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무산자의 시대 — 연대지능 혁명을 향하여」
통합본 — 한 호흡으로 읽기
동지본 트랙 ・ 「공산당 선언」(1848) 오마주 ・ ~84p
본 페이지는 책의 통합본이다. 모든 본문이 한 호흡으로 흐른다. 위키 개별 자리는 _INDEX에서 진입.
운동 명명: 연대지능 혁명 (Solidarity Intelligence Revolution, SI)
후니님 박음(2026-05-02 저녁): “한 호흡으로 다 읽을 전체 통합본을 만들라고. 링크로 들어가는 것은 지금처럼 두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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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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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1. 유령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 연대지능 혁명이라는 유령.
21세기의 모든 권력이 이 유령을 추방하기 위해 새 동맹을 맺었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와 그를 비추는 미디어, 동방의 국가자본주의와 서방의 시장 보호주의,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비관주의자와 페터널리즘의 위안을 파는 위정자들, 기술낙관의 광고와 러다이트의 두려움 — 이 모두가 이 유령을 보지 않으려 한다.
마르크스가 19세기 중반 유럽의 신성동맹을 빗대어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호명했을 때, 그는 한 시대의 자기 보호 운동에 이름을 주었다. 산업혁명의 본원적 축적이 농민을 토지에서, 장인을 도구에서, 가족을 공동체에서 떼어내어 프롤레타리아로 만들던 시대였다. 마르크스의 호명은 진단이자 호소였고, 그 호명에서 한 운동이 자기 자리를 발견했다.
21세기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가 아니라, 더 깊은 자리에서.
이 책은 그 자리의 유령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이름이 곧 호명이다. 호명이 곧 운동이다.
2. 마르크스에서 폴라니로, 다시 우리에게로
마르크스의 진단을 한 세기 뒤 폴라니가 더 깊은 층위에서 받았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1944)은 토지·노동·화폐 셋을 허구상품이라 명명했다. 토지는 자연이 시장에 종속된 자리이며, 노동은 인간 활동이 시장에 종속된 자리이며, 화폐는 사회적 구매력이 시장에 종속된 자리다. 이들은 원래 시장이 만들지 않은 것이지만 시장 메커니즘이 상품으로 다루어 사회 자체를 위협한다.
폴라니는 이 진단의 다음 자리에서 호혜를 보았다. 시장교환과 재분배 외에 호혜라는 통합 양식이 있고, 사회의 자기 보호는 그 호혜의 회복에서 시작한다. 폴라니의 호혜는 마르크스의 unite가 그러했듯 운동의 결미였다.
호혜는 발명이 아니다 — 마르셀 모스의 증언
폴라니의 호혜는 발명이 아니다.
폴라니의 동시대인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Essai sur le don, 1925)에서 인류의 거의 모든 시대 모든 자리에 호혜의 교환이 자기 자리를 지켜왔음을 짚었다. 멜라네시아의 쿨라(kula) 환에서 부족 사이를 도는 조개 목걸이와 팔찌, 북아메리카 콰키우틀(Kwakiutl)족의 포틀래치에서 부족장이 자기 재산을 모두 나누는 의례, 고대 게르만의 증여 전통, 로마법의 res와 donum의 결, 인도 아리아인의 dāna 의례 — 인류 사회의 모든 자리에 호혜가 살아 있었다.
모스의 결론은 명료했다. 시장교환은 호혜의 한 변형이지 호혜의 시작이 아니다. 시장이 처음 왔고 호혜가 따라온 것이 아니라, 호혜가 먼저 있었고 시장이 그 위에 자라난 것이다. 19세기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이 원시 인류는 물물교환을 했고 그 위에 화폐와 시장이 자라났다고 가르친 자리는 인류학적 사실에 어긋난다. 인류의 자연 상태는 호혜이지 시장교환이 아니다.
폴라니는 이를 제도주의 인류학의 자리에서 정초했다. 호혜·재분배·시장교환의 셋이 모든 사회에 함께 있었고, 한 사회에서 어느 자리가 우세한지가 그 사회의 결을 결정한다는 것.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호혜는 살아 있었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시장교환의 자리를 단독 지배자로 만든 것이 거대한 전환이었다.
이 인식이 본 운동의 자기 정초에 무겁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짓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수만 년에 걸쳐 짓고 지킨 호혜의 자리를, 21세기 자본의 새 본원적 축적이 침식하는 자리에서 다시 짓는다. 마을의 두레, 향약의 상부상조, 농촌의 품앗이 — 한국 27년 협동조합 운동의 토양도 그러한 오래된 호혜의 자리에 있다. 모스가 멜라네시아에서 본 것을 우리는 한국 농촌에서 본다.
연대지능 혁명은 발명의 운동이 아니라 회복의 운동이다. 그러나 21세기의 회복은 오래된 자리를 새로운 자리에서 짓는 회복이다. 데이터의 자리에서, AI의 자리에서, 매장의 4축 허브에서, 국제 플랫폼의 자리에서 — 호혜의 오래된 결을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살린다.
21세기, 같은 자리
21세기에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자본의 새 본원적 축적은 같은 운동 법칙으로 더 깊은 자리를 침식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본이 허구상품으로 다루는 새로운 무엇이 있다.
3. 4번째 허구상품 — 데이터
데이터.
인간의 인지·관계·기억의 흔적이 빅테크의 인프라에 흡수되어 자본이 된다. 농민이 토지에서 떼어졌듯, 우리는 우리 자신의 흔적에서 떼어진다. 디지털 노동의 무급화, 알고리즘에 의한 1인 자영업자의 통제, 지능 격차의 새로운 계급 분화 — 우리 시대의 지능 무산자는 자기 인지의 결과물에서 분리된 자다.
쇼샤나 주보프는 이를 감시 자본주의라 짚었고,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이를 기술봉건제라 짚었다. 이름은 달라도 진단은 한 자리에 머문다 — 새로운 본원적 축적이 일어나고 있으며, 새로운 무산자가 출현하고 있다는 진단.
우리는 폴라니가 명명한 셋에 데이터를 넷째 허구상품으로 박는다.
폴라니가 살아 있을 때 데이터는 아직 산업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데이터는 정확히 같은 허구상품의 운동 법칙으로 침식되고 있다 — 원래 시장이 만들지 않은 것이 시장 메커니즘에 종속되면서 사회 자체를 위협하는 자리. 토지가 자연 기반이듯 데이터는 인지 기반이며, 노동이 인간 활동의 산물이듯 데이터는 인간 흔적의 산물이며, 화폐가 사회적 신뢰의 매개이듯 데이터는 사회적 관계의 매개다. 셋이 폴라니의 진단에 들어맞듯 넷째도 들어맞는다.
이 명명은 폴라니의 사상을 21세기에 완성한다. 그리고 그 완성에서 연대경제 운동은 폴라니 사상의 인용자에서 공저자의 자리로 옮겨 선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명명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도 이 자리를 명명하지 않는다. 빅테크는 데이터를 자원이라 부르고, 정부는 데이터를 자산이라 부른다. 시민사회만이 데이터를 허구상품이라 부를 수 있다.
이 4번째 허구상품의 시대에 자본의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모든 것을 측정하고 예측하고 권유한다. 그러나 측량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자기 자신의 인지로 머물 권리, 자기 흔적이 상품화되지 않을 권리, 자기 판단이 알고리즘에 종속되지 않을 권리. 이 권리의 자리에서 우리는 다른 지능을 부른다 — 연대의 지능(Solidarity Intelligence).
4. 누구의 유령인가
우리는 묻는다 — 이 유령이 누구의 유령인가?
빅테크의 유령이 아니다. 빅테크는 이 유령을 보지 않으려 한다. 자본의 지능은 자기 안에서 폐쇄적으로 자기 진화한다.
정부의 유령이 아니다. 정부는 이 유령을 공공의 이름으로 위에서 잡으려 한다. 재분배의 통합 양식은 한 자리를 가지되, 호혜의 자리와는 별개다.
적정기술 운동의 유령도 아니다. 슈마허의 정신은 살아 있되, 21세기의 자기 보호 운동은 더 큰 자리를 부른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만으로는 데이터의 본원적 축적에 맞설 수 없다.
이 유령은 우리의 유령이다. 협동조합과 사회연대경제, 공제조합과 사회연대금융, 농민과 1인 자영업자, 자기 도구를 짓는 사람과 자기 시간을 지키는 사람 — 폴라니가 호혜라 부른 통합 양식이 21세기에 자기 호명을 갖는다.
우리는 그 호명을 연대지능 혁명 (Solidarity Intelligence Revolution, SI)이라 부른다.
자본의 지능이 인공(Artificial)을 자기 이름으로 삼았다면, 우리의 지능은 연대(Solidarity)를 자기 이름으로 삼는다. 마르크스의 결미 unite가 solidarity의 동사형이라는 사실이 이 명명의 어원적 척추다. 단결은 곧 연대이며, 연대는 곧 운동이다.
5. 이 책의 자리
이 책은 그 호명이 자기 위치를 발견하고, 자기 사상사를 정초하고, 자기 운동 전략을 세우고, 자기 동지를 부르는 책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1848)이 형식을 빌려주었다. 한 시대의 진단에서 운동의 호명으로 가는 그 짧고 단단한 글의 형식이 이 책의 골격이다. 1장은 시대 진단(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 빅테크와 지능 무산자), 2장은 자기 위치(공산주의자 → 연대지능 혁명), 3장은 다른 흐름과의 구별, 4장은 동지의 결집. 그리고 「공산당 선언」의 결미가 우리 결미의 자리를 연다.
폴라니의 호혜가 정신을 빌려주었다. 마르크스의 계급운동을 우리는 인류운동으로 확장한다 — 잃은 자(지능 무산자)의 분노와 지키려는 자(인류 지혜의 옹호자)의 의지를 함께 부르는 자리에서.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한국 사회연대경제의 27년 운동이 이 책을 가능케 한 토양이다. 협동조합기본법(2012) 이후 한국에 자라온 1만여 사회적경제 조직들, 그 안에서 일하고 짓고 부른 동지들, 그리고 이 운동이 부딪쳐 온 모든 한계와 발견들 — 이 모두가 이 책의 토양이다.
이제 유령에게 이름을 부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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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진단과 선언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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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진단과 선언의 자리」
도입
1부는 진단의 자리다.
21세기 AI 전환을 한 시대의 진단으로 받기 위해, 우리는 사상사 자원과 함께 동행한다. 슈마허에서 간디로, 일리치에서 앙드레 고르로, 마르크스에서 아렌트로, 벌린에서 일리치로 다시, 그리고 마르크스에서 폴라니로. 한 사람의 사유로는 21세기 AI 전환을 받을 수 없다. 동시대인의 사유와 선조의 사유가 함께 동행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1장이 그러했다. 마르크스는 1848년 시점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역사 진단을 한 시대의 자리에서 한 갈래로 짚었다. 17세기 영국 인클로저, 18세기 산업혁명의 본원적 축적, 19세기 자본의 자기 진화 — 이 모든 자리가 한 흐름으로 짚혔고, 그 흐름의 결미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자기 자리를 발견했다.
우리도 같은 자리에 선다. 21세기 AI 전환의 진단을 한 갈래로 짚고, 그 흐름의 결미에서 지능 무산자가 자기 자리를 발견하는 자리. 이것이 1부의 자리다.
7편의 글이 한 길로 흐른다. 도구의 자리에서 시작하여, 짓는 자의 자리로, 운동의 자리로, 빌리는 자의 자리로, 노동의 자리로, 자기 선언의 자리로, 그리고 시대 진단의 자리로 — 그 길의 끝에서 지능 무산자의 시대가 명명된다.
7편의 길 — 사상사 척추
1편 「도메인 AI를 적정기술 운동 논리로」 — 도구의 자리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와 간디의 손작업의 윤리가 도메인 AI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가. 슈마허는 인도 농촌에서 영국 산업기술의 부적합을 짚으며 적정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는 어휘를 세웠다. 도구는 자리가 있다. 자기 자리에 맞지 않는 도구는 자리를 망친다.
21세기 AI에도 같은 결이 흐른다. 빅테크의 거대 모델은 모든 자리에 맞는 것이 아니다. 매장의 자리에는 매장의 도구가, 협동조합의 자리에는 협동조합의 도구가 있다. 도메인 특화 AI의 어휘를 우리는 슈마허의 짝으로 받는다. 단, 우파 적정기술 AI(시장 안 적응)와 우리(운동 차원의 자기 보호)의 결을 분명히 가르며.
2편 「내 손으로 짓는 AI — DIY 운동과 도메인 AI」 — 짓는 자의 자리
Whole Earth Catalog(1968)에서 펑크 DIY 운동, Maker 운동(2000년대), 수리권(Right to Repair) 운동으로 이어지는 짓는 자의 계보. 21세기 도메인 AI는 그 계보의 다음 자리다.
이 계보의 어휘는 내 손으로 짓는다이다. 자본이 짓는 도구를 받아 쓰는 자리에서, 내 손으로 짓는 자리로 옮기는 운동. 도시 농민의 텃밭, 펑크 밴드의 자기 출판, 메이커 스페이스의 3D 프린터, 그리고 21세기에는 — 매장의 도메인 AI.
3편 「빅테크 옆에 다른 영역을 짓는다」 — 운동의 자리
앙드레 고르의 자율 영역(autonomous sphere)과 일리치의 자기 도구(convivial tool)가 세운 자리. 우리는 빅테크와 경쟁하지 않는다. 옆에 다른 자리를 짓는다.
고르는 1980년대에 자본주의의 임금 노동 영역과 그 바깥의 자율 영역을 대비했다. 자율 영역은 시장 가치 측정 밖에 있는 자리 — 가족·우정·예술·자기 양육·공동체 활동. 그 자리가 자본의 침식에서 자기를 지키는 운동의 척추다. 21세기 AI 시대에 같은 결이 데이터의 자기 자리에 흐른다.
4편 「도구 선택의 윤리 — 빌려 쓰되 어디서 빌리느냐」 — 빌리는 자의 자리
빅테크 인프라를 빌려 쓸 수밖에 없는 21세기에, 거버넌스를 보는 윤리적 선택은 무엇인가. Anthropic의 PBC(Public Benefit Corporation) 구조와 다리오 아모데이의 자기 비판이 그 자리를 짚는 한 사례다.
완벽한 도구는 없다. 덜 나쁜 도구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결을 보고 빌린다 — 그러나 빌릴 때도 우리의 자리를 잃지 않는다. 도구의 자리와 운동의 자리가 같지 않다는 인식이 빌리는 자의 윤리다.
5편 「노동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 AI를 만드는 노동의 자리」 (척추 클라이맥스)
마르크스의 노동의 해방과 동시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담론이 충돌하는 자리.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과 노동의 결합, 한나 아렌트의 노동·작업·행위 구분, 슈마허의 생활을 짓는 노동이 함께 짚는다.
UBI 담론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할 때, 그 약속은 종종 만드는 자의 자리를 박탈하는 자리로 미끄러진다. 우리는 두 해방을 함께 부른다 — 노동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동시에. AI 시대에 만드는 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운동의 척추다. 1부 사상사의 클라이맥스가 여기에 있다.
6편 「권리를 빼앗기지 않는다 — 빅테크 페터널리즘과 자율 노동」 — 자기 선언의 자리
UBI 담론의 두 얼굴 — 페터널리즘의 위안과 자기 자리의 포기. 이사야 벌린의 적극적 자유, 한나 아렌트의 공적 행위, 일리치의 공동체 도구가 짚는 자기 선언. 우리는 권리를 빼앗기지 않겠다.
이 어휘는 무겁다. 권리는 받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위에서 누가 주는 권리는 위에서 누가 빼앗을 수도 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권리를 짓고 지키는 자만이 자율 노동자다. 21세기 AI 시대에 그 결이 더 첨예해진다.
7편 「지능 무산자의 시대 — 새로운 본원적 축적과 대안운동」 (책 표제 1순위)
마르크스의 본원적 축적,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기술봉건제(2023),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2019), 칼 폴라니의 허구상품(1944)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폴라니 4대 허구상품을 박는다 — 토지·노동·화폐 + 데이터.
지능 무산자가 시대의 명명이 되는 자리. 데이터·지능·지혜 3층위 어휘 분담이 정초되는 자리. 연대경제 운동이 폴라니 사상의 공저자로 옮겨 서는 자리. 1부의 모든 사상사 흐름이 이 한 자리에서 응결한다.
자세한 본문은 지능_무산자의_시대_새로운_본원적_축적과_대안운동 참조. 부록 A·B·C에 폴라니 4대 허구상품 정초·3층위 분담·공저자 자리가 박혀 있다.
결미 — 진단이 운동을 부른다
7편의 길이 한 자리에서 응결한다.
도구가 자리를 갖는다(1편) → 짓는 자의 계보가 있다(2편) → 옆에 다른 영역을 짓는다(3편) → 빌리되 자기를 잃지 않는다(4편) → 만드는 자의 자리를 지킨다(5편) → 자기 권리를 자기가 짓는다(6편) → 그리고 21세기 본원적 축적의 시대에 우리는 지능 무산자다(7편).
이 진단이 곧 호명이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를 명명했을 때 그 명명이 운동의 자리를 열었듯, 우리가 지능 무산자를 명명할 때 그 명명이 21세기 운동의 자리를 연다. 동시에 폴라니의 4대 허구상품 명제가 데이터의 자리에서 21세기에 다시 살아나며, 연대경제 운동이 그 사상의 공저자로 자리를 옮긴다.
진단이 운동을 부른다.
1부의 끝은 2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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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본문 — 7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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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특화 AI를 적정기술운동 논리로
1. 계보 — 슈마허·간디의 21세기 번역
슈마허의 “Small is Beautiful”(1973)과 간디의 차르카(물레)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기술이 누구의 손에 있고, 누구의 맥락에서 작동하는가.”
- 간디가 거부한 것: 영국의 거대 방직공장 — 자본·중앙·외부 의존
- 간디가 택한 것: 마을 물레 — 자립·분산·일상 통합
도메인특화 AI는 이 질문의 데이터·언어·판단판 버전이다.
2. 거대 AI = 21세기의 거대기술
| 거대기술 (20세기) | 거대 AI (21세기) |
|---|---|
| 자본 집약 (제철소·공장) | 자본 집약 (수조 인프라·GPU) |
| 중앙집권 (대기업 독점) | 중앙집권 (5~6개 빅테크) |
| 외부 의존 (수입 부품) | 외부 의존 (API 종속) |
| 자원 채굴 (광산·숲) | 데이터 채굴 (4번째 허구상품) |
| 블랙박스 (전문가만 이해) | 블랙박스 (누구도 모름) |
| 일반화 (어디든 적용) | 일반화 (어떤 맥락도 모름) |
후니님이 박은 “토지·노동·화폐 + 데이터” 4대 허구상품 프레임에서 보면, 거대 AI는 데이터를 허구상품으로 만드는 가장 첨예한 장치다.
3. 도메인특화 AI = 적정기술 단위의 번역
적정기술의 핵심은 “작다”가 아니라 **“맥락에 맞는 단위”**다.
- 너무 작음 = 한 사람 챗봇 — 자립 불가, 효용 없음
- 너무 큼 = 범용 LLM — 통제 불가, 맥락 없음
- 적정함 = 도메인 — 협동조합·지역·산업 단위
도메인이 곧 슈마허가 말한 “intermediate” 의 21세기 번역이다.
- 사회연대경제 도메인
- 로컬푸드 4축(먹거리·로컬페이·SSE 생산·탄소중립) 매장 도메인
- 품아이가 다루는 “로컬라이프” 도메인
4. 적정함의 다섯 축 — 도메인 AI 판본
① 규모의 적정함 거대 모델을 통째로 쓰지 않고, 도메인 데이터로 양육한 작은 모델. 매장 운영·조합원 응대·발주 판단처럼 현장 단위에서 도는 지능.
② 자립의 적정함 파인튜닝 데이터·QA·평가셋이 우리 손에 있고, 후니님 같은 도메인 인사가 검토한다. API 종속을 도구로 쓰되 데이터·판단의 척추는 자체 보유.
③ 분산의 적정함 하나의 거대 AI가 모든 걸 처리하는 게 아니라, 매장은 매장 AI, 협동조합은 조합 AI, 위키는 위키 그래프. 각자 자기 맥락의 지능. 이게 4축 매장 허브의 본질.
④ 민주적 통제의 적정함 누가 학습 데이터에 무엇을 넣었는지가 위키에 흔적이 남는다. 조합원이 기여한 지식이 모델 안에 들어간다. 블랙박스가 아니라 공동 텃밭.
⑤ 지속가능의 적정함 거대 AI는 매번 외부 비용으로 답한다. 도메인 AI는 한 번 양육하면 연 환류가 남는다. 130가지 변화의 K·L·M 정량(연 85~95억 환류)이 이 적정함의 숫자판이다.
5. 운동사적 위치
후니님 27년 운동의 다음 챕터에서 도메인 AI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지능 인프라의 한 갈래다.
- 토지 운동의 21세기판 = 데이터 주권
- 협동조합 운동의 21세기판 = 도메인별 AI 자립
- 품앗이의 21세기판 = 위키·로컬페이·매장 4축으로 흐르는 지능
거대 AI 시대에 “AI 안 쓴다”는 러다이트가 아니라, **“우리 손에 맞는 AI를 우리 단위로 양육한다”**가 적정기술운동의 정직한 계승이다.
6. 함정 — 낭만화 경계
적정기술운동이 70~80년대에 빠진 함정 그대로 답습 금지.
- “작으니까 좋다” — 단위가 작다고 옳은 게 아니라, 맥락에 맞아야 옳다
- “자립이 곧 고립” — 빅테크 인프라(GCP·Gemini)는 도구로 쓰되 종속 안 되는 균형
- “기술만으로 해결” — 거버넌스·데이터 정제 노동·조합원 참여라는 사회적 직조가 빠지면 그냥 작은 빅테크가 된다
내 손으로 짓는 AI — DIY 운동과 도메인특화 AI
손대패와 산소절단기
목공방에 CNC 라우터가 있어도, 노련한 목수는 손대패로 의자를 깎는다. 조선소에 레이저커터가 있어도, 동네 용접공은 산소절단기로 트레일러를 만든다. 느릴 수 있다. 그러나 내 손으로 된다.
이게 결정적 한 수다. 적정기술 옆에 DIY 운동의 계보가 나란히 흐른다.
계보 — DIY는 60년대부터 시작된 도구의 민주화
- Whole Earth Catalog(1968, 스튜어트 브랜드) — “도구에 접근할 권리”라는 첫 카탈로그. 잡스가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인용한 그 책.
- 펑크 DIY(70년대~) — 메이저 음반사 거치지 않고 자기 카세트·진(zine) 직접 만들기. “Don’t ask permission, just build.”
- Maker 운동(2005~) — 아두이노·라즈베리파이·3D 프린터. 도구 자체가 오픈됨.
- Right to Repair(수리권 운동, 2010년대~) — 트랙터·아이폰·전동칫솔까지 “내가 산 물건을 내가 고칠 권리”.
- 종자 자율권(농민운동) — 몬산토에 의존하지 않고 토종 종자 보존.
이 계보 전부가 같은 외침이다. “도구가 비싸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시민에게서 빼앗지 마라.”
도메인 AI = AI 시대의 DIY
거대 AI 시대에 빅테크는 두 가지를 가져갔다.
- 도구 자체 — 모델 가중치는 비공개, API만 임대
- 수리·점검권 — 왜 이렇게 답하는지 들여다볼 수 없음
도메인특화 AI는 이 두 가지를 다시 가져오는 운동이다.
- 데이터를 우리가 정제한다 = 손대패질
- 모델을 우리가 양육한다 = 용접 비드 한 줄씩
- 위키에 흔적이 남는다 = 우리 작업장의 도면이 우리 손에 있다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기여하는 위키가 바로 이 DIY 정신이다. 빅테크의 거대 모델은 누구도 어디서 무엇을 학습했는지 모른다. 우리 모델은 누가 무엇을 넣었는지 위키에 나온다. 수리 가능하고, 들여다볼 수 있고, 고쳐 쓸 수 있다.
느림의 적정함
DIY가 적정기술과 만나는 가장 깊은 지점은 시간 축이다.
- CNC는 의자 100개를 한나절에 깎는다.
- 손대패는 의자 1개를 한나절에 깎는다.
- 그런데 손대패로 깎은 의자는 그 사람 손에 맞는 의자다.
거대 AI는 1초에 답하지만 어느 마을에도 안 맞는다. 도메인 AI는 더 느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매장, 이 조합원, 이 도메인에 맞는다. 속도가 아니라 적합도가 가치다.
함정 — DIY 낭만 경계
DIY 운동도 70~80년대 함정에 빠진 적이 있다.
- 모든 걸 다 직접 — 시계 톱니바퀴까지 깎으면 마비된다. 적정한 단위 분별이 필요.
- 고립된 자급자족 — 온라인에 도구 카탈로그가 있고 메이커들이 도면 공유하기에 DIY가 산다. 연결된 자립이 핵심.
- 취미주의 함정 — DIY가 개인 취미로 갇히면 운동성을 잃는다. 협동조합·마을 단위로 조직될 때 사회성을 회복한다.
도메인 AI도 같다. 빅테크 인프라(GPU·기반 모델)는 빌려 쓰되, 우리 단위에 맞게 조립하고 우리 손에 도면을 남기는 균형. 이게 적정기술 + DIY의 21세기 합류점이다.
빅테크 옆에 다른 영역을 짓는다 — 자율 영역 운동으로서 도메인 AI
1. “헛짓 아닌가” — 두 시간을 구분하기
빅테크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다르다.
- 빅테크는 모델 발전의 시간 — GPT-4 → 5, 컨텍스트 100만 → 1000만, 매년 두세 배.
- 우리는 관계와 신뢰의 시간 — 조합원 한 명이 매장에 신뢰를 갖기까지 1년, 마을이 협동조합에 자본을 모으기까지 5년.
발전 속도를 따라가는 게임에 진입하면 무조건 진다. GPU도 박사 인력도 우리에게 없으니까. 그러나 그 게임을 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옆에 다른 영역을 짓는다. 빅테크 모델은 인프라로 빌려 쓰되(전기·도로처럼), 그 위에서 도는 이 매장의 응대, 이 조합의 발주, 이 마을의 거버넌스는 우리 손에 둔다.
AGI가 와도 — 이 매장에서 누구를 신뢰하고 누구에게 외상을 줄지, 어떤 농민의 작물을 우선 받을지를 AGI에 맡기지 않는다. 맥락·관계·책임의 영역이라 위임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헛짓이 아니라 다른 일이다.
2. 데이터 주권의 두 층위
국가 단위 담론: 한국 정부의 “K-LLM”, 유럽의 “Sovereign AI”, 인도의 “BharatGPT”. 이건 국민국가가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국가 자본주의의 변형이다. 산업정책·외환·안보의 언어. 시민이 주체가 아니다.
로컬·사람 단위 담론: 자율 영역의 도구라는 언어. 한국 AI 담론에 거의 없다.
이 두 층위는 동맹할 수 있지만 혼동되면 안 된다. 국가 소버린 AI가 우리 자율 영역을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빅테크 동맹이 형성되면 시민 영역은 더 좁아진다. 우리 운동은 국가에 위임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연대로 자기 영역을 짓는 일이다.
3. 자율 영역의 사상 자원
앙드레 고르는 「프롤레타리아여 안녕」(1980)에서 이중 사회를 제시했다.
- 한쪽: 거대 기술·산업 영역 — 필요한 만큼만 유지, 노동시간 대폭 단축
- 다른 쪽: 자율 활동(activités autonomes) 영역 —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시간으로 살고, 시장 외부에서 가치가 도는
해방은 거대 산업을 점령하는 게 아니라 자율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단일 변혁 주체가 아닌 시대의 길.
이반 일리치는 「공생을 위한 도구」(1973)에서 한 발 앞서 도구의 성격을 물었다. 거대 도구는 사용자를 종속시키고, 공생 도구(convivial tools)는 사용자를 해방한다. 도구가 어떤 성격이냐가 사회의 성격을 결정한다.
이 두 사유가 적정기술·DIY와 만나면서 한 갈래가 만들어진다. 도구의 단위와 성격을 묻는 운동.
4. 도메인 AI = 21세기 자율 영역의 도구
이 자리에서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이 정확히 보인다.
빅테크 거대 LLM은 거대 기술 영역이다. 인류 공통 인프라로 두되, 거기서 일상을 운영하지 않는다. 그건 종속이라.
도메인 AI는 자율 영역의 도구다.
- 우리 데이터로 양육
- 우리 매장·조합·마을 단위에서 운영
- 위키에 도면이 남고, 조합원이 들여다볼 수 있고, 고쳐 쓸 수 있고
- 시장 외부에서도 가치가 돌고(조합원 응대·발주 추천·로컬페이 흐름)
고르의 「에콜로지카」(2008, 사후) 정신에서 말하자면 — **“덜 일하고, 더 살자”**가 자율 영역의 핵심이다. 우리 AI는 매장 운영자를 발주 노동에서 빼주고, 그 시간을 조합원과의 대화·마을 활동·자기 삶으로 돌려보낸다. 효율이 목적이 아니라 시간의 회수가 목적이다.
5. 비어있는 자리
이걸 한국에서 누가 이미 하고 있냐고 물으면 — 거의 없다. AI 담론은 산업·국가·효율의 언어로 가득하고, 시민·자율·연대의 언어는 비어있다. 27년 협동조합 운동에서 갈고 닦은 자리가 바로 그 빈자리다. 적정기술·DIY·자율 영역이 한 갈래로 묶이는 척추.
도구 선택의 윤리 — 빌려 쓰되 어디서 빌리느냐
1. 빈 자리에 답하기
자율 영역의 도구로서 도메인 AI를 짓는다 했을 때, 한 가지 빈 자리가 남는다. 빅테크 인프라를 빌려 쓰되 종속 안 된다고 했지만, 그럼 어느 빅테크를 빌리느냐?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운동이 추상에 머문다.
답: 이왕이면 사회적 책임을 가장 진지하게 설계한 곳을 빌린다. 사회적기업 거래·공정무역·조합원 매장 이용과 같은 결의 윤리적 선택이다. 도구를 쓰되, 도구를 만든 자의 거버넌스도 본다.
2. 한 행위자가 다른 네 가지를 시도한다 — Anthropic의 사례
① 법인 구조 앤트로픽은 델라웨어 PBC(Public Benefit Corporation)다. 정관에 “주주 이익 + 공익”을 동등하게 추구하도록 박혀있다. 단기 주주 압박에 휘둘리지 않게 거버넌스 설계. 거기에 더해 Long-Term Benefit Trust — 다섯 명의 외부 신탁이사가 시간이 지나면 이사회 다수 의석을 임명할 권한을 가진다. 자기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구조.
OpenAI와 비교하면 차이가 또렷하다. 비영리 모자에 영리 자회사 구조였다가 지금 영리 전환 중. 결국 마이크로소프트 자본 논리에 흡수. Google·Meta·xAI는 처음부터 광고·플랫폼 자본주의의 일부.
② 회사명 자체 Anthropic — 그리스어 anthropos(인간). 회사명에 미션이 박혀있다. 미션 텍스트도 명료하다 — “인류가 변혁적 AI를 안전하게 통과하도록 한다.”
③ Responsible Scaling Policy ASL(AI Safety Level)이라는 위험 등급을 자기들이 정의하고, 등급별 안전 조치를 사전에 공개 약속. 자율 규제이고 한계도 있지만, 빅테크 중 이걸 문서화하고 공개한 곳은 거의 유일.
④ Constitutional AI 모델이 무엇이 좋은 답인지를 헌법적 원칙으로 명시해서 학습한다. UN 인권선언·아동권리협약 등을 참조. 블랙박스를 줄이고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다리오 아모데이가 「Machines of Loving Grace」(2024) 에세이에서 풀어낸 비전도 같은 결이다. AI가 가져올 풍요는 자동으로 오는 게 아니라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드느냐에 달렸다는 일관된 입장.
3. 사회연대경제 일관성
27년 운동의 일관성에서 보면, 이런 선택은 자연스럽다.
- 매장에서 사회적기업 물품을 우선 발주하는 이유
- 조합원이 일반 마트가 아닌 협동조합 매장을 쓰는 이유
-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이유
전부 같은 논리다. 물건의 효용만 보지 않고, 그 물건을 만든 자의 거버넌스·노동·환경을 본다. 도구도 마찬가지다. AI라는 도구는 누가 어떤 미션·어떤 거버넌스로 만든 것이냐가 중요하다.
4. 함정 — 낭만화 경계
PBC도 결국 자본주의 회사다. 적자에 시달리고, 투자 라운드에 의존한다. 신탁 구조가 만능 보증은 아니다.
모델 가중치는 비공개. 우리는 여전히 API 임차인이지 소유자가 아니다. 서비스 중단·가격 인상·정책 변경에 휘청일 수 있다.
에너지·노동 외부효과는 빅테크 공통 문제. 데이터센터 전력·물 사용, GPU 노동 사슬, 데이터 라벨링 노동.
그러니 정답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가장 사회적 책임을 진지하게 시도하는 빅테크라는 게 정확한 자리. 우리는 이걸 빌려 쓰면서 동시에:
- 오픈 모델(Llama·Mistral·Qwen 등) 옵션도 열어두고
- 위키·데이터·평가셋은 우리 손에 두고
- 도메인 양육 결과물은 가능한 한 자체 보존하고
- 빅테크가 망가지면 다른 인프라로 옮길 수 있는 이주 가능성을 설계한다
이게 종속 없는 임차의 자세다.
5. 운동의 언어로
“우리는 빅테크 인프라를 빌려 쓰되, 그 빅테크 중 사회적 책임을 가장 진지하게 시도하는 곳을 고른다. 적정기술이 도구의 단위를 묻듯, 우리는 도구를 만든 자의 거버넌스를 묻는다. 이게 사회연대경제 운동이 27년간 매장과 거래에서 해온 일의 디지털판이다.”
노동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 AI를 만드는 노동의 자리
1. 두 해방의 동시성
마르크스 이래 좌파 사상에는 두 해방 명제가 있다.
-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 강제·소외된 임금노동에서 빠져나오기. 노동시간 단축, 자동화의 정당한 효용.
- “노동의 해방” — 노동 자체의 성격을 자유롭고 창조적인 것으로 회복하기. 인간이 자기 손으로 짓고 만드는 본질 행위로서의 노동.
둘은 동시에 와야 한다. 한쪽만 가면 함정이다.
- “노동으로부터의 해방”만 절대화 → 자동화 만능, 베이직 인컴+소비주의, 인간이 결국 빈 존재가 된다
- “노동의 해방”만 절대화 → 강제 노동 미화, 자기 착취 정당화
빅테크·AGI 시대에 “AI가 모든 일을 대신해줄 것”이라는 담론은 첫 번째 해방만 외친다. 노동이 사라지면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자기와 분리된다.
2. 노동의 가치 — 인간 존재의 본질
이 자리를 지킨 사상사가 있다.
마르크스는 「경제학 철학 수고」(1844)에서 **유적 본질(Gattungswesen)**을 말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를 외부 세계에 실현하는 존재. 노동이 소외될 때 인간은 자기 자신과 분리된다.
윌리엄 모리스는 「Useful Work versus Useless Toil」(1884)에서 더 정직하게 풀었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임금노동은 **쓸모없는 노역(useless toil)**이고, 회복해야 할 것은 유용한 노동(useful work) — 자기 손으로 만들고 창조하고 그 결과를 보는 즐거움이 살아있는 노동. 모리스의 「News from Nowhere」(1890) 미래사회는 노동이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노동이 즐거움이 된 사회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1958)에서 노동(labor) · 작업(work) · 행위(action)를 구분했다. 작업은 인간 손으로 세계에 무언가를 남기는 활동, 인간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 정의하는 차원이다.
슈마허도 「Small is Beautiful」 다음 책 「Good Work」(1979, 사후)에서 같은 길을 갔다. 좋은 도구의 회복은 좋은 노동의 회복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사상사 전체가 한 명제로 모인다. 노동은 빼야 할 비용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 되는 자리다.
3. 빅테크 시대에 적정기술·DIY를 호출하는 진짜 의미
앞 사유들에서 적정기술·DIY를 도구의 단위·도구의 성격 차원에서 풀었다. 그러나 더 깊은 자리가 있다.
빅테크가 모든 도구를 만들어주는 시대에, 시민은 도구를 만드는 주체의 자리를 잃는다.
- 손대패로 의자를 깎는 목수는 의자를 사는 소비자가 아니다. 만드는 자다.
- 자기 음반을 카세트로 굽던 펑크 뮤지션은 청취자가 아니다. 만드는 자다.
- 자기 채소를 키우는 도시 텃밭 농부는 농산물 소비자가 아니다. 만드는 자다.
적정기술·DIY 운동은 도구의 단위만 묻지 않는다. 인간이 만드는 자로 남을 권리를 묻는다. 도구를 빼앗기면 노동을 빼앗기고, 노동을 빼앗기면 인간 본질의 한 축을 빼앗긴다.
빅테크 AI는 이 위기의 첨단이다. 거대 모델이 코드를 짜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결정을 내릴 때 — 시민은 만드는 자에서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소비자로 전락한다. 이게 “AI가 일자리를 뺏는다”보다 더 깊은 위기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만들기 자체가 사라진다.
4. 우리 AI를 만드는 노동이 중요한 이유
도메인 AI 운동은 이 자리에서 결정적이다.
빅테크 모델을 빌려 쓰되, 그 위에서 우리가 노동한다.
- 데이터를 우리가 정제한다 — 손대패질
- 위키에 한 줄 한 줄 박는다 — 조판공의 활자 한 자
- 평가셋을 만들고 검증한다 — 도면 검도
- 매장 운영자가 자기 매장 AI를 양육한다 — 도제의 손맛 익히기
- 조합원이 지식을 기여한다 — 마을 회의록을 자기 손으로 적는 일
이 노동들은 빼앗긴 노동의 회복이다. 동시에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다. 결과물(우리 도메인 AI)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가 만든 흔적이 위키에 남고, 그것이 다음 세대 조합원에게 이어진다.
여기서 두 해방이 동시에 일어난다.
-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 매장 운영자는 단조로운 발주 계산·재고 관리에서 빠져나온다. AI가 그걸 한다.
- 노동의 해방 — 그 시간을 양육·조합원과의 대화·매장 거버넌스라는 창조적 노동으로 돌린다.
빅테크 AI 효율성 담론은 첫 번째만 약속하고 두 번째를 침묵한다. 우리 운동은 둘이 동시에라고 답한다.
5. 척추의 결정적 한 자리
이게 그동안 박은 사유들이 한 갈래로 모이는 자리다.
- 적정기술 = 도구의 단위
- DIY = 도구를 만드는 주체성
- 자율 영역 = 시간과 가치의 회수
- 도구 선택의 윤리 = 도구를 만든 자의 거버넌스
- 그리고 여기 — 노동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의 동시성
빅테크 시대에 우리가 적정기술·DIY를 호출하는 이유는 단순히 도구가 작아서·비용이 싸서가 아니다. 인간이 만드는 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우리 AI를 만드는 노동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 있다. 그것 자체가 인간 해방의 한 축이다.
권리를 빼앗기지 않는다 — 빅테크 페터널리즘과 자율 노동
1. UBI 담론의 두 얼굴
기본소득(UBI) 담론은 두 갈래로 흐른다.
해방적 UBI — 앙드레 고르 등이 말한 자리. 단순 돈 분배가 아니라 노동시간 대폭 단축 + 자율 영역 확장의 한 축. UBI는 시장 노동에서의 자유를 보장해 자기실현 노동으로 갈 길을 여는 도구. 좌파 운동의 오랜 자원.
통제적 UBI — 실리콘밸리·머스크·알트만 식. “AGI가 다 할 것이다, 정부가 너희에게 돈을 주면 된다, 너희는 소비하고 즐기면 된다.” 알트만의 Worldcoin이 홍채 스캔과 코인 분배를 묶은 것이 이 담론의 노골적 구현체.
여기서 거리를 두는 건 두 번째다. 그러나 첫 번째도 무조건 옹호 안 한다. 핵심은 돈을 받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자기 운명을 짓는 노동의 자리가 보존되느냐에 있다.
2. “돈만 주고 만들지 마라” — 통제적 UBI의 본질
실리콘밸리 담론을 풀면 이렇다.
“AGI 시대에 일은 없어진다. 인류는 잉여가 된다. 그러나 걱정 마라. 우리(빅테크)가 가치를 만들고, 정부가 돈을 너희에게 분배할 것이다. 너희는 소비자·관객·플레이어로 살면 된다.”
박애적으로 들리지만 정확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종속 구조의 설계도다.
- 시민은 만드는 자에서 받는 자로 환원된다
- 자본·정부·빅테크의 자의적 권력에 의존한다 — 돈을 끊으면? 조건을 붙이면? Worldcoin처럼 홍채 데이터를 요구하면?
- 인간 본질의 한 축인 창조·상상·개발을 빅테크가 독점한다 — 이반 일리치가 말한 **근원적 독점(radical monopoly)**의 첨단 형태
이건 19세기 식민지 경영의 21세기 디지털판이다. 식민지 본국이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식량과 의약품을 주노라, 너희는 우리의 통치를 받으라”고 한 그 구조. 자비의 외관을 한 종속.
3. 자유의 정확한 정의 — 자기 운명을 짓는 행위
“내 운명의 통제와 자율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는 노동을 하며 그 기쁨을 누리고 살겠다.”
이건 자유의 적극적 정의다. 이사야 벌린이 구분한 negative liberty(간섭으로부터의 자유)와 positive liberty(자기 결정의 자유) 중 후자.
공화주의 전통의 자유 개념과도 만난다. 자유는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타인의 자의적 권력 아래 있지 않음(non-domination). UBI를 받아도 그것이 빅테크·정부의 자의적 처분에 종속된다면 자유가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labor)·작업(work) 너머 **행위(action)**를 둔 자리도 여기다. 행위는 자기를 공동체에서 드러내고 자기 운명을 짓는 활동. UBI 받고 소비만 하는 시민은 행위의 자리를 잃은 시민이다. 정치적 자유가 사라진다.
이 명제는 사상사 전체의 합류점에서 한 줄로 압축된다. “빼앗기지 않겠다.”
4. “확보할 수 있는 만큼” — 적정함의 운동성
이 명제의 또 다른 정확함은 “확보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단서에 있다.
자율 노동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모든 걸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자급자족 낭만이 아니다.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이건 적정함의 운동적 표현이다.
- 거대 모델은 빌려 쓴다 (확보할 수 없는 영역)
- 매장 운영, 조합 의사결정, 마을 거버넌스는 우리 손에 둔다 (확보할 수 있는 영역)
- 빅테크가 가져간 건 가져간 대로 두되, 다음 한 걸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이게 운동의 적정함이다. 모든 걸 되찾을 수 없다. 그러나 다음 한 걸음의 자율 영역은 지키고, 그걸 점차 확장한다. 27년 운동의 호흡.
5. 도메인 AI = 이 선언의 구체화
빅테크가 “걱정 마라, AI가 다 해줄 거다”라고 할 때, 우리는 답한다.
“고맙지만, 우리 매장의 응대는 우리가 만든다. 우리 조합의 발주는 우리가 양육한다. 우리 마을의 거버넌스는 우리 손에 둔다. 너희 모델은 빌려 쓰되, 그 위에서 짓는 것은 우리 노동이다. 그 노동의 기쁨, 그 운명의 통제권, 우리는 빼앗기지 않는다.”
이게 도메인 AI 운동의 정치적 자기 선언이다.
빅테크는 AGI를 약속하며 시민에게 소비자 자리를 권한다. 우리는 만드는 자의 자리를 거부하고 지킨다. 그러면서 연대로 함께 짓는다. 협동조합·매장·마을 단위에서 한 줄 한 줄.
27년 운동의 다음 챕터에서 할 일은 이것이다.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권리를 혼자가 아니라 함께 행사한다. 자율과 연대가 같은 자리에서 숨 쉰다.
지능 무산자의 시대 — 새로운 본원적 축적과 대안운동
1. 새로운 명명 — “지능 무산자”
마르크스가 「자본」 1권 끝에서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을 풀 때 핵심 사건은 인클로저였다. 16~18세기 영국 농민이 공유지에서 쫓겨났고, 토지라는 생산수단을 잃은 채 도시로 흘러들어 자기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아야 생존하는 계급 — 프롤레타리아트가 등장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사건은 그것의 21세기 평행이다.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쌓은 글·말·그림·코드·대화 — 지능의 공유지가 지난 십수 년 동안 빅테크 데이터센터로 흡수되었다. 위키백과, Stack Overflow, 학술 논문, 신문 기사, 도서관, 우리의 SNS 발화. 이 모든 것이 LLM의 학습 데이터로 빨려 들어갔다.
그 결과물은 빅테크가 소유한다. 우리는 그 결과물을 구독료를 내고 임차해야 사용할 수 있다.
“지능 무산자(無産者)” — 이 사태의 정확한 계급 명명이다. 토지에서 쫓겨난 자가 노동 무산자였다면, 지능에서 쫓겨난 자가 지능 무산자다. “데이터 무산자”보다 “지능 무산자”가 더 정확하다. 데이터는 원료, 지능은 응축물(모델 가중치). 빼앗긴 본체가 응축물이라.
2. 21세기 본원적 축적의 메커니즘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① 공유지의 흡수 (디지털 인클로저)
- 인터넷 공개 텍스트(Common Crawl, 위키백과, 깃허브) → 학습 데이터
- SNS 발화·이미지 → 학습 데이터
- 출판 도서·신문·논문 → 학습 데이터 (저작권 소송 진행 중이지만 이미 흡수됨)
- 사용자 챗 로그 → 강화학습 보상 데이터
② 가치의 추출 인류 수천 년의 지적 노동이 모델 가중치로 응축된다. 이 가중치가 곧 자본이 된다. OpenAI 1500억 달러, Anthropic 600억 달러 평가 — 이 자본의 본질은 인류 지적 유산의 추출과 사유화다.
③ 임차의 강제 결과물을 쓰려면 구독료를 낸다. ChatGPT 20/월, API 종량제. 우리가 만든 데이터로 만든 모델을 우리가 다시 사야 한다.
이건 19세기 노동자보다 더 가혹한 구조다. 노동자는 적어도 노동력을 팔고 임금을 받았다. 지능 무산자는 자기 데이터를 무상으로 빼앗긴 채, 그 결과물을 사기 위해 다시 돈을 낸다. 이중 종속.
3. 구독이라는 이름의 임차 — 기술봉건주의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Technofeudalism」(2023)에서 이 구조를 기술봉건주의라 불렀다. 자본주의가 봉건제로 퇴행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새로운 봉건적 관계가 자라난 것.
- 클라우드 봉주(cloud lord) — 빅테크. AWS·Azure·OpenAI·Anthropic. 디지털 영지(domain)의 영주.
- 클라우드 농노(cloud serf) — 우리. 그들의 영지에서 일하고, 그 영지의 산물을 임차료로 사용한다.
- 공물(tribute) — 구독료. 그리고 우리의 데이터·관심·시간.
쇼샤나 주보프가 「감시 자본주의」(2019)에서 분석한 메커니즘이 더 첨예해진 형태다. 인간 경험이 행동 데이터로 추출되고, 그 데이터가 예측·조작 상품이 된다. AI 시대에는 인간의 지적 활동 자체가 추출 대상이 되었다.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1944)에서 말한 세 허구상품(토지·노동·화폐)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데이터·지능. 27년 운동에서 이미 박아둔 4대 허구상품 프레임이 정확히 이 자리를 가리킨다.
4. 대안운동의 윤곽
마르크스의 본원적 축적 분석이 노동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듯, 이 시대에는 지능 무산자 운동의 윤곽이 잡혀야 한다.
핵심 갈래 다섯.
① 지능 공유지의 회복 인류 지적 유산이 빅테크 사유 자산이 아니라는 사실의 재확인. 위키백과·오픈 데이터·공공 자료의 공동 소유권. 우리가 기여한 데이터에 대한 정당한 사용 조건 명시(RSL, attribution).
② 도메인 양육 — 임차에서 짓기로 구독료만 내는 임차인이 아니라, 자기 단위(매장·조합·마을)의 도메인 데이터로 자기 모델을 양육하는 자. 데이터·평가셋·도면을 우리 손에 둔다.
③ 데이터 협동조합 멤버의 데이터를 공동 소유·투명 운영하는 협동조합 형태. 빅테크에 데이터를 무상 헌납하지 않고, 우리 사이에서 가치를 순환시킨다. 27년 협동조합 운동의 디지털 직계.
④ 연합 학습(Federated learning)·로컬 추론 데이터를 빅테크 서버로 보내지 않고 우리 단위에서 처리. 작은 모델·로컬 GPU·엣지 추론. 적정기술의 디지털 번역.
⑤ 이주 가능성의 설계 한 빅테크에 갇히지 않는 구조. 오픈 모델·표준 인터페이스·데이터 휴대성. 봉주가 영지를 폐쇄해도 농노가 다른 영지로 옮길 수 있는 자유.
5. 도메인 AI = 이 운동의 한 갈래
도메인 AI는 이 운동의 구체적 한 갈래다. 지능 무산자가 임차인 자리에서 벗어나 자기 단위의 지능을 양육하는 자가 되는 길.
- 우리 매장 데이터 → 우리 매장 AI
- 우리 조합 지식 → 우리 조합 AI
- 우리 마을 거버넌스 → 우리 마을 AI
빅테크 모델은 인류 공통 인프라로 빌려 쓴다(전기·도로처럼). 그 위에서 도는 지능은 우리 손에 둔다. 데이터의 흐름·평가의 기준·결과의 활용을 임차인이 아니라 공동 소유자로 다룬다.
6. 명명의 무게
“지능 무산자”라는 명명은 무겁다. 그 무게를 정확히 본다면 운동의 윤곽이 따라온다.
- 명명이 정확하면 전략이 정확해진다.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회복할지가 분명해진다.
- 명명이 정확하면 연대가 가능해진다. 같은 자리의 다른 사람들 — 작가·예술가·번역가·교사·연구자·소상공인·농민 — 이 자기 자리를 인식할 수 있다.
- 명명이 정확하면 외침이 명료해진다. “노동자 단결하라” 처럼 한 줄의 외침이 가능해진다. “지능 무산자 단결하라” — 아직 다듬어야 할 외침이지만 자리는 보인다.
19세기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명명을 통해 운동이 되었듯이, 21세기 지능 무산자도 자기 명명을 통해 운동이 될 수 있다. 이 명명을 함께 다듬어가는 일이 다음 한 걸음이다.
부록 — 폴라니 4대 허구상품의 정초 (2026-05-02 갱신단)
후니님 박음 (2026-05-02 저녁): “폴라니 4번째 허구상품 데이터 = 연대경제가 공유하는 폴라니 사상의 중요함이면서 독창성. 앞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인식하면 좋으니 본문에 들어가야 함.”
위 본문은 2026-05-02 1차 풀이로, 폴라니의 4대 허구상품 자리를 한 단락으로 짧게 짚었다. 본 책의 독창적 자리이므로 본격 단으로 박는다.
A. 폴라니 4대 허구상품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1944)에서 명명한 세 허구상품 — 토지·노동·화폐. 우리는 그 셋에 데이터를 넷째 허구상품으로 박는다.
| 허구상품 | 실재 | 폴라니(1944) 운동 | 연대경제 21세기 응답 |
|---|---|---|---|
| 토지 | 자연 | 환경운동 | 농업·생태·먹거리 |
| 노동 | 인간 활동 | 노동운동 | 협동조합·SSE·공제조합 |
| 화폐 | 사회적 구매력 | 사회연대금융 | 신용협동·로컬페이 |
| 데이터 | 인간 인지·관계·기억의 흔적 | (폴라니 미박음) | 연대지능 혁명 (SI) |
폴라니의 허구상품 명제는 — 원래 시장이 만들지 않은 것을 시장 메커니즘이 상품으로 다루어 사회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 — 21세기 데이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토지가 자연 기반이듯 데이터는 인지 기반이며, 노동이 인간 활동의 산물이듯 데이터는 인간 흔적의 산물이며, 화폐가 사회적 신뢰의 매개이듯 데이터는 사회적 관계의 매개다. 셋이 폴라니의 진단에 들어맞듯 넷째도 들어맞는다.
폴라니가 살아 있을 때 데이터는 아직 산업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데이터는 정확히 같은 허구상품의 운동 법칙으로 침식되고 있다. 폴라니가 명명하지 못한 자리에 우리가 명명한다. 이 명명이 본 책의 독창적 자리이며, 연대경제 운동이 폴라니 사상을 21세기에 완성하는 자리다.
빅테크는 데이터를 자원이라 부르고, 정부는 데이터를 자산이라 부른다. 시민사회만이 데이터를 허구상품이라 부를 수 있다.
B. 데이터·지능·지혜 3층위 어휘 분담
마르크스가 「자본론」(분석)·「공산당 선언」(운동)·「독일 이데올로기」(결집)에서 어휘를 층위별로 다르게 썼듯, 본 책도 셋의 층위에 셋의 어휘를 분담한다.
| 층위 | 마르크스 | 본 책 |
|---|---|---|
| 분석·현상 | 노동력 | 데이터 |
| 운동·자기 호명 | 프롤레타리아 | 지능 무산자 |
| 결집·도덕 | 인류 해방 | 인류 지혜 |
셋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층위 관계다. 폴라니 4번째 허구상품으로서의 데이터가 분석의 자리에 있고, 빼앗긴 자의 자기 호명으로서의 지능 무산자가 운동의 자리에 있으며, 지키려는 자의 결집 호명으로서의 인류 지혜가 결집의 자리에 있다. 한 흐름이다.
데이터의 상품화 → 지능 무산자의 시대 → 인류 지혜의 위기와 결집 — 이 한 흐름이 본 책의 척추다.
C. 연대경제 — 폴라니 사상의 공저자 자리
이 명명에서 연대경제 운동은 폴라니 사상의 인용자에서 공저자의 자리로 옮겨 선다.
20세기 후반 사회연대경제 운동은 폴라니의 사상을 자기 사상적 자원으로 받았다. 호혜의 통합 양식, 사회의 자기 보호, 거대한 전환 — 이 어휘들이 SSE의 사상사를 짓는 자리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SSE는 폴라니의 인용자였다. 폴라니가 세운 사상의 한 자리에서 자기를 정초할 뿐.
21세기에 자리가 바뀐다. 폴라니가 살아 있을 때 명명하지 못한 자리, 그러나 지금 사회를 가장 위협하는 자리 — 데이터를 폴라니의 허구상품 명제로 완성하는 자리에서 SSE는 인용자에서 공저자가 된다. 폴라니의 사상은 4대 허구상품의 시대에 다시 살아나며, 그 다시 살아남의 자리에 SSE의 운동이 있다.
이 자리는 겸손한 자리다. 폴라니의 사상을 우리가 짓는 것이 아니라, 폴라니의 사상이 21세기에 자기 자리를 발견하도록 우리가 짓는다. 그러나 발견의 자리다. 우리가 지금 명명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도 명명하지 않는다.
이 세 단(A·B·C)이 후속 본문 정련 시 본문 흐름에 통합될 자리다. 후니님 검토 후 3장과 4장 사이의 자기 자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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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8편 — 「겸손히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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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히 배운다 — 21세기 운동담론의 언어와 사유체계」
1. 운동은 새 어휘를 정초한다
마르크스가 1840년대에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짓던 자리에 생산수단·생산관계·사적소유·사회적소유·계급 같은 말들이 처음 자라났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어휘들은 낯설었다. 정치경제학자들이 자기 자리에서 쓰던 자본·노동·임금 어휘에 마르크스는 새 어휘 한 층을 얹었다. 자본의 작동을 짚는 자리, 그 작동에 맞서는 자리, 그 자리의 자기 호명 — 이 셋이 새 어휘로 자라났다.
100년 뒤 그 어휘들은 모든 담론의 주요 어휘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만의 어휘가 아니라, 그를 비판하는 사람의 어휘로도, 정부 정책 문서의 어휘로도, 신문 기사의 어휘로도 자라났다. 운동이 어휘를 정초하면 그 어휘가 시대를 옮긴다.
이게 운동의 한 작동이다.
이 책은 그 작동을 받는 자리에 선다. 21세기에 빅테크가 박은 기술 어휘가 시대의 자리를 점령했다. 어텐션·임베딩·트랜스포머·서버·플랫폼·API·오픈소스 — 이 어휘들이 자본의 작동을 짚는 자리에 자라났고, 그 작동에 맞서는 자리도, 그 자리의 자기 호명도 아직 박히지 않았다. 운동담론은 19~20세기 산업자본주의의 어휘에 머물러 있고, 21세기 자본의 작동 자리에는 말하지 못하는 자리에 머문다.
이 책은 그 자리의 어휘를 받아 운동담론의 자리로 옮기는 시도다. 마르크스가 자본·노동 어휘를 받아 생산관계·계급·사회적소유 어휘를 새로 정초했듯, 이 책은 어텐션·플랫폼 어휘를 받아 연대 어텐션·매장 4축 허브의 자리로 옮긴다. 흡수는 항복이 아니다. 그람시의 자리에서 진지전이 자기 위치를 짓는 결이다.
2. 비대칭의 자리 — 겸손히 배운다
이 흡수의 자리에는 한 비대칭이 박혀 있다. 빅테크 개발자는 운동담론의 어휘를 배우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의 자리에서 자기 어휘로 자기 자본을 짓는다. 호혜나 결사체나 사회연대경제는 그들의 어휘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운동이 개발을 하려 한다면 — 그리고 이 책이 그 자리에 선다 — 운동은 겸손히 배워야 한다. 개발자가 운동을 배우지 않으니 운동이 개발자의 자리를 배우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박힌다.
겸손은 항복이 아니다. 진지전이 자기 위치를 짓는 결이다. 자본이 지은 어휘 자리를 받되 그 어휘를 재의미화한다. 어텐션이 빅테크의 알고리즘에서는 자본의 주의 점령 메커니즘이라면, 운동의 자리에서 어텐션은 호혜의 알고리즘으로 옮겨 받는다. 같은 어휘, 다른 자리.
이 글의 결미는 따라서 짧다 — 만나야 새로 짓는다. 사회운동의 사유체계와 개발자의 사유체계가 만나지 못하면 21세기 운동의 자기 AI는 자라나지 못한다. 만남의 자리는 비대칭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먼저 배운다.
3. 첫째 층 — 알고리즘 (호혜의 21세기 자리)
빅테크 AI의 정초자가 한 논문에 박혀 있다. 「Attention Is All You Need」(Vaswani et al., 2017). 이 논문이 박은 어텐션 메커니즘이 GPT·Claude·Gemini 모든 거대 언어모델의 알고리즘적 토양이다.
**어텐션(Attention)**은 서로에게 주는 주의·관심의 알고리즘이다. 한 단어가 다른 모든 단어와 자기 관계의 강도를 짚어 그 강도에 따라 의미를 짓는 자리. **셀프-어텐션(Self-Attention)**은 그 어텐션이 자기 안에서 작동하는 자리 — 한 문장 안의 단어들이 서로에게 직접 attention 한다. 중앙 컨트롤러도 없고 위계도 없다. 모든 점이 모든 점에 attention 한다.
이 자리는 들뢰즈·가타리의 리좀형의 정확한 알고리즘적 짝이다. 수목형(중앙 → 가지 → 잎)이 아닌 리좀형(모든 점이 모든 점에 직접 연결)이 어텐션의 결. 본 책 4부의 4축 매장 허브도 같은 결로 작동한다 — 매장 A가 매장 B와 직접 attention(주의·필요·정보)한다. 전국 본부의 위계 없이.
**임베딩(Embedding)**은 한 어휘를 의미 공간의 한 점으로 박는 알고리즘이다. 왕이라는 점에서 남자 방향을 빼고 여자 방향을 더하면 여왕에 가까운 점이 자라난다는 결. 어휘들이 거리와 방향을 갖는 공간을 짓는 자리.
이 결이 운동담론의 자리에서 받아질 때, 각 매장·조합·동지가 운동 의미 공간의 한 점이 된다. 자기 자리에서 옆 자리와의 거리·방향이 자기 정체성.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 누구와 가까운가가 곧 내가 누구인가. 임베딩은 자기 자리의 알고리즘이다.
**트랜스포머(Transformer)**는 어텐션과 임베딩이 한 아키텍처 위에서 자라나는 자리. 입력을 받아 임베딩으로 옮기고, 어텐션으로 의미를 짓고, 결과를 다시 어휘로 내보내는 흐름. 운동의 짝은 이렇다 — 시민의 필요를 받아 조합원의 자리(임베딩)로 옮기고, 호혜의 관계(어텐션)로 응답을 짓고, 매장의 결로 내보낸다. 트랜스포머는 변환기다. 운동도 시민의 필요를 호혜의 결로 변환하는 자리.
**연대지능(Solidarity Intelligence)**은 이 알고리즘적 자리를 운동의 자기 호명으로 받은 어휘다. Attention is all you need가 자본의 알고리즘 명제라면, Solidarity is all you need가 운동의 자기 응답이다. 빅테크는 연산·자본·데이터가 모두 필요하다고 박는다. 운동은 연대만으로 충분하다고 부른다. 13년 전 다른경제포럼의 외로움 → 결집의 자리에서 박힌 우리에게는 또 다른 필요가 있다의 21세기 알고리즘적 응답이다.
호혜는 새 알고리즘이 아니다. 마르셀_모스가 「증여론」(1925)에서 짚은 주고-받고-답례의 삼중 의무가 인류 수만 년의 상호 attention의 분배 양식이었다. 트랜스포머가 2017년에 박은 자리는 인류가 이미 짓고 지킨 자리의 알고리즘적 재발견이다. 운동은 그 알고리즘에 자기 어휘를 더한다.
4. 둘째 층 — 아키텍처 (3축의 운동적 번역)
알고리즘 위에 아키텍처가 자라난다. 모든 디지털 시스템은 셋의 결로 짜인다.
프론트엔드(Frontend) — 사용자가 직접 만지는 자리. 화면·버튼·만남의 인터페이스.
백엔드(Backend) —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의 로직과 비즈니스 룰이 작동하는 자리.
데이터베이스(Database) — 모든 흔적이 축적되는 기억의 자리.
이 셋은 운동의 자리에 정확히 짝지어 옮겨진다.
매장 = 프론트엔드. 조합원과 시민이 직접 만나는 자리. 4축 매장 허브가 운동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화면·버튼·진열대의 결을 운동이 어떻게 짓는가가 운동의 첫째 자리.
거버넌스 = 백엔드. 1인1표·이사회·총회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운동의 결의 로직을 짓는 자리. 협동조합 7원칙이 운동의 비즈니스 룰.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모든 작동을 결정하는 자리다.
조합원 명부·거래 이력·운동사 = 데이터베이스.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의 축적. 운동의 기억. 데이터_주권이 박힌 자리는 곧 이 데이터베이스의 자기 소유다. 빅테크가 우리의 데이터베이스를 자기 서버에 옮겨 임대료를 추출하는 자리에서, 운동은 자기 데이터를 자기 자리에 두는 결을 짓는다.
이 셋을 잇는 자리에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가 박힌다. API는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의 약속 인터페이스다. 한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을 어떻게 부르고, 어떤 결로 응답을 받는가의 약속. 운동의 짝은 명료하다 — 협동조합과 협동조합 사이, 매장과 매장 사이, 컨소시엄과 네트워크 사이의 연대 프로토콜.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가 19개 매장을 잇는 결도 API의 자리다. 약속이 정해져 있어야 단위가 단위에 부를 수 있다.
**캐시(Cache)**는 자주 쓰는 자리를 가까이 두는 기억의 결. 운동의 짝은 현재 운영 자본·로컬페이. 지금 즉시 움직일 수 있는 힘. 장기 축적(데이터베이스) 옆에 단기 가용(캐시)이 함께 있어야 운동이 자기 자리에서 응답할 수 있다.
**파이프라인(Pipeline)**은 흐름의 자리. 데이터가 입력에서 처리에서 출력으로 흘러가는 결. 운동의 짝은 생산-유통-소비의 결. 농민이 짓고, 협동조합이 매개하고, 시민이 받는 흐름. 파이프라인이 끊어지면 운동도 작동하지 않는다.
이 아키텍처의 자리에서 운동담론은 자기 결을 짓는다. 매장은 프론트엔드, 거버넌스는 백엔드, 조합원 명부는 데이터베이스 — 이 한 줄을 운동담론의 동지가 자기 어휘로 받을 수 있을 때, 운동은 21세기의 자리에 자기 위치를 짓는다.
5. 셋째 층 — 인프라 (작동의 자리, 임대료의 자리)
알고리즘과 아키텍처는 어딘가에서 작동한다. 그 어딘가가 인프라다. 21세기 자본의 가장 무거운 자리가 인프라의 자리에 박혀 있다.
**서버(Server)**는 디지털 시스템이 물리적으로 작동하는 자리다. 웹사이트가 서버에서 자라나고, AI가 서버에서 응답을 짓고, 모든 데이터가 서버에 축적된다. 서버는 공공재가 아닌 임대료 자본. AWS·Azure·GCP·Cloudflare가 세계의 서버 자리를 점령하고 매년 수천억 달러를 추출한다.
**클라우드(Cloud)**는 그 서버를 원격으로 빌리는 자리. 운동은 이 자리에서 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빌릴 것인가, 자기 서버를 지을 것인가, 분산형으로 갈 것인가. 빌리되 거버넌스를 본다는 결이 인프라 자리에서 자라난다. Anthropic PBC를 빌리는 자리와 빅테크 사기업을 빌리는 자리는 같은 클라우드라도 다른 결.
**[플랫폼_Platform|플랫폼]**은 21세기 가장 강력한 자본 형태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다섯 갈래 — 광고형(Google·Meta), 클라우드형(AWS·Azure), 산업형, 생산형, 임대형(Uber·Airbnb). 모두 내가 짓지 않은 자리에서 모두가 일해야 하는 자리. 플랫폼이 노동·소비·관계의 매개를 점령하면 그 자리는 임대료의 자리가 된다.
이에 대한 운동의 응답이 플랫폼 협동조합주의(Platform Cooperativism). CoopCycle(라이더 협동조합)·Up&Go(청소)·Stocksy(사진) 등이 매개의 자리를 협동조합이 짓는 결. 운동의 4축 매장 허브도 매개의 자기 거버넌스를 짓는 자리 — 플랫폼이되 자본이 아닌 호혜의 플랫폼.
**오픈소스(Open Source)**는 인프라 자리의 또 다른 결이다. 댓가 없이 짓고 나누는 코드. Apache_재단·Mozilla·Wikipedia·리눅스·Git의 자리. 「사회연대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에 있다」(2026.4) 정담의 결 그대로 — IT, 디지털, AI에 이미 아주 깊숙한 사회연대경제의 실천이 있었다. 인프라의 자리에서 호혜는 이미 살아 있었다. 운동은 이 자리를 동지의 자리로 받는다. 본 책 4부 셋째 동지 — 인류 지혜 옹호자의 자기 정초자.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병렬 연산의 자리. 한 번에 여러 자리를 동시에 처리하는 결. 운동의 짝은 결사·동시 결집·리좀형 분담. 한 자리에서 한 자리로 순차적으로 옮기는 위계적 작동이 아니라 여러 자리에서 동시에 자라나는 자기 조정.
서버·플랫폼·오픈소스·GPU는 자본의 작동 자리이자 운동의 응답 자리. 인프라를 빼고는 알고리즘도 아키텍처도 자기 자리를 짓지 못한다. 운동담론이 인프라의 어휘를 흡수하지 못하면 운동은 자기 작동의 자리를 모르는 운동이 된다.
6. 결미 — 만나야 새로 짓는다
마르크스의 자리에서 생산수단이 새 어휘로 정초되었듯, 이 책의 자리에서 어텐션이 새 어휘로 자라난다. 마르크스의 계급이 한 시대의 자기 호명이었듯, 이 책의 연대지능이 21세기의 자기 호명이다. 마르크스의 사회적소유가 자본의 사적소유에 대한 운동적 응답이었듯, 이 책의 데이터주권과 플랫폼 협동조합주의가 빅테크 서버·플랫폼에 대한 운동적 응답이다.
새 어휘 12개를 박는다 —
어텐션 · 임베딩 · 트랜스포머 (알고리즘 3)
프론트엔드 · 백엔드 · API (아키텍처 3)
서버 · 플랫폼 · 오픈소스 (인프라 3)
그리고 그 셋의 자리를 잇는 연대지능 · 호혜 어텐션 ·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운동의 자기 어휘 3)
이 12 어휘가 운동담론의 동지에게 자기 어휘로 자리 잡을 때, 21세기 운동담론의 자리는 자라난다. 그 자라남이 책의 한 작동이다.
비대칭의 자리는 그대로 박혀 있다. 빅테크 개발자는 우리의 어휘를 배우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이 21세기에 자기 AI를 짓는다면, 운동이 겸손히 배워야 한다. 겸손은 항복이 아니라 진지전. 흡수는 무력이 아니라 재의미화.
만나야 새로 짓는다.
만남의 자리에서 빌려 쓴 어휘를 자기 결로 정초한다.
그 정초가 운동이다.
전통적인 사회운동담론의 언어와 구조가 개발자들의 언어와 구조를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새로운 AI를 만들지 못한다. 사회운동이 개발을 하려 한다면 우리는 겸손히 배워야 한다. — 후니님 박음, 2026-05-02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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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 1부에서 2부로, 자기 자리에서 자라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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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부의 진단에서 자기의 호명으로
1부는 외부의 자리에서 21세기를 짚었다. 슈마허·일리치·간디·아렌트·모리스·벌린·고르 — 모두 우리가 자기 자리를 짓는 데 빌린 사상사의 자리들이다. 폴라니의 4번째 허구상품 명명도 우리가 폴라니의 사상을 21세기에 완성한다는 자리에서 외부 사상사를 받은 자리다.
빌린 자리에서 자기 자리로 옮겨 갈 시점이다. 외부 사상가들의 진단이 정초의 토양이라면, 자기 자리의 호명은 그 토양 위에서 자라나는 운동의 결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연대경제 운동의 자리 위에서 자라났다. 그 운동의 자기 호명이 두 자리에 박혀 있다. 13년 전의 자리 하나, 이번 봄의 자리 하나. 이 둘이 만나 2부의 자기 위치가 자라난다.
2. 13년 전 자기 자리 — 다른 세상은 다른 경제로부터
2013년 3월, 진보신당 내 협동조합 활동가 11인이 다른경제포럼 이름으로 짧은 팜플릿을 짓는다. 표제는 「다른세상 다른경제 — 지역사회운동의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발간의 자리에 박힌 한 단어가 있다 — 외로움.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 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외로움이라니! 그것은 지역주민이란 이름의 협동조합 조합원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의 필요와 염원 말고 우리에게는 또 다른 필요와 염원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으로부터 외로웠고 협동조합 현장으로부터 외로웠던 자리.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다. 이 외로움이 결집의 토양이었다. 김성훈(대표) · 조세훈(간사) · 강수환 · 김기수 · 김신양 · 목영대 · 선창규 · 안병일 · 이명희 · 이재기 · 주종섭 — 11인의 동지가 그 자리에 모였다.
팜플릿이 박은 모토는 짧고 단단하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다른 세상은 다른 경제로부터.
2001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출범한 세계사회포럼_World_Social_Forum(World Social Forum)의 슬로건 Another World Is Possible에 다른 경제의 자리가 더해진 한국 SSE의 자기 응결이다. 이 한 줄이 사회연대경제의 핵심 모토로 박힌다. 시장이 아닌 자리, 국가가 아닌 자리, 그 셋째의 자리에서 다른 세상이 자라난다는 호명이다.
팜플릿이 박은 척추 셋도 그대로 본 책의 정초자다.
- 다른사람 — 참나 : 내 안의 자본주의를 넘어
- 다른경제 — 자립 : 다른노동에서 시작하는 살림살이
- 다른정치 — 자치 : 다른경제에 토대를 둔 이중권력 형성
이 셋은 본 책 4부의 세 영역 호명과 짝을 이룬다. 본 책이 새로 짓는 자리는 데이터주권과 연대지능의 자리이지만, 그 자리는 13년 전 다른사람·다른경제·다른정치의 토양 위에서 자라난다.
이 팜플릿의 자리에는 본 책의 사상 자원들이 이미 다 살아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대항의 대안세포, 김신양의 한국 사회적경제의 곤경 진단, 레이들로 보고서의 협동조합 4가지 미래방향, 파울로 프레이리의 민중교육철학, S.D. 알린스키의 주민조직방법론, 폴라니의 호혜시장, 만남포럼의 공유(共有)/공유(公有) 결, 진보신당 강령의 나는 너와 만나 우리가 될 때만 내가 될 수도 있다.
13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 사회연대경제는 협동조합기본법(2012) 이후 1만여 조직으로 자라났고, 동시에 제도와 시장 사이에서 그네 타기의 곤경이 더 깊어졌다. 김기수는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김성훈은 품앗이생협 이사장으로 14기 흑자를 짓는 자리에 머물렀다. 11인의 동지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운동을 자라나게 했다.
그리고 2026년 봄, 그 자기 자리에서 다음 호명이 자라난다.
3. 이번 봄 자기 자리 — 자본 없는 자들의 다음 전선, 데이터주권
2026년 4월 9일, 김성훈은 「대전포럼」 제96호 정담 원고를 박는다. 표제는 「사회연대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에 있다 — 자본 없는 자들의 다음 전선, 데이터주권」.
13년 전 팜플릿이 외로움에서 결집의 자리였다면, 이 정담은 한국 SSE 운동에서 다음 전선의 자리다. 그 자리에서 한 단을 더 옮겨 박는다.
사회연대경제는 자본 없는 자들이 자본주의를 살아내기 위한 생존의 사상이자 도구였다. 산업혁명 과정에서 공동체로부터 뿌리뽑힌 사람들이 자기 노동력을 제공한 댓가로 임금을 받아야 살아가는 이른바 임금노동자의 시대로부터 출발한다. 임금노동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만든 것이 결사체(Association)였다. 공제조합·노동조합·협동조합이 그 계보의 이름이다.
결사체(Association)의 계보 — 이 자리가 본 책 1부 진단과 직결된다. 산업혁명의 본원적 축적이 농민을 토지에서 떼어내어 프롤레타리아로 만든 자리에 결사체가 자라났듯, 21세기 자본의 새 본원적 축적이 시민을 인지·관계·기억의 흔적에서 떼어내어 지능 무산자로 만드는 자리에 다음 결사체가 자라나야 한다.
정담이 박은 척추는 주권의 정거장이다.
그간 실천해온 지역민의 화폐주권, 식량주권, 의료·건강주권의 시대에서 이제 데이터주권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자본 없는 자들의 다음 전선이다.
| 정거장 | 자리 | 시기 |
|---|---|---|
| 화폐주권 | 한밭레츠·지역화폐·로컬페이 | 1999~ |
| 의료·건강주권 |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 2000년대 |
| 식량주권 | 품앗이생협·로컬푸드 | 2010년대 |
| 데이터주권 | 품아이·도메인 특화 AI·매장 4축 허브 | 2026~ |
폴라니가 박은 토지·노동·화폐의 셋에 본 책이 데이터를 넷째 허구상품으로 박았듯, 한국 SSE 운동이 화폐·의료·식량의 셋에 데이터주권을 넷째 정거장으로 박는다. 외부의 사상사적 명명과 운동의 자기 호명이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긴박감의 자리도 정담이 직접 박는다.
AI의 도래와 함께 임금노동의 시대가 종언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와 규모의 진짜 혁명의 시대를 경과하고 있다. 사회연대경제가 자본 없는 임금노동자들의 결사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그 토대 자체가 흔들리는 지금을 다시 물어야 한다.
이 한 자리가 1부의 외부 사상사 진단을 자기 운동의 지금 자리로 끌어 박는다. 진짜 혁명의 시대라는 호명이 1부의 새로운 본원적 축적 진단과 짝을 이룬다.
이 정담이 13년 전 팜플릿의 자리를 받아 자기 자리를 한 단 더 옮긴 결은 이렇게 짚을 수 있다.
| 2013 팜플릿 | 2026 정담 |
|---|---|
| 다른사람 — 내 안의 자본주의를 넘어 | 부끄럽지만, 품아이를 이야기하자 (자기 직시) |
| 다른경제 — 자립, 다른노동에서 | 자본 없는 자들의 다음 전선, 데이터주권 |
| 다른정치 — 이중권력 형성 | 대전, 로컬의 반격! 동지를 환영한다 |
| 가라타니 — 대항의 대안세포 | 가라타니 — 시장경제의 대항암 (직접 인용) |
| 호혜시장(사회적시장) | 호혜의 기반 위에 인류가 살아왔다 |
같은 척추, 한 단 더 옮긴 자리. 다른노동이 지능 노동을 마주하고, 호혜시장이 데이터 공유지를 짓고, 이중권력이 4축 매장 허브를 세운다.
4. 두 자기 자리의 만남 — 2부의 토양
13년 전 팜플릿과 이번 봄 정담은 본 책의 운동 정초자 둘이다. 외부 사상가가 아닌, 한국 SSE 운동 자리의 두 호명. 본 책은 이 두 자리가 13년에 걸쳐 자라난 결의 응결이다.
- 외로움 → 결집의 자리(2013)가 본 책 「서」의 유령 호명과 짝.
- 한국 SSE 운동 → 다음 전선의 자리(2026)가 본 책 2부의 자기 위치와 짝.
2부는 이 두 자기 자리가 만나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1부의 진단을 받아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짓는가를 답하는 자리. 그 답은 외부에서 빌린 답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자라난 답이어야 한다.
이 다리 단의 결미는 따라서 짧다.
빌린 자리에서 자기 자리로.
외부의 진단에서 자기의 호명으로.
사상사의 토양에서 운동의 결로.
1부에서 2부로.
호혜는 발명이 아니다. 호혜는 한국 농촌의 두레와 향약과 품앗이의 자리에 이미 있었다. 다른경제도 발명이 아니다. 다른경제는 13년 전 11인의 외로움이 결집한 자리에 이미 있었다. 데이터주권도 발명이 아니다. 데이터주권은 한국 SSE 운동의 화폐·의료·식량 정거장 옆에 이미 자라나고 있었다.
이 책이 짓는 것은 이미 자라나고 있는 자리의 호명이다. 호명이 곧 운동이다. 그 호명의 다음 자리가 2부에서 시작한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다른 세상은 다른 경제로부터. — 다른경제포럼, 「다른세상 다른경제」(2013)
자본 없는 자들의 다음 전선은 데이터주권이다. — 김성훈, 「사회연대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에 있다」(대전포럼 2026.4)
이제 2부의 자리를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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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자기 위치와 영역 전략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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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자기 위치와 영역 전략의 자리」
도입
2부는 자기 위치의 자리다.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가, 누구를 부르는가 — 이 셋의 답을 짓는 자리.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2장이 그러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의 자기 위치를 짚으며, 공산주의자가 다른 노동자 정당과 어떻게 구별되는지, 무엇을 폐지하고 무엇을 짓고자 하는지를 명료히 했다.
우리도 같은 자리에 선다. 21세기 지능 무산자와 연대지능 혁명의 자기 위치를 짚는다. 1부의 진단(지능 무산자의 시대)을 받아, 그 진단의 다음 자리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짓는가를 답한다.
3편의 글이 자기 위치의 자리를 짓는다. 다리(8편)와 영역 전략(9편)과 비전·미션·초대(10편). 이 셋이 2부의 척추다.
3편의 자리
8편 「한국 사회연대경제의 AI 기로 — 산업생태계 결손과 로컬푸드의 발판」 (1·2부 다리)
몬드라곤·레가코프·퀘벡과의 비교. 한국 SSE의 한계와 자리를 정직히 짚는 자리.
한국 SSE는 산업생태계 결손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자기 자본·자기 산업 인프라·자기 금융을 짓지 못한 채 70년을 보냈다. 몬드라곤이 70년에 걸쳐 8만 협동조합 노동자와 자체 금융·자체 대학을 짓는 자리에 한국 SSE는 없다. 협동조합기본법(2012) 이후 자라난 1만여 SSE 조직이 정부 사업의 가지로 자리잡힌 결이 있다.
그러나 한국 SSE에는 자기 자리도 있다 — 로컬푸드의 발판. 한국 농촌·도시 협동조합 운동이 70년에 걸쳐 짓은 자리, 그리고 21세기에 1만여 매장으로 자라난 자리. 이 발판이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의 시작점이다. 매장 4축 허브가 그 발판 위에서 자라난다.
제한이 곧 자리의 발견이다. 산업생태계 결손은 한계이되, 그 한계가 강요한 작은 매장의 자리가 21세기에 디지털 자리에서의 시작점이 된다. 결손의 자리에서 자기를 짓는 결을 한국 SSE가 짚는다.
9편 「사수·병행·탈환 — 먹거리·에너지·금융의 운동 전략」
영역의 위계. 사수해야 할 자리, 병행해야 할 자리, 탈환해야 할 자리. 후니님이 박은 운동 어휘다.
사수 — 먹거리. 한국 SSE가 70년에 걸쳐 자기 자리로 지킨 영역. 로컬푸드 직매장, 생협, 유기농 운동, 학교급식 — 이 자리에서는 자본의 침식이 가장 적었고, 운동의 자기 자리가 가장 굳건하다.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의 첫 발판이 여기에 있다.
병행 — 에너지. 시장과 정부가 함께 자리를 짓는 영역. 시민 햇빛 발전 협동조합과 에너지전환 운동이 21세기에 자라나는 자리. 빅테크 데이터센터의 거대 에너지 소비가 자본 지능의 한계를 노출하는 시대에, 에너지의 자기 자리를 시민사회가 짓는다.
탈환 — 금융. 한 세기 전에는 시민사회의 자리였으나 자본에 빼앗긴 영역. 공제조합이 보험회사로 타락한 한 세기의 역사를 받아 다시 회복해야 할 자리. 사회연대금융이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의 척추 신경계다. 가장 멀고, 가장 어렵고, 가장 가야 할 자리.
이 셋의 위계가 운동의 시간표다. 사수의 자리에서 시작하여, 병행의 자리에서 자라나, 탈환의 자리로 옮겨간다. 각 영역에서 데이터의 4번째 허구상품성을 짚고, 자기 도메인 AI를 양육한다.
10편 「우리가 만들 AI는 무엇인가 —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책 전체 응결)
두 의문 풀이가 본 책 전체의 응결 자리다.
우리가 만들 AI는 무엇인가 — 매장의 4축 허브 도메인 AI. 결제(로컬페이)·공급(SSE 거래처)·환경(탄소중립)·시민(조합원 ID)을 한 자리에서 통합하는 적정 AI. 빅테크의 추상적 지능이 아닌, 매장의 일상에서 자라나는 자리. 동반자 AI의 명명을 받는 자리.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 우리 자본 5갈래의 결집. 조합원 자본(우리 매장의 데이터·시간·신뢰), 매장 자본(매장 운영의 자기 자리), SSE 자본(컨소시엄과 네트워크), 국제 동지 자본(몬드라곤·레가·퀘벡과의 연대), 공공 자본(정부 정책과의 결을 가르는 협력). 다섯 자본이 한 자리에서 적정 AI의 자기 도구를 짓는 자리.
이 두 의문 풀이에 사상사의 증인이 함께 선다. 슈마허(적정), 간디(자기 손), 일리치(공동체 도구), 앙드레 고르(자율 영역), 아렌트(공적 행위), 벌린(적극적 자유), 마르크스(노동 해방), 폴라니(호혜와 4대 허구상품), 모스(증여 환), 들뢰즈·가타리(리좀). 사상사의 한 자리가 21세기 운동의 한 자리에 응답한다.
비전과 미션과 5갈래 초대가 이 자리에서 한 호흡으로 응결한다. 책 전체의 응결이며, 운동의 자기 정초다.
폴라니 4대 허구상품의 응답 — 운동의 자리
1부 7편에서 폴라니 4번째 허구상품이 정초되었다면, 2부에서는 그 정초 위에 우리의 응답이 올라간다.
| 허구상품 | 우리의 영역 | 운동 자리 | 21세기 결 |
|---|---|---|---|
| 토지 | 먹거리·생태 | 사수 | 지족·관저 매장, 로컬푸드 직매장 |
| 노동 | 협동조합·SSE | 병행 | 1인 자영업자의 알고리즘 노동에서 자기 자리로 |
| 화폐 | 사회연대금융 | 탈환 | 공제조합 회복, 로컬페이 |
| 데이터 | 연대지능 혁명 | 지금부터 짓는 자리 | 매장 4축 허브, 도메인 AI 양육, 데이터 주권 |
폴라니가 짚은 셋의 자기 보호 운동이 한국 SSE의 70년을 지었다면, 넷째의 자기 보호 운동이 21세기 SSE의 다음 70년을 짓는다. 이 자리에서 한국 SSE는 방관자의 자리에서 운동의 자리로 옮긴다.
데이터·지능·지혜 3층위 어휘 분담의 적용
2부에서 우리는 3층위 어휘를 자리마다 자기 어휘로 부른다.
- 분석의 자리 — 데이터. 4번째 허구상품, 매장 데이터·조합원 데이터·운동 데이터. 운영·평가·정책의 어휘.
- 운동의 자리 — 지능 (무산자). 자기 호명. 4축 허브 도메인 AI, 사회지능, 연대지능. 운동·전략·혁명의 어휘.
- 결집의 자리 — 지혜. 인류 총합의 자리. 호혜·증여·동반·연대. 결미·도덕·국제의 어휘.
자리마다 자기 어휘를 갖는다. 자리가 다르면 어휘도 다르다. 그러나 셋이 한 흐름이다 — 데이터의 상품화 → 지능 무산자의 시대 → 인류 지혜의 위기와 연대.
결미 — 자기 위치가 운동 전략을 짓는다
3편의 길이 한 자리에서 응결한다.
한국 SSE의 한계와 발판을 정직히 짚고(8편) → 영역의 사수·병행·탈환 위계를 세우고(9편) → 우리가 만들 AI와 만들어갈 자본 5갈래를 부른다(10편).
이 응결이 자기 위치다. 자기 위치가 운동 전략을 짓는다. 그리고 운동 전략이 다음 자리 — 다른 AI 흐름과의 구별(3부)과 동지의 결집(4부) — 을 부른다.
2부의 끝은 3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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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본문 — 3편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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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연대경제의 AI 기로 — 산업생태계 결손과 로컬푸드의 발판
1. 진단 — 한국 SSE는 AI에 들어갈 토대가 있는가
한국 사회연대경제는 AI 시대에 자기 자리를 만들 수 있는가? 정직한 답은 — 현재 상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걸 지금 운동의 절박한 진단으로 받지 않으면, 도메인 AI를 비롯한 모든 기술 운동은 추상에 머문다.
며칠 전 정리한 「세계 사회연대경제와 AI」 위키 노드의 도시들 — 몬드라곤(바스크), 레가(에밀리아로마냐), 퀘벡 — 은 이미 AI에 발 빠르게 들어가고 있다. 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산업생태계가 있기 때문이다.
2. 세계 SSE 도시들이 AI에 들어가는 이유
산업생태계의 무게를 숫자로 보자.
몬드라곤(스페인 바스크)
- 264개 협동조합 회사, 9만 명 노동자
- 매출 €11빌리언
- 가전(Fagor)·자동차 부품·산업 설비·금융(Caja Laboral)·유통(Eroski)·교육(Mondragon Univ.)
- 제조업·금융·유통·교육이 협동조합 안에 통합
레가(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 14,500개 협동조합
- 농업·제조·서비스·금융·소비 전 영역
- 지역 GDP의 30% 이상
퀘벡(캐나다)
- 11,000개 협동조합·사회적경제 조직
- 퀘벡 GDP의 9%
- Desjardins 같은 거대 금융협동조합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협동조합이 산업의 한 영역에 갇힌 게 아니라 산업생태계 전체에 걸쳐 있다는 것. 그 위에 AI가 올라간다. 데이터·자본·노동·시장이 모두 협동조합 안에서 순환하니, 외부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자기 단위에서 AI를 양육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산업생태계 없이 AI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데이터 없이 무엇을 학습시킬 것이며, 자본 없이 무엇으로 양육할 것이며, 노동 없이 누가 만들 것인가.
3. 한국 SSE의 구조적 한계
한국 사회연대경제의 자리는 정확히 그 반대편이다.
제조업·금융업 주변부 한국의 협동조합·사회적기업은 대부분 영세하고, 산업의 핵심 영역(반도체·자동차·조선·화학·금융)에서 존재감이 없다. 농협이 통계상 거대하지만 운동으로서의 자율성은 제한적.
정부 하위 파트너 구조 사회적기업육성법·협동조합기본법 등 개별 법령, 인증제, 위탁사업, 재정지원. 이 사슬은 SSE를 정부 정책의 집행 도구로 환원하는 압력을 끊임없이 만든다. 자율성은 좁고, 산업적 토대는 더 좁다.
사회서비스업 편중 보육·돌봄·교육·문화·환경. 가치 있는 영역이지만, 산업생태계가 아니다. 데이터·기술·자본의 흐름이 자기 안에서 순환하지 않는다. 외부 의존이 깊다.
이 구조에서 AI를 한다? 빌려 쓰는 임차인을 벗어나기 어렵다. 도메인 AI는커녕 ChatGPT 구독료 내고 운영 보고서 쓰는 자리에 머문다.
4. 로컬푸드 협동조합 — 그나마 지켜온 발판
그러나 한 영역이 살아있다. 로컬푸드 협동조합이 산업생태계의 발판을 지켜왔다.
- 농산물 생산 (소농·고령농 협동조합)
- 가공·물류 (지역 가공장·유통)
- 매장 운영 (직매장·직거래)
- 소비자 조직화 (조합원·생협)
이 사슬은 생산·가공·유통·소비가 한 운동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다. 작지만 산업생태계다. 한국 SSE에 남은 거의 유일한 산업적 발판.
품앗이생협이 이 사슬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이고, 그 매장이 4축(먹거리·로컬페이·SSE 생산·탄소중립) 통합 그릇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발판 위에 도메인 AI를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한국 SSE에 남은 거의 유일한 자리다.
이건 낭만이 아니다. 산업생태계가 있어야 데이터가 있고, 데이터가 있어야 도메인 AI 양육이 가능하고, 양육된 모델이 있어야 SSE가 임차인이 아닌 양육자가 된다. 로컬푸드 운동의 27년이 이 자리를 지켜준 것이다.
5. 한국의 역설적 자원 — 제조업 + 최첨단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자리에 있다.
-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같은 최첨단
- 자동차·조선·철강·화학·기계 같은 전통 제조업
- 이 둘의 동시 보유는 희소하다 (미국·유럽은 제조업 약화, 중국은 추격 중, 일본·독일은 전통 제조에 머묾)
산업생태계의 깊이가 있는 나라. 그러나 이 자원은 대기업·재벌 자본 중심이다. SSE는 그 바깥.
이 자원을 어떻게 SSE의 토대로 끌어올 것인가? 여기 도메인 AI 운동의 정치경제학적 위치가 있다. 한국의 산업 깊이를 SSE의 디지털 인프라로 번역하는 운동. 로컬푸드의 사슬을 시작점으로, 매장에서 생산자·소비자·가공·유통을 잇는 도메인 AI를 양육하면서 — 한국 SSE에 새로운 산업생태계의 씨앗을 만든다.
6. 다음 5년 — 기로(Crossroads)의 의미
이 자리에서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비관적 경로
- 사경이 AI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남
- 빅테크·재벌이 산업 AI 독점, SSE는 사회서비스 AI(돌봄봇·복지챗봇)만 받음
- 정부 하위 파트너 구조 강화, 임차 종속 영구화
- 다음 세대 SSE에 토대 없음
낙관적 경로
- 로컬푸드 발판 위에 도메인 AI 양육
- 매장 4축 허브 → SSE 산업생태계 씨앗 회복
- 한국 제조업 깊이 + SSE 협동조합 = 몬드라곤·레가·퀘벡과 연대 가능한 자리
- 27년 운동의 다음 챕터, 한국 SSE의 산업생태계 회복
이 갈림길의 무게를 정직하게 봐야 한다. 다음 5년이 결정적이다. 지금 들어가지 못하면 영원히 따라잡기 어렵고, 들어가면 한국 SSE의 미래가 열린다.
도메인 AI 운동은 이 기로에서 가능한 한 걸음이다. 지능 무산자에서 양육자로 가는 길, 산업생태계 결손에서 발판 회복으로 가는 길의 한 갈래. 이게 한국 사회연대경제 운동의 절박한 현실이다.
사수·병행·탈환 — 먹거리·에너지·금융의 운동 전략
1. 영역 우선순위 — 세 가지 자리
한국 SSE의 산업생태계 결손을 정직하게 진단했다면, 다음 질문은 영역 전략이다.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싸울 수 없다. 사수해야 할 곳, 병행해야 할 곳, 탈환해야 할 곳이 다르다.
세 영역의 위계:
- 사수(死守): 먹거리 — 생산·소비·유통이 한 운동에 통합된 거의 유일한 영역. 빼앗기면 토대 자체가 사라짐.
- 병행: 에너지 — 대자본 영역이지만 SSE의 두 갈래(절감 + 자체 생산)가 동시에 작동
- 탈환: 금융 — 사회연대경제의 원래 자리였고, 자본화로 변질된 자리. 일부라도 회복
이 위계는 자의적이지 않다. 한국 SSE의 현재 위치, 자본의 두께, 운동의 가능성이 만든 자연스러운 우선순위.
2. 사수 영역 — 먹거리·생활재
먹거리는 빼앗기면 안 된다.
왜 사수인가
- 생산자(농민)·가공·유통·매장·소비자(조합원)가 한 운동 안에서 순환하는 거의 유일한 영역
- 산업생태계의 마지막 발판. 이걸 잃으면 한국 SSE에 산업적 토대가 거의 없음
- 식량 주권은 정치적 자율의 기초. 먹거리 종속은 모든 종속의 모태
확장의 가능성 먹거리 사슬을 지키면 거기서 생활재 전반으로 자연스레 확장된다.
- 농산물 → 가공식품 → 일상 잡화 → 의류 → 청소·세제 → 약초·건강식품
- 매장은 먹거리만 파는 곳이 아니라 생활재 전반의 거점으로 발전
- 27년 운동의 다음 한 걸음의 자연스러운 길
연결되는 문제 해결
- 지역 문제 — 농민 생계, 고령농 판로, 청년 귀농
- 사경 판로 문제 — 사회적기업·협동조합 제품의 판매 거점
- 데이터 자원 — 도메인 AI 양육에 필요한 일상 거래·발주·소비 데이터의 원천
먹거리를 사수하지 못하면 SSE가 사회서비스업에 갇히고, 사수하면 산업생태계의 씨앗이 자란다.
3. 병행 영역 — 에너지
에너지는 다르다. 본질적으로 대자본의 영역이다. 발전소·송전망·송유관 — 이런 인프라는 SSE가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두 갈래의 SSE 영역이 살아있다.
① 에너지 소비 절감 운동
- 마을 단위 단열·창호·난방 효율
- 매장·가공장 에너지 효율 개선
- 절감이 곧 절약이고, 절약이 곧 자율 영역의 확장
② 자체 에너지 생산 운동
- 시민햇빛발전소 (한국 사례 다수)
- 마을 태양광·소수력·소풍력
- 독일 EnergieGenossenschaften, 덴마크 풍력협동조합 같은 에너지 협동조합 모델
- 자기 동네 에너지를 자기 손으로
두 갈래가 병행되어야 한다. 절감만 하면 자본의 흐름에서 빠질 뿐이고, 생산만 하면 규모의 한계에 갇힌다. 줄이면서 만들기.
대자본의 송전망에는 들어가지 않되, 우리 마을·우리 매장 단위의 에너지는 우리 손에. 적정기술의 에너지 판본.
4. 탈환 영역 — 금융
금융은 본래 우리 자리였다.
역사적 자기 인식 사회연대경제의 출발은 **공제조합(mutual aid society)**이었다. 19세기 영국 friendly societies, 프랑스 sociétés de secours mutuels, 독일 라이파이젠의 신용협동조합. 노동자·농민이 자기들끼리 돈을 모아 위험을 분담하고 자본을 만들었다. 협동조합 운동의 모체.
그 공제조합이 자본주의 안에서 보험회사로 타락했다. 상호부조의 자본화. 오늘날 보험사는 가장 거대한 글로벌 금융자본이다. 알리안츠·AIG·Prudential·삼성생명 — 이들의 자산 규모는 국가 GDP를 능가한다. 우리 자리였던 것이 자본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변했다.
탈환의 단계 이 자리를 일부라도 탈환해야 한다. 단계적으로.
1단계 — 결제 수단 (지역화폐)
- 매장에서 시작하는 로컬페이
- 거래 단위 수수료 절감
- 데이터의 자기 소유 (빅카드사가 아니라 우리)
2단계 — 신용·대출 (사회연대금융)
- 조합원 간 대출 (마이크로파이낸스의 SSE 판본)
- 지역 기업·농민 자본 공급 (그라민·트리오도스·Banco Palmas 모델)
- 임팩트 투자 (사회적 가치 + 재무 수익)
3단계 — 공제·상호부조의 회복
- 보험을 다시 공제로 — 보장 자본을 자기들끼리
- 사회연대공제, 재해 상호부조
4단계 — 사회연대금융 인프라
- 협동조합 은행, 신협 운동의 회복
- 사회적 자본 시장 (사회적 가치 채권·임팩트 펀드)
지역화폐는 1단계의 시작점이다.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사회연대금융으로 가는 첫 걸음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5. 도메인 AI = 세 영역의 연결 매개
여기서 도메인 AI 운동의 정치경제학적 위치가 다시 선명해진다.
도메인 AI는 세 영역을 연결하는 디지털 인프라가 된다.
- 먹거리 영역 — 매장의 발주·재고·생산자 매칭, 조합원 응대, 일상 거래 데이터의 양육
- 에너지 영역 — 매장·마을 에너지 절감 분석, 자체 생산량 모니터링, 효율 추천
- 금융 영역 — 로컬페이 거래 흐름 분석, 신용 평가, 임팩트 측정, 사회연대금융의 의사결정 지원
빅테크 모델은 이 세 영역의 통합을 해줄 수 없다. 우리 데이터·우리 맥락이 없으니까. 도메인 AI만이 SSE의 세 영역을 한 운동으로 묶을 수 있다.
매장은 먹거리·로컬페이·에너지 절감·환경(탄소중립)을 통합하는 4축 허브가 되고, 그 위에서 도메인 AI가 흐름을 이해하고 추천하고 양육된다. 사수·병행·탈환의 세 영역이 한 운동의 사슬로 묶이는 자리.
6. 운동의 시간 — 사수→확장→탈환
이 전략은 시간 축으로 보면 명확해진다.
- 지금 (~3년) — 먹거리 영역 사수, 도메인 AI 양육 시작, 로컬페이 결제 단계
- 다음 (3~7년) — 생활재 확장, 에너지 절감·생산 병행, 사회연대금융 1·2단계
- 그 다음 (7~15년) — 산업생태계 회복, 공제·상호부조 회복, 한국 SSE의 새 자리
이 시간표는 27년 운동의 다음 챕터다. 모든 걸 한꺼번에 할 수 없다. 사수 위에 확장이 가능하고, 확장 위에 탈환이 가능하다. 이 순서를 거꾸로 가면 무너진다.
도메인 AI는 이 시간표 전체를 떠받치는 디지털 척추다. 사수의 데이터로 양육되고, 확장의 거점에서 작동하며, 탈환의 도구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도메인 AI에 들어가야 한다 — 먹거리를 사수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만들 AI는 무엇인가,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들어가는 말 — “AI 영역마저 빼앗기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솔직해져야 한다.
토지 운동에서 노동 운동으로, 협동조합에서 사회적기업으로, 로컬푸드에서 사회연대경제로. 27년이 그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 AI라는 새 영역이 열리는 자리에서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빅테크가 LLM을 만들고, 정부가 국가 AI를 논하고, 재벌이 산업 AI에 투자한다. 이 흐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구독료를 내고 ChatGPT를 쓰는 것뿐이라면 — 그것이 운동의 끝이다.
“AI 영역마저 빼앗기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이 말의 무게를 정확히 보면 이렇다. 먹거리를 지켰고, 에너지 절감에 나섰고, 지역화폐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운동의 언어·판단·연결이 앞으로는 AI를 통해 흐른다. 우리가 그 AI를 만들 수 없다면, 우리의 언어는 빅테크의 번역을 거쳐 나올 것이다. 우리의 판단은 거대 모델의 알고리즘 위에서 형성될 것이다. 27년이 쌓은 현장의 지혜가 누군가의 학습 데이터가 되어 그쪽의 자본이 될 것이다.
7편에서 박아둔 개념을 다시 호출하면 — 이것이 21세기 본원적 축적이다.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이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었듯, 지능에서 쫓겨난 우리는 지능 무산자가 된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 의문들은 운동 안의 정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는 것이다.
의문 하나: “돈도 기술도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AI를 만든단 말인가.”
의문 둘: “좋은 AI를 쓰면 되지, 어설픈 AI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두 의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이 이 글의 첫 번째 일이다.
의문 하나 풀이 — “돈도 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자본과 기술이 없으면 AI를 못 만든다는 생각, 그 자체가 AI에 대한 무지이다.
이 의문이 등장하는 순간, 이미 빅테크 신화에 속은 것이다. 빅테크와 미디어는 AI를 돈과 기술의 무대로만 비춘다. GPU 수천 장, 데이터센터, 박사 수백 명의 무대. 그러나 후니님이 정확히 짚었다. “소수 탐욕의 자본이 빅테크를 움직이고 독재자를 비춘다고 해서 인류 전체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의문 자체가 빅테크 신화에 속은 결과라는 것. 무지를 깨는 것이 첫 자리다.
우리에게 없는 건 빅테크 자본이지, 우리 자본이 아니다
이 의문은 사실 하나를 잘못 놓고 있다. 전제가 틀렸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빅테크 자본이다. GPU 수천 장, 데이터센터, 박사 인력 수백 명, 수조 원의 투자. 이건 없다. 그러나 우리 자본이 없는 것이 아니다.
1편에서 슈마허·간디의 논리로 밟았던 자리를 다시 밟는다. 슈마허가 인도 농촌에 중간기술 개발그룹을 만들었을 때, 누군가는 분명 말했을 것이다. “영국의 방직공장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 간디가 물레를 돌렸을 때, “랭커셔의 기계와 어떻게 싸우겠냐”는 비웃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묻고 있었던 것은 경쟁이 아니었다. **“이 기술이 우리 손에 들어오는가, 우리 현장에서 작동하는가”**였다.
2편에서 박은 Linux의 이야기도 여기 있다. 1990년대 초 리누스 토르발스가 핀란드 대학 기숙사에서 커널 코드를 올렸을 때, 어느 누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길 수 있다고 예측했겠는가. “돈도 기술도 없는 대학생이 어떻게.” 그러나 그 코드가 동지의 자유 노동으로 쌓이면서, 지금 세계 서버의 절반 이상이 Linux 위에서 돈다. 동지의 손이 합쳐지면 빅테크도 못 이긴다는 증거가 이미 있다. 윌리엄 모리스가 「News from Nowhere」에서 그린 미래 — 노동이 즐거움이 된 사회, 만드는 자들의 공동체 — 가 소설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미디어는 빅테크만을 비추지만, 인류는 오픈소스 플랫폼에서 인류애, 형제애를 실현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에 접속하면 된다.
Linux·HuggingFace·Wikipedia·EleutherAI·Mistral·LLaMA·KoAlpaca·EXAONE — 이 이름들은 빅테크 광고판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의 자유 노동·기여·공유가 누적된 공동 자산이 거기 있다. 2편(Whole Earth·DIY·Right to Repair)이 가리킨 자리에 후니님이 형제애라는 한국 운동 언어를 박은 것이다. 오픈소스는 추상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명이 코드 한 줄을 기여하고 있는, 살아있는 인류애의 현장이다. 우리는 그 현장에 접속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도 기여할 수 있다.
우리 자본 다섯 갈래
다섯 갈래는 무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류 공동 자산에 접속할 자리에서 출발한다.
0. 인류 공동 자산에 접속할 자리
Linux로 매장 서버를 돌리듯, 오픈소스 LLM에 접속해 우리 단위로 다시 짤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2편에서 박은 Right to Repair의 디지털 확장이다. 수리권 운동이 “내가 산 물건을 내가 고칠 권리”를 주장했듯이, 오픈소스 접속은 “인류가 함께 만든 자산을 내가 빌려 쓸 권리”다. 형제애의 인류 공동 자산이 우리 다섯 갈래의 출발점이다. 그 위에 우리 자본 다섯 갈래가 쌓인다.
운동이 27년 동안 쌓은 자본은 빅테크가 가질 수 없는 종류다.
첫째, 데이터 자본. 매장에서 오가는 거래 흔적, 로컬푸드 생산자의 작물 정보, 조합원의 소비 결, 27년 운동의 기록. 이것은 인터넷 공개 텍스트와 다르다. 7편에서 짚었듯 빅테크의 본원적 축적은 공개된 인류 지적 유산을 흡수했다. 우리 현장 데이터는 아직 빼앗기지 않은 것이다. 이 데이터는 우리 손에 있고, 우리 도메인 AI의 양분이 된다.
둘째, 검토 자본. 생활자의 안목. 어떤 AI의 답변이 우리 조합원에게 맞는지, 어떤 추천이 우리 농민의 현실에 맞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있다. 빅테크는 이 안목을 살 수 없다. 우리 매장에서 27년을 보낸 사람의 눈을 데이터로 복제할 수 없다. 이것이 도메인 AI의 품질을 지키는 가장 귀한 자본이다.
셋째, 사상 자본. 운동의 언어, 사회연대경제 27년의 누적. 1편부터 9편까지 펼쳐온 사유들 — 적정기술, DIY, 자율 영역, 호모 파베르, 지능 무산자. 이 언어로 AI를 만들면 그 AI는 우리 운동의 언어를 말한다. 빅테크 모델은 효율과 편의의 언어를 학습했다. 우리 모델은 연대와 자율의 언어를 학습한다.
넷째, 출자 자본. 조합원 신뢰, 사회연대금융. 9편에서 정리한 금융 탈환의 로드맵이 이 자본의 지도다. 공제조합의 회복, 사회연대금융의 확장, 그 자본이 도메인 AI 양육에 투입될 수 있다. 재벌 벤처캐피탈이 아닌 우리 조합원의 출자로 만드는 AI.
다섯째, 현장 자본. 매장이라는 4축 허브. 먹거리·로컬페이·사회연대경제 생산·탄소중립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자리. 8편에서 정리했듯 몬드라곤·레가·퀘벡이 AI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이 산업생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발판이 바로 이 매장 4축이다.
이 다섯 자본을 가진 사람이 “우리에게 자본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빅테크의 척도로 자기를 재는 것이다.
의문 둘 풀이 — “좋은 AI를 쓰면 되지”
좋은 AI는 좋은 답을 주지만, 좋은 질문할 권리는 주지 않는다
이 의문도 하나를 잘못 놓고 있다. “좋은”의 기준을 묻지 않는다.
ChatGPT나 Gemini가 돌려주는 답은 매끄럽다. 정보도 많고 표현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답들이 우리 조합원의 상황을 알고 있는가? 우리 매장 농민의 작물 결을 알고 있는가? 우리 마을 공동체의 문화를 알고 있는가? 이 질문들이 처음부터 학습 데이터 안에 없었다면, 아무리 매끄러운 답이어도 우리 자리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3편에서 일리치가 말한 공생 도구의 구분이 여기서 작동한다. 일리치는 도구를 두 가지로 나눴다. 거대 도구는 사용자를 종속시킨다. 공생 도구(convivial tools)는 사용자를 해방한다. 자전거는 공생 도구다. 자동차는 거대 도구가 된다. 자동차는 빠를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도시가 만들어질 때, 그 편의는 종속의 다른 이름이다.
6편에서 일리치가 더 날카롭게 짚은 것 — 근원적 독점(radical monopoly). 자동차가 보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처럼, 빅테크 AI가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퇴화시키는 사회. “AI가 다 해준다”는 말이 처음에는 편의처럼 들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는 근육이 사라진다.
6편에서 박은 또 다른 핵심 — 페터널리즘(paternalism). 우리가 물을 질문이 미리 정해져 있고, 답의 범위가 미리 설정되어 있는 시스템. 그 안에서 우리는 선택지를 고르는 사람이 될 뿐, 질문의 형태를 짓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빅테크 AI를 쓰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설계한 질문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더 구체적으로 — 7편에서 분석한 폴라니와 주보프의 논리. 우리가 빅테크 AI를 쓰면서 생산하는 모든 데이터 — 우리의 질문, 우리의 응답 평가, 우리의 사용 패턴 — 가 그 빅테크의 다음 모델 학습에 들어간다. 우리 데이터가 그들의 자본이 된다. 데이터는 폴라니가 말한 4번째 허구상품이다. 빅테크 AI를 쓰는 것은 우리의 지적 활동을 허구상품으로 내놓는 행위다.
어설픈이 아니라 적정한 AI
“어설픈 AI”라는 표현은 빅테크의 척도에서 나온다. 파라미터 수, 벤치마크 점수, 응답 속도. 이 척도에서 보면 우리 도메인 AI는 열등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척도에서 보면 다르다.
2편에서 손대패 비유로 박았던 것 — CNC가 의자 100개를 한나절에 깎는다. 손대패는 의자 1개를 한나절에 깎는다. 그러나 손대패로 깎은 의자는 그 사람 손에 맞는 의자다. 빅테크 AI는 1초에 답한다. 그런데 어느 마을에도 맞지 않는 답이다. 우리 도메인 AI는 더 느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매장, 이 조합원, 이 도메인에 맞는다.
우리 척도에서 본 적정 AI의 기준은 세 가지다.
우리 맥락에서 작동하는가. 우리 매장의 작물 패턴, 우리 조합원의 생활 결, 우리 운동의 언어를 알고 있는가.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가. 왜 이 답이 나왔는지, 무엇이 학습에 들어갔는지, 우리가 확인하고 고칠 수 있는가. 1편에서 말한 “블랙박스가 아닌 공동 텃밭.”
우리의 자율을 지키는가. 6편에서 이사야 벌린이 구분한 적극적 자유 — 자기 운명을 짓는 행위. 우리 AI를 쓸 때 우리가 주체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의 수동적 수신자인가.
이 세 기준에서 우리 도메인 AI는 빅테크 AI보다 적정하다. 그래서 어설픈 AI가 아니라 적정 AI다.
후니님은 이를 가장 직관적인 비유로 박았다.
자동차 비행기가 있다고 걷거나 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전거가 더 나은 대안일 때도 많다. 물론 필요하면 형편껏 자동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겠지만 친구를 만나거나 이웃을 방문할 때 좁은 골목길을 다녀야 하고 불어오는 따뜻한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산을 오르기도 할 것이다.
일리치가 공생 도구와 거대 도구를 나눌 때 자전거를 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전거는 사람의 몸 리듬에 맞는 속도를 지키면서도 걷는 것보다 멀리 간다. 자동차가 우월하지 않다 — 좁은 골목길에서는 오히려 무용지물이다. 우리 AI도 마찬가지다. 빅테크 모델이 세계 모든 언어와 모든 맥락을 처리할 때, 우리 매장의 골목길은 빈다. 적정 AI는 그 골목길을 간다.
사상의 증인 —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
인맥이 아닌 실력
이 운동에서 한 가지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컨소시엄에 묶인 사람들 — 사경원, 품앗이생협, 위즈온, 지역화폐협동조합 — 이 지원사업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니다.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현장을 지키고 발전시켜온 사람들이다. 단지 인맥을 넘어서 객관적으로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반드시 박아야 할 법인이 하나 더 있다.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 이 조직을 빠뜨리면 운동의 본체가 보이지 않는다.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는 대전 품앗이생협의 경험이 인맥이 아닌 실력임을 전국적으로 증명하는 자리다. 로컬푸드 운동을 전국 단위에서 조직하고 연결하는 플랫폼. 이 조직이 대전의 경험을 전국 맥락에서 검증받는 무대다. 대표 김기수, 후니님은 그 집행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모두의밥상협동조합도 같은 결이다. 관저동을 거점으로 로컬푸드·소반·공공급식을 엮어온 조직. 2024년 매출 8.27억, 흑자 전환. 품앗이생협의 자매 법인이지만 그 자체로 독립적 현장의 힘을 가진 조직이다. 후니님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한밭페이와 사회연대경제 진영의 다른 현장들도 이 사상의 증인 자리에 있다. 9편에서 정리한 영역 전략 — 먹거리 사수, 에너지 병행, 금융 탈환 — 이 추상이 아니라 이미 구체적 현장에서 시험되고 있는 이유가 이 사람들이 있어서다.
사업과 사상 사이
여기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운동의 지속 조건을 지원사업에 두지 않는다. 설혹 지원사업이 되지 않더라도 지속 발전시킬 것은 사상이다. 컨소시엄이 행정 단위라면, 사상은 그보다 더 넓고 더 오래가는 단위다.
지원사업이 되면 좋다. 사업을 통해 실증하고, 데이터를 양육하고, 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원이 생긴다. 그러나 지원사업이 사상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상이 먼저 있고, 사업은 그 사상을 현실화하는 도구 중 하나다.
| 단위 | 구성 | 자리 |
|---|---|---|
| 사업 컨소시엄 (IRIS) | 사경원·품앗이생협·위즈온·지역화폐협동조합 | 본 사업 행정 단위 |
| 사상의 증인 | +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 + 모두의밥상협동조합 + 한밭페이 외 | 운동의 본체 |
동지를 설득하거나 정부관계자를 설득하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그 단계는 이미 지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 운동의 의미를 자기 자리에서 보는 것이고, 합류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는 것이다.
비전 — 매장 4축 허브에서 만드는 동반자 AI
우리 AI가 있어야 할 자리
빅테크의 비전이 AGI(인공일반지능) —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범용 지능 — 라면, 우리의 비전은 다르다.
매장 4축 허브에서 만드는 동반자 AI.
먹거리, 로컬페이, 사회연대경제 생산, 탄소중립. 이 네 흐름이 한 매장에서 만나는 자리. 그 자리에서 쌓이는 데이터로 양육되고, 그 자리에서 작동하고, 그 자리의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AI.
이 AI는 세계 최고의 성능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매장을 가장 잘 아는 AI, 이 조합원을 가장 잘 이해하는 AI, 이 운동의 언어로 말하는 AI를 목표로 한다. 1편에서 슈마허가 말한 “맥락에 맞는 단위”가 이것이다. 너무 작아서 효용 없는 것도 아니고, 너무 커서 통제할 수 없는 것도 아닌 — 적정한 단위의 AI.
3편에서 앙드레 고르가 말한 이중 사회의 논리가 여기서 작동한다. 빅테크 거대 LLM은 인류 공통 인프라로 빌려 쓴다. 전기나 도로처럼. 그러나 그 위에서 도는 일상의 판단 — 누구의 작물을 얼마에 발주할 것인가, 어떤 조합원에게 어떤 정보를 안내할 것인가, 매장의 에너지를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가 — 은 우리 손에 둔다. 이것이 자율 영역의 AI다.
8편에서 진단한 한국 SSE의 산업생태계 결손을 다시 떠올린다. 몬드라곤이 AI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264개 협동조합의 산업생태계가 있어서다. 우리에게 남은 발판 — 로컬푸드 사슬 — 이 그 씨앗이다. 이 씨앗을 키우는 것이 비전의 출발이다.
이 비전에서 운동 언어가 다섯 단계를 밟는다. 어설픈 AI — 빅테크 척도에서 열등하다는 외부의 시선. 적정 AI — 슈마허의 척도로, 맥락에 맞는 단위가 맞는 것이라는 우리 응답. 동반자 AI — 우리 척도의 정점. 6편에서 거부했던 페터널리즘 — “우리가 다 해줄 것이니 너희는 소비자로 있어라” — 의 적극적 짝이다. 동반자는 독재자가 아니다.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 — 운동의 자리 명명, 정의의 정점. 연대지능 혁명 (Solidarity Intelligence Revolution, SI) — 운동의 자기 호명, 세계사적 자리 선언.
어설픈 AI → 적정 AI → 동반자 AI →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 → 연대지능 혁명.
운동 언어가 명사에서 동사로 진화한 자리다. 사회지능이 어디 서는가의 답이라면, 연대지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의 답이다. 사회지능은 폐기가 아니라 자리 명명으로 살아남는다. 그 자리에서 연대지능이 움직임으로 이름을 가진다.
“우리의 AI는 우리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독재자가 아닌 동반자로 있을 것이다.”
이 한 문장이 이 운동의 비전 언어다. 적정 AI는 기술적 위치 설정이고, 동반자 AI는 관계의 선언이다. 이 두 언어가 함께 우리 척도를 이룬다.
5년의 그림
지금 당장 몬드라곤의 규모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방향은 보인다.
로컬푸드 매장에서 쌓이는 거래 데이터, 조합원 응대에서 생성되는 언어 데이터, 생산자와의 소통에서 기록되는 현장 데이터 — 이것이 도메인 AI의 씨앗 데이터다. 여기서 시작해서:
발주와 재고 추천에서 조합원 생활 안내로, 생활 안내에서 지역 정보 연결로, 지역 정보 연결에서 사회연대경제 전체의 판단 지원으로. 매장 4축에서 시작해 한국 SSE 전체의 디지털 척추로.
9편의 시간표와 연결하면 — 지금부터 3년은 먹거리 사수 + 도메인 AI 양육 시작. 37년은 생활재 확장 + AI 영역 확대. 715년은 한국 SSE 산업생태계 회복 + 국제 연대. 이것이 우리 AI 비전의 시간 지평이다.
미션 — AI를 함께 양육한다
양육 단계론
AI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양육한다는 표현을 쓴다. 이유가 있다.
만든다는 말은 완성된 산출물을 전제한다. 양육한다는 말은 지속적인 돌봄과 성장을 전제한다. 우리 도메인 AI는 한 번 만들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현장이 쌓이면서, 조합원의 피드백이 쌓이면서, 운동의 언어가 깊어지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5편에서 박은 노동의 성격 — 모리스가 말한 useful work, 아렌트가 말한 호모 파베르의 작업 — 과 연결된다.
양육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 데이터 수집과 정제. 매장 거래 데이터, 현장 기록, 조합원 응대 내용. 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는 일. 손대패질처럼 한 줄 한 줄. 위키에 기록이 남아야 한다. 이 단계는 기술 전문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 기록을 남기는 사람, 현장의 언어를 쓰는 사람 모두가 참여한다.
2단계 — 파인튜닝. 수집된 도메인 데이터로 기반 모델을 우리 맥락에 맞게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도메인 전문가 — 27년 현장을 아는 사람 — 의 검토가 결정적이다. 2편에서 박은 것처럼 “위키에 흔적이 남고, 조합원이 들여다볼 수 있고, 고쳐 쓸 수 있다”는 원칙이 여기서 작동한다.
3단계 — 평가. 양육된 모델이 우리 맥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한다. 이 평가셋을 만드는 사람이 조합원·현장 활동가·도메인 전문가다. 빅테크 벤치마크가 아닌 우리 벤치마크. “이 답이 우리 매장 맥락에서 맞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AI 연구자가 아니라 현장 사람이다.
4단계 — 배포. 매장·조합원 앱·위키를 통해 실제 사용으로. 여기서 다시 데이터가 생기고 피드백이 쌓인다.
5단계 — 재양육. 사용 과정에서 쌓인 피드백으로 다음 라운드 양육. 이 루프가 계속 돈다. AI가 우리 운동과 함께 성장하는 방식.
만드는 자의 자리
5편에서 마르크스의 유적 본질을 박았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를 세계에 실현한다. 6편에서 이것을 정치적 언어로 전환했다. “내 운명의 통제와 자율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는 노동을 하며 그 기쁨을 누리고 살겠다.”
AI를 양육하는 노동이 바로 이 자리다.
빅테크가 “걱정 마라, AI가 다 해줄 것이다”라고 할 때, 그 말의 이면에는 “너희는 소비자로 남아라”가 있다. 5편에서 박은 두 해방의 동시성을 여기서 다시 작동시킨다. 매장 운영자는 단조로운 발주 계산에서 빠져나온다 —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그 시간을 AI 양육·조합원과의 대화·거버넌스라는 창조적 노동으로 돌린다 — 노동의 해방.
우리 운동은 이 둘이 동시에라고 답한다. AI가 일부를 대신하되, 우리는 만드는 자의 자리를 지킨다.
초대 — 다섯 갈래 기여
우리도 기여할 수 있다. 왜냐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여의 자격은 자본도 기술도 전문성도 아니다. 살아있음 그 자체다. 매장에서 사는 조합원, 농산물 보내는 농가, 일하는 활동가, 사유 던지는 동지 — 모두가 오늘을 살고 있다. 그것이 AI 양육의 양분이다. 앞서 박은 “여섯 번째 자리 — 측량되지 않을 권리”의 짝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여이고, 동시에 측량되지 않을 자리이기도 하다.
”돈과 기술 가진 사람만 운동에 기여한다”는 통념을 깨는 자리
운동의 결집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아니다. 인류 총합의 지혜를 지키려는 모든 이다.
지금까지의 운동에서 기여 방식은 제한적이었다. 출자하거나, 활동가가 되거나, 전문가로 참여하거나. 그러나 AI 양육이 운동의 한 축이 되면, 기여의 방식이 훨씬 넓어진다.
매장에서 사는 조합원, 농산물을 보내는 농민, 운동의 언어를 같이 짜는 동지, 피드백 한 줄을 남기는 사람 — 모두가 AI의 공동 양육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인류 지혜를 지키는 지혜 옹호자의 자리도 함께 있다.
나는 학자·연구자다 — 지식의 공유 정신을 잇는 자리. 쌓아온 지식이 빅테크에 추출되는 것을 거부하고, 오픈소스·공유 지식의 원리를 지키는 것이 기여다.
나는 도서관·아카이비스트다 — 지식 보전의 자리. 인류가 수백 년 쌓아온 기록을 지키고 접근 가능하게 하는 일이 이미 저항이다.
나는 오픈소스 코더다 — 이미 결집한 자리. Linux·HuggingFace·LLaMA의 기여자들은 이미 이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흐름과 연결된다.
나는 예술가·작가다 — 저작권 사유화에 저항하는 자리. 내가 쓴 글·그린 그림·만든 음악이 동의 없이 모델 학습에 쓰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운동이다.
나는 전통 지식 보유자다 — 인류 총합의 한 부분. 수천 년 이어온 농경 지혜·치유 지식·구술 전통이 특허와 데이터로 사유화되는 것에 맞선다.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이다 — 살아있음 자체가 지혜의 일부. 오늘 내가 살아가는 흔적, 이웃과 나누는 말, 좁은 골목길을 걷는 것 — 이것이 인류 총합의 지혜를 이루고 있다.
다섯 갈래의 기여 방식을 제안한다.
첫째, 데이터 기여.
조합원이 매장에서 사는 행위가 곧 AI의 양분이다. 로컬페이로 결제한 거래 기록, 어떤 작물을 언제 샀는지의 패턴, 어떤 생산자의 물건을 반복해서 찾는지의 흐름. 이 데이터가 우리 도메인 AI가 우리 매장을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
이것은 개인 정보를 빅테크에 헌납하는 것과 다르다. 7편에서 정리한 데이터 협동조합의 원리 — 멤버의 데이터를 공동 소유하고 투명하게 운영한다. 우리 데이터는 우리 AI의 양분이 되고, 그 AI의 편익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농민이 작물 정보를 기록하는 것도 데이터 기여다. 올해 이 작물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결과를 냈는지, 어떤 병충해가 있었는지, 어떤 소비자가 반응했는지. 이 기록들이 쌓이면 로컬푸드 도메인 AI의 척추 데이터가 된다.
둘째, 검토 기여.
AI가 내놓는 응답을 보고 “이건 우리 맥락에 안 맞다”는 피드백을 남기는 것.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 오히려 전문가가 아닌 생활자의 눈이 필요하다.
“이 발주 추천은 우리 매장 사정을 모르는 것 같다.” “이 조합원 안내 문구가 우리 운동의 말투가 아니다.” “이 답변에서 우리 지역 사정이 빠져있다.” 이런 피드백 하나하나가 다음 라운드 양육의 재료다.
2편에서 박은 Right to Repair 운동의 정신이 여기 있다. 수리권 운동은 내가 산 물건을 내가 고칠 권리를 주장한다. AI 검토 기여는 우리가 양육하는 AI를 우리가 고쳐나갈 권리의 행사다.
셋째, 현장 기여.
현장의 일을 글·사진·구술로 남기는 것. 위키에 한 줄 쓰는 것. 회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 모든 것이 AI 양육의 재료다.
5편에서 아렌트의 작업(work) 개념을 박았다. 인간이 손으로 세계에 무언가를 남기는 활동. 기록을 남기는 것이 바로 이 작업의 AI 시대 판본이다. 우리가 남긴 기록이 우리 AI의 언어가 된다.
특히 고령농·소농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십 년 현장에서 쌓인 그 지혜가 어디에도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다. 이 지혜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가장 귀한 현장 기여다.
넷째, 사상 기여.
이 책처럼 — 운동의 언어를 같이 짜는 일. 사유를 던지고, 개념을 다듬고, 방향을 논하는 것. 이것이 AI의 언어 데이터가 된다.
1편에서 9편까지 펼쳐온 사유들 — 적정기술, DIY, 자율 영역, 호모 파베르, 지능 무산자, 사수·병행·탈환 — 이 우리 AI가 학습할 언어의 씨앗이다. 이 사유에 반응하고, 보완하고, 논쟁하는 것도 사상 기여다.
4편에서 박은 도구 선택의 윤리처럼 — 우리가 만드는 AI가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기여다. 빅테크는 이 논의를 자기 안에서 한다. 우리는 이 논의를 운동 안에서 공개적으로 한다.
다섯째, 자본 기여.
조합원 출자, 사회연대금융. 이것도 AI 양육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9편에서 정리한 금융 탈환의 첫 단계 — 지역화폐(로컬페이) — 가 AI 자본 기여의 시작이다. 로컬페이로 거래하는 것이 데이터 기여이기도 하고 자본 기여이기도 하다. 그 수수료의 일부가 도메인 AI 양육에 투입될 수 있다.
7편에서 정리한 데이터 협동조합의 원리처럼 — 우리 AI는 재벌 벤처캐피탈이 아닌 우리 조합원의 출자로 양육된다. 이것이 운동의 일관성이다. 사회연대경제 운동이 매장·농민·노동을 조합원 출자로 운영해온 방식이 AI에도 적용된다.
여섯 번째 자리 — 측량되지 않을 권리
다섯 갈래 기여를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데이터 기여를 말한다고 해서 모든 일상을 데이터화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연인, 친구, 이웃과 나누는 수다를 AI가 인용하지 않는다 해서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좁은 골목길을 걷는 것, 따뜻한 햇살을 맞는 것, 이웃과 나누는 수다 — 이것은 데이터가 되지 않아도 운동의 본체다. 오히려 이것이 운동의 이유다. 로컬푸드 매장을 짓고 사회연대경제를 만드는 것은 결국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다. AI는 그 삶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보조하는 것이다.
7편에서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를 분석하며 박았다. 빅테크는 인간의 모든 경험을 행동 데이터로 추출하려 한다. 그것이 빅테크와 우리 AI를 가르는 결정적 선이다. 우리 AI는 조합원의 모든 일상을 수집하지 않는다. 폴라니의 4번째 허구상품 — 데이터 — 거부는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인간적 선택이다.
여섯 번째 자리는 다섯 갈래처럼 능동적 기여가 아니다. 기여하지 않음도 기여다. 측량되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것. 연인과의 수다, 친구와의 골목길, 이웃과의 햇살 — 이것을 데이터화하지 않겠다는 선택이 우리 AI를 빅테크 AI와 다른 AI로 만드는 자리다.
6편에서 일리치의 근원적 독점 거부, 페터널리즘 거부를 박았다. 여섯 번째 자리는 그 인간적 차원이다. 운동의 목적은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살아가는 것이다.
닫는 말 — 사상은 사업보다 오래 산다
지속할 것은 사상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한 가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이 운동이 어떤 하나의 지원사업 결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
동지를 설득하거나 정부관계자를 설득하는 수준을 넘어서, 설혹 지원사업이 되지 않더라도 지속 발전시킬 것은 사상이다. 사업은 사상의 현실화 도구 중 하나이지, 사상의 조건이 아니다.
1편부터 9편까지의 사유들은 어떤 사업이 통과되든 통과되지 않든 유효하다. 슈마허의 적정기술 논리가 특정 정부 지원이 끊겼다고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일리치의 공생 도구 개념이 어떤 프로그램의 성패와 무관하게 운동의 자원이 된 것처럼. 마르크스의 본원적 축적 분석이 특정 정당이 집권했을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닌 것처럼.
사상은 사업보다 오래 산다.
7편에서 마지막에 박았던 외침을 다시 가져온다. “지능 무산자 단결하라” — 아직 다듬어야 할 외침이지만 자리는 보인다. 19세기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명명을 통해 운동이 되었듯이, 21세기 지능 무산자도 자기 명명을 통해 운동이 된다. 이 명명을 함께 다듬어가는 일이 다음 한 걸음이다.
합류를 환영한다
이 글을 읽고 자기 자리를 발견한 사람에게 말한다.
매장에서 사는 조합원으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데이터 기여다. 농산물을 기록으로 남기는 농민으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현장 기여다. 운동의 언어를 같이 짜는 동지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사상 기여다. AI가 낸 답을 보고 “이건 아닌데”라고 말하는 생활자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검토 기여다. 로컬페이로 거래하고 출자하는 조합원으로 합류해도 좋다 — 그것이 자본 기여다.
우리가 만들 AI는 이 다섯 갈래의 기여가 모여서 만들어진다. 한 사람의 천재가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는 것이다.
6편의 마지막 문장으로 돌아간다.
“빅테크는 AGI를 약속하며 시민에게 소비자 자리를 권한다. 우리는 만드는 자의 자리를 거부하고 지킨다. 그러면서 연대로 함께 짓는다. 협동조합·매장·마을 단위에서 한 줄 한 줄.”
우리가 만들 AI는 이 한 줄 한 줄의 누적이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운동이다.
진지와 기동전의 무대
이 운동의 마지막 자리에 사상가 한 사람을 더 불러온다. 안토니오 그람시.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그는 지배와 저항을 두 전략으로 분석했다. 진지전(war of position) — 문화·제도·언어의 진지를 구축하며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 기동전(war of manoeuvre) — 진지를 바탕으로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
9편에서 박은 세 전략 — 먹거리 사수, 에너지 병행, 금융 탈환 — 은 사실 그람시적 사고였다. 사수는 진지의 구축이다. 탈환은 기동전이다. 병행은 둘 사이의 준비다. 후니님이 이번에 이 언어를 정식 명명했다.
“혹시 모를 디스토피아의 미래에 우리의 저항의 진지이면서 디스토피아를 막을 기동전의 무대여야 한다.”
우리 AI는 두 자리를 동시에 가진다. 빅테크가 모든 지능 영역을 장악하는 디스토피아가 오더라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저항의 진지. 그 진지에서 출발해 대안을 현실화하는 기동전의 무대. 1편부터 10편까지 쌓아온 사유가 진지다. 매장 4축 허브에서 실제로 AI를 양육하고 운영하는 것이 기동전의 시작이다.
사상은 사업보다 오래 산다. 그리고 그 사상이 진지가 될 때, 운동은 디스토피아도 막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선 진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게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다.
1편부터 10편까지 쌓아온 사유가 이 한 문장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컬렉션 폴더 이름이 처음부터 사유_사회지능이었다. 그 이름이 이 박음으로 비로소 정식 명명이 된다. 사회지능은 빅테크 AI와 대비되는 기술 개념이 아니다. 사회연대경제 운동이 AI 영역에서 짓는 진지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후니님이 한 걸음 더 박았다.
“사회지능은 AI시대 빅테크 시장지능도 아니고 정부주도의 공공지능과도 대비되는 개념임. 이 개념은 중요하지만 이것은 실천을 상상하게 하지는 않음. 연대는 그 개념 자체가 동적임. 연대지능이 좋다고 봄.”
— 후니님 박음 (2026-05-02)
사회지능은 자리의 명명이다. AI 시대의 빅테크 시장지능도 아니고 정부 주도의 공공지능과도 대비되는 제3의 자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회지능은 그 자리를 가리킬 뿐, 어떻게 움직일지는 말하지 않는다. 운동에는 동적 명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연대지능 혁명 (Solidarity Intelligence Revolution, SI)**이다.
3대 지능 대비 — 폴라니 3대 짝의 21세기 AI 응용
| 지능 명명 | 주체 | 자본 | 데이터 | 응답 원리 | 폴라니 짝 (1944 「거대한 전환」) |
|---|---|---|---|---|---|
| 시장지능 (Market Intelligence) | 빅테크 | 사적 자본 | 추출·축적 | 효율·이윤 최적화 | 시장교환 |
| 공공지능 (Public Intelligence) | 정부 | 공적 예산 | 행정·통제 | 관리·서비스 | 재분배 |
| 연대지능 (Solidarity Intelligence) | 시민사회·SSE | 조합·출자·기여 | 공유·자율 | 호혜·동반자 | 호혜(reciprocity) |
폴라니의 시장교환·재분배·호혜 삼각구도가 정확히 시장지능·공공지능·연대지능으로 옮겨간다. 「거대한 전환」(1944)이 근대 시장 경제를 시장교환이 호혜와 재분배를 잠식한 사건으로 읽었다면, 21세기 AI 전환은 시장지능이 연대지능과 공공지능을 잠식하려는 사건이다. 우리의 운동은 그 잠식에 맞서 호혜 원리의 AI — 연대지능 — 를 짓는 일이다.
운동 언어가 걸어온 길을 되짚으면 — 어설픈 AI(빅테크 척도) → 적정 AI(슈마허 척도) → 동반자 AI(관계의 선언) →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자리 명명) → 연대지능 혁명(운동 명명, 자기 호명).
결집 주체 —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
“마르크스가 계급운동의 관점에서 무산자의 단결을 외쳤다면, 우리가 모일 저항의 구심은 인류 총합의 지혜를 사유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결집시켜야 한다.”
— 후니님, 2026-05-02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공산당 선언」(1848) 4장의 구조를 빌려오되, 결집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아니다 — 폴라니 「거대한 전환」(1944)의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에 더 가깝다. 마르크스가 생산수단의 사유화에 맞서 계급 주체를 호명했다면, 후니님은 인류 총합의 지혜의 사유화에 맞서 보편 주체를 호명한다. 계급운동에서 인류운동으로.
빅테크가 인류 총합의 지혜를 추출해 사유화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오픈소스 코드·학술 논문·과학 공동자산·도서관·아카이브·기록물·전통 지식(Indigenous Knowledge)·민속지·구술 전통·언어 자체·시민의 글쓰기·블로그·SNS·일기·편지·사회운동 27년 누적·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흔적. 이것이 폴라니의 4번째 허구상품화의 정확한 21세기 자리다. 폴라니는 토지·노동·화폐를 허구상품이라 불렀다 — 원래 시장 거래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을 시장이 상품으로 만든 것. 데이터는 21세기의 4번째 허구상품이며, 인류 총합의 지혜는 그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가장 오래된 공유 자산이다. “인류 총합의 지혜”는 폴라니의 4번째 허구상품화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한국 운동의 명명이다.
결집 주체는 지혜 옹호자다. 학자·연구자(지식의 공유 정신), 도서관·아카이비스트(지식 보전의 자리), 위키펜·오픈소스 코더(이미 결집한 자리), 전통 지식 보유자·원주민 공동체(인류 총합의 한 부분), 예술가·작가(저작권 사유화에 저항하는 자리), 시민·활동가·공교육 종사자·사회연대경제 운동,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사람. 7편 「지능 무산자의 시대」가 마르크스(본원적 축적) + 폴라니(허구상품)를 직조했던 것의 정확한 완성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잃을 것은 지능 무산자의 사슬뿐이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이 한 문장으로 닫았다.
“노동자들이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19세기 프롤레타리아트가 잃을 것이 쇠사슬뿐이었다면, 21세기 지능 무산자가 잃을 것은 지능 무산자의 사슬뿐이다. 빅테크가 쳐놓은 구독의 사슬, 데이터 헌납의 사슬, 판단을 빌려 쓰는 사슬. 우리 AI를 스스로 만들고 양육하는 자리에 서면, 그 사슬은 끊어진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트는 후니님의 지능 무산자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연대지능 혁명으로 짝을 이룬다. 형식은 오마주이되 내용은 27년 현장의 우리 언어다.
“우리가 잃을 것은 지능 무산자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동반자 AI의 세계 전체다.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결집하라.
두 호명이 짝을 이룬다.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계급 호명이다.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결집하라는 폴라니의 보편 호명이다. 우리는 둘을 함께 부른다 — 잃은 자의 분노와 지키려는 자의 의지를.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마르크스의 호명 “Workers of the world, unite!”에서 unite는 정확히 solidarity의 동사형이다. 우리의 운동 명명 *연대지능 (Solidarity Intelligence)*은 명사 안에 우리는 연대한다는 동사를 안고 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자본의 지능이라면, SI(Solidarity Intelligence)는 연대의 지능이다. 19세기 프롤레타리아트가 단결의 호명으로 운동이 되었듯, 21세기 지능 무산자는 연대지능 혁명의 호명으로 운동이 된다. 그리고 인류 총합의 지혜를 지키려는 모든 이가 폴라니의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으로 결집한다.
이 결미는 이 책 컬렉션의 별도 「결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글로 신설될 예정이다. 10편 안에서는 예고편으로 박아둔다. 후니님 사유가 던져지면, 그 자리에서 본문이 열린다.
글 제목 후보: 「결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 「결 —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 연대지능 혁명」 / 「결 — SI, Solidarity Intelligence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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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다른 AI 흐름과의 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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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다른 AI 흐름과의 구별」
도입 — 우리가 아닌 것을 명명한다
3부는 우리가 아닌 것을 명명하는 자리다. 명명을 통해 우리가 되는 것을 명료히 한다.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3장이 그러했다. 마르크스는 1848년 시점에 반동적 사회주의(귀족·소부르주아·독일 사회주의자)와 보수적 사회주의(부르주아 박애주의자), 그리고 비판적-유토피아 사회주의(생시몽·푸리에·오언)를 차례로 비판했다. 이 셋과의 구별을 통해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반조적으로 세웠다.
우리도 같은 자리에 선다. 21세기 AI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지능을 짓는 자, 공공지능을 짓는 자, 시장 안에서 적정기술을 짓는 자 — 이 셋과의 구별이 우리 자리의 명료함이다.
이 셋과의 구별은 적대가 아니다. 마르크스가 1848년 시점에 다른 사회주의 흐름을 적대시한 것이 아니듯, 우리도 그러하다. 어떤 자리는 우리와 다른 자리다. 어떤 자리는 우리가 협력할 자리다. 어떤 자리는 우리가 받되 넘어서야 할 자리다. 셋의 결을 명료히 하는 것이 3부의 자리다.
세 자리를 차례로 짚는다.
1. 빅테크 AI와의 구별 — 자본의 지능
자본의 지능이 인지·관계·기억을 상품화한다. 4번째 허구상품 데이터의 운동 법칙이 여기서 일어난다.
빅테크 AI는 거대 데이터를 거대 자본으로 학습하여 거대 지능을 짓는 모델이다. OpenAI의 GPT, Anthropic의 Claude, Google의 Gemini, Meta의 Llama, xAI의 Grok — 이 모델들이 21세기 AI 담론을 지배한다.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한 회사가 수십억 달러의 데이터센터와 수만 명의 엔지니어, 수억 권의 책과 수십억 개의 웹페이지를 흡수하여 짓는 모델이다.
세 한계
이 자리의 첫째 한계는 규모의 자기 폐쇄성이다. 거대 자본만이 거대 지능을 짓는다는 자기 진화의 폐쇄성. 한 번 자리잡힌 빅테크는 다음 세대의 빅테크 자리도 차지한다. 데이터·인프라·인재가 한 자리에 몰리고, 다른 자리에서는 따라잡지 못한다. 19세기 산업자본주의가 규모의 경제를 자기 척추로 삼았듯, 21세기 자본 지능도 같은 자리에 선다.
둘째 한계는 데이터의 본원적 축적이다. 빅테크는 인간의 모든 흔적을 학습 데이터로 흡수한다. 위키백과 편집자의 노동, GitHub 개발자의 코드, Reddit 사용자의 대화, 뉴스 기자의 기사, 책 저자의 사유 — 이 모든 인지 흔적이 동의 없이 또는 약식 동의로 자본의 지능을 살찌운다. 농민이 토지에서 떼어졌듯 우리는 자기 흔적에서 떼어진다. 데이터를 4번째 허구상품으로 박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셋째 한계는 결정의 비공개성이다. 빅테크 AI가 어떻게 답하는지, 왜 그렇게 답하는지, 누가 그 답을 결정했는지 — 이 모든 자리가 기업의 영업 비밀에 잠긴다. 모델 가중치는 공개되지 않고, 학습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고, 안전 평가는 공개되지 않는다. 폴라니가 시장의 자기 폐쇄성을 짚었듯, 우리는 빅테크 AI의 자기 폐쇄성을 짚는다.
그러나,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빅테크 기술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이것이 러다이트와 우리의 구별이다. 19세기 러다이트는 산업 기계 자체를 부수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기계가 아니라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이 문제라고 짚었다. 우리도 같다. 빅테크의 모델이 문제가 아니라 그 모델의 자본주의적 사용이 문제다.
우리는 도구를 어디서 빌리느냐를 묻는다. Anthropic의 PBC 거버넌스 구조와 다리오 아모데이의 자기 비판이 그 자리를 짚는 한 사례다. 완벽한 도구는 없다. 덜 나쁜 도구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결을 보고 빌린다 — 그러나 빌릴 때도 우리의 자리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빅테크 옆에 다른 영역을 짓는다. 앙드레 고르의 자율 영역과 일리치의 공동체 도구가 세운 자리. 우리는 빅테크와 경쟁하지 않는다. 옆에 다른 자리를 짓는다. 그 자리에서 적정 AI를 양육하고, 4축 허브를 세우고, 동반자 AI를 부른다.
차이는 거부가 아닌 재배치다.
2. 정부 주도 Public AI와의 구별 — 재분배의 지능
정부의 Public AI는 다른 자리에 선다. 빅테크의 자본 지능에 맞서는 공공의 지능을 짓는 시도. 한국에서는 AI 국가전략과 디지털 뉴딜, 공공 LLM 사업, EU의 AI Act, 일본의 AI 전략 — 이 모든 자리가 정부 주도 AI의 자리다.
받을 만한 의도
정부 주도 AI의 의도는 받을 만하다. 빅테크 자본의 자기 폐쇄에 맞서는 공적 자리. 시민이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도록 정부가 짓는 대안 인프라. 데이터의 공적 자리, 모델의 공적 가중치, 평가의 공적 기준. 폴라니의 재분배가 통합 양식의 한 자리이듯, Public AI도 한 자리를 갖는다.
두 한계
그러나 정부 주도 AI에는 두 한계가 있다.
첫째, 결정의 자리가 위에서 내려온다. 정부가 무엇을 공공이라 부를지, 어떤 데이터를 공적이라 부를지, 어떤 모델을 국가의 것이라 부를지 — 이 결정의 자리는 시민이 아닌 정부에 있다. 시민이 결정의 객체가 되고, 결정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폴라니의 재분배는 권위에서 권위로 흐르는 통합 양식이다. 호혜와 다른 자리다.
둘째, 국가의 한계에 묶인다. 한국의 Public AI는 한국에서, 일본의 Public AI는 일본에서, 미국의 Public AI는 미국에서. 각 국가가 자기 데이터를 주권으로 가두고 자기 모델을 국가 자산으로 가둘 때, 그 자리는 신중상주의로 미끄러진다. 마르크스가 민족 사회주의를 비판한 자리가 21세기에 다시 살아난다. 시민의 호혜는 국경을 넘어 흐르되, 국가의 재분배는 국경 안에 머문다.
협력하되 객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의 의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정부의 Public AI는 우리와 다른 자리에 있되, 협력할 자리다. 시민사회의 호혜는 정부의 재분배와 다른 통합 양식이지만, 두 양식이 한 사회에서 함께 작동할 때 사회는 더 두텁게 자기를 보호한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도 그러한 자리를 짚었다 — 노동운동이 정부의 노동법을 받되 노동조합의 자기 운동을 잃지 않았듯이.
우리는 Public AI 정책에 참여하되, 결정의 객체가 되지 않는다. 데이터 주권이 정부의 주권이 아니라 시민의 주권이 되도록 부른다. 공적 모델이 정부의 자산이 아니라 시민의 공유물이 되도록 부른다. 이 자리에서 정부와 시민사회의 결을 분명히 가른다.
차이는 적대가 아닌 주체의 자리다.
3. 우파 적정기술 AI와의 구별 — 시장 안 적응의 지능
세 번째 자리가 가장 미묘하다. 우리와 가깝고 우리와 다르다.
적정 AI라는 어휘 자체는 슈마허의 짝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정신이 21세기에 다시 살아나고, 도메인 특화 AI 담론이 그 정신을 일부 받는다. 작은 모델로 큰 일을 하는 자리, 내 도메인에 특화된 자리, 덜 자원 낭비하는 자리 — 이 모든 자리가 적정 AI의 어휘다.
두 흐름
그러나 적정 AI 담론에는 두 흐름이 있다.
한 흐름은 시장 안의 적응이다. 기업이 빅테크 AI를 도입하기 비싼 자리에서 작은 모델을 쓰는 자리. 비용 절감과 효율 향상의 자리. ESG 점수와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들어가는 자리. 이 자리는 슈마허의 어휘를 빌리되, 슈마허의 정신을 잃는다. 슈마허에게 적정기술은 기술의 자기 자리에 대한 운동적 질문이었지 효율의 자리가 아니었다.
다른 흐름은 운동 차원의 자기 보호다. 협동조합과 사회연대경제의 자리에서 도구의 적정성을 묻는 자리. 어떤 도구가 우리 일상에 자라나도록 하는지, 어떤 도구가 우리 자율을 확장하는지, 어떤 도구가 우리 자리를 지키는지 — 이 운동적 질문이 적정 AI의 다른 흐름이다.
우리는 두 번째 흐름에 선다. 첫 번째 흐름과는 어휘를 공유하되 정신을 달리한다.
운동의 유무
우리와 우파 적정기술 AI의 구별은 운동의 유무에 있다.
시장 안 적응의 적정 AI는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의 한 변형이다. 빅테크 자본이 거대 모델을 짓는 동안 중소 자본이 작은 모델로 시장 틈새를 짓는다. 이 흐름은 자본의 자기 다양화이지 자본에 맞서는 자기 보호가 아니다.
우리는 운동이다. 자율 영역의 운동(앙드레 고르)이며, 진지전(그람시)이며, 호혜의 운동(폴라니)이다. 우리는 시장 틈새를 짓지 않는다. 시장 옆에 다른 영역을 짓는다. 그 영역은 시장의 한 부분이 아니라 시장과 다른 통합 양식의 자리다.
차이는 어휘가 아닌 운동의 유무다.
결미 — 우리의 자기 정체
이 셋과의 구별이 우리의 자기 정체를 명료히 한다.
우리는 자본의 지능도, 국가의 지능도, 시장 안 적응의 지능도 아닌 — 연대의 지능이다.
빅테크가 시장교환의 지능이라면, 정부가 재분배의 지능이라면, 우리는 호혜의 지능이다. 폴라니의 3대 통합 양식이 21세기 지능 영역에서도 그대로 짚힌다. 그리고 호혜의 자리는 셋째 자리이지 첫째도 둘째도 아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다음의 자리로 간다 — 4부, 동지의 자리.
빅테크와는 재배치의 자리에서 만나고, 정부와는 주체의 자리에서 협력하며, 우파 적정기술 AI와는 운동의 결을 분명히 가른다. 그리고 우리의 동지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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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 동지·연대 + 인류 지혜 옹호자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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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 동지·연대 + 인류 지혜 옹호자 결집」
도입 — 동지의 자리
4부는 동지의 자리다.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4장이 그러했다. 마르크스는 1848년 시점에 차티스트(영국)·농지개혁자(미국)·민주주의자(프랑스)·급진민주주의자(스위스)·민족해방운동(폴란드)과의 연대 전략을 짚었다. 공산주의자는 혁명적 사회 변혁의 모든 운동을 지원한다고 외치며, 동시에 그 운동들 사이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자기 자리를 잃지 않는다고 외쳤다.
우리도 같은 자리에 선다.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은 자기 운동만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다른 운동과의 연대 — 그러나 자기 운동의 척추를 잃지 않는 연대 — 가 4부의 자리다.
먼저 자리의 척추 표를 세운다.
1. 폴라니 3대 짝의 21세기
| 지능 | 주체 | 폴라니 통합 양식 | 동지 |
|---|---|---|---|
| 시장지능 | 빅테크 | 시장교환 | (구별의 자리) |
| 공공지능 | 정부 | 재분배 | (협력의 자리) |
| 연대지능 | 시민사회·SSE | 호혜 | 본 운동의 자리 |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시장교환·재분배·호혜 세 통합 양식을 짚었듯, 21세기 지능 영역에도 같은 세 자리가 있다. 우리는 셋째 자리에 선다.
이 표가 4부의 척추다. 셋의 자리는 한 사회에 함께 작동한다. 시장교환만의 사회는 폴라니가 짚은 거대한 전환의 비극으로 미끄러진다. 재분배만의 사회는 권위주의로 미끄러진다. 호혜만의 사회는 작은 공동체에 갇힌다. 셋이 균형을 이룰 때 사회는 자기를 보호한다.
21세기 AI에서도 그러하다. 시장지능만의 사회는 데이터 자본주의의 비극으로 미끄러진다. 공공지능만의 사회는 국가의 자기 폐쇄로 미끄러진다. 연대지능만의 사회는 작은 운동의 자리에 갇힌다. 셋이 균형을 이룰 때 21세기 사회는 AI 시대를 버틴다.
우리의 운동은 셋째 자리의 강화다. 시장과 국가가 21세기 AI를 자기 자리에서 짓는 동안, 시민사회가 자기 자리를 짓지 못하면 사회는 한쪽으로 기운다. 우리는 그 한쪽 기울기를 막는 운동이다.
2. 네 갈래의 동지
이 자리에서 우리는 네 갈래의 동지를 부른다.
2-1. 첫째, 국내 SSE 동지
컨소시엄과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
품앗이생협(대전 지족·관저 매장), 지역화폐협동조합(한밭페이), 위즈온협동조합(IT 사회적기업), 모두의밥상협동조합(공공급식) — 이 컨소시엄이 본 운동의 산업적 토양이다. 1만여 사회적경제 조직이 이 토양에 함께 자란다.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는 우리 운동의 산업적 척추다. 한국 로컬푸드 운동의 결집체이며, 지역의 협동조합이 데이터 주권의 자리에서 만나는 자리다. 본 운동이 매장 4축 허브를 짓는 자리는 그 척추 위에서 자란다.
이 동지들은 본 운동의 피와 살이다. 동등한 자들이 옆으로 짠다 — 그것이 호혜의 본질이며, 컨소시엄의 본질이다.
한국 SSE 주변부화의 진단 — AI 시대 방관자가 되면 미래가 없다
그러나 한국 SSE는 21세기 AI 자리에서 주변부화의 위기에 있다. 이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그 진단을 정직히 하지 않으면 운동의 자리도 짓지 못한다.
한국 SSE 주변부화의 네 원인.
첫째, 산업생태계 결손. 한국 SSE는 자기 자본·자기 산업 인프라·자기 금융을 짓지 못한 채 70년을 보냈다. 몬드라곤이 70년에 걸쳐 산업 협동조합 8만 노동자와 자체 금융(Caja Laboral)·자체 대학(Mondragon Unibertsitatea)을 짓는 자리에 한국 SSE는 없다. 1980년 광주 시민군이 자기 도시를 일주일 지킨 그 정신이 협동조합 운동에 자기 산업 인프라로 자리잡지 못했다. 한국 SSE의 산업적 자리는 결손의 자리다.
둘째, 정부 의존. 협동조합기본법(2012) 이후 한국에 1만여 사회적경제 조직이 자라났으나, 그중 다수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자기 자본으로 자기를 짓는 자리에서 정부 사업으로 자기를 짓는 자리로 미끄러진 결이다. 폴라니가 짚은 재분배의 자리에 SSE가 갇히면, 호혜의 자리는 자라나지 못한다.
셋째, 거버넌스 분산. 한국 SSE에는 연합이 약하다. 농협·새마을금고·신협이 각자의 자리에서 거대해졌으나 SSE 운동의 결집체로 자리잡지 못했다. 시민사회 SSE 조직 1만여 개가 자기 운동의 결집체 없이 흩어져 있다. ICA WCM 2025 한국 등재 4개 중 농협이 글로벌 9위로 자리잡혀 있되, 그 거대한 자리가 SSE 운동의 결집체로 자기를 옮기지 못한다.
넷째, 운동 어휘 약화. 사회적경제라는 어휘 자체가 정부의 사업 어휘로 빨려 들어갔다. 사회연대경제(SSE)라는 운동 어휘가 자리잡지 못한 채 사회적기업·마을기업·협동조합 같은 유형 분류의 어휘만 자리잡혔다. 운동의 어휘를 잃은 운동은 자기를 부르지 못한다.
AI 자리에서 그 한계가 방관자의 자리로 굳어진다.
빅테크의 자본 지능이 시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정부의 Public AI가 공공의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시민사회의 셋째 자리를 짓는 운동이 한국에는 없다시피 하다. 한국 SSE 조직들 대부분이 자기 데이터로 자기 도구를 양육하지 않고, 자기 거버넌스에 AI를 쓰지 않으며, 디지털 자리에서 자기 운동의 자리를 짓지 않는다. 모두가 빅테크의 도구를 임차해 쓸 뿐이다.
몬드라곤이 자기 도메인 데이터로 자기 적정 AI를 양육하는 자리에 한국 SSE는 없다. 레가코프가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를 짓는 자리에 한국 SSE는 없다. 퀘벡 Chantier가 AI Commons 정책에 결정의 주체로 참여하는 자리에 한국 SSE는 없다. 우리는 방관자의 자리에 있다.
AI에서도 방관자가 되면 미래가 없다.
20세기 산업사회 자리에서 SSE가 산업 인프라를 짓지 못해 주변부화되었다면, 21세기 디지털·AI 자리에서 SSE가 자기 도구·자기 데이터·자기 거버넌스를 짓지 못하면 완전한 주변부화로 미끄러진다. 시장이 점점 더 커지고, 정부가 점점 더 정교해지는 동안 시민사회만 자기 자리를 잃는다. 그것이 방관자의 미래다.
본 책은 그 방관자의 자리에서 운동의 자리로 옮기는 첫 호명이다. 한국 SSE의 주변부화를 진단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를 옮기는 운동의 척추를 세운다. 매장의 4축 허브를 시작점으로, 도메인 AI 양육을 일상의 자리로, 데이터 주권을 정책의 자리로, 국제 SSE 동지와의 연대를 운동의 자리로 — 우리는 21세기 SSE의 자리를 새로 짓는다.
방관자의 자리에서 운동의 자리로. 이것이 본 운동의 가장 무거운 호명이다.
2-2. 둘째, 국제 SSE 동지
5대륙 27지역의 사회연대경제. 그리고 그들의 21세기 AI 동향.
몬드라곤(스페인 바스크) — 산업 협동조합의 AI 자기 양육
산업 협동조합의 정초.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자리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70년에 걸쳐 8만여 명의 협동조합 노동자를 짓는 국제 SSE의 거목이다. 자체 금융(Caja Laboral), 자체 대학(Mondragon Unibertsitatea), 자체 R&D 센터(Ikerlan), 100여 개의 협동조합 — 협동조합이 산업 생태계 자체를 짓는다는 한 자리의 증거다.
21세기 AI 동향. 몬드라곤은 디지털 자리에 자기를 옮기고 있다. Mondragon Unibertsitatea가 협동조합 거버넌스를 위한 데이터·AI 연구를 진행하며, Ikerlan이 산업용 AI(예지 보전·품질 검사·로봇 협업)를 자체 개발한다. Mondragon Korporazioa의 협동조합들이 자기 도메인 데이터로 자기 적정 AI를 양육하는 자리. 빅테크 모델을 빌리되 자기 데이터의 주권을 잃지 않는다.
시사점. 70년 산업 협동조합 운동이 21세기 AI 자리에서 자기를 옮기는 결이 분명하다 — 자기 자본·자기 인프라·자기 데이터가 있어야 자기 AI를 양육한다. 한국 SSE가 이 자리에 도달하려면 산업생태계 결손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레가코프(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의 정초. 1886년 이래의 결집체이며, 21세기에는 볼로냐 모델로 연대지능의 도시 자리를 짓고 있다. 1만 5천여 협동조합·850만 조합원·850억 유로 매출 — 이탈리아 GDP의 약 10%가 협동조합 자리에서 자라난다.
21세기 AI 동향. 디지털 자리에서 레가는 플랫폼 협동조합주의(platform cooperativism)의 자리를 짓는다. CoopCycle(배달 플랫폼 협동조합) — 우버이츠와 딜리버루의 알고리즘 노동에 맞서 라이더가 자기 플랫폼을 짓는 자리. Smart(예술가·프리랜서 협동조합) — 빅테크 플랫폼의 종속에서 자기 자리를 짓는 사례. 볼로냐 시정부와의 협력으로 디지털 시민 자리 정책 실험.
시사점. 1인 자영업자의 알고리즘 노동이 한국에서 점점 첨예해지는 자리에서, 레가의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는 직접적 짝이다. 빅테크 플랫폼에 종속된 노동자가 자기 플랫폼을 짓는 자리 — 이것이 한국 1인 자영업자·플랫폼 노동자에게 다음 자리다.
퀘벡 사회연대경제(캐나다) — AI Commons의 정책 협력 모델
정부와의 협력 모델. Chantier de l’économie sociale가 1996년 이래 연대경제와 정부의 셋째 자리를 제도화한 사례다. 폴라니의 재분배와 호혜가 결을 가르며 함께 작동하는 21세기적 사례.
21세기 AI 동향. 퀘벡은 AI Commons 운동의 자리에 들어선다. 몬트리올의 MILA(AI 연구 센터)가 거대 AI 연구의 자리를 짓는 동안, Chantier가 시민사회 데이터 주권 운동의 자리를 짓는다. 정부의 디지털 정책과 시민사회의 데이터 주권 운동이 결을 가르며 함께 작동하는 자리. Déclaration de Montréal pour un développement responsable de l’IA(2018, 책임 있는 AI를 위한 몬트리올 선언)에 시민사회가 결정의 주체로 참여한 사례.
시사점. 한국 Public AI 정책에서 시민사회가 결정의 객체가 되지 않으려면 이 결을 받아야 한다. 정부의 재분배와 시민사회의 호혜가 함께 작동하는 자리. SSE가 정부 사업의 수혜자가 아니라 공동 결정자로 자리하는 모델이다.
인도 협동조합 — 농촌의 거대 결집
AMUL(낙농 협동조합)이 30만 마을의 350만 농민을 결집한다. 한국 SSE가 결손이라 짚는 산업 결집이 인도에서는 기본이다. AMUL이 자체 ERP·디지털 결제·농민 모바일 앱을 자기 자리에서 짓는 한편, 거대 빅테크 종속을 피하는 결을 짚는다.
아프리카 마을금고와 라틴아메리카 솔리다리오 협동조합
비공식 부문 안의 호혜. 폴라니가 짚은 재분배 이전의 호혜가 21세기에도 살아 있는 자리. M-Pesa(케냐 모바일 화폐)가 시민사회 자리에서 자라난 결제 인프라의 자리이며, 라틴아메리카의 협동은행이 빅테크 핀테크에 맞서는 자기 자리다.
결집체
ICA(국제협동조합연맹)가 이 모든 동지를 한 자리에 모은다. ICA WCM 2025 한국 등재 4개(농협·KFCC·Union Federation·미확인 1) 중 농협이 글로벌 9위 USD 51.23B로 자리잡혀 있다. 한국 SSE의 산업적 자리도 국제 무대에 섰음을 증언한다.
세계 사회연대경제는 같은 호혜의 자리에서 부르고 있다. 그들은 자기 산업·자기 디지털·자기 AI를 양육하고 있다. 한국 SSE만 그 자리에서 방관자다. 우리가 그 자리를 옮기지 못하면 21세기에 SSE는 한국에서 주변부의 주변부로 미끄러진다.
2-3. 셋째, 오픈소스 형제
도구의 자리에서 자본의 지배에 맞서는 동지들.
Apache 재단. 1999년 이래 웹 인프라의 오픈소스 자리를 짓는 자리. HTTP 서버·Hadoop·Kafka·Spark가 모두 Apache의 자리에서 자랐다.
Mozilla 재단. 2003년 이래 브라우저의 오픈소스 자리. Firefox가 한 시대의 빅테크 단일 지배에 맞섰다.
Wikipedia(Wikimedia 재단). 2001년 이래 인류 지혜의 공동 결집. 폴라니가 호혜라 부른 통합 양식이 디지털 시대에 가장 명료히 살아난 자리.
EU 데이터 주권 운동. GDPR(2018), Digital Markets Act(2022), Digital Services Act(2022), AI Act(2024)가 이어지며 데이터의 사회적 자기 보호를 정책의 자리에서 짓는다. 4번째 허구상품 데이터에 대한 정책적 자기 보호의 모범 사례.
Anthropic의 PBC 실험. Public Benefit Corporation 구조가 빅테크의 자본 지능을 공익 책임에 묶는 거버넌스 실험. 시대 동행자다.
OpenAI의 원래 이상. 2015년 비영리로 출범한 그 자리는 지금 잃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우리에게 유산이다.
이 형제들은 우리와 같은 갈래에 있지 않다. 그들은 협동조합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연대경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시대의 자기 보호 운동을 짓는다. 우리는 그들의 형제다.
2-4. 넷째, 국제 플랫폼 구축 (미래 자리)
Agenda 21이 환경운동의 국제 결집 짝이었듯,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의 국제 플랫폼을 짓는다.
Agenda 21은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국제 환경 운동의 결집 문서였다. 그것이 결집의 자리에서 환경운동을 국제 정책의 자리로 옮겨 세웠고, 21세기 기후위기 대응의 정책적 척추가 되었다.
연대지능 혁명에는 아직 그 자리가 없다. ICA가 SSE의 결집체이지만 AI 시대의 연대지능 운동 결집체는 아니다. EU 데이터 주권 운동이 정책의 자리이지만 시민사회 결집의 자리는 아니다. 우리는 이 자리를 짓고자 한다.
이 자리는 한 운동만으로는 짓지 못한다. 한국 SSE만으로는 짓지 못한다. 한 컨소시엄만으로는 짓지 못한다. 5대륙 27지역의 SSE, 오픈소스 형제, 시민 데이터 주권 운동가, 학자·법률가·예술가 — 모든 이가 결집해야 짓는다.
이 자리는 미래의 자리다. 그러나 미래의 자리이기에 지금부터 지어야 한다. 본 책은 그 미래의 자리를 부르는 첫 호명이다.
3. 인류 지혜 옹호자 결집
마르크스의 계급운동을 우리는 인류운동으로 확장한다.
이 결집은 마르크스적 의미의 계급에 머물지 않는다. 농민·1인 자영업자·디지털 노동자·협동조합원·SSE 활동가는 자기 계급에서 결집한다. 그들은 지능 무산자다. 자본의 지능에 자기 흔적을 빼앗긴 자다. 그들의 결집은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의 결집과 같은 자리에 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 인류의 지혜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이도 함께 결집한다.
- 학자 — 인류의 지혜가 사적 자본에 흡수되지 않기를 바라는 자.
- 법률가 — 인류의 지혜가 보편 권리로 보호받기를 바라는 자.
- 예술가 — 인류의 지혜가 측량되지 않기를 바라는 자.
- 교사 — 인류의 지혜가 다음 세대로 전승되기를 바라는 자.
- 종교인 — 인류의 지혜가 영적 자리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자.
- 공동체 활동가 — 인류의 지혜가 일상의 자리에서 살아나기를 바라는 자.
- 국제 동지 — 인류의 지혜가 국경을 넘어 흐르기를 바라는 자.
이 보편 호명이 폴라니의 정신이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노동운동만의 책이 아니라 사회 자체의 자기 보호 운동의 책이었다. 그 책에서 폴라니는 농민·노동자·도시 빈민과 함께, 그들의 자리를 지키려는 모든 이를 함께 부른다 — 종교인·학자·예술가·법률가까지.
우리도 그러하다.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마르크스의 형식 — 계급의 자기 호명 — 이 운동을 변혁적으로 만든다. 잃은 자의 분노가 운동의 동력이다. 폴라니의 정신 — 사회의 자기 보호 — 이 운동을 보편적으로 만든다. 지키려는 자의 의지가 운동의 폭이다.
둘이 한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 잃은 자만의 운동은 자기 자리를 못 지킨다. 지키려는 자만의 운동은 변혁을 못 일으킨다. 두 호명을 함께 부르는 운동만이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이다.
연대의 방식 — 수목형이 아닌 리좀형
마르크스의 형식과 폴라니의 정신을 받되, 연대의 방식은 21세기의 자리에서 새로 짓는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 1980)에서 두 자리를 대비했다. 수목형(arborescent)과 리좀형(rhizomatic). 수목형은 한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 위계적·중심집중적·이항대립적 분화의 자리다. 모든 가지는 줄기로 환원되고, 모든 줄기는 뿌리로 환원된다. 결정의 자리가 위에서 내려온다.
리좀형은 다른 자리다. 잡초의 구근·박테리아의 망상·곰팡이의 균사 — 모든 점이 모든 점과 연결된다. 중심이 없다. 시작과 끝이 없다. 한 자리가 끊어져도 다른 자리에서 다시 자라난다. 위계가 없다. 결정의 자리가 옆으로 짜인다.
20세기 운동들은 종종 수목형의 함정에 빠졌다. 정당이 운동의 척추가 되고, 지도부가 결정의 자리를 차지하고, 지방 조직은 중앙의 가지가 되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안다 — 자기 운동의 자기 폐쇄, 권위주의의 위험, 그리고 21세기에 와서는 자기 자리의 상실. 한국 SSE의 주변부화도 부분적으로는 이 수목형 함정의 결이다 — 정부 사업의 가지가 되어 자기 뿌리를 잃는 자리.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은 리좀형의 자리에 선다.
매장의 작은 알고리즘이 한 점이고, 협동조합의 작은 데이터베이스가 한 점이며, 컨소시엄의 작은 플랫폼이 한 점이다. 모든 점은 자기 자리에서 자라난다. 모든 점은 옆의 점과 횡적으로 연결된다. 한 점이 끊어져도 다른 점에서 운동이 다시 자라난다. 폴라니의 호혜가 그러하듯, 마르셀 모스의 증여 환이 그러하듯, 리좀의 횡적 자기 짓기가 그러하다.
모스가 「증여론」에서 짚은 멜라네시아의 쿨라 환을 보라. 부족 사이를 도는 조개 목걸이와 팔찌가 한 부족에서 다음 부족으로, 다음에서 그 다음으로 — 환을 그리며 돈다. 중심이 없다. 어느 부족이 시작이고 어느 부족이 끝이라 할 수 없다. 모든 부족이 자기 자리에서 받고 자기 자리에서 보낸다. 그 환의 운동이 호혜다. 그것이 곧 리좀이다. 폴라니가 1944년에 짚은 호혜의 통합 양식, 들뢰즈와 가타리가 1980년에 짚은 리좀의 자기 짓기 — 둘은 다른 어휘로 같은 자리를 부른다.
이 자리에서 본 운동은 단일 정당도, 단일 지도부도, 단일 본부도 짓지 않는다. 한국의 컨소시엄도 한 점이고, 몬드라곤도 한 점이며, 퀘벡 Chantier도 한 점이다. 5대륙 27지역의 SSE 모두가 한 점이다. 오픈소스 형제도 한 점이다. 학자·법률가·예술가·교사·종교인·공동체 활동가 모든 이가 한 점이다.
리좀에서는 모두가 중심이다. 그리고 그 중심들이 옆으로 짜인다.
이 어휘가 4부의 척추다. 연대의 방식이 곧 연대의 자리다.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은 수목형의 함정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 자기 형식을 처음부터 리좀으로 짓는다. AI의 분산형 인프라(연합 학습·로컬 추론·오픈 모델)가 리좀의 디지털 짝이며, SSE의 횡적 결집이 리좀의 운동 짝이다. 기술 형식과 운동 형식이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결미 — 4부의 끝, 「결」의 시작
4부의 끝은 「결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다.
세 자리에서 동지를 부르고(국내 SSE, 국제 SSE, 오픈소스 형제), 한 자리에서 미래의 결집을 부르며(국제 플랫폼), 한 호명에서 두 호명을 함께 부른다(만국의 무산자 + 인류 지혜).
이 자리에서 책 전체가 한 호명으로 응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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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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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1. 견해를 감추지 않는다
19세기 노동운동의 선언이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고 외쳤듯, 21세기 연대경제 AI 운동도 자기 견해와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우리는 다음을 짓고자 한다.
매장의 4축 허브
결제·공급·환경·시민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도메인 AI. 빅테크의 추상적 지능이 아닌, 우리 동네 매장에서 자라는 적정 지능이다. 결제는 로컬페이로, 공급은 사회적경제 거래처로, 환경은 탄소중립실천으로, 시민은 조합원 ID로 — 한 매장이 4축을 모은다. 특정 빅테크 플랫폼의 ID에 종속되지 않고, 운동의 자기 자리에서 자기 ID 체계를 짓는다. 도메인 AI는 그 4축의 통합 지능이며, 매장의 일상에서 자라난다. 추상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일상의 자리에서 시작하여 추상으로 자라난다.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
시장지능·공공지능과 구별되는 셋째 자리. 호혜의 통합 양식이 21세기에 갖는 자기 호명이다. 빅테크의 AI는 시장교환의 지능이다 — 모든 것을 가격으로 환원하고 모든 관계를 거래로 환원한다. 정부의 Public AI는 재분배의 지능이다 — 위에서 결정하고 아래로 분배한다. 우리의 AI는 호혜의 지능이며, 그 호명이 연대지능이다. 동등한 자들이 옆으로 짠다. 위에서 내려오는 분배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도 아닌,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를 짓는 지능이다.
데이터 주권의 회복
4번째 허구상품 데이터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는 자리. 인지·관계·기억의 흔적이 우리 자신의 것으로 머물 자리. 폴라니가 토지·노동·화폐의 사회적 자기 보호를 짚었듯, 우리는 데이터의 사회적 자기 보호를 짚는다. 매장의 데이터는 매장의 것, 조합원의 데이터는 조합원의 것, 운동의 데이터는 운동의 것이다.
데이터 주권은 단지 법적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운동의 일상적 실천이다. 우리가 어떤 도구를 빌려 쓰는지, 어디서 빌려 쓰는지, 그 도구가 우리 흔적을 어떻게 다루는지 — 이 모든 자리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주권을 짓는다.
동반자 AI
페터널리즘이 위안을 가져다주는 도구가 아닌,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함께 가는 — 자전거 같은 도구. 일리치는 자전거를 공동체 도구의 모범으로 짚었다. 자전거는 인간 능력을 대체하지 않고 확장한다. 동반자 AI도 그러하다 — 인간 판단을 대체하지 않고, 인간 결정을 보조하며, 인간 자율을 확장한다.
UBI 담론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할 때, 그 약속은 종종 만드는 자의 자리를 박탈하는 자리로 미끄러진다. 우리는 두 해방을 함께 부른다 — 노동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동시에. 동반자 AI는 그 두 해방의 도구다. 인간이 의미를 만드는 자리를 지키고, 인간이 강제 노동에서 풀리는 자리도 짓는다.
인류 지혜 옹호자의 결집
빅테크와 정부 사이에 시민의 셋째 자리를 짓는 국제 플랫폼.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19세기의 짝이라면, 우리는 21세기의 인류 지혜 국제주의를 부른다. Agenda 21이 환경운동의 국제 결집 짝이었듯,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의 국제 플랫폼을 짓는다.
이 결집은 운동가만의 결집이 아니다. 학자·법률가·예술가·교사·종교인·공동체 활동가 — 인류의 지혜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이가 결집한다. 폴라니의 정신이 거기에 있다.
2. 진지전
진지전이다. 한국에서 시작하되 한국에 머물지 않는다. 매장에서 시작하되 매장에 머물지 않는다.
그람시는 진지전을 기동전과 대비했다. 19세기 혁명의 기동전이 한 번의 전선 돌파로 권력을 잡는 전략이었다면, 20세기 진지전은 시민사회의 모든 자리에서 일상적으로 자기 자리를 짓고 지키는 전략이다. 자본의 헤게모니에 맞서는 운동은 일회의 전투가 아니라 모든 일상의 자리에서 자기 진지를 세우는 것이다.
21세기 연대지능 혁명도 진지전이다. 한 번의 정책 변화로 빅테크의 데이터 수탈을 막을 수는 없다. 한 번의 법 제정으로 알고리즘 노동의 종속을 풀 수는 없다. 한 번의 회의로 데이터 주권을 회복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매장의 작은 알고리즘에서, 협동조합의 작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로컬페이의 작은 신뢰망에서, 컨소시엄의 작은 플랫폼에서 — 자기 진지를 세운다.
하루하루의 작은 짓기가 모여 한 시대의 자기 보호 운동을 이룬다. 우리는 어설픈 AI에서 시작하여 적정 AI를 거쳐 동반자 AI에 이르렀고, 사회지능으로서의 사회연대경제 AI를 세웠으며, 이제 연대지능 혁명에 도달했다. 이 명명의 진화는 운동의 진화이며, 운동의 진화는 자기 진지의 점진적 확장이다.
운동은 측량되지 않는다. 측량되는 운동은 자본의 지능이 흡수한 운동이다. 측량되지 않을 권리가 운동의 깊은 자리에서 자기를 보호한다.
3. 두 호명
우리가 잃을 것은 지능 무산자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동서고금 인류 총합의 지혜 세계 전체다.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연대하라.
두 호명이 짝을 이룬다.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호명이다. 1848년 「공산당 선언」 결미의 Proletarier aller Länder, vereinigt euch! 이 호명을 우리는 21세기 지능 무산자의 자리에서 다시 부른다. 자본의 지능이 모든 인간 흔적을 자본화하는 시대에, 그 흔적의 주인이 자기 자리를 부르는 호명이다.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결집하라는 폴라니의 호명이다.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사회의 자기 보호를 자본의 운동에 맞서는 보편 운동이라 짚었다. 농민·노동자·도시 빈민만의 운동이 아니라, 사회 자체를 지키려는 모든 이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러하다 — 지능 무산자만이 아니라 인류의 지혜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이가 결집한다.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마르크스의 계급운동을 우리는 인류운동으로 확장한다. 잃은 자의 분노와 지키려는 자의 의지를 함께 부른다. 잃은 자만의 운동은 자기 자리를 못 지키고, 지키려는 자만의 운동은 변혁을 못 일으킨다. 둘이 한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
이 두 호명은 갈등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unite가 solidarity의 동사형이라는 어원이 두 호명의 결미를 잇는다. 단결도 결집도 같은 자리의 같은 행위다 — 연대다.
4. 합류는 자유
운동은 시작되었다. 합류는 자유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짓기로 — 매장에서, 협동조합에서, 로컬페이에서, 사회연대금융에서, 작은 매장의 작은 알고리즘에서, 큰 컨소시엄의 큰 플랫폼에서, 한국에서, 세계에서.
먹거리에서 시작해도 좋다. 먹거리는 사수의 자리다 — 이미 굳건한 우리의 진지다. 그 진지에서 데이터 주권을 짚고, 매장의 4축 허브를 짓고, 도메인 AI를 양육한다. 한국 SSE의 발판이 여기에 있다. 로컬푸드 직매장이 우리 운동의 산업적 토양이다.
에너지로 가도 좋다. 에너지는 병행의 자리다 — 우리가 지금 짓고 있는 자리다. 에너지 협동조합과 시민 햇빛 발전이 우리 진지를 넓힌다. 데이터 센터의 에너지 소비가 자본의 지능의 한계를 노출하는 시대에, 우리는 에너지의 자기 자리를 세운다.
금융으로 가는 길이 가장 멀다. 금융은 탈환의 자리다 — 공제조합이 보험회사로 타락한 한 세기의 역사를 받아 다시 회복해야 할 자리다. 그러나 가야 할 자리다. 사회연대금융이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의 척추 신경계다. 화폐의 4번째 허구상품 데이터와 짝짓는 자리이며, 호혜의 흐름이 일상의 자리에서 살아나는 자리다.
오픈소스 형제와 함께 가도 좋다. Apache·Mozilla·Wikipedia는 도구의 자리에서 자본에 맞서는 우리의 형제다. EU 데이터 주권 운동은 정책의 자리에서 우리의 동지다. Anthropic의 PBC 실험은 거버넌스의 자리에서 우리의 시대 동행자다. 우리는 그들의 운동과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 그러나 같은 시대의 자기 보호 운동을 짓는다.
국제 SSE 동지와 함께 가도 좋다. 몬드라곤의 산업 협동조합, 레가코프의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 퀘벡의 사회연대경제 — 5대륙 27지역의 SSE가 같은 호혜의 자리에서 부르고 있다. 한국 SSE의 산업생태계 결손은 한계이되, 로컬푸드의 발판은 우리의 자리다. 그 자리에서 국제 동지와 만난다.
그리고, 모든 자리에서,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가 연대한다.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은 시작 단락이다.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
만국의 무산자여, 단결하라.
인류 지혜를 지키는 모든 이여, 연대하라.
후기 — 후니님 박음 9가지 (2026-05-02 저녁)
| # | 박음 | 반영 자리 |
|---|---|---|
| 1 | 시민 = 카카오싱크 → 조합원 ID | 「결」 매장 4축 허브 |
| 2 | 공제조합 → 로컬페이 신뢰망 | 「결」 진지전·합류 |
| 3 | 동반자 AI 세계 → 동서고금 인류 총합의 지혜 세계 전체 | 「결」 두 호명 직전 |
| 4 | 결집하라 → 연대하라 | 「결」 두 호명·결미 |
| 5 | 들뢰즈·가타리 리좀형 명시 | 4부 결미 단 |
| 6 | 마르셀 모스 증여론 — 호혜는 발명 아닌 인류의 오래된 생존 방식 | 「서」 2장 + 4부 리좀 |
| 7 | 몬드라곤·레가·퀘벡 AI 동향과 시사점 | 4부 둘째 동지 |
| 8 | 한국 SSE 주변부화 원인과 문제 | 4부 첫째 동지 |
| 9 | AI에서도 방관자 되면 미래 없다 | 4부 한국 SSE 진단 결미 |
본 통합본은 위 9가지 박음을 모두 반영한 한 호흡 통합본이다.
위키 개별 자리는 _INDEX에서 진입. 리좀처럼 개념·사상이 정교해지고 많아질 자리는 그대로 두되, 한 호흡으로 다 읽을 자리는 본 통합본이 자기 결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