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만드는 자리 — 5대 척추

연대지능 혁명 운동이 AI 발전사로부터 짚어낸 다섯 자리. 빅테크 AI의 작동을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동시에 우리가 만들 AI의 설계 원칙으로 응결한 진단들이다. 다섯은 서로 독립된 결함 목록이 아니다. 하나의 흐름 안에 박힌 다섯 자리다.


1. 할루시네이션 — 자기 자리만큼 안다

LLM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틀린 말을 한다. 이것을 기술 버그로만 읽으면 시야가 좁다. 슈마허가 짚었던 자리가 여기에도 자라난다 — 도구는 자기 자리가 있다. 거대 LLM은 모든 자리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자기 훈련 데이터의 결 밖에서는 얇아진다. 매장 재고의 결, 조합원 관계의 맥락, 지역 농민의 실천 — 이런 자리는 거대 모델의 가중치 안에 충분히 박히지 않는다.

할루시네이션은 경계를 모르는 도구의 증상이다. 적정 영역 안에서만 작동하는 도구, 자기가 모르는 자리는 “모른다”고 말하는 도구 — 이것이 연대지능이 만들고자 하는 AI의 첫 번째 자리다. 자기 자리만큼 아는 것. 경계가 있는 것.

그림자 짝: 에너지·자원의 적정함. 거대 모델의 할루시네이션은 과도한 규모의 결이기도 하다. 자기 자리를 모르는 모델은 규모를 늘려 해결하려 한다. 그 규모는 광물·전력·물·노동을 먹는다. 적정 영역의 원칙은 에너지·자원의 적정함과 짝을 이룬다. 카타르의 물, 콩고의 코발트, 텍사스의 냉각수 — 이 자원들이 어디서 오는지를 묻는 자리가 여기서 자라난다.


2. 암묵지 — 사람의 자리를 남긴다

AI는 명시된 것을 잘 다룬다. 문서화된 것, 수치화된 것, 태깅된 것. 그러나 30년 된 장인의 손길, 조합원이 오래 쌓아온 신뢰의 결, 지역 방언으로 박힌 생태 지식 — 이것들은 문서에 들어오지 않는다. 암묵지(tacit knowledge)라는 자리다.

마이클 폴라니(Karl Polanyi의 형제)가 짚었듯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안다.” 이 자리를 AI가 대체하려 할 때 두 가지가 잘린다 — 하나는 그 지식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그 지식을 가진 사람의 자리다. 연대지능이 만들고자 하는 AI는 암묵지를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다. 암묵지를 가진 사람의 자리를 더 넓히는 도구다. 농민이 자기 판단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조합원이 자기 경험을 더 잘 기록할 수 있도록. 사람의 자리를 남기는 도구.

이반 일리치가 도구의 역효과라 불렀던 자리 — 도구가 너무 커지면 사람이 도구에 종속된다 — 가 AI에서도 자라난다. 암묵지의 자리는 그 역효과를 막는 자리다. 공생 도구로서의 AI.


3. 위키 — 광고 없는 시민 협업 인프라

AI 발전사에서 가장 간과된 인프라 중 하나가 위키백과다. 영어 위키백과는 5700만 개 이상의 문서, 세계 수억 명이 무급으로 기여한 공유 지식 기반이다. LLM의 사전훈련 데이터 중 가장 신뢰받는 출처 중 하나가 위키백과다. 그러나 위키백과는 광고 없이, 비영리 재단의 운영으로, 자원 기여자들의 협업으로 짓는다.

안드레이 카파시가 LLM Wiki의 가능성을 짚은 자리가 여기에 맞닿는다 — 위키백과의 협업 방식으로 AI의 지식 기반을 짓는다면. 공동체가 자기 지식을 박고, 자기 기준으로 검증하고, 자기 언어로 자라나는 지식 인프라. 연대지능의 위키는 그 가능성의 자리다.

광고 없는 공유재로서의 지식 인프라. 몬드라곤의 공제조합이 금융을 공유재로 짓듯, 연대지능의 위키 인프라는 지식을 공유재로 짓는 자리다.


4. 망각 — 공동체 외부 기억으로 박는다

LLM은 세션이 끊기면 이전 대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가중치 안에 박힌 것만 남고 가중치 밖의 경험은 사라진다. 이것은 개인 용도에서는 불편함이지만, 공동체 운동의 자리에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자라난다. 치매 걸린 아인슈타인 — 천재적 능력을 갖추었으나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

공동체는 집단 기억으로 자란다. 한 세대의 경험이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한 곳의 실천이 다른 곳의 학습이 되는 자리. 운동이 지속되는 것은 이 기억의 자리 덕분이다. 연대지능이 만들고자 하는 AI는 이 망각을 가중치 밖에서 해결한다. 공동체 외부 기억 인프라 — 레슨·위키·핸드오버·사유 자료가 쌓이는 자리가 그것이다.

망각은 AI의 결함이기도 하지만, 공동체가 자기 기억을 어떻게 짓는가를 다시 묻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AI 덕에 공동체 기억 인프라를 새로 짓는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5. 식민지성 — 토착 결의 회복

빅테크 LLM이 한글 문서를 처리하지 못하고, 영어 변수명으로 사고하는 일이 개발자의 당연한 일상이 되고, 한국 행정 시스템이 AI와 연결되는 데 추가 구현이 드는 것 — 이것은 기술 격차가 아니다. 언어·도구·표준의 식민지성이다.

응구기 와 시옹오가 1986년에 짚었듯 언어는 세계를 보는 자리다. 그 자리를 외부 언어로 채우면 자기 공동체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짚은 오리엔탈리즘의 알고리즘 버전이 여기서 자라난다. 한국은 토착 IT 인프라가 강한데도 이 구조를 피하지 못한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표준의 자리가 외부에서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나머지 넷과 결을 달리 묶는다. 1·2·3·4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면, 5는 누구의 자리에서 만들 것인가다. HWP 처리 오픈소스를 짓는 일, 한국어 평가셋을 짓는 일, 한국 행정 시스템 커넥터를 공유재로 짓는 일 — 일제하 한글 운동의 21세기 변주. 상세 자리: 식민지성_AI.


그림자 두 자리

5대 척추 옆에 두 자리가 더 자라난다. 척추는 아니지만 척추를 떠받치는 그림자 자리들이다.

데이터 주권 — 5번 식민지성의 짝.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고 누가 그 데이터로 훈련된 모델을 쓰는가. 데이터를 낸 공동체가 그 데이터로 만들어진 AI의 혜택을 받는가. 이 물음이 데이터 주권이다. 폴라니의 4번째 허구상품 — 허구상품 — 과 이어지는 자리. 상세: 데이터_주권.

에너지·자원의 적정함 — 1번 할루시네이션의 짝. 거대 모델은 거대 자원을 먹는다. 코발트, 냉각수, 전력, 노동. 적정 영역의 AI를 짓는다는 것은 적정한 자원 발자국의 AI를 짓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자리는 아직 운동 안에서 충분히 짚이지 않은 자리다. 먹거리·에너지 운동과 AI 운동이 만나는 자리로 자라날 수 있다.


하나의 흐름으로

다섯 척추가 하나의 흐름으로 묶인다.

할루시네이션 — 경계를 모르는 모델은 자기 자리를 모른다. 암묵지 — 자기 자리를 아는 모델은 사람의 자리를 남긴다. 위키 — 사람의 자리를 남기는 인프라는 공동체가 함께 짓는다. 망각 — 공동체가 함께 지은 것은 세대를 넘어 자라난다. 식민지성 — 세대를 넘어 자라나는 운동은 자기 언어·자기 도구·자기 자리에서 자라난다.

이것이 연대지능 혁명 운동이 AI 발전사로부터 배운 것의 응결이다. 비판이 아니라 설계 원칙. 진단이 아니라 방향.


관련 자리: 식민지성_AI · 허구상품 · 진지전 · 리좀 · 플랫폼_협동조합주의_Platform_Cooperativism · 데이터_주권 · 적정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