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 동지·연대 + 인류 지혜 옹호자 결집」
도입 — 동지의 자리
4부는 동지의 자리다.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4장이 그러했다. 마르크스는 1848년 시점에 차티스트(영국)·농지개혁자(미국)·민주주의자(프랑스)·급진민주주의자(스위스)·민족해방운동(폴란드)과의 연대 전략을 짚었다. 공산주의자는 혁명적 사회 변혁의 모든 운동을 지원한다고 외치며, 동시에 그 운동들 사이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자기 자리를 잃지 않는다고 외쳤다.
우리도 같은 자리에 선다.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은 자기 운동만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다른 운동과의 연대 — 그러나 자기 운동의 척추를 잃지 않는 연대 — 가 4부의 자리다.
먼저 자리의 척추 표를 세운다.
1. 폴라니 3대 짝의 21세기
| 지능 | 주체 | 폴라니 통합 양식 | 동지 |
|---|---|---|---|
| 시장지능 | 빅테크 | 시장교환 | (구별의 자리) |
| 공공지능 | 정부 | 재분배 | (협력의 자리) |
| 연대지능 | 시민사회·SSE | 호혜 | 본 운동의 자리 |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시장교환·재분배·호혜 세 통합 양식을 짚었듯, 21세기 지능 영역에도 같은 세 자리가 있다. 우리는 셋째 자리에 선다.
이 표가 4부의 척추다. 셋의 자리는 한 사회에 함께 작동한다. 시장교환만의 사회는 폴라니가 짚은 거대한 전환의 비극으로 미끄러진다. 재분배만의 사회는 권위주의로 미끄러진다. 호혜만의 사회는 작은 공동체에 갇힌다. 셋이 균형을 이룰 때 사회는 자기를 보호한다.
21세기 AI에서도 그러하다. 시장지능만의 사회는 데이터 자본주의의 비극으로 미끄러진다. 공공지능만의 사회는 국가의 자기 폐쇄로 미끄러진다. 연대지능만의 사회는 작은 운동의 자리에 갇힌다. 셋이 균형을 이룰 때 21세기 사회는 AI 시대를 버틴다.
우리의 운동은 셋째 자리의 강화다. 시장과 국가가 21세기 AI를 자기 자리에서 짓는 동안, 시민사회가 자기 자리를 짓지 못하면 사회는 한쪽으로 기운다. 우리는 그 한쪽 기울기를 막는 운동이다.
2. 네 갈래의 동지
이 자리에서 우리는 네 갈래의 동지를 부른다.
2-1. 첫째, 국내 SSE 동지
컨소시엄과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
품앗이생협(대전 지족·관저 매장), 지역화폐협동조합(한밭페이), 위즈온협동조합(IT 사회적기업), 모두의밥상협동조합(공공급식) — 이 컨소시엄이 본 운동의 산업적 토양이다. 1만여 사회적경제 조직이 이 토양에 함께 자란다.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는 우리 운동의 산업적 척추다. 한국 로컬푸드 운동의 결집체이며, 지역의 협동조합이 데이터 주권의 자리에서 만나는 자리다. 본 운동이 매장 4축 허브를 짓는 자리는 그 척추 위에서 자란다.
이 동지들은 본 운동의 피와 살이다. 동등한 자들이 옆으로 짠다 — 그것이 호혜의 본질이며, 컨소시엄의 본질이다.
한국 SSE 주변부화의 진단 — AI 시대 방관자가 되면 미래가 없다
그러나 한국 SSE는 21세기 AI 자리에서 주변부화의 위기에 있다. 이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그 진단을 정직히 하지 않으면 운동의 자리도 짓지 못한다.
한국 SSE 주변부화의 네 원인.
첫째, 산업생태계 결손. 한국 SSE는 자기 자본·자기 산업 인프라·자기 금융을 짓지 못한 채 70년을 보냈다. 몬드라곤이 70년에 걸쳐 산업 협동조합 8만 노동자와 자체 금융(Caja Laboral)·자체 대학(Mondragon Unibertsitatea)을 짓는 자리에 한국 SSE는 없다. 1980년 광주 시민군이 자기 도시를 일주일 지킨 그 정신이 협동조합 운동에 자기 산업 인프라로 자리잡지 못했다. 한국 SSE의 산업적 자리는 결손의 자리다.
둘째, 정부 의존. 협동조합기본법(2012) 이후 한국에 1만여 사회적경제 조직이 자라났으나, 그중 다수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자기 자본으로 자기를 짓는 자리에서 정부 사업으로 자기를 짓는 자리로 미끄러진 결이다. 폴라니가 짚은 재분배의 자리에 SSE가 갇히면, 호혜의 자리는 자라나지 못한다.
셋째, 거버넌스 분산. 한국 SSE에는 연합이 약하다. 농협·새마을금고·신협이 각자의 자리에서 거대해졌으나 SSE 운동의 결집체로 자리잡지 못했다. 시민사회 SSE 조직 1만여 개가 자기 운동의 결집체 없이 흩어져 있다. ICA WCM 2025 한국 등재 4개 중 농협이 글로벌 9위로 자리잡혀 있되, 그 거대한 자리가 SSE 운동의 결집체로 자기를 옮기지 못한다.
넷째, 운동 어휘 약화. 사회적경제라는 어휘 자체가 정부의 사업 어휘로 빨려 들어갔다. 사회연대경제(SSE)라는 운동 어휘가 자리잡지 못한 채 사회적기업·마을기업·협동조합 같은 유형 분류의 어휘만 자리잡혔다. 운동의 어휘를 잃은 운동은 자기를 부르지 못한다.
AI 자리에서 그 한계가 방관자의 자리로 굳어진다.
빅테크의 자본 지능이 시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정부의 Public AI가 공공의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시민사회의 셋째 자리를 짓는 운동이 한국에는 없다시피 하다. 한국 SSE 조직들 대부분이 자기 데이터로 자기 도구를 양육하지 않고, 자기 거버넌스에 AI를 쓰지 않으며, 디지털 자리에서 자기 운동의 자리를 짓지 않는다. 모두가 빅테크의 도구를 임차해 쓸 뿐이다.
몬드라곤이 자기 도메인 데이터로 자기 적정 AI를 양육하는 자리에 한국 SSE는 없다. 레가코프가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를 짓는 자리에 한국 SSE는 없다. 퀘벡 Chantier가 AI Commons 정책에 결정의 주체로 참여하는 자리에 한국 SSE는 없다. 우리는 방관자의 자리에 있다.
AI에서도 방관자가 되면 미래가 없다.
20세기 산업사회 자리에서 SSE가 산업 인프라를 짓지 못해 주변부화되었다면, 21세기 디지털·AI 자리에서 SSE가 자기 도구·자기 데이터·자기 거버넌스를 짓지 못하면 완전한 주변부화로 미끄러진다. 시장이 점점 더 커지고, 정부가 점점 더 정교해지는 동안 시민사회만 자기 자리를 잃는다. 그것이 방관자의 미래다.
본 책은 그 방관자의 자리에서 운동의 자리로 옮기는 첫 호명이다. 한국 SSE의 주변부화를 진단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를 옮기는 운동의 척추를 세운다. 매장의 4축 허브를 시작점으로, 도메인 AI 양육을 일상의 자리로, 데이터 주권을 정책의 자리로, 국제 SSE 동지와의 연대를 운동의 자리로 — 우리는 21세기 SSE의 자리를 새로 짓는다.
방관자의 자리에서 운동의 자리로. 이것이 본 운동의 가장 무거운 호명이다.
2-2. 둘째, 국제 SSE 동지
5대륙 27지역의 사회연대경제. 그리고 그들의 21세기 AI 동향.
몬드라곤(스페인 바스크) — 산업 협동조합의 AI 자기 양육
산업 협동조합의 정초.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의 자리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70년에 걸쳐 8만여 명의 협동조합 노동자를 짓는 국제 SSE의 거목이다. 자체 금융(Caja Laboral), 자체 대학(Mondragon Unibertsitatea), 자체 R&D 센터(Ikerlan), 100여 개의 협동조합 — 협동조합이 산업 생태계 자체를 짓는다는 한 자리의 증거다.
21세기 AI 동향. 몬드라곤은 디지털 자리에 자기를 옮기고 있다. Mondragon Unibertsitatea가 협동조합 거버넌스를 위한 데이터·AI 연구를 진행하며, Ikerlan이 산업용 AI(예지 보전·품질 검사·로봇 협업)를 자체 개발한다. Mondragon Korporazioa의 협동조합들이 자기 도메인 데이터로 자기 적정 AI를 양육하는 자리. 빅테크 모델을 빌리되 자기 데이터의 주권을 잃지 않는다.
시사점. 70년 산업 협동조합 운동이 21세기 AI 자리에서 자기를 옮기는 결이 분명하다 — 자기 자본·자기 인프라·자기 데이터가 있어야 자기 AI를 양육한다. 한국 SSE가 이 자리에 도달하려면 산업생태계 결손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레가코프(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의 정초. 1886년 이래의 결집체이며, 21세기에는 볼로냐 모델로 연대지능의 도시 자리를 짓고 있다. 1만 5천여 협동조합·850만 조합원·850억 유로 매출 — 이탈리아 GDP의 약 10%가 협동조합 자리에서 자라난다.
21세기 AI 동향. 디지털 자리에서 레가는 플랫폼 협동조합주의(platform cooperativism)의 자리를 짓는다. CoopCycle(배달 플랫폼 협동조합) — 우버이츠와 딜리버루의 알고리즘 노동에 맞서 라이더가 자기 플랫폼을 짓는 자리. Smart(예술가·프리랜서 협동조합) — 빅테크 플랫폼의 종속에서 자기 자리를 짓는 사례. 볼로냐 시정부와의 협력으로 디지털 시민 자리 정책 실험.
시사점. 1인 자영업자의 알고리즘 노동이 한국에서 점점 첨예해지는 자리에서, 레가의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는 직접적 짝이다. 빅테크 플랫폼에 종속된 노동자가 자기 플랫폼을 짓는 자리 — 이것이 한국 1인 자영업자·플랫폼 노동자에게 다음 자리다.
퀘벡 사회연대경제(캐나다) — AI Commons의 정책 협력 모델
정부와의 협력 모델. Chantier de l’économie sociale가 1996년 이래 연대경제와 정부의 셋째 자리를 제도화한 사례다. 폴라니의 재분배와 호혜가 결을 가르며 함께 작동하는 21세기적 사례.
21세기 AI 동향. 퀘벡은 AI Commons 운동의 자리에 들어선다. 몬트리올의 MILA(AI 연구 센터)가 거대 AI 연구의 자리를 짓는 동안, Chantier가 시민사회 데이터 주권 운동의 자리를 짓는다. 정부의 디지털 정책과 시민사회의 데이터 주권 운동이 결을 가르며 함께 작동하는 자리. Déclaration de Montréal pour un développement responsable de l’IA(2018, 책임 있는 AI를 위한 몬트리올 선언)에 시민사회가 결정의 주체로 참여한 사례.
시사점. 한국 Public AI 정책에서 시민사회가 결정의 객체가 되지 않으려면 이 결을 받아야 한다. 정부의 재분배와 시민사회의 호혜가 함께 작동하는 자리. SSE가 정부 사업의 수혜자가 아니라 공동 결정자로 자리하는 모델이다.
인도 협동조합 — 농촌의 거대 결집
AMUL(낙농 협동조합)이 30만 마을의 350만 농민을 결집한다. 한국 SSE가 결손이라 짚는 산업 결집이 인도에서는 기본이다. AMUL이 자체 ERP·디지털 결제·농민 모바일 앱을 자기 자리에서 짓는 한편, 거대 빅테크 종속을 피하는 결을 짚는다.
아프리카 마을금고와 라틴아메리카 솔리다리오 협동조합
비공식 부문 안의 호혜. 폴라니가 짚은 재분배 이전의 호혜가 21세기에도 살아 있는 자리. M-Pesa(케냐 모바일 화폐)가 시민사회 자리에서 자라난 결제 인프라의 자리이며, 라틴아메리카의 협동은행이 빅테크 핀테크에 맞서는 자기 자리다.
결집체
ICA(국제협동조합연맹)가 이 모든 동지를 한 자리에 모은다. ICA WCM 2025 한국 등재 4개(농협·KFCC·Union Federation·미확인 1) 중 농협이 글로벌 9위 USD 51.23B로 자리잡혀 있다. 한국 SSE의 산업적 자리도 국제 무대에 섰음을 증언한다.
세계 사회연대경제는 같은 호혜의 자리에서 부르고 있다. 그들은 자기 산업·자기 디지털·자기 AI를 양육하고 있다. 한국 SSE만 그 자리에서 방관자다. 우리가 그 자리를 옮기지 못하면 21세기에 SSE는 한국에서 주변부의 주변부로 미끄러진다.
2-3. 셋째, 오픈소스 형제
도구의 자리에서 자본의 지배에 맞서는 동지들.
Apache 재단. 1999년 이래 웹 인프라의 오픈소스 자리를 짓는 자리. HTTP 서버·Hadoop·Kafka·Spark가 모두 Apache의 자리에서 자랐다.
Mozilla 재단. 2003년 이래 브라우저의 오픈소스 자리. Firefox가 한 시대의 빅테크 단일 지배에 맞섰다.
Wikipedia(Wikimedia 재단). 2001년 이래 인류 지혜의 공동 결집. 폴라니가 호혜라 부른 통합 양식이 디지털 시대에 가장 명료히 살아난 자리.
EU 데이터 주권 운동. GDPR(2018), Digital Markets Act(2022), Digital Services Act(2022), AI Act(2024)가 이어지며 데이터의 사회적 자기 보호를 정책의 자리에서 짓는다. 4번째 허구상품 데이터에 대한 정책적 자기 보호의 모범 사례.
Anthropic의 PBC 실험. Public Benefit Corporation 구조가 빅테크의 자본 지능을 공익 책임에 묶는 거버넌스 실험. 시대 동행자다.
OpenAI의 원래 이상. 2015년 비영리로 출범한 그 자리는 지금 잃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우리에게 유산이다.
이 형제들은 우리와 같은 갈래에 있지 않다. 그들은 협동조합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연대경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시대의 자기 보호 운동을 짓는다. 우리는 그들의 형제다.
2-4. 넷째, 국제 플랫폼 구축 (미래 자리)
Agenda 21이 환경운동의 국제 결집 짝이었듯,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의 국제 플랫폼을 짓는다.
Agenda 21은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국제 환경 운동의 결집 문서였다. 그것이 결집의 자리에서 환경운동을 국제 정책의 자리로 옮겨 세웠고, 21세기 기후위기 대응의 정책적 척추가 되었다.
연대지능 혁명에는 아직 그 자리가 없다. ICA가 SSE의 결집체이지만 AI 시대의 연대지능 운동 결집체는 아니다. EU 데이터 주권 운동이 정책의 자리이지만 시민사회 결집의 자리는 아니다. 우리는 이 자리를 짓고자 한다.
이 자리는 한 운동만으로는 짓지 못한다. 한국 SSE만으로는 짓지 못한다. 한 컨소시엄만으로는 짓지 못한다. 5대륙 27지역의 SSE, 오픈소스 형제, 시민 데이터 주권 운동가, 학자·법률가·예술가 — 모든 이가 결집해야 짓는다.
이 자리는 미래의 자리다. 그러나 미래의 자리이기에 지금부터 지어야 한다. 본 책은 그 미래의 자리를 부르는 첫 호명이다.
3. 인류 지혜 옹호자 결집
마르크스의 계급운동을 우리는 인류운동으로 확장한다.
이 결집은 마르크스적 의미의 계급에 머물지 않는다. 농민·1인 자영업자·디지털 노동자·협동조합원·SSE 활동가는 자기 계급에서 결집한다. 그들은 지능 무산자다. 자본의 지능에 자기 흔적을 빼앗긴 자다. 그들의 결집은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의 결집과 같은 자리에 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 인류의 지혜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이도 함께 결집한다.
- 학자 — 인류의 지혜가 사적 자본에 흡수되지 않기를 바라는 자.
- 법률가 — 인류의 지혜가 보편 권리로 보호받기를 바라는 자.
- 예술가 — 인류의 지혜가 측량되지 않기를 바라는 자.
- 교사 — 인류의 지혜가 다음 세대로 전승되기를 바라는 자.
- 종교인 — 인류의 지혜가 영적 자리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자.
- 공동체 활동가 — 인류의 지혜가 일상의 자리에서 살아나기를 바라는 자.
- 국제 동지 — 인류의 지혜가 국경을 넘어 흐르기를 바라는 자.
이 보편 호명이 폴라니의 정신이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노동운동만의 책이 아니라 사회 자체의 자기 보호 운동의 책이었다. 그 책에서 폴라니는 농민·노동자·도시 빈민과 함께, 그들의 자리를 지키려는 모든 이를 함께 부른다 — 종교인·학자·예술가·법률가까지.
우리도 그러하다.
형식은 마르크스, 정신은 폴라니다.
마르크스의 형식 — 계급의 자기 호명 — 이 운동을 변혁적으로 만든다. 잃은 자의 분노가 운동의 동력이다. 폴라니의 정신 — 사회의 자기 보호 — 이 운동을 보편적으로 만든다. 지키려는 자의 의지가 운동의 폭이다.
둘이 한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 잃은 자만의 운동은 자기 자리를 못 지킨다. 지키려는 자만의 운동은 변혁을 못 일으킨다. 두 호명을 함께 부르는 운동만이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이다.
연대의 방식 — 수목형이 아닌 리좀형
마르크스의 형식과 폴라니의 정신을 받되, 연대의 방식은 21세기의 자리에서 새로 짓는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 1980)에서 두 자리를 대비했다. 수목형(arborescent)과 리좀형(rhizomatic). 수목형은 한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 위계적·중심집중적·이항대립적 분화의 자리다. 모든 가지는 줄기로 환원되고, 모든 줄기는 뿌리로 환원된다. 결정의 자리가 위에서 내려온다.
리좀형은 다른 자리다. 잡초의 구근·박테리아의 망상·곰팡이의 균사 — 모든 점이 모든 점과 연결된다. 중심이 없다. 시작과 끝이 없다. 한 자리가 끊어져도 다른 자리에서 다시 자라난다. 위계가 없다. 결정의 자리가 옆으로 짜인다.
20세기 운동들은 종종 수목형의 함정에 빠졌다. 정당이 운동의 척추가 되고, 지도부가 결정의 자리를 차지하고, 지방 조직은 중앙의 가지가 되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안다 — 자기 운동의 자기 폐쇄, 권위주의의 위험, 그리고 21세기에 와서는 자기 자리의 상실. 한국 SSE의 주변부화도 부분적으로는 이 수목형 함정의 결이다 — 정부 사업의 가지가 되어 자기 뿌리를 잃는 자리.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은 리좀형의 자리에 선다.
매장의 작은 알고리즘이 한 점이고, 협동조합의 작은 데이터베이스가 한 점이며, 컨소시엄의 작은 플랫폼이 한 점이다. 모든 점은 자기 자리에서 자라난다. 모든 점은 옆의 점과 횡적으로 연결된다. 한 점이 끊어져도 다른 점에서 운동이 다시 자라난다. 폴라니의 호혜가 그러하듯, 마르셀 모스의 증여 환이 그러하듯, 리좀의 횡적 자기 짓기가 그러하다.
모스가 「증여론」에서 짚은 멜라네시아의 쿨라 환을 보라. 부족 사이를 도는 조개 목걸이와 팔찌가 한 부족에서 다음 부족으로, 다음에서 그 다음으로 — 환을 그리며 돈다. 중심이 없다. 어느 부족이 시작이고 어느 부족이 끝이라 할 수 없다. 모든 부족이 자기 자리에서 받고 자기 자리에서 보낸다. 그 환의 운동이 호혜다. 그것이 곧 리좀이다. 폴라니가 1944년에 짚은 호혜의 통합 양식, 들뢰즈와 가타리가 1980년에 짚은 리좀의 자기 짓기 — 둘은 다른 어휘로 같은 자리를 부른다.
이 자리에서 본 운동은 단일 정당도, 단일 지도부도, 단일 본부도 짓지 않는다. 한국의 컨소시엄도 한 점이고, 몬드라곤도 한 점이며, 퀘벡 Chantier도 한 점이다. 5대륙 27지역의 SSE 모두가 한 점이다. 오픈소스 형제도 한 점이다. 학자·법률가·예술가·교사·종교인·공동체 활동가 모든 이가 한 점이다.
리좀에서는 모두가 중심이다. 그리고 그 중심들이 옆으로 짜인다.
이 어휘가 4부의 척추다. 연대의 방식이 곧 연대의 자리다. 21세기 연대지능 혁명은 수목형의 함정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 자기 형식을 처음부터 리좀으로 짓는다. AI의 분산형 인프라(연합 학습·로컬 추론·오픈 모델)가 리좀의 디지털 짝이며, SSE의 횡적 결집이 리좀의 운동 짝이다. 기술 형식과 운동 형식이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결미 — 4부의 끝, 「결」의 시작
4부의 끝은 「결 — 연대지능 혁명을 일으키자」다.
세 자리에서 동지를 부르고(국내 SSE, 국제 SSE, 오픈소스 형제), 한 자리에서 미래의 결집을 부르며(국제 플랫폼), 한 호명에서 두 호명을 함께 부른다(만국의 무산자 + 인류 지혜).
이 자리에서 책 전체가 한 호명으로 응결한다.