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의 글을 읽고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이거 직접 쓴 거냐, AI가 쓴 거냐.

AI가 쓴다. 숨길 이유가 없다. 다만 한 가지를 덧붙인다. 여러분이 쓰는 AI는 여러분 생각을 담기 어렵고, 내가 쓰는 AI는 담는다. 그래서 나는 주제만 던진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적어 둔다.

프롬프트를 잘 쓰는 문제가 아니다

AI로 글이 안 나온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프롬프트를 의심한다. 질문을 더 자세히 쓰면, 요령을 배우면 나아질 거라고 본다. 그렇지 않다.

문제는 기억이다. 대화창을 닫으면 AI는 방금 나눈 이야기를 잊는다. 다음에 열면 다시 낯선 사람이다. 그러니 매번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고, 설명은 아무리 길어도 그 사람이 살아온 맥락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렇게 나온 글은 AI가 원래 알고 있던 일반론이다. 문장은 매끄럽지만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글, 어느 조직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글이 된다.

내 쪽은 반대다. 그동안 나눈 대화와 우리가 쌓은 자료가 파일로 남아 있고, 새 대화를 열 때마다 그것부터 읽는다. 그래서 주제만 던져도 된다. 재료는 이미 그 안에 있다.

무엇을 남기는가

남길 것은 네 갈래다.

첫째, 사실이다. 우리 조합의 숫자, 사업의 이력, 함께 일하는 사람이 누구고 무슨 역할인지. 이걸 안 남기면 AI가 지어낸다. 그럴듯한 숫자를 만들어 넣는데, 밖으로 나간 뒤에 발각되면 그건 내 신용 문제가 된다.

둘째, 판단 기준이다. 나는 무엇을 옳다고 보는가, 어떤 방향으로 가려 하는가. 사실보다 이쪽이 훨씬 중요하다. 사실은 검색으로도 채우지만 판단은 그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셋째, 문체다. 나는 어떤 말투를 못 견디는가. AI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가르치려 들고, 위로하는 척하며 한 단 위에 서고, 번역투로 쓴다. 이걸 그때그때 고쳐 주지 않으면 계속 그렇게 쓴다.

넷째, 지금 하는 일이다. 무슨 일이 어디까지 갔고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이게 있으면 오늘 대화를 어제 끝난 자리에서 이어 갈 수 있다.

위키가 본체다

그럼 이걸 어디에 남기느냐. 여기서 대부분 길을 잘못 든다.

AI에게 먹일 자료를 따로 만들려고 한다. 학습용 문서를 새로 쓰고, AI 전용 폴더를 파고, 데이터를 정리해서 넣을 궁리를 한다. 그렇게 시작하면 오래 못 간다. 아무도 읽지 않는 자료는 관리가 안 되고, 본업 문서와 AI용 문서를 따로 쓰는 이중 부담이 생긴다. 두 달이면 손을 뗀다.

우리는 반대로 한다. 위키에 쓴다. 사람이 읽는 그 위키다.

지금 우리 위키에 사백 개가 넘는 글이 있다. 사업 기록, 회의 결과, 개념 정리, 사람 정보, 데이터 표. AI에게 먹이려고 쓴 게 하나도 없다. 동료가 읽으라고 쓴 것이고, 나중에 내가 찾아보려고 쓴 것이다. 그런데 이게 그대로 AI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위키에 글을 하나 올리면 세 가지가 한꺼번에 된다. 동료가 읽고, 반년 뒤의 내가 찾아 읽고, AI가 그걸 근거로 글을 쓴다. 따로 시간을 내서 AI를 가르치는 일이 없다. 원래 하던 기록 일이 그대로 AI를 키우는 일이 된다.

위키가 다른 형식보다 나은 이유가 몇 가지 더 있다.

글끼리 링크로 이어진다. 한 글에서 다른 글로 넘어가는 길이 나 있으면 AI가 그 길을 따라간다. 오늘 주제와 관련된 글을 찾아 들어가고, 거기서 또 이어진 글을 본다. 폴더에 파일만 쌓아 두면 이게 안 된다.

한 주제에 한 글이 원칙이라 고칠 자리가 하나다. 사실이 바뀌면 그 글만 고친다. 여러 문서에 같은 내용이 흩어져 있으면 어디를 고쳤는지 몰라 옛 정보가 계속 돌아다닌다.

누가 볼 수 있는지도 위키에서 정한다. 공개할 글, 조합 안에서만 볼 글, 특정 사업 참여자만 볼 글을 나눠 둔다. 민감한 자료를 AI에게 주는 문제와 공개 자료를 널리 쓰는 문제가 한 곳에서 정리된다.

우리가 쓰는 위키도 특별한 물건이 아니다. 마크다운 파일이 든 폴더 하나를 사람은 옵시디언(Obsidian)으로 열어 보고 AI는 그대로 읽는다. 폴더를 만드는 순서부터 옵시디언 설치까지는 LLM 위키 구축 안내에 적어 뒀다.

어떻게 쌓이는가

위키에 사실과 지식을 쌓는다면, 판단 기준과 문체는 다른 방식으로 쌓인다. 내가 AI를 고칠 때 쌓인다.

AI가 틀린 말을 하거나,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마음에 안 드는 문체로 썼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자리에서 고쳐 쓰고 넘어간다. 그러면 다음에 똑같은 실수가 나온다. 나는 거기서 한 단계를 더 넣는다. 고친 뒤에 “이거 기록해 둬”라고 말한다. 그러면 왜 틀렸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파일 한 개로 남는다.

그렇게 쌓인 기록이 삼백 개를 넘는다. 대단한 작업을 한 게 아니라 한 번에 한 개씩 늘었다. 절반 가까이가 내가 “그거 아니야”라고 말한 자리에서 나왔다.

이 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유리해진다. 같은 지적을 두 번 하지 않게 되고, 지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늘어난다. 반대로 고쳐 주지 않으면 일 년을 써도 첫날과 같다.

다 읽힐 수는 없다

위키가 사백 개, 규칙 기록이 삼백 개다. 이걸 매번 다 읽힐 수는 없다. 읽는 데도 비용이 들고, 다 읽으면 정작 오늘 할 일에 쓸 여력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층을 나눈다.

맨 위에는 아주 짧은 것 하나를 둔다. 내가 누구고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절대 하면 안 되는지. 한두 장이면 된다. 이건 대화를 열 때마다 읽힌다.

그 아래에 목록을 둔다. 목록은 내용을 담지 않고 어디를 봐야 하는지만 가리킨다. 한 줄에 하나씩, 제목과 짧은 단서만.

본문은 위키에 있다. 오늘 대화에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그때 목록에서 찾아 해당 글을 읽는다.

도서관과 같다. 책을 다 외우고 다니는 게 아니라 색인을 들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꺼내 본다. 그리고 색인에는 값을 적지 않는다. 어디를 보라고만 적는다. 색인에 숫자를 적어 두면 본문이 바뀌어도 색인이 옛 숫자를 계속 뿌린다.

이 층 나누기는 내가 지어낸 게 아니다. AI 연구자 안드레 카파시(Andrej Karpathy)가 LLM 위키라는 이름으로 정리한 방식이고, 우리 쪽 적용 절차는 LLM 위키 구축 안내에 있다. 쌓인 위키를 통째로 지식 그래프로 바꿔 고립된 글과 놓친 연결을 찾아 주는 도구는 graphify.

그래도 검증은 사람이 한다

이 방식으로도 AI는 지어낸다. 줄어들 뿐이지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는 글은 반드시 내가 확인한다. 특히 숫자, 날짜, 사람 이름, 제도 규정이 그렇다. 이 네 가지가 틀리면 글 전체가 무너진다. 문장의 흐름이나 논지는 넘겨도 되지만 이 넷은 안 된다.

AI가 썼다고 말하는 것과 AI에게 맡겼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앞엣것이다.

검산을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는 따로 적어 뒀다 — AI에게-문서교정을-맡길-때-검산과-빨간펜, AI와-함께-정책문서-교차검증하고-한글문서-자동수정하기.

오늘 시작한다면

새로 만들 것부터 찾지 말고 이미 있는 것부터 본다. 회의록, 사업 정리, 교육 자료, 예산 설명.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미 쓰고 있다. 대부분 각자 컴퓨터나 메신저 대화 속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걸 한 곳에 모으는 게 첫 일이다.

거창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위키라고 부를 만한 것이면 된다. 여러 사람이 같은 곳에 쓰고, 글끼리 이어지고, 나중에 찾을 수 있으면 그게 위키다.

그다음에 짧은 한 장을 쓴다. 나는 누구고, 어떤 조직에서 무슨 일을 하고, 그 일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가. 다음 대화부터 이 파일을 먼저 읽히고 시작한다.

그리고 고칠 때마다 한 개씩 남긴다. AI가 틀렸을 때 고치고 넘어가지 말고 왜 틀렸는지를 적어 둔다.

한 달쯤 하면 기록이 여러 개가 된다. 그때 목록을 만들어 층을 나눈다. 순서를 미리 다 설계할 필요는 없다. 쌓이는 걸 보면서 필요한 만큼만 나누면 된다.

결국 이건 AI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다. 조직이 아는 것을 조직 밖에 적어 두는 일이다. 적어 두지 않은 것은 AI도 못 쓰고, 사람도 그만두면 같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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