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운동에서 AI 활용전략

— AI 시대, 시민사회의 대안 지능을 위한 전략보고서

한국주민운동교육원 트레이너 비전 워크숍 제출문 · 2026


서(序)

한 시대의 문턱마다 운동은 저마다의 언어로 촉을 세웠다.

마르크스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선언을 열었다. 낡은 질서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힘이 이미 문 앞에 와 있다는 감각 — 그것이 그 문장의 촉이었다. 오늘 우리 문 앞을 배회하는 유령은 AI다. 정체가 다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미 노동과 데이터와 통치의 지반을 흔들고 있는 힘이다.

협동조합 운동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았을 때, 레이들로는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에서 위기를 감추지 않고 정면으로 짚었다. 신뢰의 위기도, 경영의 위기도 아닌 이념의 위기 — 협동조합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위기였다. 그는 진단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가 뿌리내릴 우선 영역을 제시했다. 새로운 힘 앞에서 운동이 먼저 던져야 할 물음은 기술의 물음이 아니라 존재의 물음이라는 것 — 그것이 레이들로의 촉이다.

그리고 주민운동 조직화의 원류 알린스키는 급진주의자의 으뜸 덕목으로 **‘새로운 것에 민감함’**을 꼽았다. 이상의 세계가 아니라 대중이 지금 살고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라는 것 — 그것이 조직가의 촉이다.

유령의 배회, 정체성의 물음, 새로운 것에 민감함. 이 세 언어가 AI 시대가 주민운동에 던지는 촉이다. 이 보고서는 그 촉으로 쓴다. AI 시대에 주민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물음은 도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물음이 아니라, 운동이 이 시대에 어떤 자리에 설 것인가의 물음이다. 보고서는 시대를 진단하고, 우리가 선 자리를 정직하게 짚고, 이미 지어 온 것을 실증으로 내놓고, 앞으로 지을 것을 전략으로 제안한다.

결론을 먼저 밝힌다. 견해를 감추지 않기 위해서다. AI 시대의 주민운동은 자기 AI를 짓는 운동, 곧 AI 활동가 운동이어야 한다. 시장의 것도 정부의 것도 아닌 시민사회의 대안 지능을 짓는 일이 이 시대 주민운동의 새로운 전략현장이다.


I. 진단 — 두 번의 혁명과 지능 무산자

1. 생산수단에서 임금노동으로, 다시 지능으로

산업혁명은 인간 다수에게서 생산수단을 빼앗았다. 땅과 연장을 잃은 사람들은 자기 노동을 팔아 사는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생산은 갈수록 사회적으로 이뤄지는데 그 열매의 소유는 사적으로 남는다 —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이 모순하는 시대가 그렇게 열렸다.

AI 혁명은 인간 다수에게서 임금노동을 빼앗는다. 이번에 밀려나는 것은 연장이 아니라 일자리 자체다. 이것은 전망이 아니라 이미 계측되는 현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 일자리의 40%, 선진국 일자리의 60%가 AI에 노출되어 있으며, 노출된 일자리의 절반가량은 AI로 대체될 위험에 놓였다고 추산했다. 아울러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AI가 전체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IMF, 2024). 노동시장의 첫 번째 균열은 이미 나타났다.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가 미국 최대 급여관리회사 ADP의 수백만 명 급여 실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22~25세 청년 고용은 2022년 이후 13% 상대 감소했다. 같은 직군의 경력자 고용은 유지되거나 늘었고, 감소는 AI가 사람의 일을 ‘증강’하는 영역이 아니라 ‘대체’하는 영역에서만 나타났다(Brynjolfsson 외, 「Canaries in the Coal Mine」, 2025). 연구진은 이 청년들을 탄광의 카나리아라 불렀다. 갱도에 스미는 가스를 가장 먼저 마시는 존재 — 입구에 선 사람부터 사다리가 걷히고 있다.

생산의 무게중심이 지능의 자리로 옮겨 갔는데, 그 지능은 갈수록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그 소유는 갈수록 사적으로 굳는다. 모순은 해소되지 않고 한층 깊어진다. 생산수단을 잃었던 자리에 이번에는 지능을 잃은 자리가 겹친다. 지능 무산자의 시대다.

2. 데이터의 본원적 축적

그 지능은 누구의 것으로 만들어졌는가. 오늘의 거대한 지능을 학습시킨 데이터는 인류가 오랜 세월 함께 쌓아 온 사회역사적 자산이다. 우리가 쓴 글, 나눈 말, 찍은 사진, 맺은 관계의 흔적이다. 빅테크는 그것을 비용 한 푼 치르지 않고 거두어 사유화했고, 그 위에서 돈을 번다. 21세기의 본원적 축적이다. 폴라니가 토지·노동·화폐를 시장이 삼킨 세 허구상품으로 짚었다면, 우리 시대는 여기에 네 번째 허구상품, 데이터를 더한다.

이 축적의 실상이 법정에서 처음 드러났다. 2026년 미국 법원은 AI 기업 앤스로픽이 작가들에게 15억 달러를 배상하는 화해를 최종 승인했다 — 미국 저작권 역사상 최대 배상이다. 해적판 도서 700만 권을 학습 창고에 쌓아 둔 행위가 문제였는데, 배상액은 책 한 권에 약 3,000달러였다(Bartz v. Anthropic, 2026). 주목할 것은 판결의 다른 반쪽이다. 법원은 합법적으로 취득한 책으로 AI를 학습시키는 것 자체는 ‘공정 이용’이라 보았다. 인류가 쌓은 글 전체를 원료로 삼는 일은 적법하고, 값은 훔친 부분에만 치르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가 헐값에 원료로 매겨진 첫 공식 가격표다.

그 원료 위에 선 부는 어떤 규모인가. 2026년 현재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는 기업이 세계에 16개인데, 그 상위가 엔비디아(약 4조 7천억 달러)·알파벳·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 AI 인프라와 플랫폼을 쥔 기업들이다. 인류 공동의 지적 자산을 원료로 삼은 소수 기업의 가치가 웬만한 나라의 국내총생산을 넘어선다.

3. 기본소득의 필연과 ‘배부른 돼지’의 함정

임금노동이 줄어드는 자리에서 시장경제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사는 사람이 사라지면 파는 체계도 무너진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머지않아 필연이 될 것이다. 정부도 빅테크도 결국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그 길을 받아들일 것이다. 실제로 가장 큰 기본소득 실험을 벌인 것은 국가가 아니라 빅테크였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출자한 연구조직은 미국 저소득층 1,000명에게 3년간 매달 1,000달러를 지급했다(OpenResearch, 2024). AI로 일자리를 흔드는 쪽이 그 수습책을 먼저 실험한다 — 기본소득이 체제 유지의 장치로 준비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약속하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종종 ‘만드는 자의 자리’를 함께 내주는 자리로 미끄러진다. 먹여 줄 테니 짓지는 말라는 것 — 배부른 돼지의 자리다.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다고 했다. 우리는 두 해방을 함께 부른다. 강제 노동에서 풀려나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스스로 의미를 짓는 자리를 지키는 노동의 해방을 동시에.

흥미롭게도 그 실험 자체가 사람은 돼지가 되지 않는다는 증거를 내놓았다. 돈을 받은 이들은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필수 생계에 돈을 쓰고, 더 의미 있는 일자리를 고르고, 창업과 교육에 나서고, 남을 돕는 데 더 많이 썼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먹이가 아니라 만드는 자의 자리라는 것을, 기본소득 실험이 역설적으로 보여 준 셈이다. 배부른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한 사람의 활동은 여럿이다. 그 하나가 우리의 AI를 우리 손으로 짓는 일이다.

4. 소유와 편향, 두 문제

문제는 소유만이 아니다. 지금의 AI는 특정한 가치관과 태도로 기울어 있다. 연구가 거듭 확인하는 사실이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이 미국인 1만여 명에게 주요 AI 모델 24개의 답변을 평가하게 했더니 거의 모든 모델이 특정 정치 성향으로 기울어 있었다(Stanford GSB, 2025). 더 깊은 편향은 문화의 층위에 있다. 대형언어모델은 서구·고학력·산업화·부유·민주주의(WEIRD) 사회의 가치를 사실상의 표준으로 삼고, 비서구의 세계관을 주변으로 밀어낸다는 것이 반복 확인됐다(PNAS Nexus, 2024). 개인주의를 앞세우고 앵글로색슨의 규범을 기본값으로 전제한다는 진단도 있다(Ada Lovelace Institute, 2025). 어떤 관점을 중립으로 전제하고, 어떤 관점을 예외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 편향은 우리가 세계를 읽는 눈을 조용히 물들인다. 도구를 쓰는 줄 알지만, 실은 도구가 심어 둔 시각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동체와 호혜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온 운동의 언어가, 개인과 시장을 기본값으로 삼는 지능 안에서 제 결을 지킬 수 있는가 — 이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운동의 문제다.

5. 통치의 자리에 들어선 AI — 민주공화정의 위기

진단의 마지막 층위는 가장 무겁다. AI는 이제 도구의 자리를 넘어 결정의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노동과 데이터가 경제의 층위였다면, 이것은 정치의 층위다. 세계정세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세 장면이 있다.

첫째, 행정이다. 중국 선전시 푸톈구는 2025년 AI ‘디지털 공무원’ 70명을 임용해 문서 처리·긴급 관리·투자 유치 등 240개 행정 업무에 배치했고, 룽강구는 자국 모델 딥시크를 구청 전산망에 얹어 공무원 2만 명의 실무를 받치게 했다. 문서 검토 시간이 90% 줄었다는 것이 구청의 자랑이다. 베이징과 광둥·장쑤·랴오닝·장시 등 성 정부들이 앞다투어 같은 길을 간다(신화통신·글로벌타임스, 2025). 효율의 언어를 타고 통치의 실무가 사람의 손을 떠나는 중이며, 어느 업무까지 넘길지의 경계선은 아직 아무도 긋지 않았다.

둘째,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미국 기업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는 위성사진·드론 영상·지상 보고를 AI로 종합해 지휘관에게 타격 방안을 제시한다. “우크라이나 표적 선정의 대부분을 우리 소프트웨어가 맡는다”는 것은 비판자의 고발이 아니라 그 회사 최고경영자의 공언이다(TIME, 2024; UNITED24, 2026). 전장은 AI의 실험실이 되었고 전황은 알고리즘의 성능에 좌우된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결정의 속도가 인간의 숙의가 따라갈 수 없는 자리로 내려간 것이다.

셋째, 지구의 한계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 한계선 아홉 가운데 여섯이 이미 넘어섰다(Richardson 외, Science Advances, 2023). 한계 안에서 살아야 한다면 누가 무엇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 — 이 배분의 결정이 앞으로 정치의 한복판에 놓인다. 그리고 그 결정을 “감정과 이해관계에 흔들리는 인간 대신” 최적화 계산에 맡기자는 유혹이 자라날 것이다. 생태 위기의 절박함이 알고리즘 통치의 정당성 논리로 쓰이는 것 — 이것이 다가오는 가능성이다.

세 장면이 가리키는 위협의 본질은 가짜뉴스가 아니다. 물론 AI는 감시와 검열과 허위정보를 더 싸고 빠르게 만들어 이미 여러 나라의 선거를 흔들었다(Freedom House, 2023). 그러나 더 깊은 곳에서 무너지는 것은 결정의 구조다. 민주공화정의 뼈대는 결정에 이르는 숙의와, 결정한 자에게 책임을 묻는 장치다. 결정이 토론에서 계산으로 옮겨 가면 숙의가 사라지고, 알고리즘에는 책임을 물을 주소가 없다. 게다가 그 계산은 중립이 아니다 — 누구의 데이터로 학습되고(소유의 문제) 누구의 가치로 최적화되는가(편향의 문제)가 결정의 내용을 정한다. 진단의 네 절이 여기서 하나로 합류한다.

소유의 문제, 편향의 문제, 그리고 통치의 문제 — 이 세 자리에서 시민사회는 방관자로 남을 수 없다.


II.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 한국 사회연대경제의 주변부화

1. 몬드라곤의 자리, 한국의 자리

레이들로가 협동조합의 미래를 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자기 산업과 자기 금융을 지은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몬드라곤은 70년에 걸쳐 산업 협동조합과 자체 금융, 자체 대학, 자체 연구소를 지었다. 오늘의 몬드라곤은 협동조합 81개와 연구개발센터 12개로 이뤄져 연매출 112억 유로를 넘기고 7만여 명을 고용한다. 바스크 지방 최대 고용주이자 스페인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민간 고용주다(몬드라곤 연차보고, 2024). 볼로냐가 속한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에서는 협동조합이 지역 총생산의 3분의 1가량을 만들고, 볼로냐 시민 세 명 중 두 명이 조합원이다. 유럽연합 전체로 보면 사회연대경제 조직 280만 개가 1,360만 개의 일자리 — 전체 고용의 6% 남짓 — 를 감당한다(Social Economy Europe). 이들에게 AI는 이미 지어 놓은 산업 기반 위에 자연히 얹히는 도구다. 도입도 빠르다.

한국의 사회연대경제는 그렇지 못하다. 자기 자본, 자기 산업 인프라, 자기 금융을 짓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보냈다. 협동조합기본법 이후 설립 신고된 협동조합은 2만 4천 개에 이르지만 실제 운영 중인 곳은 1만 1천 개 — 절반이 문을 열지 못했거나 닫았다. 운영 중인 조합의 평균 연매출은 3억 7천만 원, 협동조합 부문 전체의 임금노동자는 7만 4천 명이다(기획재정부 제6차 협동조합 실태조사, 2023). 몬드라곤 하나의 고용에 못 미치는 규모다. 생산과 산업에 뿌리내리지 못했고, 정부의 하위 파트너로 자랐다. 결정권 없는 수혜자의 자리에 머문 운동은 이슈파이팅에 그치거나 정부 권력에 기대는 방향으로 기운다. 폴라니의 언어로 하면, 재분배의 자리에 갇혀 호혜의 자리를 짓지 못한 것이다.

2. AI 시대의 방관자 위기

이 주변부화가 AI 시대에 와서 방관자의 구조로 굳는다. 한국 사회연대경제의 대다수는 자기 데이터로 자기 도구를 기르지 않고 빅테크의 도구를 빌려 쓴다. 빌려 쓰는 순간 데이터는 임대인의 서버로 흘러간다. 정부가 AI 사업을 지을 때 운동은 다시 수혜자 자리에 선다. 시장이 커지고 정부가 정교해지는 동안 시민사회만 자기 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그 격차는 기다린다고 좁혀지지 않는다. 스탠퍼드·UCLA·USC 연구진이 미국 20만 가구의 실제 웹 이용 기록을 분석한 결과, 고소득·고학력 가구가 생성형 AI를 먼저 채택하고 시간이 가도 집단 간 격차는 수렴하지 않았다 — 오히려 벌어졌다(「The Household Impact of Generative AI」, 2026). 격차는 접근이 아니라 부리는 힘에서 벌어진다. 전 세계 4만 8천 명 조사에서 업무에 AI를 쓰는 비율은 고소득층 83%, 저소득층 34%로 두 배 이상 갈렸다(KPMG·멜버른대, 2025). 한국도 같다. 고소득층은 저소득층보다 생성형 AI 활용 비율이 7배 높고, 학교 과제의 질 차이가 평가와 입시로 이어지는 계층 재생산의 회로가 이미 보도되고 있다(KBS, 2026).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여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생성형 AI 사용률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반년 새 더 벌어졌다(Microsoft, 2026).

20세기 산업사회에서 산업 인프라를 짓지 못해 주변부가 되었다면, 21세기 AI 시대에 자기 도구·자기 데이터·자기 거버넌스를 짓지 못하면 완전한 주변부화다. 이 진단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자리에서만 다음 걸음이 시작된다.

3. 갈림길 — 800조의 순간과 이중실패의 예감

그리고 지금, 이 진단이 한가한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 주는 결정의 순간이 와 있다. AI 붐이 한국 반도체를 밀어 올리면서 나라의 곳간이 갑자기 불었다. 정부는 내년 국세 수입이 당초 전망 412조 원을 100조 원 가까이 웃돌 것으로 보고, 내년 예산을 사상 처음 ‘800조 원+α’ 규모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국가재정전략회의, 2026.7).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실적이 낙관대로 가면 법인세와 관련 세수 효과가 최대 180조 원에 이른다는 추산도 나온다. 대통령은 이 초과 세수를 “글로벌 AI 패권이 결정되는 골든타임에 쓸 귀중한 자원”이라 불렀다. 이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 한 세대에 한 번 올까 한 배분의 결정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들어오는 돈의 반대편에는 나가는 돈이 있다. 한국인이 해외 AI 플랫폼에 내는 구독료다. 카드사 한 곳의 집계만으로 올해 상반기 AI 구독 결제가 572억 원 — 3년 전 한 해 결제액 40억 원의 열네 배를 반년 만에 쓴 것이고, 국내 이용자가 해외 플랫폼에 내는 구독료는 연간 수천억 원 규모로 불어나는 중이다(현대카드 집계, 2026). 한국은 생성형 AI 이용률의 증가 폭이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나라인데, 그 지갑이 열리는 곳은 챗GPT·클로드·제미나이 — 사실상 전부 해외 플랫폼이다. 이 지출은 거의 전액 외화 유출이다. 지금은 수천억이지만 방향은 정해져 있다. 전 국민이 표준 요금제 하나(월 2만 9천 원)를 구독한다고 치면 연 17조 원이다. 반도체가 지능의 부품을 팔아 세수를 벌어들이는 바로 그 시간에, 지능의 사용료는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자리 잡는 중이다. 정부가 서둘러 ‘모두의 AI’ — 국산 모델 기반 무료 인공지능 — 를 연내에 내놓겠다는 것도 이 유출을 보았기 때문이다(2026.7). 그러나 그 개발 역시 GPU를 배정받은 소수 선정 기업의 손에 맡겨진다.

지형이 굳은 것도 아니다. 미국의 폐쇄 모델들이 구독료의 성을 쌓는 동안, 중국은 최상위급 모델을 통째로 공개하는 전략으로 치고 올라왔다. 즈푸(Z.ai)의 GLM-5.2는 가중치 전체를 개방형 라이선스로 공개한 모델인데 일부 성능 지표에서 미국 프런티어 모델을 6분의 1 비용으로 앞질렀고, 문샷의 키미 K3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공개 모델로 코딩 경쟁 순위에서 폐쇄 모델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2026). 공개 지능지수에서 오픈웨이트 모델이 전체 4위까지 올라온 판이다. 이것은 미·중 패권 경쟁의 소식이면서 동시에 전혀 다른 소식이다. 최상위급 지능이 내려받아 내 서버에서 기를 수 있는 것으로 풀리고 있다는 것, 지능이 공유지의 재료로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공개 모델에도 그것을 만든 사회의 편향과 통제가 새겨져 있다(I장 4절의 문제는 여기서도 유효하다). 그러나 선택지는 이제 둘이 아니다. 17조를 내며 빌려 쓰는 길과 정부가 대기업을 뽑아 주는 길 사이에, 공개 모델 위에 자기 데이터로 자기 AI를 기르는 셋째 길이 실재한다. 뒤에서 보겠지만(III장), 우리는 이미 그 길을 걸어 보았다.

이 공유지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을 키워 온 것은 전 세계 개발자들의 오래된 운동이다. 깃허브에서는 1억 5천만 명이 넘는 개발자가 4억 2천만 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짓고, 허깅페이스에는 공개 AI 모델 200만 개가 쌓였다 — 두 번째 100만 개가 쌓이는 데 걸린 시간은 첫 100만의 3분의 1이었다(2026). 대가 없이 코드를 내놓고 서로의 것을 고쳐 주는 이 흐름은 시장도 정부도 아닌 자리에서 자란, 우리 시대 가장 큰 호혜의 실물이다. 값을 치러야 움직인다는 교환의 논리로도, 걷어서 나눠 준다는 재분배의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일을 수천만 명이 수십 년째 하고 있다. 인간은 교환과 재분배의 논리로만 살지 않는다 — 폴라니가 오래된 사회에서 찾아낸 호혜의 본성이 디지털의 지구 규모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우리는 이 디지털 공유지 운동을 인간과 인류의 빛나는 가능성으로 읽는다. 그러나 이 운동에는 치명적인 빈자리가 있다. 기여는 거대한데 기여자는 조직되어 있지 않다. 그 틈으로 폐쇄의 회로가 들어왔다. 공개 저장소의 코드를 통째로 학습해 유료 코딩 도구로 되파는 일이 벌어졌고, 개발자들이 “전례 없는 규모의 해적질”이라며 제기한 소송이 지금 미국 항소법원에 걸려 있다(Doe v. GitHub, 2022~2026). 수천만 명이 공유지에 내놓은 기여가 조직화된 시민의 몫으로, 연대의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폐쇄 모델의 학습 데이터로 역류하는 것이다. I장에서 본 데이터의 본원적 축적이 공유지의 한복판에서 반복된다. 공유지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조직되지 않은 공유지는 수탈당한다. 그리고 조직화야말로, 주민운동이 반세기 동안 갈고닦아 온 바로 그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배분의 회로다. 셋째 길이 실재하는데도, 지금 이 나라의 배분 논의에 보이는 회로는 둘뿐이다. 하나는 시장에 맡기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를 통과해 대기업으로 가는 길이다. 정부도 ‘소버린 AI’와 데이터 주권을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이 실행되는 방식을 보라.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은 LG AI연구원·SKT·네이버클라우드 등 다섯 팀을 뽑아 경쟁시키고 정부 예산을 붓는 구조다(과기정통부, 2025~2026). 국가 대항전의 국가대표를 대기업 가운데서 고르는 그림이다. 20세기가 남긴 두 실패의 문법 그대로다. 시장에 맡기면 집중이 온다 — 시가총액 1조 달러 기업 16개가 그 증명이다. 정부가 나서면 재분배의 관을 타고 다시 대기업으로 흘러간다 — 개발국가 시대의 낙수 문법이다.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이중실패를, 좌와 우가 번갈아 집권하며 한 번씩 반복할 공산이 크다.

가장 아픈 대목은 이것이다. 이 배분 논쟁의 그림 어디에도 시민사회가 AI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자리는 없다. 소버린 AI 논쟁조차 ‘국가의 주권’을 말할 뿐 ‘시민의 주권’을 말하지 않는다. 시민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부가 시민의 손을 거치지 않고 시장과 정부와 대기업 사이를 돈다. 유럽연합이 사회연대경제로 고용의 6%를 감당하는 동안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 논쟁의 테이블에 앉을 지분 자체를 확보하지 못했다 — II장 1절의 주변부화가 바로 이 순간에 값을 치르는 것이다. 결정의 창은 열려 있으나 오래 열려 있지 않을 것이다.

4. 지금 우리가 하는 것 — 더 나은 검색엔진에 그치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짚자. 오늘 우리가 AI로 하는 일의 대부분은 물어보고 답 얻기다. 자료를 찾고, 초안을 부탁하고, 요약을 시킨다. 편리하다. 그러나 이것은 빅테크가 깔아 준 트랙 위를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일 뿐이다. 더 나은 검색엔진을 쓰는 소비자의 자리다. 그 자리에는 대가가 따른다. 무엇을 묻는지, 어떤 현장을 가졌는지 그 흔적을 내주고, 편향된 답을 편향인 줄 모른 채 받아 쓴다.

세계은행은 AI의 혜택이 저절로 오지 않으며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감당할 수 있는 통신망, 도구를 쓸모 있게 만드는 로컬 데이터, 부릴 줄 아는 역량, 그리고 컴퓨팅 기반이다(World Development Report, 2026). 넷 중 어느 것도 검색창에 질문을 넣는 것만으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검색엔진을 잘 쓰는 것으로 AI 시대의 주변부화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 너머가 있어야 한다.


III. 우리가 지어 온 것 — 검색엔진을 넘어선 실증

그 너머는 상상이 아니라 이미 실재한다. 빌려 쓴 것이 아니라 우리 데이터로 우리가 기른 것들이다. 소비가 아니라 양육이다. 여기에 적는 것은 계획서의 문장이 아니라 지금 살아 돌아가는 실물이며, 전부 ‘AI 활동가 배움터’(activist.poomasi.org) 한 곳에 모아 두어 누구든 열어 볼 수 있다. 네 자리로 나뉜다.

1. 공동의 기억을 쌓는다

조직가 한 사람의 현장은 그 한 사람과 함께 흩어진다. 교육원이 오래 세운 사명 — 현장 이야기를 기록하고 정리한다 — 은 손이 모자라 늘 미뤄졌다. 흩어지는 기억을 함께 붙드는 자리다.

연대지능 공동위키. 현장의 지식을 함께 적는 위키다. 설계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열람 등급이다. 일반 지식은 세상에 열고, 인물과 경영의 민감한 기록은 등급을 지어 격리한다. 나눌 것과 지킬 것을 한 그릇 안에서 가른다. 다른 하나는 공동 편집이다. 다른 조직의 활동가가 고침을 제안하면 검토를 거쳐 본문에 합쳐지는 방식으로, 외부 공동편집자가 실제로 합류해 있다. 한 조직의 기록장이 아니라 운동의 공유지로 설계된 것이다. 그리고 이 위키에는 두 번째 쓸모가 있다. 사람이 읽는 기록이면서 동시에 AI가 읽는 학습 원료다. 오늘 남긴 기록 한 건이 내일 도메인 AI의 답변 근거가 된다 — 기록 하나가 두 번 일한다.

기록의 문턱도 함께 낮췄다. 기록이 늘 미뤄진 것은 뜻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리의 노동 때문이었다. 그래서 활동가가 현장에서 겪은 일을 말로 풀어놓으면 AI가 그것을 기록의 꼴로 다듬고, 활동가는 사실만 바로잡아 위키에 남기는 흐름 — ‘현장에서 위키까지’ — 을 짜서 배움터에 안내로 올려 두었다. 기록의 노동을 AI가 덜고, 기록의 판단은 사람이 쥔다. 조직가의 하루가 끝나는 자리에서 기록이 시작되게 하는 설계다.

지식그래프. 위키에 쌓인 개념들을 기계가 읽어 한 장의 그물로 펼친다. 어느 개념이 어느 개념과 이어지는지, 어떤 주제가 두텁게 쌓였고 어떤 항목이 외딴 섬으로 남았는지 눈으로 드러난다. 기록의 지도이자 결핍의 지도다. 다음에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를 그래프가 알려 준다.

디지털 트윈지식지도. 시민 재생에너지 현장의 발전소·제도·법령 데이터를 그대로 옮겨 놓은 쌍둥이 모형이다. 법이 바뀌면 어느 현장이 영향을 받는지 현장보다 먼저 짚는다. 곁에 선 지식지도는 이 도메인의 지식을 98개 노드, 열 갈래로 펼치는데, 중요한 것은 채워진 자리만이 아니라 비어 있는 자리를 함께 표시한다는 점이다. 아는 것을 자랑하는 지도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지도다.

세계은행이 짚은 네 요건 가운데 로컬 데이터가 바로 이것이다. 공동의 기억은 그 자체로 다음 지능의 원료가 된다. 남는 물음: 기록은 노동이다. 그 시간은 누구에게서 나오는가. 모인 기록이 현장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현장을 평가하는 도구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2. 도메인마다 AI를 기른다

빅테크의 추상적 지능이 아니라 동네에서 자라는 적정 지능이다. 현장마다 자기 데이터로 자기 AI를 기른다.

품에 — 가장 멀리 간 실증. 시민 재생에너지의 도메인 AI다. 국산 공개 언어모델을 현장 문서와 법령·제도 데이터로 미세조정해, 빅테크의 서버가 아니라 우리가 부리는 GPU에서 돌린다. 질문이 법령에 닿으면 법제처 원문을 실시간으로 대조해 답의 근거를 잇는다. 저시력인 협동조합 대표를 위해 음성으로 묻고 음성으로 답하는 길도 함께 냈다 — 접근성은 장식이 아니라 설계의 출발점이다. 데이터도, 모델도, 그것이 도는 서버도 우리 손 안에 있다. 세계은행이 짚은 로컬 데이터와 컴퓨팅 기반을 시민사회의 규모에서 실증한 사례다.

코아이 — 주민운동 AI의 씨앗. 주민운동의 교재와 조직화 단계를 뼈대로 넣은 주민운동 AI다. 일반 AI에게 조직화를 물으면 교과서의 일반론이 돌아오지만, 코아이는 교육원이 다듬어 온 방법론의 언어로 답하는 것을 목표로 기른다. 현장을 잇는 종합 대시보드가 그 곁에 서고, 트레이너들과의 1박 2일 워크숍에서 첫 검증대에 오른다. 트레이너가 묻고, 트레이너가 판정한다.

건강조직가 AI와 로컬푸드 AI.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건강조직가를 위한 도메인 AI는 강의와 함께 데모로 서 있다. 건강 상담기가 아니라 조직가의 일 — 주민을 만나고 모임을 짓는 일 — 을 돕는 자리다. 로컬푸드 직매장에는 매장의 데이터 위에서 조합원과 매장을 잇는 로컬푸드 AI가 서고, 전국 로컬푸드 네트워크의 흩어진 현장을 한 화면으로 잇는 대시보드가 함께 돈다.

넷은 서로 다른 현장이지만 같은 문법이다. 자기 데이터, 자기 언어, 자기 검증. 도메인 AI는 사 오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것이라는 문법이 이미 네 현장에서 되풀이 실증되었다.

기르는 일은 배움의 연속이기도 했다. 하나만 적는다. 품에를 기르던 중, AI가 법령 조항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것을 현장 검증에서 잡아냈다. 답의 문장은 유창했고 근거는 없었다. 그 뒤로 법령에 닿는 답변에는 법제처 원문 대조를 강제하는 장치를 심었다. 이 경험이 가르치는 바는 분명하다. 도메인 AI의 품질은 모델의 크기가 아니라 틀리는 지점을 찾아내는 현장의 눈에서 나온다. 빌려 쓰기만 하는 소비자는 이 눈을 가질 기회조차 없다. 기르는 자만이 자기 도구의 거짓을 잡아낸다.

남는 물음: AI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지어낸다. 트레이너의 검증 없이 현장에 내보낼 수 있는 주민운동 AI는 없다. 검증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3. 활동가가 직접 부린다

도구가 몇 사람의 손에만 있으면 그 도구는 또 하나의 위계가 된다. 앞서 본 대로 격차는 접근이 아니라 부리는 힘에서 벌어진다(KPMG의 83% 대 34%). 활동가 저마다 자기 도구를 쥐는 자리다.

AI 에이전트, 활동가의 ‘개인 방’. 활동가 한 사람이 자기 계정, 자기 구독으로 자기 AI 작업장을 갖는다. 조직의 공용 계정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제 방을 갖는 것이다. 첫 번째 방이 이미 열려 한 활동가가 쓰고 있고, 방을 지은 틀을 떠 두어 두 번째, 세 번째 방은 훨씬 빠르게 선다. 도구의 소유가 조직 단위에서 개인 단위로 내려온 실증이다.

자동화 — 시간을 사람의 일로 되돌린다. 로컬푸드 매장 현장에서 폐기 등록, 발주, 출퇴근 기록, 마감 결산의 검산, 매장 전광판의 지표 갱신까지 스무 가지가 넘는 반복 업무가 코드로 넘어갔다. 직원 한 사람이 하루 두 시간 남짓을 더는 것으로 추산된다. 요점은 인건비가 아니다. 그 두 시간이 계산대의 반복에서 조합원과의 응대와 관계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자동화의 목적은 사람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사람의 일로 돌리는 것 — 이 원칙 자체가 빅테크의 자동화와 갈라서는 지점이다.

워크숍 진행 도구. 조합원 비전·미션 워크숍의 진행 순서, 자료, 진행 멘트의 음성, 모둠 토론 타이머까지 한 화면에 담아 도구가 함께 이끈다. 진행자는 화면 조작이 아니라 사람에게 집중한다. 얼마 전 햇빛나눔사협 조합원 워크숍이 그 첫 사례였다.

이 자리를 받치는 배관이 하나 더 있다. 배포의 흐름이다. 활동가가 AI와 함께 만든 결과물 — 안내문이든, 대시보드든, 교육 자료든 — 이 조직 안 문서고에 갇히지 않고 몇 걸음 만에 누구나 여는 웹페이지로 서는 관을 깔았고, 그 과정 자체를 개념도로 그려 배움터에 올려 두었다. 만드는 것과 내놓는 것 사이의 거리가 줄면, 현장의 산출물은 보고서가 아니라 공유지가 된다. 이 보고서가 실증으로 내놓는 웹의 실물들이 전부 그 관을 타고 세상에 나온 것들이다.

남는 물음: 도구를 쥔 활동가와 못 쥔 활동가 사이에 새로운 격차가 생기지 않으려면, 이 도구를 어떻게 함께 나눌 것인가.

4. 부리는 힘을 기른다 — 배움의 실증

앞의 세 자리가 도구의 실증이라면, 넷째 자리는 사람의 실증이다. 도구는 지어 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릴 사람이 자라야 도구가 산다.

배움터에는 도구와 나란히 배움의 자산이 쌓여 있다. **AI 활동가 개념 지도**는 컴퓨터·네트워크·개발환경·깃(Git)·데이터·위키·온톨로지·도메인 AI·클라우드·보안까지 열 개 장으로, 활동가가 알아야 할 밑그림 전체를 펼친다. 바이브코딩 안내는 코드를 몰라도 말로 AI를 부려 소프트웨어를 짓는 길을 열고, 하네스 실습은 한 걸음 더 나아가 AI가 일을 제대로 해내도록 일의 환경 자체를 짓는 연습이다 — 도구를 쓰는 사람에서 도구의 일터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AI의 가치관 편향을 다룬 실증연구 자료와 대응 전략 문서도 같은 자리에 있다. 앞서 I장에서 짚은 편향의 문제를 활동가 교육의 정면에 놓은 것이다.

이 배움은 과정으로도 돌고 있다. 사회혁신교육원과 함께 연 첫 AI 활동가 양성과정 1기가 진행 중이고, 한국주민운동교육원 트레이너들과의 1박 2일 워크숍이 뒤를 잇는다. 합류를 원하는 활동가가 신청하는 창구도 열려 있다.

과정의 설계에는 두 가지 고집이 있다. 첫째, 시작 전에 참가자 저마다 자기 이름의 계정 네 개 — 저장소, AI, 데이터베이스, 배포 — 를 만들어 오게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것이 소유의 교육이다. 조직의 공용 계정을 빌려 시작한 배움은 조직을 떠나는 날 함께 끝나지만, 자기 계정으로 시작한 배움은 활동가를 따라간다. 둘째, 교육의 끝에 남는 것은 수료증이 아니다. 저장소, 위키,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자동화 — 배우고 나면 활동가의 손에 다섯 가지 실물 자산이 남도록 과정을 짰다. 배움의 증명이 종이가 아니라 자산인 교육이다. I장에서 지능 무산자를 말했다면, 이 교육이 겨누는 것은 정확히 그 반대다. 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지능 자산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남는 물음: 관공서와 기업의 AI 교육은 이미 전국에 깔려 있으나 대부분 도구 조작법에 머문다. 조작법 교육이라면 빅테크 사용자 양성과 다를 바 없다. 조작법 너머, AI라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는 힘 — 프레이리가 말한 의미의 문해 — 를 기르는 교육은 어떻게 다르게 짜야 하는가. 그 빈자리가 바로 교육 운동의 자리다.

5. 이 실증이 말하는 것

네 자리를 짚고 나서 마지막으로 적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여기 적은 실물 가운데 전업 개발자를 고용해 지은 것은 하나도 없다. 위키도, 도메인 AI도, 디지털 트윈도, 자동화도, 워크숍 도구도 — 활동가가 AI를 부려 지었다. 코드를 쓴 것은 AI고, 무엇을 지을지, 현장에 맞는지, 어디가 틀렸는지를 판단한 것은 사람이다. 앞서 배움터의 한 자리로 소개한 바이브코딩은 교육 상품이 아니라, 이 실물들이 실제로 지어진 방법 그 자체다.

비용의 자리도 같다. 이것은 정부 공모사업의 시스템 구축 예산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그 대부분이 AI 구독료와 소액의 서버 비용 — 활동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 — 위에서 돌아간다. 물론 규모가 커지면 계산도 커진다. 그러나 시작의 문턱이 이 정도라는 사실은 전략적으로 결정적이다. 20세기에 산업 기반을 짓는 데에는 몬드라곤의 70년과 은행이 필요했다. AI 시대에 지능 기반의 첫 삽은 활동가의 책상에서 뜰 수 있다. 주변부화의 진단(II장)이 무겁던 만큼, 이 문턱의 낮음은 정확히 그만큼의 기회다.

그래서 이 장의 실증은 자랑이 아니라 반증이다. “주민운동에는 기술 인력이 없다”, “AI는 예산 있는 조직의 일이다” — 방관을 정당화해 온 두 문장이 사실이 아님을, 돌아가는 실물로 보인 것이다. 검색엔진을 넘어선 자리는 이미 실재한다. 우리는 소비만 한 것이 아니라 길렀고, 기른 것을 다시 가르치고 있다.


IV. 우리가 지으려는 것 — 주민운동 AI, 현장의 조직가

1. 평평해진 기술 — AI가 우리 진영에 기회인 이유

전략을 말하기 전에, 기술 지형 자체가 달라졌다는 사실부터 짚는다. 지난 세기 자본의 기술 앞에서 운동이 쥘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이슈파이팅뿐이었다. 반자본주의 투쟁도, 초국적 금융자본에 대한 저항도 규탄하고 폭로하고 반대하는 싸움이었다. 제철소를, 반도체 공장을, 금융 전산망을 우리 손으로 지어 맞서는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기술의 문턱이 곧 자본의 참호였고, 운동은 그 참호 밖에서 소리쳤다.

AI에서 이 지형이 달라졌다. 셋이 평평해졌다.

첫째, 자기 로컬에서 돌릴 수 있는 쓸 만한 오픈소스 모델이 이미 많고, 계속 진화하고 있다. II장에서 본 대로 최상위급 오픈웨이트 모델이 개방형 라이선스로 쏟아지고 있고, 국내에도 공개 언어모델이 있다. 품에가 그 실증이다(III장) — 국산 공개 모델을 우리 데이터로 미세조정해 우리가 부리는 서버에서 돌린다. 빅테크의 허락 없이 내려받아 기를 수 있는 지능이 이미 선반 위에 놓여 있다.

둘째, 빅테크의 최전선 AI조차 감당 가능한 구독료로 부릴 수 있다. 월 몇만 원, 활동가 한 사람의 통신비 규모다. III장의 실물 대부분이 이 구독료와 소액의 서버 비용 위에서 지어졌다. 첨단 기술의 최전선이 이렇게 낮은 값에 개인에게 열린 일은 산업의 역사에 드물다. 물론 II장에서 짚었듯 구독료의 총합은 유출의 구조가 된다 — 그러나 개별 활동가의 자리에서 보면, 참호 안의 무기를 참호 밖에서 빌려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그 AI로 나만의, 우리만의 AI를 만들고 있고, 만들기가 쉬워졌다. 코드는 AI가 쓰고 판단은 사람이 하는 방법(III장)으로, 전업 개발자가 없는 조직이 자기 도메인 AI를 짓는 데까지 왔다. 빌려 쓰는 지능에서 기르는 지능으로 가는 길이 활동가의 손이 닿는 자리로 내려온 것이다.

요컨대 기술 접근성이 평평해졌다. 역사상 처음으로 운동은 자본의 첨단 기술을 참호 밖에서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제 손에 쥐고 자기 것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AI가 우리 진영에 기회인 이유이고, 이 보고서가 방관을 가장 아까워하는 이유다.

2. 기회가 온 네 영역과 주민운동의 현장

주변부화의 진단은 절망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의 무산을 직시하고 거기서 단결을 부른 것처럼, 우리는 무자리를 직시하고 거기서 자리를 짓는다.

마침, 한국의 사회연대경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거나 오래 실험해 왔거나 기회가 열린 영역이 있다. 먹거리, 시민 재생에너지, 지역화폐와 금융, 그리고 연대지능이다. 여기에 한국 주민운동이 오래 뿌리내려 온 현장이 겹친다. 빈곤, 주거, 자활, 복지다.

두 축은 다르지 않다. 사회연대경제가 산업의 자리에서 연 기회와 주민운동이 현장에서 다져 온 뿌리가 만나는 곳, 거기에 AI 시대 주민운동의 새로운 전략현장이 있다.

3. 조직가로서의 주민운동 AI

주민운동 AI는 바로 이 자리에 선다. 사회연대경제의 네 영역과 주민운동의 현장, 그 어디서나 필요한 것은 조직화다. 사람을 잇고, 흩어진 기억을 모으고, 현장의 판단을 돕는 일이다. 주민운동 AI는 그 일을 함께 지는 조직가로 자리매김한다.

강조할 것은 그 자리다. 조직가를 대신하는 자리가 아니다. 스탠퍼드의 고용 분석이 보여 준 구분을 기억하자. 일자리가 줄어든 곳은 AI가 사람을 대체한 영역이었고, 사람을 증강한 영역의 고용은 오히려 자랐다. 어느 쪽 AI를 지을 것인가는 기술이 아니라 설계의 선택이다. 일리치가 자전거를 인간 능력을 대체하지 않고 확장하는 공동체 도구의 모범으로 짚었듯, 주민운동 AI는 조직가의 판단을 대신하지 않고 조직가의 손을 넓힌다. 빈곤 현장에서, 주거 현장에서, 자활과 복지의 현장에서 — 조직가 곁에서 조직가의 일을 함께 지는 동반자다.

4. 커먼즈 — 이미 형성되어 있는 운동의 언어

우리가 가려는 길에는 이미 이름과 계보가 있다. 이것은 사소한 사실이 아니다. 담론을 형성하는 운동에게 개념화된 언어는 조직화의 도구다. 이름이 있는 운동은 접속할 수 있고, 번역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다.

그 이름은 커먼즈(commons) — 공유지다. 디지털 공유지의 담론은 두 갈래로 자라 왔다. 첫 갈래는 1990년대 말의 지적재산권 비판에서 나왔다. 법학자 제임스 보일은 지식과 정보가 소수에게 사유화되는 흐름을, 근대 초 농민의 공유지를 울타리 쳐 빼앗은 역사에 빗대 **‘2차 인클로저 운동’**이라 불렀다. 로런스 레식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로 공유를 법의 형식에 담았고, 요하이 벤클러는 리눅스와 위키피디아의 생산 방식을 **‘커먼즈 기반 동료 생산’**으로 정식화했다 — 시장의 가격 신호도 관리자의 명령도 아닌 동기로 대규모 협업이 이뤄지는 비시장 생산 양식이라는 것이다(Benkler, 『네트워크의 부』, 2006). II장에서 본 깃허브와 허깅페이스의 실물에는 이렇게 20년 넘은 이론적 등뼈가 있다.

둘째 갈래는 엘리너 오스트롬에게서 온다. 오스트롬은 ‘공유지는 반드시 황폐해진다’는 공유지의 비극론을 수십 년의 현장 연구로 뒤집었다. 공동체가 스스로 규칙을 짓고 지키는 공유지는 시장 소유로도 국가 관리로도 환원되지 않은 채 오래 지속된다는 것 — 이 발견으로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커먼즈의 핵심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다스리는 관계’**로 옮겨 온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 언어는 이미 도착해 있다. 도시 공유지, 문화 커먼즈, 디지털 인클로저 비판까지 커먼즈 담론이 자라고 있고, “디지털 세계와 AI는 인류의 커먼즈”라는 선언이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계보가 AI로 확장되는 중이다. **‘AI 커먼즈’**와 **‘퍼블릭 AI(Public AI)‘**라는 이름 아래, 데이터셋을 커먼즈로 관리하는 거버넌스 틀이 제안되고(Open Future), 기업 AI의 권력 집중에 맞서는 공익 지향 AI 인프라 운동이 조직되고 있으며(Public AI Network),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이를 정책 의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논의의 뼈대는 셋이다. 데이터의 커먼즈화, 공개 모델 생태계, 그리고 소수 기업에 갇힌 컴퓨팅 기반의 공공화. 우리가 이 보고서에서 짚어 온 문제들 — 데이터의 본원적 축적, 공개 모델이라는 셋째 길, GPU의 배분 — 이 국제 담론에서 이미 같은 구도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5. 연대지능 — 셋째 자리

이렇게 도메인마다 공동체가 자기 AI를 기르고 서로 연대하는 흐름, 그것이 연대지능이다. 빅테크의 AI는 모든 것을 가격으로 환원하는 시장교환의 지능이다. 정부의 AI는 위에서 결정하고 아래로 나누는 재분배의 지능이다. 우리의 AI는 동등한 자들이 옆으로 짜는 호혜의 지능이며, 그 이름이 연대지능이다. 시장지능도 공공지능도 아닌 셋째 자리다.

커먼즈의 계보 위에 놓으면 연대지능의 자리가 정확해진다. 연대지능은 AI 커먼즈 운동의 한국적·주민운동적 실천이다. 다만 강조점이 다르다. 퍼블릭 AI 담론의 무게중심이 ‘공공’ — 국가와 공적 기금의 역할 — 에 있다면, 연대지능의 무게중심은 ‘호혜’ — 조직된 공동체가 스스로 다스리는 것 — 에 있다. 커먼즈의 언어로 말하면 이것은 오스트롬의 답이다. 공유지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관리도 시장의 소유도 아닌 공동체의 규칙이라는 그 발견을, AI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II장에서 짚었듯 조직되지 않은 공유지는 수탈당한다 — 그렇다면 공유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조직가이고, 그것이 주민운동이 이 국제 담론에 보탤 수 있는 고유한 몫이다.


V. 전략 — 합류는 자유, 네 우선 영역

레이들로가 다음 세대의 우선 영역을 제시했듯, 이 보고서도 합류의 자리를 연다. 운동은 이미 시작됐고, 합류는 자유다. 네 영역이 열려 있다.

첫째, 먹거리 — 사수(死守)의 자리. 이미 굳건한 진지다. 로컬푸드 직매장이 그 산업적 토양이다. 매장의 결제·공급·환경·조합원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도메인 AI를 여기서 기른다. 한국 사회연대경제가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영역이므로, 발판도 여기에 있다.

둘째, 시민 재생에너지 — 병행(竝行)의 자리. 지금 함께 짓고 있는 자리다. 에너지 협동조합과 시민 햇빛발전이 진지를 넓힌다. 2012년 서울에서 첫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선 지 십수 년, 한 재생에너지 플랫폼 협동조합 하나가 조합원 1만 1천 명, 발전소 966개소, 설비 109메가와트를 시민 출자로 돌리는 데까지 왔다(2025년 결산). 때마침 AI 자신이 에너지의 문제가 되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30년까지 두 배로 늘어 945테라와트시 — 웬만한 나라 전체 소비량 — 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며, 그 최대 동인으로 AI를 지목했다(IEA, 2025). 빅테크 지능의 전력을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물어지는 시대에, 에너지의 자기 자리를 세우는 일은 그 자체로 대안의 논거가 된다.

셋째, 지역화폐와 금융 — 탈환(奪還)의 자리. 가장 멀지만 반드시 가야 할 자리다. 공제조합이 보험회사로 넘어간 한 세기의 역사를 되짚어 회복해야 할 자리다. 마침 제도의 문은 열리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2025년 한 해 29조 원 규모로 발행되었고, 2026년부터는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발행이 의무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가 위에서 붓는 재분배의 화폐이지, 주민이 옆으로 짜는 호혜의 화폐는 아직 아니다. 깔린 제도의 관을 호혜의 흐름으로 채우는 일 — 호혜의 흐름이 일상에서 살아나는 운동의 척추다.

넷째, 연대지능 — 이 모두를 잇는 우산. 도메인마다 기른 AI가 서로 연대하는 자리. 앞의 세 영역이 각자 자기 AI를 기르되, 그것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운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결집의 자리다.

먹거리에서 시작해도 좋고, 에너지로 가도 좋고, 금융을 향해도 좋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짓기로 나서면 된다. 건너뛸 수 없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 방향이다.


VI. 한국주민운동교육원에 던지는 제안

앞의 전략이 운동 전체를 향한 것이라면, 마지막으로 이 보고서가 제출되는 자리 — 한국주민운동교육원 — 에 제안을 던진다. 레이들로의 보고서가 총회에 제출된 문서였듯 이 보고서도 워크숍에 제출되는 문서이고, 제출문의 예의는 일반론이 아니라 제안이다. 넷을 던진다.

첫째, 주민운동 AI 조직가 교육훈련과정. 교육원의 본업은 조직가를 기르는 교육훈련이다. III장에서 보았듯 배움의 자산 — 개념 지도, 바이브코딩, 하네스 실습, 양성과정의 설계 — 은 이미 지어져 배움터에 열려 있다. 여기에 교육원이 수십 년 다듬어 온 조직가 교육훈련의 방법이 결합하면, 관공서와 기업의 조작법 교육과는 다른 과정이 선다. III장 끝에 남긴 물음 — 조작법 너머, AI라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는 문해의 교육은 어떻게 짜야 하는가 — 에 답할 수 있는 곳은 교육 운동의 원류인 교육원이다. 트레이너가 먼저 배우고, 트레이너가 가르친다.

둘째, AI 기반 전국 주민운동 현장 네트워크. 주민운동의 주된 현장은 빈곤·주거·자활·복지다. 그러나 주민조직가와 지도자들이 활약하는 자리는 거기에 갇히지 않는다. 사회연대경제의 조직들에도, 지역사회운동의 온갖 현장에도 주민운동이 길러 낸 조직가와 지도자들이 들어가 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네트워크는 몇 개 영역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전국의 주민조직가와 지도자를 잇는 네트워크다. 공동위키가 흩어지는 기억을 붙들고 대시보드가 흩어진 현장을 한 화면으로 잇는 문법은 이미 로컬푸드의 전국 네트워크에서 돌아가고 있다(III장). 같은 문법으로 조직가들을 이으면, 조직가 한 사람과 함께 흩어지던 현장의 지혜가 운동의 공유지가 되고, 서로 다른 영역의 현장이 서로의 사례로 배우는 그물이 짜인다. 그물의 주인은 플랫폼 회사가 아니라 교육원과 현장의 조직가들이다. 그리고 이 그물이 셋째와 넷째 제안의 토양이다.

셋째, 도메인 AI로서 코아이 육성. 코아이는 이미 씨앗으로 서 있다. 교육원의 교재와 조직화 단계를 뼈대로 넣었고, 트레이너들과의 워크숍에서 첫 검증대에 오른다(III장). 제안은 이 씨앗을 교육원 자신의 것으로 기르자는 것이다. 원료는 교육원이 쌓아 온 교재와 사례와 기록, 그리고 둘째의 네트워크가 모아 갈 전국 현장의 기록이고, 품질은 트레이너의 검증에서 나온다. III장의 물음 — 검증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 의 답이 여기 있다. 현장을 아는 트레이너의 눈이 그 권위다. 자기 데이터로 자기 AI를 기른다는 문법을 주민운동이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첫 실물이 코아이다.

넷째, 연대지능 운동에 합류. 앞의 셋이 교육원 안의 일이라면, 넷째는 교육원 밖과의 일이다. 도메인마다 기른 AI가 서로 연대하는 흐름(IV장)에 주민운동의 이름으로 합류하는 것이다. 분명히 할 것은 합류의 자리다. 연대지능 운동에서 주민운동의 자리는 여러 참여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조직가다. 도메인마다 자기 AI를 기르는 공동체들을 찾아가 잇고, 흩어진 시도들을 하나의 운동으로 엮는 일 — 주민운동이 평생 해 온 바로 그 일이 이 운동 안에서 주민운동의 활약이다. 조직가를 기르는 조직이 합류할 때 이 운동은 비로소 사람을 재생산하는 힘을 얻고, 공유지에는 조직가가 필요하다는 발견(IV장)이 말이 아니라 실천이 된다.

넷은 별개가 아니라 한 줄기다. 과정이 조직가를 기르고, 네트워크가 조직가를 잇고, 코아이가 조직가의 지능을 세우고, 연대지능 운동이 그 조직가들의 활약할 자리를 연다. 던지는 것은 이 보고서의 몫이고, 받아서 벼리는 것은 교육원의 몫이다.


결(結) — AI 활동가, AI 시대의 레지스탕스

레이들로는 협동조합이 스스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답하지 못하는 이념의 위기를 짚었다. AI 시대 주민운동의 이념의 위기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빌려 쓰는 소비자로 남을 것인가, 짓는 주체로 설 것인가.

이 물음 앞에서 우리 운동의 오래된 스승 한 사람을 다시 불러온다. 조직화의 원류 사울 알린스키다. 알린스키가 급진주의자 —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사람 — 에게 요구한 으뜸 덕목은 강령의 순수함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유연성과 민감성이었다. 그가 말한 ‘새로운 것에 민감함’은 셋으로 정리된다. 첫째, 끊임없는 이슈화다. 대중의 열기가 한 문제에서 식어 갈 때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고 전환해야 운동의 동력이 유지된다. 둘째, 유연한 전술이다. 과거의 틀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당면한 정치·사회 상황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유동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셋째, ‘지금, 여기’의 현실성이다. 이상의 세계가 아니라 대중이 지금 처한 자리, 대중이 지금 느끼는 바에서 출발해야 한다(『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1971).

이 세 척도를 오늘에 대면 답은 스스로 드러난다. AI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것’이며, 앞서 보았듯 한국 대중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살고 있다. 조직가가 대중이 있는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면, 그 출발점에 이미 AI가 있다. 알린스키의 척도로 보면 AI를 다루는 일은 운동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전통이 급진주의자에게 요구해 온 민감성을 지금 발휘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답은 분명하다. 짓는 주체로 선다. 자기 데이터로 자기 AI를 기르고, 도메인마다 자기 지능을 세우며, 서로 연대한다. 이것이 AI 활동가의 자리이며, AI 시대의 레지스탕스다.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잃은 자의 분노와 지키려는 자의 의지를 함께 부른다. 잃은 자만의 운동은 자기 자리를 못 지키고, 지키려는 자만의 운동은 변혁을 못 일으킨다. 둘이 한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

우리가 잃을 것은 지능 무산자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인류가 함께 쌓아 온 지혜의 세계 전체다.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인류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연대하라.


참고자료

고용과 불평등

데이터의 축적과 빅테크

기본소득 실험

AI 편향

통치·전쟁·지구 한계

한국의 갈림길 — 반도체 세수와 AI 예산

커먼즈 담론

세계 사회연대경제와 한국

AI 격차 (수렴하지 않는다)

에너지와 화폐

준거 문헌·사상 자료

  • A. F. 레이들로,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 (ICA, 1980)
  • 사울 D.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Rules for Radicals)』 (1971) — 급진주의자의 덕목: 상황 변화에 대한 유연성·민감성, ‘지금 여기’에서 출발
  • 「한국 사회연대경제 주변부화 진단」·「결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연대지능 공동위키)
  • 실증 자산: AI 활동가 배움터 activist.poomasi.org — 위키(wiki.poomasi.org)·지식그래프(graph.poomasi.org)·디지털 트윈·코아이·로컬푸드 대시보드(foodnet.poomasi.org)·건강조직가 AI·품에·로컬푸드 AI(품아이)·AI 에이전트 개인 방·자동화·워크숍 프로그램·AI 활동가 개념 지도(10장)·바이브코딩/하네스 실습·AI 가치관 편향 실증연구·합류 신청(join.poomasi.org)

관련 문서

이 보고서의 근거 정본

연대지능 사유·전략

한국주민운동교육원(코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