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들 AI는 무엇인가,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들어가는 말 — “AI 영역마저 빼앗기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솔직해져야 한다.

토지 운동에서 노동 운동으로, 협동조합에서 사회적기업으로, 로컬푸드에서 사회연대경제로. 27년이 그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 AI라는 새 영역이 열리는 자리에서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빅테크가 LLM을 만들고, 정부가 국가 AI를 논하고, 재벌이 산업 AI에 투자한다. 이 흐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구독료를 내고 ChatGPT를 쓰는 것뿐이라면 — 그것이 운동의 끝이다.

“AI 영역마저 빼앗기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이 말의 무게를 정확히 보면 이렇다. 먹거리를 지켰고, 에너지 절감에 나섰고, 지역화폐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운동의 언어·판단·연결이 앞으로는 AI를 통해 흐른다. 우리가 그 AI를 만들 수 없다면, 우리의 언어는 빅테크의 번역을 거쳐 나올 것이다. 우리의 판단은 거대 모델의 알고리즘 위에서 형성될 것이다. 27년이 쌓은 현장의 지혜가 누군가의 학습 데이터가 되어 그쪽의 자본이 될 것이다.

7편에서 박아둔 개념을 다시 호출하면 — 이것이 21세기 본원적 축적이다.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이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었듯, 지능에서 쫓겨난 우리는 지능 무산자가 된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 의문들은 운동 안의 정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는 것이다.


의문 하나: “돈도 기술도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AI를 만든단 말인가.”

의문 둘: “좋은 AI를 쓰면 되지, 어설픈 AI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두 의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이 이 글의 첫 번째 일이다.


의문 하나 풀이 — “돈도 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자본과 기술이 없으면 AI를 못 만든다는 생각, 그 자체가 AI에 대한 무지이다.

이 의문이 등장하는 순간, 이미 빅테크 신화에 속은 것이다. 빅테크와 미디어는 AI를 돈과 기술의 무대로만 비춘다. GPU 수천 장, 데이터센터, 박사 수백 명의 무대. 그러나 후니님이 정확히 짚었다. “소수 탐욕의 자본이 빅테크를 움직이고 독재자를 비춘다고 해서 인류 전체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의문 자체가 빅테크 신화에 속은 결과라는 것. 무지를 깨는 것이 첫 자리다.

우리에게 없는 건 빅테크 자본이지, 우리 자본이 아니다

이 의문은 사실 하나를 잘못 놓고 있다. 전제가 틀렸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빅테크 자본이다. GPU 수천 장, 데이터센터, 박사 인력 수백 명, 수조 원의 투자. 이건 없다. 그러나 우리 자본이 없는 것이 아니다.

1편에서 슈마허·간디의 논리로 밟았던 자리를 다시 밟는다. 슈마허가 인도 농촌에 중간기술 개발그룹을 만들었을 때, 누군가는 분명 말했을 것이다. “영국의 방직공장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 간디가 물레를 돌렸을 때, “랭커셔의 기계와 어떻게 싸우겠냐”는 비웃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묻고 있었던 것은 경쟁이 아니었다. **“이 기술이 우리 손에 들어오는가, 우리 현장에서 작동하는가”**였다.

2편에서 박은 Linux의 이야기도 여기 있다. 1990년대 초 리누스 토르발스가 핀란드 대학 기숙사에서 커널 코드를 올렸을 때, 어느 누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길 수 있다고 예측했겠는가. “돈도 기술도 없는 대학생이 어떻게.” 그러나 그 코드가 동지의 자유 노동으로 쌓이면서, 지금 세계 서버의 절반 이상이 Linux 위에서 돈다. 동지의 손이 합쳐지면 빅테크도 못 이긴다는 증거가 이미 있다. 윌리엄 모리스가 「News from Nowhere」에서 그린 미래 — 노동이 즐거움이 된 사회, 만드는 자들의 공동체 — 가 소설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미디어는 빅테크만을 비추지만, 인류는 오픈소스 플랫폼에서 인류애, 형제애를 실현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에 접속하면 된다.

Linux·HuggingFace·Wikipedia·EleutherAI·Mistral·LLaMA·KoAlpaca·EXAONE — 이 이름들은 빅테크 광고판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의 자유 노동·기여·공유가 누적된 공동 자산이 거기 있다. 2편(Whole Earth·DIY·Right to Repair)이 가리킨 자리에 후니님이 형제애라는 한국 운동 언어를 박은 것이다. 오픈소스는 추상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명이 코드 한 줄을 기여하고 있는, 살아있는 인류애의 현장이다. 우리는 그 현장에 접속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도 기여할 수 있다.

우리 자본 다섯 갈래

다섯 갈래는 무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류 공동 자산에 접속할 자리에서 출발한다.

0. 인류 공동 자산에 접속할 자리

Linux로 매장 서버를 돌리듯, 오픈소스 LLM에 접속해 우리 단위로 다시 짤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2편에서 박은 Right to Repair의 디지털 확장이다. 수리권 운동이 “내가 산 물건을 내가 고칠 권리”를 주장했듯이, 오픈소스 접속은 “인류가 함께 만든 자산을 내가 빌려 쓸 권리”다. 형제애의 인류 공동 자산이 우리 다섯 갈래의 출발점이다. 그 위에 우리 자본 다섯 갈래가 쌓인다.

운동이 27년 동안 쌓은 자본은 빅테크가 가질 수 없는 종류다.

첫째, 데이터 자본. 매장에서 오가는 거래 흔적, 로컬푸드 생산자의 작물 정보, 조합원의 소비 결, 27년 운동의 기록. 이것은 인터넷 공개 텍스트와 다르다. 7편에서 짚었듯 빅테크의 본원적 축적은 공개된 인류 지적 유산을 흡수했다. 우리 현장 데이터는 아직 빼앗기지 않은 것이다. 이 데이터는 우리 손에 있고, 우리 도메인 AI의 양분이 된다.

둘째, 검토 자본. 생활자의 안목. 어떤 AI의 답변이 우리 조합원에게 맞는지, 어떤 추천이 우리 농민의 현실에 맞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있다. 빅테크는 이 안목을 살 수 없다. 우리 매장에서 27년을 보낸 사람의 눈을 데이터로 복제할 수 없다. 이것이 도메인 AI의 품질을 지키는 가장 귀한 자본이다.

셋째, 사상 자본. 운동의 언어, 사회연대경제 27년의 누적. 1편부터 9편까지 펼쳐온 사유들 — 적정기술, DIY, 자율 영역, 호모 파베르, 지능 무산자. 이 언어로 AI를 만들면 그 AI는 우리 운동의 언어를 말한다. 빅테크 모델은 효율과 편의의 언어를 학습했다. 우리 모델은 연대와 자율의 언어를 학습한다.

넷째, 출자 자본. 조합원 신뢰, 사회연대금융. 9편에서 정리한 금융 탈환의 로드맵이 이 자본의 지도다. 공제조합의 회복, 사회연대금융의 확장, 그 자본이 도메인 AI 양육에 투입될 수 있다. 재벌 벤처캐피탈이 아닌 우리 조합원의 출자로 만드는 AI.

다섯째, 현장 자본. 매장이라는 4축 허브. 먹거리·로컬페이·사회연대경제 생산·탄소중립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자리. 8편에서 정리했듯 몬드라곤·레가·퀘벡이 AI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이 산업생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발판이 바로 이 매장 4축이다.

이 다섯 자본을 가진 사람이 “우리에게 자본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빅테크의 척도로 자기를 재는 것이다.


의문 둘 풀이 — “좋은 AI를 쓰면 되지”

좋은 AI는 좋은 답을 주지만, 좋은 질문할 권리는 주지 않는다

이 의문도 하나를 잘못 놓고 있다. “좋은”의 기준을 묻지 않는다.

ChatGPT나 Gemini가 돌려주는 답은 매끄럽다. 정보도 많고 표현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답들이 우리 조합원의 상황을 알고 있는가? 우리 매장 농민의 작물 결을 알고 있는가? 우리 마을 공동체의 문화를 알고 있는가? 이 질문들이 처음부터 학습 데이터 안에 없었다면, 아무리 매끄러운 답이어도 우리 자리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3편에서 일리치가 말한 공생 도구의 구분이 여기서 작동한다. 일리치는 도구를 두 가지로 나눴다. 거대 도구는 사용자를 종속시킨다. 공생 도구(convivial tools)는 사용자를 해방한다. 자전거는 공생 도구다. 자동차는 거대 도구가 된다. 자동차는 빠를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도시가 만들어질 때, 그 편의는 종속의 다른 이름이다.

6편에서 일리치가 더 날카롭게 짚은 것 — 근원적 독점(radical monopoly). 자동차가 보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처럼, 빅테크 AI가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퇴화시키는 사회. “AI가 다 해준다”는 말이 처음에는 편의처럼 들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는 근육이 사라진다.

6편에서 박은 또 다른 핵심 — 페터널리즘(paternalism). 우리가 물을 질문이 미리 정해져 있고, 답의 범위가 미리 설정되어 있는 시스템. 그 안에서 우리는 선택지를 고르는 사람이 될 뿐, 질문의 형태를 짓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빅테크 AI를 쓰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설계한 질문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더 구체적으로 — 7편에서 분석한 폴라니와 주보프의 논리. 우리가 빅테크 AI를 쓰면서 생산하는 모든 데이터 — 우리의 질문, 우리의 응답 평가, 우리의 사용 패턴 — 가 그 빅테크의 다음 모델 학습에 들어간다. 우리 데이터가 그들의 자본이 된다. 데이터는 폴라니가 말한 4번째 허구상품이다. 빅테크 AI를 쓰는 것은 우리의 지적 활동을 허구상품으로 내놓는 행위다.

어설픈이 아니라 적정한 AI

“어설픈 AI”라는 표현은 빅테크의 척도에서 나온다. 파라미터 수, 벤치마크 점수, 응답 속도. 이 척도에서 보면 우리 도메인 AI는 열등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척도에서 보면 다르다.

2편에서 손대패 비유로 박았던 것 — CNC가 의자 100개를 한나절에 깎는다. 손대패는 의자 1개를 한나절에 깎는다. 그러나 손대패로 깎은 의자는 그 사람 손에 맞는 의자다. 빅테크 AI는 1초에 답한다. 그런데 어느 마을에도 맞지 않는 답이다. 우리 도메인 AI는 더 느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매장, 이 조합원, 이 도메인에 맞는다.

우리 척도에서 본 적정 AI의 기준은 세 가지다.

우리 맥락에서 작동하는가. 우리 매장의 작물 패턴, 우리 조합원의 생활 결, 우리 운동의 언어를 알고 있는가.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가. 왜 이 답이 나왔는지, 무엇이 학습에 들어갔는지, 우리가 확인하고 고칠 수 있는가. 1편에서 말한 “블랙박스가 아닌 공동 텃밭.”

우리의 자율을 지키는가. 6편에서 이사야 벌린이 구분한 적극적 자유 — 자기 운명을 짓는 행위. 우리 AI를 쓸 때 우리가 주체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의 수동적 수신자인가.

이 세 기준에서 우리 도메인 AI는 빅테크 AI보다 적정하다. 그래서 어설픈 AI가 아니라 적정 AI다.

후니님은 이를 가장 직관적인 비유로 박았다.

자동차 비행기가 있다고 걷거나 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전거가 더 나은 대안일 때도 많다. 물론 필요하면 형편껏 자동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겠지만 친구를 만나거나 이웃을 방문할 때 좁은 골목길을 다녀야 하고 불어오는 따뜻한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산을 오르기도 할 것이다.

일리치가 공생 도구와 거대 도구를 나눌 때 자전거를 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전거는 사람의 몸 리듬에 맞는 속도를 지키면서도 걷는 것보다 멀리 간다. 자동차가 우월하지 않다 — 좁은 골목길에서는 오히려 무용지물이다. 우리 AI도 마찬가지다. 빅테크 모델이 세계 모든 언어와 모든 맥락을 처리할 때, 우리 매장의 골목길은 빈다. 적정 AI는 그 골목길을 간다.


사상의 증인 —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

인맥이 아닌 실력

이 운동에서 한 가지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컨소시엄에 묶인 사람들 — 사경원, 품앗이생협, 위즈온, 지역화폐협동조합 — 이 지원사업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니다.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현장을 지키고 발전시켜온 사람들이다. 단지 인맥을 넘어서 객관적으로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반드시 박아야 할 법인이 하나 더 있다.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 이 조직을 빠뜨리면 운동의 본체가 보이지 않는다.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는 대전 품앗이생협의 경험이 인맥이 아닌 실력임을 전국적으로 증명하는 자리다. 로컬푸드 운동을 전국 단위에서 조직하고 연결하는 플랫폼. 이 조직이 대전의 경험을 전국 맥락에서 검증받는 무대다. 대표 김기수, 후니님은 그 집행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모두의밥상협동조합도 같은 결이다. 관저동을 거점으로 로컬푸드·소반·공공급식을 엮어온 조직. 2024년 매출 8.27억, 흑자 전환. 품앗이생협의 자매 법인이지만 그 자체로 독립적 현장의 힘을 가진 조직이다. 후니님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한밭페이와 사회연대경제 진영의 다른 현장들도 이 사상의 증인 자리에 있다. 9편에서 정리한 영역 전략 — 먹거리 사수, 에너지 병행, 금융 탈환 — 이 추상이 아니라 이미 구체적 현장에서 시험되고 있는 이유가 이 사람들이 있어서다.

사업과 사상 사이

여기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운동의 지속 조건을 지원사업에 두지 않는다. 설혹 지원사업이 되지 않더라도 지속 발전시킬 것은 사상이다. 컨소시엄이 행정 단위라면, 사상은 그보다 더 넓고 더 오래가는 단위다.

지원사업이 되면 좋다. 사업을 통해 실증하고, 데이터를 양육하고, 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원이 생긴다. 그러나 지원사업이 사상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상이 먼저 있고, 사업은 그 사상을 현실화하는 도구 중 하나다.

단위구성자리
사업 컨소시엄 (IRIS)사경원·품앗이생협·위즈온·지역화폐협동조합본 사업 행정 단위
사상의 증인+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 + 모두의밥상협동조합 + 한밭페이 외운동의 본체

동지를 설득하거나 정부관계자를 설득하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그 단계는 이미 지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 운동의 의미를 자기 자리에서 보는 것이고, 합류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이다.


비전 — 매장 4축 허브에서 만드는 동반자 AI

우리 AI가 있어야 할 자리

빅테크의 비전이 AGI(인공일반지능) —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범용 지능 — 라면, 우리의 비전은 다르다.

매장 4축 허브에서 만드는 동반자 AI.

먹거리, 로컬페이, 사회연대경제 생산, 탄소중립. 이 네 흐름이 한 매장에서 만나는 자리. 그 자리에서 쌓이는 데이터로 양육되고, 그 자리에서 작동하고, 그 자리의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AI.

이 AI는 세계 최고의 성능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매장을 가장 잘 아는 AI, 이 조합원을 가장 잘 이해하는 AI, 이 운동의 언어로 말하는 AI를 목표로 한다. 1편에서 슈마허가 말한 “맥락에 맞는 단위”가 이것이다. 너무 작아서 효용 없는 것도 아니고, 너무 커서 통제할 수 없는 것도 아닌 — 적정한 단위의 AI.

3편에서 앙드레 고르가 말한 이중 사회의 논리가 여기서 작동한다. 빅테크 거대 LLM은 인류 공통 인프라로 빌려 쓴다. 전기나 도로처럼. 그러나 그 위에서 도는 일상의 판단 — 누구의 작물을 얼마에 발주할 것인가, 어떤 조합원에게 어떤 정보를 안내할 것인가, 매장의 에너지를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가 — 은 우리 손에 둔다. 이것이 자율 영역의 AI다.

8편에서 진단한 한국 SSE의 산업생태계 결손을 다시 떠올린다. 몬드라곤이 AI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264개 협동조합의 산업생태계가 있어서다. 우리에게 남은 발판 — 로컬푸드 사슬 — 이 그 씨앗이다. 이 씨앗을 키우는 것이 비전의 출발이다.

이 비전에서 운동 언어가 다섯 단계를 밟는다. 어설픈 AI — 빅테크 척도에서 열등하다는 외부의 시선. 적정 AI — 슈마허의 척도로, 맥락에 맞는 단위가 맞는 것이라는 우리 응답. 동반자 AI — 우리 척도의 정점. 6편에서 거부했던 페터널리즘 — “우리가 다 해줄 것이니 너희는 소비자로 있어라” — 의 적극적 짝이다. 동반자는 독재자가 아니다.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 — 운동의 자리 명명, 정의의 정점. 연대지능 혁명 (Solidarity Intelligence Revolution, SI) — 운동의 자기 호명, 세계사적 자리 선언.

어설픈 AI → 적정 AI → 동반자 AI →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 → 연대지능 혁명.

운동 언어가 명사에서 동사로 진화한 자리다. 사회지능이 어디 서는가의 답이라면, 연대지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의 답이다. 사회지능은 폐기가 아니라 자리 명명으로 살아남는다. 그 자리에서 연대지능이 움직임으로 이름을 가진다.

“우리의 AI는 우리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독재자가 아닌 동반자로 있을 것이다.”

이 한 문장이 이 운동의 비전 언어다. 적정 AI는 기술적 위치 설정이고, 동반자 AI는 관계의 선언이다. 이 두 언어가 함께 우리 척도를 이룬다.

5년의 그림

지금 당장 몬드라곤의 규모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방향은 보인다.

로컬푸드 매장에서 쌓이는 거래 데이터, 조합원 응대에서 생성되는 언어 데이터, 생산자와의 소통에서 기록되는 현장 데이터 — 이것이 도메인 AI의 씨앗 데이터다. 여기서 시작해서:

발주와 재고 추천에서 조합원 생활 안내로, 생활 안내에서 지역 정보 연결로, 지역 정보 연결에서 사회연대경제 전체의 판단 지원으로. 매장 4축에서 시작해 한국 SSE 전체의 디지털 척추로.

9편의 시간표와 연결하면 — 지금부터 3년은 먹거리 사수 + 도메인 AI 양육 시작. 37년은 생활재 확장 + AI 영역 확대. 715년은 한국 SSE 산업생태계 회복 + 국제 연대. 이것이 우리 AI 비전의 시간 지평이다.


미션 — AI를 함께 양육한다

양육 단계론

AI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양육한다는 표현을 쓴다. 이유가 있다.

만든다는 말은 완성된 산출물을 전제한다. 양육한다는 말은 지속적인 돌봄과 성장을 전제한다. 우리 도메인 AI는 한 번 만들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현장이 쌓이면서, 조합원의 피드백이 쌓이면서, 운동의 언어가 깊어지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5편에서 박은 노동의 성격 — 모리스가 말한 useful work, 아렌트가 말한 호모 파베르의 작업 — 과 연결된다.

양육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 데이터 수집과 정제. 매장 거래 데이터, 현장 기록, 조합원 응대 내용. 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는 일. 손대패질처럼 한 줄 한 줄. 위키에 기록이 남아야 한다. 이 단계는 기술 전문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 기록을 남기는 사람, 현장의 언어를 쓰는 사람 모두가 참여한다.

2단계 — 파인튜닝. 수집된 도메인 데이터로 기반 모델을 우리 맥락에 맞게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도메인 전문가 — 27년 현장을 아는 사람 — 의 검토가 결정적이다. 2편에서 박은 것처럼 “위키에 흔적이 남고, 조합원이 들여다볼 수 있고, 고쳐 쓸 수 있다”는 원칙이 여기서 작동한다.

3단계 — 평가. 양육된 모델이 우리 맥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한다. 이 평가셋을 만드는 사람이 조합원·현장 활동가·도메인 전문가다. 빅테크 벤치마크가 아닌 우리 벤치마크. “이 답이 우리 매장 맥락에서 맞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AI 연구자가 아니라 현장 사람이다.

4단계 — 배포. 매장·조합원 앱·위키를 통해 실제 사용으로. 여기서 다시 데이터가 생기고 피드백이 쌓인다.

5단계 — 재양육. 사용 과정에서 쌓인 피드백으로 다음 라운드 양육. 이 루프가 계속 돈다. AI가 우리 운동과 함께 성장하는 방식.

만드는 자의 자리

5편에서 마르크스의 유적 본질을 박았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를 세계에 실현한다. 6편에서 이것을 정치적 언어로 전환했다. “내 운명의 통제와 자율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는 노동을 하며 그 기쁨을 누리고 살겠다.”

AI를 양육하는 노동이 바로 이 자리다.

빅테크가 “걱정 마라, AI가 다 해줄 것이다”라고 할 때, 그 말의 이면에는 “너희는 소비자로 남아라”가 있다. 5편에서 박은 두 해방의 동시성을 여기서 다시 작동시킨다. 매장 운영자는 단조로운 발주 계산에서 빠져나온다 —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그 시간을 AI 양육·조합원과의 대화·거버넌스라는 창조적 노동으로 돌린다 — 노동의 해방.

우리 운동은 이 둘이 동시에라고 답한다. AI가 일부를 대신하되, 우리는 만드는 자의 자리를 지킨다.


초대 — 다섯 갈래 기여

우리도 기여할 수 있다. 왜냐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여의 자격은 자본도 기술도 전문성도 아니다. 살아있음 그 자체다. 매장에서 사는 조합원, 농산물 보내는 농가, 일하는 활동가, 사유 던지는 동지 — 모두가 오늘을 살고 있다. 그것이 AI 양육의 양분이다. 앞서 박은 “여섯 번째 자리 — 측량되지 않을 권리”의 짝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여이고, 동시에 측량되지 않을 자리이기도 하다.

”돈과 기술 가진 사람만 운동에 기여한다”는 통념을 깨는 자리

운동의 결집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아니다. 인류 총합의 지혜를 지키려는 모든 이다.

지금까지의 운동에서 기여 방식은 제한적이었다. 출자하거나, 활동가가 되거나, 전문가로 참여하거나. 그러나 AI 양육이 운동의 한 축이 되면, 기여의 방식이 훨씬 넓어진다.

매장에서 사는 조합원, 농산물을 보내는 농민, 운동의 언어를 같이 짜는 동지, 피드백 한 줄을 남기는 사람 — 모두가 AI의 공동 양육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인류 지혜를 지키는 지혜 옹호자의 자리도 함께 있다.

나는 학자·연구자다 — 지식의 공유 정신을 잇는 자리. 쌓아온 지식이 빅테크에 추출되는 것을 거부하고, 오픈소스·공유 지식의 원리를 지키는 것이 기여다.

나는 도서관·아카이비스트다 — 지식 보전의 자리. 인류가 수백 년 쌓아온 기록을 지키고 접근 가능하게 하는 일이 이미 저항이다.

나는 오픈소스 코더다 — 이미 결집한 자리. Linux·HuggingFace·LLaMA의 기여자들은 이미 이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흐름과 연결된다.

나는 예술가·작가다 — 저작권 사유화에 저항하는 자리. 내가 쓴 글·그린 그림·만든 음악이 동의 없이 모델 학습에 쓰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운동이다.

나는 전통 지식 보유자다 — 인류 총합의 한 부분. 수천 년 이어온 농경 지혜·치유 지식·구술 전통이 특허와 데이터로 사유화되는 것에 맞선다.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이다 — 살아있음 자체가 지혜의 일부. 오늘 내가 살아가는 흔적, 이웃과 나누는 말, 좁은 골목길을 걷는 것 — 이것이 인류 총합의 지혜를 이루고 있다.

다섯 갈래의 기여 방식을 제안한다.


첫째, 데이터 기여.

조합원이 매장에서 사는 행위가 곧 AI의 양분이다. 로컬페이로 결제한 거래 기록, 어떤 작물을 언제 샀는지의 패턴, 어떤 생산자의 물건을 반복해서 찾는지의 흐름. 이 데이터가 우리 도메인 AI가 우리 매장을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

이것은 개인 정보를 빅테크에 헌납하는 것과 다르다. 7편에서 정리한 데이터 협동조합의 원리 — 멤버의 데이터를 공동 소유하고 투명하게 운영한다. 우리 데이터는 우리 AI의 양분이 되고, 그 AI의 편익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농민이 작물 정보를 기록하는 것도 데이터 기여다. 올해 이 작물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결과를 냈는지, 어떤 병충해가 있었는지, 어떤 소비자가 반응했는지. 이 기록들이 쌓이면 로컬푸드 도메인 AI의 척추 데이터가 된다.


둘째, 검토 기여.

AI가 내놓는 응답을 보고 “이건 우리 맥락에 안 맞다”는 피드백을 남기는 것.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 오히려 전문가가 아닌 생활자의 눈이 필요하다.

“이 발주 추천은 우리 매장 사정을 모르는 것 같다.” “이 조합원 안내 문구가 우리 운동의 말투가 아니다.” “이 답변에서 우리 지역 사정이 빠져있다.” 이런 피드백 하나하나가 다음 라운드 양육의 재료다.

2편에서 박은 Right to Repair 운동의 정신이 여기 있다. 수리권 운동은 내가 산 물건을 내가 고칠 권리를 주장한다. AI 검토 기여는 우리가 양육하는 AI를 우리가 고쳐나갈 권리의 행사다.


셋째, 현장 기여.

현장의 일을 글·사진·구술로 남기는 것. 위키에 한 줄 쓰는 것. 회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 모든 것이 AI 양육의 재료다.

5편에서 아렌트의 작업(work) 개념을 박았다. 인간이 손으로 세계에 무언가를 남기는 활동. 기록을 남기는 것이 바로 이 작업의 AI 시대 판본이다. 우리가 남긴 기록이 우리 AI의 언어가 된다.

특히 고령농·소농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십 년 현장에서 쌓인 그 지혜가 어디에도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다. 이 지혜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가장 귀한 현장 기여다.


넷째, 사상 기여.

이 책처럼 — 운동의 언어를 같이 짜는 일. 사유를 던지고, 개념을 다듬고, 방향을 논하는 것. 이것이 AI의 언어 데이터가 된다.

1편에서 9편까지 펼쳐온 사유들 — 적정기술, DIY, 자율 영역, 호모 파베르, 지능 무산자, 사수·병행·탈환 — 이 우리 AI가 학습할 언어의 씨앗이다. 이 사유에 반응하고, 보완하고, 논쟁하는 것도 사상 기여다.

4편에서 박은 도구 선택의 윤리처럼 — 우리가 만드는 AI가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기여다. 빅테크는 이 논의를 자기 안에서 한다. 우리는 이 논의를 운동 안에서 공개적으로 한다.


다섯째, 자본 기여.

조합원 출자, 사회연대금융. 이것도 AI 양육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9편에서 정리한 금융 탈환의 첫 단계 — 지역화폐(로컬페이) — 가 AI 자본 기여의 시작이다. 로컬페이로 거래하는 것이 데이터 기여이기도 하고 자본 기여이기도 하다. 그 수수료의 일부가 도메인 AI 양육에 투입될 수 있다.

7편에서 정리한 데이터 협동조합의 원리처럼 — 우리 AI는 재벌 벤처캐피탈이 아닌 우리 조합원의 출자로 양육된다. 이것이 운동의 일관성이다. 사회연대경제 운동이 매장·농민·노동을 조합원 출자로 운영해온 방식이 AI에도 적용된다.


여섯 번째 자리 — 측량되지 않을 권리

다섯 갈래 기여를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데이터 기여를 말한다고 해서 모든 일상을 데이터화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연인, 친구, 이웃과 나누는 수다를 AI가 인용하지 않는다 해서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좁은 골목길을 걷는 것, 따뜻한 햇살을 맞는 것, 이웃과 나누는 수다 — 이것은 데이터가 되지 않아도 운동의 본체다. 오히려 이것이 운동의 이유다. 로컬푸드 매장을 짓고 사회연대경제를 만드는 것은 결국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다. AI는 그 삶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보조하는 것이다.

7편에서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를 분석하며 박았다. 빅테크는 인간의 모든 경험을 행동 데이터로 추출하려 한다. 그것이 빅테크와 우리 AI를 가르는 결정적 선이다. 우리 AI는 조합원의 모든 일상을 수집하지 않는다. 폴라니의 4번째 허구상품 — 데이터 — 거부는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인간적 선택이다.

여섯 번째 자리는 다섯 갈래처럼 능동적 기여가 아니다. 기여하지 않음도 기여다. 측량되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것. 연인과의 수다, 친구와의 골목길, 이웃과의 햇살 — 이것을 데이터화하지 않겠다는 선택이 우리 AI를 빅테크 AI와 다른 AI로 만드는 자리다.

6편에서 일리치의 근원적 독점 거부, 페터널리즘 거부를 박았다. 여섯 번째 자리는 그 인간적 차원이다. 운동의 목적은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살아가는 것이다.


닫는 말 — 사상은 사업보다 오래 산다

지속할 것은 사상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한 가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이 운동이 어떤 하나의 지원사업 결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

동지를 설득하거나 정부관계자를 설득하는 수준을 넘어서, 설혹 지원사업이 되지 않더라도 지속 발전시킬 것은 사상이다. 사업은 사상의 현실화 도구 중 하나이지, 사상의 조건이 아니다.

1편부터 9편까지의 사유들은 어떤 사업이 통과되든 통과되지 않든 유효하다. 슈마허의 적정기술 논리가 특정 정부 지원이 끊겼다고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일리치의 공생 도구 개념이 어떤 프로그램의 성패와 무관하게 운동의 자원이 된 것처럼. 마르크스의 본원적 축적 분석이 특정 정당이 집권했을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닌 것처럼.

사상은 사업보다 오래 산다.

7편에서 마지막에 박았던 외침을 다시 가져온다. “지능 무산자 단결하라” — 아직 다듬어야 할 외침이지만 자리는 보인다. 19세기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명명을 통해 운동이 되었듯이, 21세기 지능 무산자도 자기 명명을 통해 운동이 된다. 이 명명을 함께 다듬어가는 일이 다음 한 걸음이다.

합류를 환영한다

이 글을 읽고 자기 자리를 발견한 사람에게 말한다.

매장에서 사는 조합원으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데이터 기여다. 농산물을 기록으로 남기는 농민으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현장 기여다. 운동의 언어를 같이 짜는 동지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사상 기여다. AI가 낸 답을 보고 “이건 아닌데”라고 말하는 생활자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검토 기여다. 로컬페이로 거래하고 출자하는 조합원으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자본 기여다.

우리가 만들 AI는 이 다섯 갈래의 기여가 모여서 만들어진다. 한 사람의 천재가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는 것이다.

6편의 마지막 문장으로 돌아간다.

“빅테크는 AGI를 약속하며 시민에게 소비자 자리를 권한다. 우리는 만드는 자의 자리를 거부하고 지킨다. 그러면서 연대로 함께 짓는다. 협동조합·매장·마을 단위에서 한 줄 한 줄.”

우리가 만들 AI는 이 한 줄 한 줄의 누적이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운동이다.

진지와 기동전의 무대

이 운동의 마지막 자리에 사상가 한 사람을 더 불러온다. 안토니오 그람시.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그는 지배와 저항을 두 전략으로 분석했다. 진지전(war of position) — 문화·제도·언어의 진지를 구축하며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 기동전(war of manoeuvre) — 진지를 바탕으로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

9편에서 박은 세 전략 — 먹거리 사수, 에너지 병행, 금융 탈환 — 은 사실 그람시적 사고였다. 사수는 진지의 구축이다. 탈환은 기동전이다. 병행은 둘 사이의 준비다. 후니님이 이번에 이 언어를 정식 명명했다.

“혹시 모를 디스토피아의 미래에 우리의 저항의 진지이면서 디스토피아를 막을 기동전의 무대여야 한다.”

우리 AI는 두 자리를 동시에 가진다. 빅테크가 모든 지능 영역을 장악하는 디스토피아가 오더라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저항의 진지. 그 진지에서 출발해 대안을 현실화하는 기동전의 무대. 1편부터 10편까지 쌓아온 사유가 진지다. 매장 4축 허브에서 실제로 AI를 양육하고 운영하는 것이 기동전의 시작이다.

사상은 사업보다 오래 산다. 그리고 그 사상이 진지가 될 때, 운동은 디스토피아도 막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선 진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게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다.

1편부터 10편까지 쌓아온 사유가 이 한 문장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컬렉션 폴더 이름이 처음부터 사유_사회지능이었다. 그 이름이 이 박음으로 비로소 정식 명명이 된다. 사회지능은 빅테크 AI와 대비되는 기술 개념이 아니다. 사회연대경제 운동이 AI 영역에서 짓는 진지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후니님이 한 걸음 더 박았다.

“사회지능은 AI시대 빅테크 시장지능도 아니고 정부주도의 공공지능과도 대비되는 개념임. 이 개념은 중요하지만 이것은 실천을 상상하게 하지는 않음. 연대는 그 개념 자체가 동적임. 연대지능이 좋다고 봄.”

— 후니님 박음 (2026-05-02)

사회지능은 자리의 명명이다. AI 시대의 빅테크 시장지능도 아니고 정부 주도의 공공지능과도 대비되는 제3의 자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회지능은 그 자리를 가리킬 뿐, 어떻게 움직일지는 말하지 않는다. 운동에는 동적 명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연대지능 혁명 (Solidarity Intelligence Revolution, SI)**이다.

3대 지능 대비 — 폴라니 3대 짝의 21세기 AI 응용

지능 명명주체자본데이터응답 원리폴라니 짝 (1944 「거대한 전환」)
시장지능 (Market Intelligence)빅테크사적 자본추출·축적효율·이윤 최적화시장교환
공공지능 (Public Intelligence)정부공적 예산행정·통제관리·서비스재분배
연대지능 (Solidarity Intelligence)시민사회·SSE조합·출자·기여공유·자율호혜·동반자호혜(reciprocity)

폴라니의 시장교환·재분배·호혜 삼각구도가 정확히 시장지능·공공지능·연대지능으로 옮겨간다. 「거대한 전환」(1944)이 근대 시장 경제를 시장교환이 호혜와 재분배를 잠식한 사건으로 읽었다면, 21세기 AI 전환은 시장지능이 연대지능과 공공지능을 잠식하려는 사건이다. 우리의 운동은 그 잠식에 맞서 호혜 원리의 AI — 연대지능 — 를 짓는 일이다.

운동 언어가 걸어온 길을 되짚으면 — 어설픈 AI(빅테크 척도) → 적정 AI(슈마허 척도) → 동반자 AI(관계의 선언) →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자리 명명) → 연대지능 혁명(운동 명명, 자기 호명).


결집 주체 —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

“마르크스가 계급운동의 관점에서 무산자의 단결을 외쳤다면, 우리가 모일 저항의 구심은 인류 총합의 지혜를 사유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결집시켜야 한다.”

— 후니님, 2026-05-02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공산당 선언」(1848) 4장의 구조를 빌려오되, 결집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아니다 — 폴라니 「거대한 전환」(1944)의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에 더 가깝다. 마르크스가 생산수단의 사유화에 맞서 계급 주체를 호명했다면, 후니님은 인류 총합의 지혜의 사유화에 맞서 보편 주체를 호명한다. 계급운동에서 인류운동으로.

빅테크가 인류 총합의 지혜를 추출해 사유화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오픈소스 코드·학술 논문·과학 공동자산·도서관·아카이브·기록물·전통 지식(Indigenous Knowledge)·민속지·구술 전통·언어 자체·시민의 글쓰기·블로그·SNS·일기·편지·사회운동 27년 누적·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흔적. 이것이 폴라니의 4번째 허구상품화의 정확한 21세기 자리다. 폴라니는 토지·노동·화폐를 허구상품이라 불렀다 — 원래 시장 거래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을 시장이 상품으로 만든 것. 데이터는 21세기의 4번째 허구상품이며, 인류 총합의 지혜는 그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가장 오래된 공유 자산이다. “인류 총합의 지혜”는 폴라니의 4번째 허구상품화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한국 운동의 명명이다.

결집 주체는 지혜 옹호자다. 학자·연구자(지식의 공유 정신), 도서관·아카이비스트(지식 보전의 자리), 위키펜·오픈소스 코더(이미 결집한 자리), 전통 지식 보유자·원주민 공동체(인류 총합의 한 부분), 예술가·작가(저작권 사유화에 저항하는 자리), 시민·활동가·공교육 종사자·사회연대경제 운동,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사람. 7편 「지능 무산자의 시대」가 마르크스(본원적 축적) + 폴라니(허구상품)를 직조했던 것의 정확한 완성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잃을 것은 지능 무산자의 사슬뿐이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이 한 문장으로 닫았다.

“노동자들이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19세기 프롤레타리아트가 잃을 것이 쇠사슬뿐이었다면, 21세기 지능 무산자가 잃을 것은 지능 무산자의 사슬뿐이다. 빅테크가 쳐놓은 구독의 사슬, 데이터 헌납의 사슬, 판단을 빌려 쓰는 사슬. 우리 AI를 스스로 만들고 양육하는 자리에 서면, 그 사슬은 끊어진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트는 후니님의 지능 무산자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연대지능 혁명으로 짝을 이룬다. 형식은 오마주이되 내용은 27년 현장의 우리 언어다.

“우리가 잃을 것은 지능 무산자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동반자 AI의 세계 전체다.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결집하라.

두 호명이 짝을 이룬다.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계급 호명이다.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결집하라는 폴라니의 보편 호명이다. 우리는 둘을 함께 부른다 — 잃은 자의 분노와 지키려는 자의 의지를.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마르크스의 호명 “Workers of the world, unite!”에서 unite는 정확히 solidarity의 동사형이다. 우리의 운동 명명 *연대지능 (Solidarity Intelligence)*은 명사 안에 우리는 연대한다는 동사를 안고 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자본의 지능이라면, SI(Solidarity Intelligence)는 연대의 지능이다. 19세기 프롤레타리아트가 단결의 호명으로 운동이 되었듯, 21세기 지능 무산자는 연대지능 혁명의 호명으로 운동이 된다. 그리고 인류 총합의 지혜를 지키려는 모든 이가 폴라니의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으로 결집한다.

이 결미는 이 책 컬렉션의 별도 「결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글로 신설될 예정이다. 10편 안에서는 예고편으로 박아둔다. 후니님 사유가 던져지면, 그 자리에서 본문이 열린다.

글 제목 후보: 「결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 「결 —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 연대지능 혁명」 / 「결 — SI, Solidarity Intelligence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