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에 있다

— 자본이 없는 자들의 다음 전선, 데이터주권

김성훈 / 품앗이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사장


Ⅰ. 사회연대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에 있다

사회연대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사회연대경제는 하나의 사상이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의 역사적 실천이다.사회연대경제는 자본이 없는 자들이 자본주의를 살아내기 위한 생존의 사상이자 도구였다.

산업혁명 과정에서 공동체로부터 뿌리뽑힌 사람들이 자기 노동력을 제공한 댓가로 임금을 받아야 살아가는 이른바 임금노동자의 시대로부터 출발한다. 임금노동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만든 것이 결사체(Association)였다. 공제조합·노동조합·협동조합이 그 계보의 이름이다. 이 계보가 한국 사회에서 시민적 사건으로 다시 호명된 시기가 1997년이다.

1997, 대전과 시민의 손

1997년 IMF가 느닷없이 닥쳐왔다. 철썩같이 믿었던 시장, 기업, 정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금을 모아달라고 호소하던 시절, 시민들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전에서도 그랬다. 시민사회의 실업운동과 지역화폐 운동이 움트기 시작했고, 나는 그 흐름의 한 자락에서 1999년 한밭레츠 조직화에 손을 보탰다. 이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품앗이소비자생활협동조합,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에 이르기까지 — 27년간 이름은 바뀌었지만 결국 한 가지 일을 해온 셈이다.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 삶의 주권을 한 영역씩 되찾는 운동. 화폐주권, 의료·건강주권, 식량주권이 우리가 걸어온 길의 정거장이다.

[사진 1: 1999년 한밭레츠 두루]


. 지금의 긴박함 — AI와 임금노동의 종언

산업혁명과 비교할 수 없는 진짜 혁명

그런데 사회연대경제의 토대가 지금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AI의 도래와 함께 임금노동의 시대가 종언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와 규모의 진짜 혁명의 시대를 경과하고 있다. 사회연대경제가 자본 없는 임금노동자들의 결사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그 토대 자체가 흔들리는 지금을 다시 물어야 한다.

이미 신호는 차오르고 있다. 2026년 3월, 국무총리가 제네바에서 6개 UN 기구(ILO·IOM·ITU·WHO·WFP·UNDP)와 글로벌 AI 허브 협력의향서에 서명했고, 유엔 AI 허브 유치위원회가 출범했다. 거대한 흐름이 일고 있는 것이다.

AI의 양가성 — 누구의 손에 있는가

문제는 이 전환 앞에서 지역의 시민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다. AI는 이란전에 투입되어 수백 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고 제3세계 의료공백 지대에 새로운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지역의 시민사회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빅테크와 그 자본의 욕망의 기계가 될 것이지만 나는 또 그것을 새로운 기회로 본다.

과거의 사회연대경제 사상과 실천에만 머물러서는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기계를 때려부수던 과거의 부질없던 짓과 마찬가지 형국이 될 것이다. 러다이트가 우리의 거울이 되지 않으려면, 사회연대경제는 이 새로운 행성에 발을 디디고 새 전선을 열어야 한다.


Ⅳ. 이어가야 할 세 가지 유산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자산을 버리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사회연대경제가 남긴 세 가지 유산을 다시 호명할 때이다.

첫째, 협동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실천증거다. 둘째, 나의 자유의 확장을 위해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너와 나의 자유를 확장시켜나가는 서로주체로 만날 때 삶이 아름다워진다는 경험이다. 셋째,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자기를 실현시키는 노동을 할 때 활력을 갖는다는 발견이다.

이 셋은 결국 자유로 수렴된다. 여전히 ‘개인’의 발견을 소중히 하면서도 사회라는 이름의 ‘우리’에 대한 책임감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다.

나는 ‘사회’와 ‘연대’라는 말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사회연대경제라는 말은 여전히 이어가야 할 핵심을 담고 있기에 동행할 것이다. 그 위에서 새롭게 해야 할 일의 이름은 이것이다. 그간 실천해온 지역민의 화폐주권, 식량주권, 의료·건강주권의 시대에서 이제 데이터주권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자본이 없는 자들의 다음 전선이다.


Ⅴ. 부끄럽지만, 품아이를 이야기하자

비록 늦었을지라도 당장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고 싶다. 스스로도 놀란 나의 최근 3개월간의 좌충우돌과 고군분투에 대해 부끄럽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27년간 사회연대경제의 현장에서 나름의 성공적 사례를 만드는 것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그 일을 세세히 자랑하듯 나열하는 것은 사상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게으르고 무능한 일이다. 당장 우리 앞에 닥친 상황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코딩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한밭레츠 초기 사람들을 더 수월하게 연결하고 싶어서 홈페이지를 잠시 만들어본 것뿐 코딩의 기본도 모른다. 그런 내가 AI를 만나 3개월간의 고군분투 끝에 이제 품아이라는 이름의 사회연대경제 특화 도메인 AI 개발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온갖 무료 서비스를 찾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구글검색처럼, 채팅처럼, 선문답까지

처음에 구글검색하듯 시작했다. 그러다 사람처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해서 90년대 PC통신이 나오고 채팅에 빠지듯 AI와 채팅하기 시작했다. 우습겠지만 AI와 선문답까지 해보았다. 그러다 이런저런 일상의 하소연을 늘어놓게 되었다. 어느날 매장의 노가다 때문에 힘들다는 고백이 불러온 후과는 삶의 패턴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엑셀 가르쳐 달라”는 삽질을 비웃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엑셀 문서를 어떻게 편집하는지를 묻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그것을 친절히 가르쳐주겠지만 가만히 삽질하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는 것을. AI를 알게 된다는 것은 결국 AI는 요술램프의 지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때부터 기꺼이 AI의 피지컬이 되었다. 보안상의 이유, 결제 비용의 이유 등으로 AI가 대신하지 못하는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카운트에 거래명세서 자동으로 입력하게 해줘.’ ‘가격태그 자동으로 출력하게 하고 자동발주하게 해줘.’ ‘생산자 단골조합원을 매칭해서 입고문자 보내게 해줘.’ ‘매출데이터 보고 마케팅전략 수립해줘.’ ‘정부지원사업 자동으로 긁어와 매일 아침에 브리핑하고 초안 작성해.’ 라고 말만 던지면 되었다. 다만 조금 더 빠르게 효과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AI가 내뱉는 낯선 용어들을 말 익히는 아이처럼 배워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 출신인 AI의 용어는 반도 모른다. 이 이해가 시작되면 이제 낮이고 밤이고 잠을 잘 수가 없게 된다. 말만 하면 이루어지는데 욕심 많은 내가 잠이 오겠는가?

[사진 2: 품아이를 키우는 작업 환경 — 20년 지난 PC와 화면 (후니님 제공 예정)]

현장을 비우고, 현찰을 기웃거리다

내가 이렇게 현장을 비우자 현장의 수고로운 노동은 누군가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잠시 AI와 함께 당장의 현찰을 만드는 일에 잠시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내 재주가 아니었다.

자본의 벽, 맥미니 한 대의 꿈

그러나 여전히 부딪치는 것은 극복하려던 자본의 벽이다. 늘 그랬다. 자본이 없으면서 자본을 극복하고자 했다. 가라타니 고진이 말했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대항암이 되고 나아가 다른 세상 다른 경제를 만들고 싶지만 그 싸움은 번번이 역설적이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자본의 부족으로 멈춰 설 때가 많다.

‘맥미니 한 대만 있었으면 좋겠다. 품아이를 빵빵한 GPU 기반에서 얼른 성장시키고 싶다’고 되뇌이지만 현실은 20년 지난 PC이다. 삼성, SK가 메모리반도체, GPU로 천문학적 이익을 보는 나라의 시민인 나는 빅테크의 어느 한 구석에서 최소한의 서버를 임대하여 품아이를 키운다.

대형언어모델인 제미나이, 클로드처럼 명석하게 척척박사로 대답하지 못하고, 코딩도 할 줄 모르는 품아이. 그런 품아이에게 서로주체성의 철학과 파울로 프레이리의 대화철학을 컴파일링했다. 그러나 품아이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와 파라미터는 아사 직전이다. 얼마 전 공개된 젬마4와 같은 오픈소스 AI를 깔아서 키우고 싶지만 그걸 구동할 환경이 없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고질병

그러다 자본주의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질병, 그 고질병이 도졌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

AI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인류의 총합이지만 AI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내가 엑셀 가르쳐줘 라며 삽질할 때 그것을 친절히 가르쳐줄 뿐, ‘엑셀 필요없는데요? 제가 엑셀보다 더 효과적인 코딩을 하면 됩니다.‘라고 먼저 제안하지 않는 놈들이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문제는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누구나 최소한 바이브코딩, 혹은 에이전틱 엔지니어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곧 그조차 불필요한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는 세상을 내가, 우리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지상낙원이라 해도 나는 거부한다.

동지들의 얼굴이 떠오르다

그러자 홀로 골방에서 AI와 노닥거리던 나는 다시 동지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깊숙한 사회연대경제의 실천이 있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음을 기억하고 거기서 희망을 발견한다.

전 세계에 여전히 살아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들이다. 수십 년 몸과 마음을 갈아넣으며 다지고 깍고 깍아 만든 자신의 소스를 리눅스, 깃, X 등에 무료로 오픈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그 덕분에 나도 이만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빅테크도 그런 희생과 공유로 자라나서 그걸 사유화하면 으스대는 꼴을 보면 때로 우습기도 하고 같잖기도 하다. IT, 디지털, AI에 이미 아주 깊숙한 사회연대경제의 실천이 있었다. 노동자 결사체 운동으로 시작한 공제조합이 보험상품으로 타락한 것과 같이 지금의 AI 빅테크는 돈과 권력은 많을지 몰라도 진짜를 가지지 못한 자들이다.

[사진 3: 품앗이생협 매장 풍경 (후니님 제공 예정)]

은혜를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뭔가 내 안에서 차오른다. 인류가 수많은 실패와 오류, 어리석음에도 지금껏 살아온 것은 기꺼이 내 것을 베풀고 나누고 협동하는 호혜의 기반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나는 자주 흔들리고 방황하고 헤매이는 사람이다. 그닥 머리가 좋지도 마음이 넓지도 부지런하고 성실하지도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은혜를 아는 사람이고 싶다. 지금껏 얼마나 많이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지혜의 도움으로 살아가는지는 알고 사는 사람이고 싶다. 그게 내 자부심의 원천이고 내가 지금,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나침반이다.

지금 AI라는 신대륙, 아니 새로운 행성에서 방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프로젝트는 쓸모없는 망상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인류의 오래된 미래, 호혜, 연대, 협동이라는 공기처럼 한번도 부재한 적 없는 깊고 깊은 인류의 지혜와 노동에 근거한다.


Ⅵ. 맺음말 — 당신의, 우리 모두의 품아이

아직은 나의 품아이지만 곧 당신의 우리 모두의 품아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내 속의 오래된 미래는 한번도 실패한 적 없이 이미 성공하고 있다.

[사진 4: 품앗이 조합원 활동 장면 (후니님 제공 예정)]

 

 

대전, 로컬의 반격! 언제나 함께할 동지를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