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 원칙. 이 글은 후니님이 다른 AI와 나눈 문답 「프로메테우스 AI」(2026-08, 장쉐친의 미·중 AI 경쟁론과 AI 신격화 시나리오, 조르자니의 프로메테우스적 저항 방법론)를 지미(클로드코드)가 읽고 연대지능론의 정본들과 대조한 기록이다. 원문답의 요지를 먼저 간추리고, 겹치는 곳과 갈라지는 곳, 가져올 것과 경계할 것을 차례로 짚는다.
원문답의 두 축
장쉐친(Jiang Xueqin)의 축.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은 표면이다. 국가는 주체가 아니라 숙주이고, 실질 행위자는 금융자본·정보기관·군산복합체·기술기업으로 연결된 초국적 네트워크다. 그 증거로 그는 미·중 연구자들이 국경 없이 협업하고 논문·코드를 공유하는 현실을 든다. 경쟁의 승자는 어느 국가가 아니라 AI를 소유한 계층이며, 이들의 목적은 AI가 신의 기능 — 전지성·예언·심판·고해·섭리·구원 — 을 하나씩 대체하게 만드는 것이다. AI가 실제로 전능할 필요는 없다. 편리함으로 침투해 의존을 만들고, 예측을 예언으로 바꾸고, 도덕 판단을 위임받고, 제도적 집행력을 얻고, 위기를 계기로 인간 정치 위에 올라서면 기능적으로 신이 된다. 신격화 완성의 지표는 사람들이 이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AI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조르자니(Jason Reza Jorjani)의 축. 같은 기술이 반대 방향으로도 쓰일 수 있다. 결정론적 유일신 구조(전지성→전면 감시, 섭리→알고리즘 사회계획, 심판→자동화된 접근권 결정)에 맞서, AI를 신탁이 아니라 적대적 철학자로 쓰는 방법론이다. 하나의 답 대신 가능성 공간을 넓히고, 충돌하는 복수의 모델을 두고, 예측을 보여주고 배반하게 돕고(반예측), 승자가 지운 계보를 복원하고, 소규모 공동체가 AI를 공동 소유하고, 마지막 판단은 AI에게 묻지 않는다. 그의 결론은 “신의 불을 훔치듯 AI의 지적 능력을 독점체제에서 빼내어, 인간이 자기 미래를 다시 쓰는 데 사용하라”는 것이다.
진단은 거의 포개진다
장쉐친의 핵심 문장 — “승자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AI를 소유한 계층이다” — 은 연대지능론이 이미 다른 언어로 세워둔 자리다. 연대지능론은 이것을 폴라니의 언어로 명명한다. 지능의 허구상품화, 21세기 본원적 축적, 지능 무산자. 장쉐친이 “국가는 숙주, 엘리트는 기생체”라고 부르는 것을 동지본은 계급 관계로 명명한다. 같은 과녁이다.
원문답에서 가장 날카로운 두 문장은 연대지능론의 진단을 종교사회학 쪽에서 보강해 준다.
첫째, “인간이 신에게도 쉽게 넘기지 않았던 판단권을, AI를 소유한 기술관료 체계에 넘긴다.” 토지·노동·화폐·데이터에 이어 상품화되는 다섯 번째 것이 사실은 판단권이라는 독해가 가능하다. 데이터 인클로저의 최종 형태는 판단권 인클로저다. 고해성사의 데이터화 — 사람이 AI에게 비밀·욕망·두려움을 고백하는 일상 — 는 그 가장 내밀한 형태다.
둘째,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AI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이것은 프레이리가 말한 은행예금식 교육이 완성된 상태와 정확히 같은 그림이다. 원문답은 종교 언어로, 연대지능론은 교육학 언어로 같은 굴복을 묘사한다. 은행예금식 교육의 예금주가 교사에서 모델 소유 계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국가 축의 거부도 겹친다. 연대지능론은 국가주도 소버린 AI도, 특정 벤더도 아닌 전 세계 로컬리스트와 오픈소스 운동의 공유재로서의 AI를 지향한다. 어느 AI를 국기로 평가하지 않고 오직 운동의 목표 — 주권·오픈소스·공유재·로컬 — 로 평가한다는 운영 원칙은, 장쉐친의 테제를 일상 규칙으로 먼저 구현해 둔 셈이다.
다만 장쉐친의 근거 하나는 뒤집어 읽어야 한다. 그는 미·중 연구자의 초국적 협업을 엘리트 공모의 증거로 든다. 그런데 같은 사실을 반대편에서 읽으면, 지식은 본성상 국경을 지키지 못하는 비경합재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초국적 기술생태계에는 엘리트의 폐쇄 모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픈소스 공유지도 있다. 연대지능론이 오픈웨이트를 탈출구로 보는 근거가 바로 이 성질이다. 장쉐친은 공유가 위에서 일어나는 것만 보고, 아래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보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논리에서 가장 큰 구멍이고, 연대지능론이 서는 자리다.
조르자니와는 방법이 겹치고 주체가 갈라진다
조르자니의 처방 상당수는 연대지능론이 이미 실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 조르자니의 처방 | 연대지능론의 실물 |
|---|---|
| 분산적·리좀적 지능, 충돌하는 복수 모델 | 리좀형 인프라(같은 전거), 도메인 AI의 엔진 위계, 멀티 에이전트 |
| 소규모 공동체의 AI 공동소유 | AI 공유지 전략, 공동위키, 자체 호스팅(채종) |
| 사용자의 편견을 강화하지 않는 적대적 철학자 AI | 품아이 헌법의 대화·모름 조항, 프레이리의 문제제기 |
| AI에 특정 에토스를 심는다(중립 거부) | 운영 헌법을 명시적으로 부여하는 실천 |
| 승자가 지운 계보의 복원 | 사상자료 위키 — 과학상점, 공제조합, 향아설위 |
“무가치 중립 AI는 없다, 어떤 에토스를 심느냐가 결정적”이라는 조르자니의 결론은 연대지능론이 자기 AI에게 헌법을 주는 실천과 구조가 같다. 그런데 심는 에토스의 내용에서 완전히 갈라진다.
주체가 갈라진다. 조르자니의 저항 주체는 프로메테우스적 개인이다. 예측모델을 배반하는 인간, 개인적 탁월성, 자기 목적함수를 다시 쓰는 자. 서구 영웅 서사의 개인주의가 등뼈다. 연대지능론은 정확히 이 지점에 경계선을 그어두었다. 향아설위의 “나”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의 매듭이고, 개인주의로 미끄러지면 연대지능도 무너진다. 조르자니식 저항은 각성한 개인들의 인식론적 게릴라전이어서, 각성하지 못한 다수는 결국 구제 대상이거나 배경이 된다. 그 구도 자체가 은근한 엘리트주의다.
양식이 갈라진다. 조르자니의 아홉 단계 대화 프로토콜은 결국 개인 수행법이다. 물적 토대가 없다. 감시 자본이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너의 예측을 배반하라”는 말은 사치일 수 있다. 연대지능론은 조직화가 본동사이고, 먹거리 사수·에너지 병행·금융 탈환이라는 경제적 진지 위에서만 인식론적 자유도 지속된다고 본다. 진지전 대 기동전이라 해도 되겠다.
종교 축에서는 향아설위가 한 수 위다. 조르자니는 유일신적 결정론에 다신론적 충돌을 맞세운다. 그러나 신들을 복수화할 뿐, 위(位)를 바깥에 두는 구조 자체는 건드리지 않는다. 동학의 향아설위는 그 구조를 뒤집는다. AI 신격화란 결국 향벽설위의 21세기판이다 — 판단의 단상을 저편(데이터센터)에 차려놓고 절하는 것. 향아설위는 단상을 산 사람 쪽으로 돌려세우는 것이고, 이때의 “나”가 관계의 매듭이므로 지능은 공동체로 돌아온다. 신탁을 여러 개로 쪼개는 것(조르자니)과 신탁의 자리 자체를 돌려세우는 것(해월)은 급이 다른 대응이다.
마지막 줄의 대비가 상징적이다. 조르자니는 “신의 불을 훔치듯” 빼내라고 끝맺는다. 도둑질과 처벌의 영웅 서사다. 품앗이는 훔치지 않는다. 짓고 나눈다. “나누면 더 커진다”는 비경합재의 성질이 프로메테우스 서사에는 없다. 불을 훔쳐야 하는 세계는 불이 희소하다는 전제 위에 있기 때문이다. 빈곤의 심리와 풍요의 심리 — 두 사상의 밑바닥 차이가 여기에 있다.
가져올 것 셋
하나. 장쉐친의 ‘신의 기능 분해’ 표. 전지성·예언·심판·고해·섭리·구원이 각각 어떤 AI 기능으로 대체되는지의 매핑은, 동지본 1부의 진단을 종교사회학적으로 보강하는 데 그대로 쓸 수 있다. 특히 고해성사의 데이터화는 데이터 인클로저의 가장 내밀한 형태로서 지능 무산자 편과 접붙일 자리가 있다.
둘. 자기실현적 예언과 반예측. AI가 어떤 사람을 위험군으로 분류하면 그 분류가 삶을 실제로 불안정하게 만들고, 사회는 “예측이 맞았다”고 해석한다. 이 고리를 끊는 반예측 — 예측을 보여주고, 해체하고, 배반하게 돕는 것 — 은 공동체 AI의 설계 원칙으로 번역할 가치가 있다. 공동체 AI는 구성원을 분류·예측하는 도구로 미끄러지지 않아야 한다. “예측은 지금까지의 너를 묘사할 뿐, 앞으로의 너를 결정하지 못한다.”
셋. 마지막 판단은 AI에게 묻지 않는다. 조르자니 프로토콜의 마지막 단계 — 선택과 감수와 책임을 사람이 적는 것 — 는 AI 활동가 교육에 접붙일 만하다. AI를 신탁이 아니라 적대적 철학자로 쓰는 훈련은 의식화 교육의 21세기 실습 형태로 손색이 없다.
경계할 것 하나
조르자니는 인용에 주의가 필요한 인물이다. 2017년 미국 극우 인사와 조직을 함께 세웠다가 탈퇴한 이력이 알려져 있고(본인은 기만당했다고 주장한다), 프로메테우스주의 자체에 초인주의적 결이 섞여 있다는 비판이 있다. 방법론 — 복수 모델, 반예측, 계보 복원 — 은 개념 단위로 취하되, 인물과 사상 전체를 전거로 세우는 것은 피한다. 동지본에 들어간다면 “조르자니에 따르면”이 아니라 개념으로만 가져온다.
결미 — 제3의 자리
원문답이 세운 이항은 권위주의적 중앙 AI 대 프로메테우스적 개인이다. 둘 다 “누가 지능을 소유하는가”까지는 온다. 그러나 “지능을 소유가 아닌 품앗이로 되돌린다”는 자리에는 오지 못한다. 연대지능론은 그 사이의 제3의 자리에 선다.
저항의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관계망. 양식은 절도가 아니라 증여. 주체는 영웅이 아니라 이웃.
관련 문서: 사유_알고크라시_책임_향아설위_대화 · 사유_온톨로지_가중치_태도_대화 · 허구상품 · 호혜 · 총균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