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1. 유령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 연대지능 혁명이라는 유령.
21세기의 모든 권력이 이 유령을 추방하기 위해 새 동맹을 맺었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와 그를 비추는 미디어, 동방의 국가자본주의와 서방의 시장 보호주의,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비관주의자와 페터널리즘의 위안을 파는 위정자들, 기술낙관의 광고와 러다이트의 두려움 — 이 모두가 이 유령을 보지 않으려 한다.
마르크스가 19세기 중반 유럽의 신성동맹을 빗대어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호명했을 때, 그는 한 시대의 자기 보호 운동에 이름을 주었다. 산업혁명의 본원적 축적이 농민을 토지에서, 장인을 도구에서, 가족을 공동체에서 떼어내어 프롤레타리아로 만들던 시대였다. 마르크스의 호명은 진단이자 호소였고, 그 호명에서 한 운동이 자기 자리를 발견했다.
21세기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가 아니라, 더 깊은 자리에서.
이 책은 그 자리의 유령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이름이 곧 호명이다. 호명이 곧 운동이다.
2. 마르크스에서 폴라니로, 다시 우리에게로
마르크스의 진단을 한 세기 뒤 폴라니가 더 깊은 층위에서 받았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1944)은 토지·노동·화폐 셋을 허구상품이라 명명했다. 토지는 자연이 시장에 종속된 자리이며, 노동은 인간 활동이 시장에 종속된 자리이며, 화폐는 사회적 구매력이 시장에 종속된 자리다. 이들은 원래 시장이 만들지 않은 것이지만 시장 메커니즘이 상품으로 다루어 사회 자체를 위협한다.
폴라니는 이 진단의 다음 자리에서 호혜를 보았다. 시장교환과 재분배 외에 호혜라는 통합 양식이 있고, 사회의 자기 보호는 그 호혜의 회복에서 시작한다. 폴라니의 호혜는 마르크스의 unite가 그러했듯 운동의 결미였다.
호혜는 발명이 아니다 — 마르셀 모스의 증언
폴라니의 호혜는 발명이 아니다.
폴라니의 동시대인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Essai sur le don, 1925)에서 인류의 거의 모든 시대 모든 자리에 호혜의 교환이 자기 자리를 지켜왔음을 짚었다. 멜라네시아의 쿨라(kula) 환에서 부족 사이를 도는 조개 목걸이와 팔찌, 북아메리카 콰키우틀(Kwakiutl)족의 포틀래치에서 부족장이 자기 재산을 모두 나누는 의례, 고대 게르만의 증여 전통, 로마법의 res와 donum의 결, 인도 아리아인의 dāna 의례 — 인류 사회의 모든 자리에 호혜가 살아 있었다.
모스의 결론은 명료했다. 시장교환은 호혜의 한 변형이지 호혜의 시작이 아니다. 시장이 처음 왔고 호혜가 따라온 것이 아니라, 호혜가 먼저 있었고 시장이 그 위에 자라난 것이다. 19세기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이 원시 인류는 물물교환을 했고 그 위에 화폐와 시장이 자라났다고 가르친 자리는 인류학적 사실에 어긋난다. 인류의 자연 상태는 호혜이지 시장교환이 아니다.
폴라니는 이를 제도주의 인류학의 자리에서 정초했다. 호혜·재분배·시장교환의 셋이 모든 사회에 함께 있었고, 한 사회에서 어느 자리가 우세한지가 그 사회의 결을 결정한다는 것.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호혜는 살아 있었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시장교환의 자리를 단독 지배자로 만든 것이 거대한 전환이었다.
이 인식이 본 운동의 자기 정초에 무겁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짓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수만 년에 걸쳐 짓고 지킨 호혜의 자리를, 21세기 자본의 새 본원적 축적이 침식하는 자리에서 다시 짓는다. 마을의 두레, 향약의 상부상조, 농촌의 품앗이 — 한국 27년 협동조합 운동의 토양도 그러한 오래된 호혜의 자리에 있다. 모스가 멜라네시아에서 본 것을 우리는 한국 농촌에서 본다.
연대지능 혁명은 발명의 운동이 아니라 회복의 운동이다. 그러나 21세기의 회복은 오래된 자리를 새로운 자리에서 짓는 회복이다. 데이터의 자리에서, AI의 자리에서, 매장의 4축 허브에서, 국제 플랫폼의 자리에서 — 호혜의 오래된 결을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살린다.
21세기, 같은 자리
21세기에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자본의 새 본원적 축적은 같은 운동 법칙으로 더 깊은 자리를 침식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본이 허구상품으로 다루는 새로운 무엇이 있다.
3. 4번째 허구상품 — 데이터
데이터.
인간의 인지·관계·기억의 흔적이 빅테크의 인프라에 흡수되어 자본이 된다. 농민이 토지에서 떼어졌듯, 우리는 우리 자신의 흔적에서 떼어진다. 디지털 노동의 무급화, 알고리즘에 의한 1인 자영업자의 통제, 지능 격차의 새로운 계급 분화 — 우리 시대의 지능 무산자는 자기 인지의 결과물에서 분리된 자다.
쇼샤나 주보프는 이를 감시 자본주의라 짚었고,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이를 기술봉건제라 짚었다. 이름은 달라도 진단은 한 자리에 머문다 — 새로운 본원적 축적이 일어나고 있으며, 새로운 무산자가 출현하고 있다는 진단.
우리는 폴라니가 명명한 셋에 데이터를 넷째 허구상품으로 박는다.
폴라니가 살아 있을 때 데이터는 아직 산업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데이터는 정확히 같은 허구상품의 운동 법칙으로 침식되고 있다 — 원래 시장이 만들지 않은 것이 시장 메커니즘에 종속되면서 사회 자체를 위협하는 자리. 토지가 자연 기반이듯 데이터는 인지 기반이며, 노동이 인간 활동의 산물이듯 데이터는 인간 흔적의 산물이며, 화폐가 사회적 신뢰의 매개이듯 데이터는 사회적 관계의 매개다. 셋이 폴라니의 진단에 들어맞듯 넷째도 들어맞는다.
이 명명은 폴라니의 사상을 21세기에 완성한다. 그리고 그 완성에서 연대경제 운동은 폴라니 사상의 인용자에서 공저자의 자리로 옮겨 선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명명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도 이 자리를 명명하지 않는다. 빅테크는 데이터를 자원이라 부르고, 정부는 데이터를 자산이라 부른다. 시민사회만이 데이터를 허구상품이라 부를 수 있다.
이 4번째 허구상품의 시대에 자본의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모든 것을 측정하고 예측하고 권유한다. 그러나 측량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자기 자신의 인지로 머물 권리, 자기 흔적이 상품화되지 않을 권리, 자기 판단이 알고리즘에 종속되지 않을 권리. 이 권리의 자리에서 우리는 다른 지능을 부른다 — 연대의 지능(Solidarity Intelligence).
4. 누구의 유령인가
우리는 묻는다 — 이 유령이 누구의 유령인가?
빅테크의 유령이 아니다. 빅테크는 이 유령을 보지 않으려 한다. 자본의 지능은 자기 안에서 폐쇄적으로 자기 진화한다.
정부의 유령이 아니다. 정부는 이 유령을 공공의 이름으로 위에서 잡으려 한다. 재분배의 통합 양식은 한 자리를 가지되, 호혜의 자리와는 별개다.
적정기술 운동의 유령도 아니다. 슈마허의 정신은 살아 있되, 21세기의 자기 보호 운동은 더 큰 자리를 부른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만으로는 데이터의 본원적 축적에 맞설 수 없다.
이 유령은 우리의 유령이다. 협동조합과 사회연대경제, 공제조합과 사회연대금융, 농민과 1인 자영업자, 자기 도구를 짓는 사람과 자기 시간을 지키는 사람 — 폴라니가 호혜라 부른 통합 양식이 21세기에 자기 호명을 갖는다.
우리는 그 호명을 연대지능 혁명 (Solidarity Intelligence Revolution, SI)이라 부른다.
자본의 지능이 인공(Artificial)을 자기 이름으로 삼았다면, 우리의 지능은 연대(Solidarity)를 자기 이름으로 삼는다. 마르크스의 결미 unite가 solidarity의 동사형이라는 사실이 이 명명의 어원적 척추다. 단결은 곧 연대이며, 연대는 곧 운동이다.
5. 이 책의 자리
이 책은 그 호명이 자기 위치를 발견하고, 자기 사상사를 정초하고, 자기 운동 전략을 세우고, 자기 동지를 부르는 책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1848)이 형식을 빌려주었다. 한 시대의 진단에서 운동의 호명으로 가는 그 짧고 단단한 글의 형식이 이 책의 골격이다. 1장은 시대 진단(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 빅테크와 지능 무산자), 2장은 자기 위치(공산주의자 → 연대지능 혁명), 3장은 다른 흐름과의 구별, 4장은 동지의 결집. 그리고 「공산당 선언」의 결미가 우리 결미의 자리를 연다.
폴라니의 호혜가 정신을 빌려주었다. 마르크스의 계급운동을 우리는 인류운동으로 확장한다 — 잃은 자(지능 무산자)의 분노와 지키려는 자(인류 지혜의 옹호자)의 의지를 함께 부르는 자리에서.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한국 사회연대경제의 27년 운동이 이 책을 가능케 한 토양이다. 협동조합기본법(2012) 이후 한국에 자라온 1만여 사회적경제 조직들, 그 안에서 일하고 짓고 부른 동지들, 그리고 이 운동이 부딪쳐 온 모든 한계와 발견들 — 이 모두가 이 책의 토양이다.
이제 유령에게 이름을 부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