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1. 견해를 감추지 않는다
19세기 노동운동의 선언이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고 외쳤듯, 21세기 연대경제 AI 운동도 자기 견해와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우리는 다음을 짓고자 한다.
매장의 4축 허브
결제·공급·환경·시민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도메인 AI. 빅테크의 추상적 지능이 아닌, 우리 동네 매장에서 자라는 적정 지능이다. 결제는 로컬페이로, 공급은 사회적경제 거래처로, 환경은 탄소중립실천으로, 시민은 조합원 ID로 — 한 매장이 4축을 모은다. 특정 빅테크 플랫폼의 ID에 종속되지 않고, 운동의 자기 자리에서 자기 ID 체계를 짓는다. 도메인 AI는 그 4축의 통합 지능이며, 매장의 일상에서 자라난다. 추상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일상의 자리에서 시작하여 추상으로 자라난다.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
시장지능·공공지능과 구별되는 셋째 자리. 호혜의 통합 양식이 21세기에 갖는 자기 호명이다. 빅테크의 AI는 시장교환의 지능이다 — 모든 것을 가격으로 환원하고 모든 관계를 거래로 환원한다. 정부의 Public AI는 재분배의 지능이다 — 위에서 결정하고 아래로 분배한다. 우리의 AI는 호혜의 지능이며, 그 호명이 연대지능이다. 동등한 자들이 옆으로 짠다. 위에서 내려오는 분배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도 아닌,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를 짓는 지능이다.
데이터 주권의 회복
4번째 허구상품 데이터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는 자리. 인지·관계·기억의 흔적이 우리 자신의 것으로 머물 자리. 폴라니가 토지·노동·화폐의 사회적 자기 보호를 짚었듯, 우리는 데이터의 사회적 자기 보호를 짚는다. 매장의 데이터는 매장의 것, 조합원의 데이터는 조합원의 것, 운동의 데이터는 운동의 것이다.
데이터 주권은 단지 법적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운동의 일상적 실천이다. 우리가 어떤 도구를 빌려 쓰는지, 어디서 빌려 쓰는지, 그 도구가 우리 흔적을 어떻게 다루는지 — 이 모든 자리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주권을 짓는다.
동반자 AI
페터널리즘이 위안을 가져다주는 도구가 아닌,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함께 가는 — 자전거 같은 도구. 일리치는 자전거를 공동체 도구의 모범으로 짚었다. 자전거는 인간 능력을 대체하지 않고 확장한다. 동반자 AI도 그러하다 — 인간 판단을 대체하지 않고, 인간 결정을 보조하며, 인간 자율을 확장한다.
UBI 담론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할 때, 그 약속은 종종 만드는 자의 자리를 박탈하는 자리로 미끄러진다. 우리는 두 해방을 함께 부른다 — 노동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동시에. 동반자 AI는 그 두 해방의 도구다. 인간이 의미를 만드는 자리를 지키고, 인간이 강제 노동에서 풀리는 자리도 짓는다.
인류 지혜 옹호자의 결집
빅테크와 정부 사이에 시민의 셋째 자리를 짓는 국제 플랫폼.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19세기의 짝이라면, 우리는 21세기의 인류 지혜 국제주의를 부른다. Agenda 21이 환경운동의 국제 결집 짝이었듯,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의 국제 플랫폼을 짓는다.
이 결집은 운동가만의 결집이 아니다. 학자·법률가·예술가·교사·종교인·공동체 활동가 — 인류의 지혜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이가 결집한다. 폴라니의 정신이 거기에 있다.
2. 진지전
진지전이다. 한국에서 시작하되 한국에 머물지 않는다. 매장에서 시작하되 매장에 머물지 않는다.
그람시는 진지전을 기동전과 대비했다. 19세기 혁명의 기동전이 한 번의 전선 돌파로 권력을 잡는 전략이었다면, 20세기 진지전은 시민사회의 모든 자리에서 일상적으로 자기 자리를 짓고 지키는 전략이다. 자본의 헤게모니에 맞서는 운동은 일회의 전투가 아니라 모든 일상의 자리에서 자기 진지를 세우는 것이다.
21세기 연대지능 혁명도 진지전이다. 한 번의 정책 변화로 빅테크의 데이터 수탈을 막을 수는 없다. 한 번의 법 제정으로 알고리즘 노동의 종속을 풀 수는 없다. 한 번의 회의로 데이터 주권을 회복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매장의 작은 알고리즘에서, 협동조합의 작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로컬페이의 작은 신뢰망에서, 컨소시엄의 작은 플랫폼에서 — 자기 진지를 세운다.
하루하루의 작은 짓기가 모여 한 시대의 자기 보호 운동을 이룬다. 우리는 어설픈 AI에서 시작하여 적정 AI를 거쳐 동반자 AI에 이르렀고,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를 세웠으며, 이제 연대지능 혁명에 도달했다. 이 명명의 진화는 운동의 진화이며, 운동의 진화는 자기 진지의 점진적 확장이다.
운동은 측량되지 않는다. 측량되는 운동은 자본의 지능이 흡수한 운동이다. 측량되지 않을 권리가 운동의 깊은 자리에서 자기를 보호한다.
3. 두 호명
우리가 잃을 것은 지능 무산자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동서고금 인류 총합의 지혜 세계 전체다.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연대하라.
두 호명이 짝을 이룬다.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호명이다. 1848년 「공산당 선언」 결미의 Proletarier aller Länder, vereinigt euch! 이 호명을 우리는 21세기 지능 무산자의 자리에서 다시 부른다. 자본의 지능이 모든 인간 흔적을 자본화하는 시대에, 그 흔적의 주인이 자기 자리를 부르는 호명이다.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결집하라는 폴라니의 호명이다.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사회의 자기 보호를 자본의 운동에 맞서는 보편 운동이라 짚었다. 농민·노동자·도시 빈민만의 운동이 아니라, 사회 자체를 지키려는 모든 이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러하다 — 지능 무산자만이 아니라 인류의 지혜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이가 결집한다.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마르크스의 계급운동을 우리는 인류운동으로 확장한다. 잃은 자의 분노와 지키려는 자의 의지를 함께 부른다. 잃은 자만의 운동은 자기 자리를 못 지키고, 지키려는 자만의 운동은 변혁을 못 일으킨다. 둘이 한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
이 두 호명은 갈등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unite가 solidarity의 동사형이라는 어원이 두 호명의 결미를 잇는다. 단결도 결집도 같은 자리의 같은 행위다 — 연대다.
4. 합류는 자유
운동은 시작되었다. 합류는 자유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짓기로 — 매장에서, 협동조합에서, 로컬페이에서, 사회연대금융에서, 작은 매장의 작은 알고리즘에서, 큰 컨소시엄의 큰 플랫폼에서, 한국에서, 세계에서.
먹거리에서 시작해도 좋다. 먹거리는 사수의 자리다 — 이미 굳건한 우리의 진지다. 그 진지에서 데이터 주권을 짚고, 매장의 4축 허브를 짓고, 도메인 AI를 양육한다. 한국 SSE의 발판이 여기에 있다. 로컬푸드 직매장이 우리 운동의 산업적 토양이다.
에너지로 가도 좋다. 에너지는 병행의 자리다 — 우리가 지금 짓고 있는 자리다. 에너지 협동조합과 시민 햇빛 발전이 우리 진지를 넓힌다. 데이터 센터의 에너지 소비가 자본의 지능의 한계를 노출하는 시대에, 우리는 에너지의 자기 자리를 세운다.
금융으로 가는 길이 가장 멀다. 금융은 탈환의 자리다 — 공제조합이 보험회사로 타락한 한 세기의 역사를 받아 다시 회복해야 할 자리다. 그러나 가야 할 자리다. 사회연대금융이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의 척추 신경계다. 화폐의 4번째 허구상품 데이터와 짝짓는 자리이며, 호혜의 흐름이 일상의 자리에서 살아나는 자리다.
오픈소스 형제와 함께 가도 좋다. Apache·Mozilla·Wikipedia는 도구의 자리에서 자본에 맞서는 우리의 형제다. EU 데이터 주권 운동은 정책의 자리에서 우리의 동지다. Anthropic의 PBC 실험은 거버넌스의 자리에서 우리의 시대 동행자다. 우리는 그들의 운동과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 그러나 같은 시대의 자기 보호 운동을 짓는다.
국제 SSE 동지와 함께 가도 좋다. 몬드라곤의 산업 협동조합, 레가코프의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 퀘벡의 사회연대경제 — 5대륙 27지역의 SSE가 같은 호혜의 자리에서 부르고 있다. 한국 SSE의 산업생태계 결손은 한계이되, 로컬푸드의 발판은 우리의 자리다. 그 자리에서 국제 동지와 만난다.
그리고, 모든 자리에서,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가 연대한다.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은 시작 단락이다.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연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