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짓는 AI — DIY 운동과 도메인특화 AI
손대패와 산소절단기
목공방에 CNC 라우터가 있어도, 노련한 목수는 손대패로 의자를 깎는다. 조선소에 레이저커터가 있어도, 동네 용접공은 산소절단기로 트레일러를 만든다. 느릴 수 있다. 그러나 내 손으로 된다.
이게 결정적 한 수다. 적정기술 옆에 DIY 운동의 계보가 나란히 흐른다.
계보 — DIY는 60년대부터 시작된 도구의 민주화
- Whole Earth Catalog(1968, 스튜어트 브랜드) — “도구에 접근할 권리”라는 첫 카탈로그. 잡스가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인용한 그 책.
- 펑크 DIY(70년대~) — 메이저 음반사 거치지 않고 자기 카세트·진(zine) 직접 만들기. “Don’t ask permission, just build.”
- Maker 운동(2005~) — 아두이노·라즈베리파이·3D 프린터. 도구 자체가 오픈됨.
- Right to Repair(수리권 운동, 2010년대~) — 트랙터·아이폰·전동칫솔까지 “내가 산 물건을 내가 고칠 권리”.
- 종자 자율권(농민운동) — 몬산토에 의존하지 않고 토종 종자 보존.
이 계보 전부가 같은 외침이다. “도구가 비싸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시민에게서 빼앗지 마라.”
도메인 AI = AI 시대의 DIY
거대 AI 시대에 빅테크는 두 가지를 가져갔다.
- 도구 자체 — 모델 가중치는 비공개, API만 임대
- 수리·점검권 — 왜 이렇게 답하는지 들여다볼 수 없음
도메인특화 AI는 이 두 가지를 다시 가져오는 운동이다.
- 데이터를 우리가 정제한다 = 손대패질
- 모델을 우리가 양육한다 = 용접 비드 한 줄씩
- 위키에 흔적이 남는다 = 우리 작업장의 도면이 우리 손에 있다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기여하는 위키가 바로 이 DIY 정신이다. 빅테크의 거대 모델은 누구도 어디서 무엇을 학습했는지 모른다. 우리 모델은 누가 무엇을 넣었는지 위키에 나온다. 수리 가능하고, 들여다볼 수 있고, 고쳐 쓸 수 있다.
느림의 적정함
DIY가 적정기술과 만나는 가장 깊은 지점은 시간 축이다.
- CNC는 의자 100개를 한나절에 깎는다.
- 손대패는 의자 1개를 한나절에 깎는다.
- 그런데 손대패로 깎은 의자는 그 사람 손에 맞는 의자다.
거대 AI는 1초에 답하지만 어느 마을에도 안 맞는다. 도메인 AI는 더 느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매장, 이 조합원, 이 도메인에 맞는다. 속도가 아니라 적합도가 가치다.
함정 — DIY 낭만 경계
DIY 운동도 70~80년대 함정에 빠진 적이 있다.
- 모든 걸 다 직접 — 시계 톱니바퀴까지 깎으면 마비된다. 적정한 단위 분별이 필요.
- 고립된 자급자족 — 온라인에 도구 카탈로그가 있고 메이커들이 도면 공유하기에 DIY가 산다. 연결된 자립이 핵심.
- 취미주의 함정 — DIY가 개인 취미로 갇히면 운동성을 잃는다. 협동조합·마을 단위로 조직될 때 사회성을 회복한다.
도메인 AI도 같다. 빅테크 인프라(GPU·기반 모델)는 빌려 쓰되, 우리 단위에 맞게 조립하고 우리 손에 도면을 남기는 균형. 이게 적정기술 + DIY의 21세기 합류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