

호혜는 새 알고리즘이 아니다. 마르셀_모스가 「증여론」(1925)에서 짚은 주고-받고-답례의 삼중 의무가 인류 수만 년의 상호 attention의 분배 양식이었다. 트랜스포머가 2017년에 박은 자리는 인류가 이미 짓고 지킨 자리의 알고리즘적 재발견이다. 운동은 그 알고리즘에 자기 어휘를 더한다.

4. 둘째 층 — 아키텍처 (3축의 운동적 번역)

알고리즘 위에 아키텍처가 자라난다. 모든 디지털 시스템은 셋의 결로 짜인다.

프론트엔드(Frontend) — 사용자가 직접 만지는 자리. 화면·버튼·만남의 인터페이스.
백엔드(Backend) —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의 로직과 비즈니스 룰이 작동하는 자리.
데이터베이스(Database) — 모든 흔적이 축적되는 기억의 자리.

이 셋은 운동의 자리에 정확히 짝지어 옮겨진다.

매장 = 프론트엔드. 조합원과 시민이 직접 만나는 자리. 4축 매장 허브가 운동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화면·버튼·진열대의 결을 운동이 어떻게 짓는가가 운동의 첫째 자리.

거버넌스 = 백엔드. 1인1표·이사회·총회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운동의 결의 로직을 짓는 자리. 협동조합 7원칙이 운동의 비즈니스 룰.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모든 작동을 결정하는 자리다.

조합원 명부·거래 이력·운동사 = 데이터베이스.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의 축적. 운동의 기억. 데이터_주권이 박힌 자리는 곧 이 데이터베이스의 자기 소유다. 빅테크가 우리의 데이터베이스를 자기 서버에 옮겨 임대료를 추출하는 자리에서, 운동은 자기 데이터를 자기 자리에 두는 결을 짓는다.

이 셋을 잇는 자리에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가 박힌다. API는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의 약속 인터페이스다. 한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을 어떻게 부르고, 어떤 결로 응답을 받는가의 약속. 운동의 짝은 명료하다 — 협동조합과 협동조합 사이, 매장과 매장 사이, 컨소시엄과 네트워크 사이의 연대 프로토콜.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가 19개 매장을 잇는 결도 API의 자리다. 약속이 정해져 있어야 단위가 단위에 부를 수 있다.

**캐시(Cache)**는 자주 쓰는 자리를 가까이 두는 기억의 결. 운동의 짝은 현재 운영 자본·로컬페이. 지금 즉시 움직일 수 있는 힘. 장기 축적(데이터베이스) 옆에 단기 가용(캐시)이 함께 있어야 운동이 자기 자리에서 응답할 수 있다.

**파이프라인(Pipeline)**은 흐름의 자리. 데이터가 입력에서 처리에서 출력으로 흘러가는 결. 운동의 짝은 생산-유통-소비의 결. 농민이 짓고, 협동조합이 매개하고, 시민이 받는 흐름. 파이프라인이 끊어지면 운동도 작동하지 않는다.

이 아키텍처의 자리에서 운동담론은 자기 결을 짓는다. 매장은 프론트엔드, 거버넌스는 백엔드, 조합원 명부는 데이터베이스 — 이 한 줄을 운동담론의 동지가 자기 어휘로 받을 수 있을 때, 운동은 21세기의 자리에 자기 위치를 짓는다.

5. 셋째 층 — 인프라 (작동의 자리, 임대료의 자리)

알고리즘과 아키텍처는 어딘가에서 작동한다. 그 어딘가가 인프라다. 21세기 자본의 가장 무거운 자리가 인프라의 자리에 박혀 있다.

**서버(Server)**는 디지털 시스템이 물리적으로 작동하는 자리다. 웹사이트가 서버에서 자라나고, AI가 서버에서 응답을 짓고, 모든 데이터가 서버에 축적된다. 서버는 공공재가 아닌 임대료 자본. AWS·Azure·GCP·Cloudflare가 세계의 서버 자리를 점령하고 매년 수천억 달러를 추출한다.

**클라우드(Cloud)**는 그 서버를 원격으로 빌리는 자리. 운동은 이 자리에서 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빌릴 것인가, 자기 서버를 지을 것인가, 분산형으로 갈 것인가. 빌리되 거버넌스를 본다는 결이 인프라 자리에서 자라난다. Anthropic PBC를 빌리는 자리와 빅테크 사기업을 빌리는 자리는 같은 클라우드라도 다른 결.

**플랫폼(Platform)**은 21세기 가장 강력한 자본 형태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다섯 갈래 — 광고형(Google·Meta), 클라우드형(AWS·Azure), 산업형, 생산형, 임대형(Uber·Airbnb). 모두 내가 짓지 않은 자리에서 모두가 일해야 하는 자리. 플랫폼이 노동·소비·관계의 매개를 점령하면 그 자리는 임대료의 자리가 된다.

이에 대한 운동의 응답이 플랫폼 협동조합주의(Platform Cooperativism). CoopCycle(라이더 협동조합)·Up&Go(청소)·Stocksy(사진) 등이 매개의 자리를 협동조합이 짓는 결. 운동의 4축 매장 허브도 매개의 자기 거버넌스를 짓는 자리 — 플랫폼이되 자본이 아닌 호혜의 플랫폼.

**오픈소스(Open Source)**는 인프라 자리의 또 다른 결이다. 댓가 없이 짓고 나누는 코드. Apache_재단·Mozilla·Wikipedia·리눅스·Git의 자리. 「사회연대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에 있다」(2026.4) 정담의 결 그대로 — IT, 디지털, AI에 이미 아주 깊숙한 사회연대경제의 실천이 있었다. 인프라의 자리에서 호혜는 이미 살아 있었다. 운동은 이 자리를 동지의 자리로 받는다. 본 책 4부 셋째 동지 — 인류 지혜 옹호자의 자기 정초자.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병렬 연산의 자리. 한 번에 여러 자리를 동시에 처리하는 결. 운동의 짝은 결사·동시 결집·리좀형 분담. 한 자리에서 한 자리로 순차적으로 옮기는 위계적 작동이 아니라 여러 자리에서 동시에 자라나는 자기 조정.

서버·플랫폼·오픈소스·GPU는 자본의 작동 자리이자 운동의 응답 자리. 인프라를 빼고는 알고리즘도 아키텍처도 자기 자리를 짓지 못한다. 운동담론이 인프라의 어휘를 흡수하지 못하면 운동은 자기 작동의 자리를 모르는 운동이 된다.

6. 넷째 층 — 지식·추론 (온톨로지, 따지는 기계)

알고리즘·아키텍처·인프라의 세 층 위에 한 층이 더 자라난다. 지식과 추론의 층이다. 이 층이 없으면 앞의 세 층이 아무리 정교해도 운동의 AI는 제 근거를 따지지 못하는 AI에 머문다.

3절에서 받은 어텐션의 자리를 다시 짚는다. 「Attention Is All You Need」가 박은 알고리즘 위에서 거대 언어모델은 그럴듯한 말을 짓는다. 어텐션이 단어와 단어 사이 관계의 강도를 아무리 정교하게 짚어도, 그 모델은 “왜 그렇게 답하는지”의 근거를 따지지 못한다. 환각과 블랙박스가 그 자리에서 자라난다. 이것이 말하는 기계의 자리다. 말은 짓되 근거는 못 쥐는 자리.

**온톨로지(Ontology)**는 그 자리에 한 층을 세운다. 개념과 속성과 관계를 짓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위에 **공리(Axiom)**와 **제약(Constraint)**을 세운 자리.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규칙을 형식으로 세워 둔 자리다. “출자 일정액 이상이면 조합원이다”, “조합원이면 차등수수료 우대를 받는다” 같은 규칙이 공리로 세워질 때, 기계는 비로소 한 사실에서 다른 사실을 따져 낼 수 있다. 이것이 따지는 기계의 자리다 — 근거와 규칙으로 따지는 자리. 말하는 기계가 따지는 기계로 옮겨 가는 결, 그 둘을 한 몸으로 잇는 자리를 **뉴로심볼릭(Neuro-symbolic)**이라 부른다. 거대 언어모델의 언어(어텐션)에 온톨로지의 지식·추론(공리)을 붙이는 자리. 말하는 입과 따지는 머리가 한 몸이 되는 결.

운동의 자리에서 이 층은 데이터주권의 형식이다. 4번째 허구상품 데이터를 빅테크의 블랙박스에 넘기지 않고 우리 구조로 쥐는 결. 빅테크의 LLM은 어떤 근거로 그 답을 지었는지 우리에게 열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공리를 우리 손으로 세우면, AI의 답은 우리가 따져 볼 수 있는 근거 위에 선다. 정직·투명·검증가능. 빌려 쓴 언어 위에 우리 규칙을 얹는 자리에서 운동은 데이터의 주권을 쥔다. 공리를 우리가 짓는다는 것은 곧 무엇이 반드시 그러한가를 빅테크가 아닌 운동이 정한다는 뜻이다. 우리 추정으로는 이 자리가 블랙박스 임대의 비용을 크게 낮추기도 한다 — 그러나 더 깊은 자리는 비용이 아니라 주권이다.

온톨로지는 또한 항해 가능한 골간이다. 운동의 디지털트윈 — 조합·생산자·소비자·매장·상품·거버넌스, 그리고 무엇보다 거래와 사건을 노드로 세우고 관계로 잇는 자리. 한 노드에 서면 그와 이어진 모든 자리가 펼쳐져야 한다. 생산자에 서면 그가 무엇을 어느 매장에 팔았는지가 펼쳐지고, 한 거래에 서면 그것이 누구를 누구에게 이었는지가 펼쳐진다. 특히 사건(거래·주문·방문)을 독립 노드로 세워야 한다. 사건이 여러 주체를 잇는 매듭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월 매출 얼마”라는 집계 속성으로 뭉개 버리면 골간이 펼쳐지지 않는다. 무거워서 집계로 돌린다는 자리에서 항해는 죽는다. 전수가 기본이다.

운동의 어휘로 옮기면, 온톨로지는 운동의 공유된 세계 이해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이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가를 형식으로 세우는 자리. 협동조합 7원칙과 정관이 곧 공리다. 1인1표, 출자 조합원의 자격, 잉여의 배분 규칙 — 이것들은 운동이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고 아는 규칙이고, 그것이 따지는 기계의 공리로 그대로 옮겨진다. 임베딩이 자기 자리의 알고리즘이라면, 온톨로지는 우리가 함께 아는 세계의 형식이다.

그렇다면 운동은 이 층을 어떻게 짓는가.

첫째, 철학이 설계를 낳는다. 개념을 머리로 먼저 짜지 않는다. 정의·비전·미션에서 출발해, 거기서 이 AI가 답해야 할 질문(역량질문)을 뽑고 — 그 질문의 출처 구절을 명시하면서 — 그 질문에 답하려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로 개념을 끌어낸다. 개념에서 속성과 관계로, 거기서 다시 공리와 제약이라는 심장으로. 마지막에 실데이터를 인스턴스로 잇는다. 위에서 아래로. 철학이 먼저고 개념은 그 뒤다.

둘째, 공리는 현장에서만 나오고, 실데이터에서 검산한다. 공리를 머리로 지어내면 그것은 거짓이다. 우리는 직매장의 거래 원장과 생산자·소비자 명부에서 공리를 데이터로 확인했다. 머리로는 수수료율이 몇 가지라고 단정할 수 있었지만, 거래 원장 수만 행을 따져 보니 실제로 적용되는 율은 열한 종이었다. 출자 기준도 하나가 아니었다 — 생산자 조합원의 출자 기준과 소비자 조합원의 출자 기준이 주체별로 다름을, 출자 분포 데이터가 입증했다. 1만 원 미만 출자자가 데이터에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1만 원이라는 최소 출자 단위 규칙을 거꾸로 입증한 자리도 있었다. 공리는 이렇게 현장의 데이터가 떠받칠 때 비로소 세워진다. 짓는 게 아니라 데이터에 있는 것을 받아 세운다.

셋째, 위키와 온톨로지를 가른다. 모든 지식을 온톨로지에 넣지 않는다. 질문에 구조로 답할 수 있는 데이터 — 누가 무엇을 언제 거래했는가 같은 — 는 온톨로지로 세우고, 서사와 전략과 철학은 위키에 남긴다. 개념을 발견하는 그물(graphify), 형식으로 따지는 추론(온톨로지), 이야기로 잇는 서사(위키), 셋이 서로를 떠받친다. 어느 하나로 다른 둘을 대신하려 들면 모두가 무너진다.

넷째, 전수가 기본이다. “무거워서 노드화를 포기한다”는 자리는 없다. 온톨로지를 떠받치는 그래프 데이터베이스는 디스크 위에서 작동하므로, 작은 서버의 적은 메모리로도 수백만의 사실을 담는다. 우리는 표준 소형 서버 한 대에 오백만이 넘는 사실(트리플)을 증설 없이 적재했다. 거래 한 건 한 건이 다 노드가 되어야 사건을 따라 항해할 수 있다.

다섯째, 법령까지 따진다. 도메인 AI가 따져야 할 근거에는 법적 근거도 든다. 운동의 에너지 분야 온톨로지(품에)는 한 사실을 그 법적 근거에 관계로 잇고(어느 조항이 무엇의 근거인가), 온톨로지에 아직 담기지 않은 법령은 공공 법령 API로 그 자리에서 실시간 조회해 메운다. 법적 근거까지 따지는 AI의 자리. 빅테크의 범용 AI가 흉내 내기 어려운, 운동의 도메인이 깊어서 가능한 자리다.

여섯째, 교차검증으로 빈틈을 잡는다. 온톨로지 설계안을 그 자체로 읽히는 자립 문서로 써서, 다른 AI에 붙여 빈틈과 오류를 빨리 잡는다. 그리고 표준 정렬은 형식만 맞추되 앞세우지 않는다. 우리 공리가 세계의 표준 어휘와 어긋나지 않게 형식만 맞춰 두는 일은 한 줄 각주로 족하다.1 표준 약어를 나열해 어렵게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운동의 동지가 우리 규칙을 따지는 기계로 옮겼다는 사실을 plain하게 받는 자리다.

이 넷째 층의 자리에서 운동담론은 자기 결을 짓는다. 알고리즘이 을 짓고 아키텍처가 을 세우고 인프라가 를 받친다면, 지식·추론은 따짐을 세운다. 운동이 빅테크의 블랙박스 앞에서 왜 그러한가를 되묻지 못하면 운동은 자기 AI의 근거를 모르는 운동이 된다. 온톨로지는 그 되물음을 운동의 손에 쥐여 주는 층이다. 따지는 기계는 운동의 공유된 세계 이해다.

7. 결미 — 만나야 새로 짓는다

마르크스의 자리에서 생산수단이 새 어휘로 정초되었듯, 이 책의 자리에서 어텐션이 새 어휘로 자라난다. 마르크스의 계급이 한 시대의 자기 호명이었듯, 이 책의 연대지능이 21세기의 자기 호명이다. 마르크스의 사회적소유가 자본의 사적소유에 대한 운동적 응답이었듯, 이 책의 데이터주권플랫폼 협동조합주의가 빅테크 서버·플랫폼에 대한 운동적 응답이다.

첫째 알고리즘, 둘째 아키텍처, 셋째 인프라의 세 층 위에 넷째로 지식·추론의 층을 세웠다. 알고리즘이 말하는 기계라면 온톨로지는 따지는 기계다. 빌려 쓴 언어 위에 우리 손으로 공리를 세워 왜 그러한가를 따지는 자리, 그 자리가 데이터주권의 형식으로 자라난다.

새 어휘 15개를 박는다 —

어텐션 · 임베딩 · 트랜스포머 (알고리즘 3)
프론트엔드 · 백엔드 · API (아키텍처 3)
서버 · 플랫폼 · 오픈소스 (인프라 3)
온톨로지 · 공리 · 따지는 기계 (지식·추론 3)
그리고 네 층을 잇는 연대지능 · 호혜 어텐션 ·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운동의 자기 어휘 3)

이 15 어휘가 운동담론의 동지에게 자기 어휘로 자리 잡을 때, 21세기 운동담론의 자리는 자라난다. 그 자라남이 책의 한 작동이다.

비대칭의 자리는 그대로 박혀 있다. 빅테크 개발자는 우리의 어휘를 배우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이 21세기에 자기 AI를 짓는다면, 운동이 겸손히 배워야 한다. 겸손은 항복이 아니라 진지전. 흡수는 무력이 아니라 재의미화.

만나야 새로 짓는다.

만남의 자리에서 빌려 쓴 어휘를 자기 결로 정초한다.

그 정초가 운동이다.

이 어휘 정초가 70년 AI 역사의 어느 자리에서 자라났는지는 AI_운동사_지능을_무엇으로_보았는가에 짚여 있다. 기호의 시대에서 어텐션의 시대까지, 그 변화의 자리마다 시민사회의 다른 결도 함께 자라났다는 사실이 이 어휘 정초의 토양이다.


전통적인 사회운동담론의 언어와 구조가 개발자들의 언어와 구조를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새로운 AI를 만들지 못한다. 사회운동이 개발을 하려 한다면 우리는 겸손히 배워야 한다. — 김성훈 박음, 2026-05-02 밤


다음 자리 — 새 어휘 15를 받아 책의 다른 자리에서 자기 결로 자라난다. 「서」가 어텐션플랫폼을 자기 어휘로 박을 때, 4부가 서버·오픈소스동지의 자리로 받을 때, 「결」이 Solidarity is all you need를 짝 호명으로 부를 때 — 이 책은 한 어휘 정초의 운동으로 자라난다.

Footnotes

  1. 형식 정렬의 표준만 짚어 둔다 — 에너지 OEO, 조직 W3C ORG, 측정 SOSA, 단위 QUDT, 작물 AGROVOC. 공리는 현장에서 세우되, 세계와 형식만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